대마도 역사문화 탐방을 실시한 문화재국제환수연대

“문화재는 얼이 담긴 정신적 인격체입니다”

서울시에서는 경제적 여건으로 광고를 하기 어려운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 분들을 위해 시가 보유한 홍보매체를 무료로 개방하여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내 손안에 서울'에서도 이들의 희망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세 분의 시민기자님들이 공동으로 취재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 함께 들어보시죠! 2015-1. 희망광고기업 (4) 우리 고유의 문화재를 다시 제자리로, 문화재환수국제연대 대마도 역사문화 탐방을 실시한 문화재국제환수연대 '문화재는 본래 자리에 있을 때 빛을 발한다' 불법반출문화재의 환수운동과 본래의 자리를 찾지 못한 역사문화유산 되찾기 운동을 하는 곳, 오늘 소개할 단체는 바로 문화재환수국제연대(대표 이상근)이다. 이들은 요즘 일본 대마도에서 밀반입된 불상의 반출경위 조사와 표기상의 오류 등 보관관리의 문제점을 발견하여 바로잡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 대마도에는 일본 국보 동조여래입상과 관음보살좌상 등 수백점 이상의 우리 역사문화유산이 있다. 대마도를 '한국의 박물관'이라 할 정도이다. 이 중 상당수는 고려시대이전의 유물로 고대 유물에 해당한다. 그러나 신사 등 개인소장 유물로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 창고나 폐가 등에 방치되어 있다. 이상근 대표가 대마도 귀무덤 현장을 탐방하고 있다 현재 국외소재문화재는 약 20개국 15만6천여 점으로 이는 공공기관의 소장 수치이고, 개인소장까지 합치면 일본 경우만 해도 30만점 이상이라고 일본의 쇼비대학교 하야시 요코는 말한다. 이중에는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가 많아, 역사적·국가적으로 상징성이 큰 문화재는 환수되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문화재환수국제연대(CAIRA)는 국제적 규약인 출토 유물의 제작연대와 소장처 그리고 유통경로를 밝힐 것을 일본 측에 요구하고 있다. 또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와 공동으로 조사연구를 실시하여 보관상의 문제도 함께 개선할 것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인 규약...
지방장애인 기능경기대회 현장

“장애는 도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서울시에서는 경제적 여건으로 광고를 하기 어려운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 분들을 위해 시가 보유한 홍보매체를 무료로 개방하여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내 손안에 서울'에서도 이들의 희망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세 분의 시민기자님들이 공동으로 취재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 함께 들어보시죠! 2015-1. 희망광고기업 (3)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콘텐츠로 바꾸는 사람들,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2014 장애인인식개선문화제 금상 수상작 "하루를 박음질 한다. 굼뜬 솜씨로 시침질 하다보면 꽃이 피고 새가 날지 않을까?(이하 생략)" 지난해 근로자의 날을 맞아 열린 2014 장애인 인식개선 문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시화에 쓰인 글귀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도움을 줘야할 대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장애인도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존재다. 장애인 고용지원을 위해 인식개선 문화제를 여는 등의 창조적인 활동을 펼치는 단체, 바로 오늘의 주인공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이다.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는 장애인 고용지원을 돕고 사회 인식개선을 통해 장애인도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1999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이다. 협회는 장애인들 간의 정보 교류, 화합의 장이 되고 있는 서울 여의도 이룸 센터에 자리 잡고 있으며, 회장(조향현) 본인이 소아마비 지체장애 2급으로 대한장애인체육회 초대 훈련원장을 지낸 분이다. 지방장애인 기능경기대회 현장 주요사업으로는 전국 17개의 시·도 지부와 함께 본부·산하에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 장애인 고용지원 인식개선 사업, 청소년장애인 인식개선 프로그램, 중증장애인직업재활사업, 장애인노동상담센터 등 장애인의 고용안정을 위한 사업을 펼친다. 또 자체 사업으로 장애인 자녀 장학금 지급 사업과 같은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사업도 운영한다. 2010년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취업지원 사업 공동 수행 최우수기관 선정되는 등의...
행복나눔플러스의 도시락

맛집에도 없는 꿀맛! 사랑의 도시락

행복나눔플러스의 도시락 서울시에서는 경제적 여건으로 광고를 하기 어려운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 분들을 위해 시가 보유한 홍보매체를 무료로 개방하여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내 손안에 서울'에서도 이들의 희망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세 분의 시민기자님들이 공동으로 취재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 함께 들어보시죠! 2015-1. 희망광고기업 (2) 나눌수록 기쁨과 행복은 플러스되는 특별 공식 - 행복나눔플러스 반찬과 도시락을 만들어 판매하여 얻은 수익금으로 무상으로 반찬 나눔 운동을 전개하는 서울형사회적기업 '행복나눔플러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매년 서울시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 사업 우수사례로 선정 되어 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고, 사회적 소외계층의 복리증대에 헌신한 것을 인정받아 시사투데이에서 진행한 '2014 대한민국 사회공헌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철도청에서 40년간 근무 하고 '행복나눔플러스(www.hbnn.kr)'를 운영하는 최회광 대표(행복나눔교회 목사)를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도시락 들고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다니는 행복나눔플러스의 최회광 대표 이하 최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안녕하세요? 어떤 동기로 '사랑의 반찬 나눔 운동'사업을 펼쳤습니까? 철도청 기관사로 40년을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열차와 전동차에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입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목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비록 나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정년퇴직하고 교회 일을 하면서 처음엔 지역에 전도하려는 욕심으로 시작했습니다. 큰 교회의 도움을 받아 작은 교회 목사들과 반찬 나누기 사역을 하면 좋겠다 싶어 그 중간 역할을 위해 2001년 '행복나눔플러스'를 설립했고, '사랑의 반찬 나눔'을 개별적으로 조금씩 하다가 2009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도시락은 매주 1회, 37개 교회에서 5∼30개씩 이웃에게 전달되었습니다. 140가정을 대상으로 시...
두물머리

두물머리 포토존, 누가 생각해냈을까?

서울시에서는 경제적 여건으로 광고를 하기 어려운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 분들을 위해 시가 보유한 홍보매체를 무료로 개방하여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내 손안에 서울'에서도 이들의 희망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세 분의 시민기자님들이 공동으로 취재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 함께 들어보시죠!  희망광고기업(14) 이야기로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들, 와이쥬크리에이티브 새벽 물안개를 배경으로 작품사진을 만들어내는 두물머리의 액자포토존, 대롱대롱 책이 매달린 시민청의 오픈되어 있는 책방.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사람들이 주목하는 장소로 변화된 그곳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기획부터 완성까지 모든 과정을 이끌어 낸 곳은 (주)와이쥬크리에이티브. 그곳의 대표 윤주 씨를 만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나오기까지의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아기공룡 둘리를 캐릭터 사업으로 만들고 총괄경영을 했었어요. 그 당시 둘리에게 생일파티를 해주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했어요. 1983년 4월호에 처음 만화잡지 보물섬에 실렸고 둘리에서 따온 22일로 생일을 만들어주었어요. 만화의 거리를 간직한 부천에서 83042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되었죠. 그때 처음으로 이런 콘텐츠 하나가 지역주민들까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런 일들을 확장하고 싶어 창업하게 되었죠" 회사를 차리고 참여했던 작품이 영화 '왕의 남자', '괴물', '주몽' 등이었다. 일을 하다보니 텍스트의 한계를 느꼈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서 스토리싱킹(story-thinking) 그리고 스토리두잉(story-doing)으로 한 발 앞서 나갈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어떤 지역에 대한 스토리가 하나 만들어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 역사, 사람 같은 인문학적인 요소들을 통합하고, 관련된 사람들과 공론화하고 함께 발전시켜나가며 만들어지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에 참여한다고 했다. 그녀가 기획했던 곳...
노숙인들과 함께 옷걸이를 제작하는 ㈜두손컴퍼니

노숙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기업 ‘두손컴퍼니’

서울시에서는 경제적 여건으로 광고를 하기 어려운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 분들을 위해 시가 보유한 홍보매체를 무료로 개방하여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내 손안에 서울'에서도 이들의 희망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세 분의 시민기자님들이 공동으로 취재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 함께 들어보시죠! 희망광고기업(3)노숙인에게 밥 대신 희망의 일거리를, '두손컴퍼니' 사람들에게 '노숙인'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거리에 앉아 술을 마시는 모습? 신문을 덮고 냄새를 풍기며 자는 모습? 생각보다 그들은 부지런하고 일거리를 갖고 싶어 한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노숙인에게 일거리를 제공한 후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창업까지 하게 된 청년이 있다. (주)두손컴퍼니의 대표이사 박찬재 씨를 만나 창업을 하게 된 그의 이야기를 그리고 노숙인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노숙인들과 함께 옷걸이를 제작하는 ㈜두손컴퍼니 노숙인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을 품고 있던 나는 가장 먼저 "노숙인들이 선뜻 일하겠다고 하더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박 대표는 "거리에 계신 분들을 거리 노숙인, 쉼터에서 자활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을 쉼터 노숙인"이라고 말하며, "마케팅이나 창의적인 비즈니스는 저희가 만들지만, 그분들이 생산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5군데의 쉼터에서 총 80여 명이 참여했고, 지금도 일거리가 더 없냐고 연락하는 분도 계셨다고 한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냐는 질문에 그는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액터스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었어요. 대학생들이 비즈니스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NGO 대학 동아리로 처음에는 프로젝트로 시작하였습니다. 노숙인에게 옷걸이를 만드는 일거리를 주자는 아이템이 나온 것이 준비하고 7개월 후였습니다. 작업을 시작한 것은 거의 1년 후였어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을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시는 모습으로 목격하니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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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에 “늘 한 발 먼저”

국내외의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보면 유난히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느끼며, 늘 그 아픔의 현장으로 누구보다 먼저 찾아가는 사람들. 4만 5,000여 명의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소중하게 모은 후원금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더 어렵고 더 열악한 곳을 찾아가는 사람들, (사)휴먼인러브가 바로 그들이다. 재난 발생 지역엔 늘 먼저 가 있다 2011년 10월, 외교통상부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아 활동하고 있는 국제구호개발 NGO (사)휴먼인러브는 국내사업으로 재난과 빈곤취약계층인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장학금 지원, 무료학습 멘토링, 캠프를 통한 진로멘토링 등의 교육사업과 매월 40여 가정에게 생활안정화 자금지원, 시각장애인 밑반찬배달, 시각장애인의 산책을 돕고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장애인 가정의 자립과 정서적 안정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사업으로는 재난과 빈곤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상실한 아프리카 르완다와 부룬디, 인도네시아, 중국 밀산, 라오스와 미얀마 등의 청소년들에게 장학금 지원, 그 장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공부방 지원, 빈곤국가 동화책 지원을 통하여 그들 스스로 경제적 자립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주의 고등학생 20명에게 매 학기 장학금을 지원해, 이들 중 8명이 명문대에 진학하는데 힘을 실어줬다. 장학금을 받고 대학생이 된 이들은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열악한 마을을 선정하여 마을에 거주하는 초·중학생들 70여명에게 무료 학습지도 멘토링을 실시하는 공부방을 2013년 3월 열었다. 후원을 받고 성장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선(善)순환의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지진 홍수 태풍 화산 등 재난이 발생한 지역에 긴급구조단을 파견하여 인명을 구조하고 피해지역의 다양한 구호활동을 펼치는 사업을 하는 단체이다. 국제구호개발 NGO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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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 다문화 선생님 되다

2007년 은평구 대조동 자치센터에 한국어교실이 마련됐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일본 등 결혼이주여성 10명이 이곳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조동 꿈나무도서관에서 활동하고 있던 6명의 활동가들과 의기투합, 결혼이주여성들의 모국을 소개하는 다문화 수업을 이어졌다. 이렇게 약 4년 동안 지역에서 다문화 수업을 진행한 이들은 2011년 서울시 마을기업 공모에 당선됐다. 다문화여성기업인 ㈜마을무지개가 탄생한 것이다. 현재 13명의 결혼이주여성과 7명의 지역 주부들이 다문화 강사 양성 및 강사 파견, 각 나라의 전통춤과 노래를 공연하는 다문화 공연단 '컬러링'을 운영하며, 초·중학교 학생들과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다문화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다문화 선생님입니다! "한국말도 전혀 몰랐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던 제가 지금은 어엿한 다문화 선생님이 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결혼하고 3년 내내 집에서만 지냈어요. 그러다 은평구 대조동 자체센터 강좌로 한국어교실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했고 일주일에 두 번씩 한국어를 공부하러 다녔어요.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비슷한 처지의 중국 친구들과 중국어로 수다를 실컷 떨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어교실 도우미 선생님이신 전명순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한국어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께 중국어를 조금씩 가르쳐드렸죠. 중국어뿐 아니라 중국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매우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며 겨울방학 동안 도서관에서 '중국을 배워요'라는 방학특강을 진행하자고 했어요. 한국말에 자신이 없던 저는 선생님과 함께 중국의 인구와 지형, 공식 명칭, 국기와 전통 의상, 음식들을 소개하는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5회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많이 와서 한 번 더 하게 됐어요. 이 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돈을 벌게 됐고, 마침 한국에 와 계시던 친정아버지께 용돈을 드렸어요. 작지만 제가 번 돈으로 용돈을 드릴 수 있어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한국에 와서 3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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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꾸는 보금자리를 꿈꾸다

송인성(가명. 62세. 수유2동)씨는 요즘 다시 한 번 잘 살아볼 의지가 생겼다. 사업이 부도가 나고 가족들도 뿔뿔이 해체된 채 지낸지도 수년째. 단칸방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살았던 그는 얼마 전 지역에 있던 (사)강북주거복지센터에 집수리를 의뢰했다. 상담을 나온 직원은 진지한 상담 후, 도배장판을 새로 하는 집수리가 아닌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일러줬고, 주거복지센터의 보증금 지원 덕에 임대주택에 어렵지 않게 입주하게 됐다. 사는 환경이 나아지니 제대로 살아볼 의지가 더 생겨났다. 적극적으로 신용 회복을 위해 노력했고, 헤어져 있던 가족들을 찾아 결합을 요구하게 됐다. 일을 찾아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생활에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불편한 주거환경과 주택문제에 대해 무엇이든 맘 놓고 물어볼 수 있는 곳이 자신이 사는 곳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이처럼 든든할 수가 없었다. 센터 담당자에 대한 호칭도 '조카님'일 정도로 각별하게 됐다. 본인 스스로 다시 한 번 삶을 추스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강북주거복지센터'는 그에게 살아 갈 의지를 심어 준 셈이었다. 누구에게는 선물이고, 빛이고, 살아갈 힘이 되다 "2009년 말 여인숙에 살고 있던 미혼모에게 임대주택 입주 기회를 준 적이 있었는데 마침 크리스마스 전날 입주하게 됐어요. 비주택 거주자들 중 상담을 통해 자활의지가 있는 이들에게 주거 안정의 길을 안내해 준거죠. 그분에게서 '내 평생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중 최고' 라는 말을 들었을 때 큰 일을 한 것 같았습니다. 만약 주거복지센터가 없었더라면 이런 길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셨을 분들이잖아요." "2009년 쪽방 등 거주자들의 임대주택 사업을 진행할 당시 돌이 안 된 아이와 함께 고시텔에서 생활하는 여성에게 상담을 통해, 보증금을 지원해 수유2동 빌라로 입주시킨 적도 있습니다. 주거가 안정이 되니까 어린이 집 정보 등 보육과 육아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찾는가 하면 어두웠던 예전의 모습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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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자우선주차 협동조합에 맡겨봐!

마을공동체다, 마을기업이다해서 서울의 마을이 들썩이고 있지만, 실제 주민들의 참여율은 저조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이런 비판의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힘으로 꾸려가는 마을공동체‧마을기업‧협동조합이 있다. 은평구 역촌동 주민들이 모여 만든 '역마을협동조합', 시민단체 전문활동가의 도움 없이 주민들만의 힘으로 꾸려온 협동조합이자, 마을살리기에 보탬이 되는 사업을 찾아 하는 마을기업이다. 역촌동 마을 주민들, 협동조합을 만들다 역마을협동조합은 역촌동의 옛 지명인 역말‧역마을에서 따온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역촌동 주민들이 모여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이다. 지난해 3월 마을주민 262명이 10만 원씩 십시일반 출자해 설립하였다. 현재 조합원 수는 420명, 1년 새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렇듯 역마을협동조합은 시작부터 꾸준히 많은 지역주민이 참여해왔다. "98% 이상 조합원들이 모두 동네 분들, 다 나이 드신 분들이세요. 평균 50~60대, 70대도 많습니다. 조합에 가입해서 무슨 덕을 보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지역을 위해 좋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알음알음 모인 분들이십니다." 전춘배 역마을협동조합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역촌동은 주민자치회가 지역주민들의 참여로 비교적 활발하게 움직여온 곳이다. 이러한 지역 기반은 협동조합 설립에 있어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의 자립을 돕고, 우리 마을 관리는 우리 손으로 하자는 협동조합의 설립 의지도 주민들을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이 같은 역촌동 마을의 역마을협동조합 설립과 운영과정은 전국적으로도 모범사례로 꼽히며, 이를 증명하듯 지난해 울산에서 열린 '제12회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 마을 관리는 우리 손으로 역마을협동조합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역촌동 소재 '거주자우선주차 639구획'에 대한 업무를 맡아 관리하고 있다. 재위탁사업공모에 선정되어, 은평구 시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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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만 공유하라는 법 있나요?

기업과 상품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투자, 바로 '광고'다. 그러나 영세한 기업에서 광고비용까지 집행하며 운영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터. 서울시는 이렇게 경제적 여건으로 광고를 하기 어려운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 등을 위해 시가 보유한 홍보매체를 무료로 개방하여 광고를 지원하는 <희망광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대표 온라인 뉴스 <서울톡톡>도 이들의 희망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취재수첩을 들었다. 차를 빌리고 집을 빌려주는 등 요즘 공유경제가 유행이다. 물건뿐이랴, 경험을 공유하는 곳도 있다. 은평구 녹번동 청년일자리허브센터 내에 위치한 위즈돔(http://wisdo.me)은 직업, 관심사, 취미 등 다양한 분야에 있는 850여 명의 사람들이 책으로 전시되어있는 사람도서관이다. 사람을 책으로 전시하고, 그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지혜 및 경험 공유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대표를 맡고 있는 한상엽(31) 씨를 만나 위즈돔이 하는 일에 대해 알아봤다. Q. 위즈돔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대학 2학년 때 '뭉크'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돈도 제법 벌었죠. 그런데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그 이후 '사업을 왜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고민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이라는 책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어요. 2006년 당시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사회적기업'에 대한 검색 결과가 없을 정도로 전무한 일이였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사회적기업 대학생 동아리인 '넥스터스'를 설립하고, 연구에 몰입했고, 당시 세웠던 세 가지 목표 중 두 가지는 먼저 이뤘습니다. '아름다운 거짓말'이란 연구결과물과 '소시지팩토리'란 컨퍼런스를 주최한 것입니다. 그 때 정한 마지막 목표가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직접 증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전에 대기업이 살아남은 비법을 알아보려고 1년 4개월간 회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어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