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정의 산책로 녹색의 여름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잠시 쉬어 갈까요?” 여름 정원과 미술관의 만남

석파정의 산책로 녹색의 여름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호호의 유쾌한 여행 (144) 석파정서울미술관 여름이 짙어지는 6월하고도 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부암동에 위치한 석파정서울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예전 한 번 겨울의 석파정을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지만 여름의 석파정이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새로 생긴 서울미술관 신관을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경복궁에서 부암동을 넘어가는 일은 참 신기합니다. 서울미술관의 신관. 개관기념 전시회 이후 지금은 잠시 휴관 중입니다 큰 빌딩이 즐비한 서울 중심부를 지나 자하문 터널을 통과하면 풍경은 도심을 벗어나 산골 중소도시에 들어선 분위기입니다. 이곳은 북악산과 인왕산이 마주하고 있는 곳이니까요. 도심에 어쩜 이런 곳이 있을까 싶게 서울 중심부인데도 다른 분위기가 드는 곳입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들어섭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인왕산 기슭에 위치한 흥선대원군 별장 안의 작은 정자를 부르는 말입니다. 미술관은 그 입구에 들어서 있습니다. 통합입장료는 1만 1,000원. 석파정만 가려면 5,000원입니다. 시간이 넉넉지 않거나 미술 작품 관람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석파정만 들어가 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흥선대원군 별장의 사랑채와 650살의 노송인 천세송 석파정이 위치한 곳은 인왕산의 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입니다. 석파정은 정선의 그림에서 보듯이 바위와 암벽이 즐비한 인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6월의 석파정은 녹음이 우거져 한껏 진한 여행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짙어지는 초록 사이로 하얗고 울긋불긋한 여름 꽃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별장 앞 650세가 넘은 노송도 여름을 맞아 한껏 짙어진 솔잎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인왕산 여름이 시작된 것입니다. 스탬프 투어의 스탬프가 보관되어 있는 곳 석파정을 제대로 보려면 석파정 스템프투어에서 안내하는 8개의 포인트를 모두 보아야 합니다. 8개 포인트 모두 의미 있는 장소지만 이곳에서 보는...
석파정은 서울미술관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흥선대원군이 탐낸 한양 최고의 별장 ‘석파정’

석파정은 서울미술관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17) 석파정 어머니는 자하문 너머를 자두 밭으로 기억한다. 회사 동료들끼리 놀러가서 자두를 실컷 먹었던 어머니에게 그곳은 서울 밖의 변두리이자 고향을 닮은 시골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자하문 밖은 권력가들의 별천지였다. 백사실 계곡 안에 있던 별서도 그렇고 장의사 당간지주가 남아있는 세검정 초등학교는 연산군의 명령으로 꽃밭으로 조성되었던 곳이다. 세검정 정자 역시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한양 바로 바깥이라는 지리적 장점과 함께 인왕산과 북악산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자하문 밖에는 권력가들의 별서들이 자리 잡았다. 권력가들의 사랑을 받던 곳이라 그만큼 사연이 깊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석파정이다. 석파정의 원래 주인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으로 세도정치의 핵심인 안동김씨의 일원이었다. 그가 주인이었던 시절에는 석파정이라는 말 대신 삼계동 별서로 불렸다. 그 이유는 별서가 있는 곳 바위에 삼계동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글씨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새겨졌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석파정 유수성중관풍루(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 조선시대 14살의 어린 나이에 금강산을 올랐던 김금원이 한양에 들렸을 때 백사실 계곡을 가는 길에 삼계동 별서를 지나친 적이 있었다. 김금원은 훗날 자신이 쓴 호동서락기에 작은 서재가 숲 사이로 보이는데 무척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평을 남겼다. 이후, 고종이 즉위하고 그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이 별장을 무척이나 탐낸다. 하지만 김흥근이 끝끝내 판매하는 걸 거절하자 치사하게도 아들을 이용한다. 고종을 데리고 와서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게 한 것이다. 그러자 김흥근은 신하가 임금이 쓰던 곳을 쓸 수 없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흥선대원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이곳을 넘겨받은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호를 따서 석파정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얼마나...
흥선대원군이 주로 생활했던 노안당

흥선대원군 사저 ‘운현궁’을 가다

흥선대원군이 주로 생활했던 노안당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흥선대원군이 권세를 부리며 살던 집이란 말이지?” “맞아! 며느리 명성황후와 권력다툼을 벌이던 곳이기도 하지”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64, ‘운현궁’을 찾았다. 조선 오백년의 역사가 비극으로 끝나가는 지점에서 일어났던 갈등과 권력다툼,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며느리 명성황후의 갈등이 얽힌 곳이라 더욱 궁금했다. 운현궁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관리와 경비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거처였던 ‘수직사’가 먼저 보인다. 더 들어서면 대원군이 주요 정책을 논의하던 정치활동의 중심 공간이자 일상 공간으로 사용했던 ‘노안당’이 나타난다. 방 안에는 대원군이 붓을 들고 난을 치고 있는 모습과 빈객을 맞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운현궁의 중심에는 ‘노락당’과 그 뒤편으로 ‘이로당’이 자리잡고 있다. ‘노락당’은 운현궁의 안채다. 1864년 노안당과 함께 건립됐다. 노락당의 당호는 대원군이 ‘아들이 왕이 되어 즐겁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곳은 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의 생활공간이었다. 결혼이나 회갑연 등 큰 가족행사가 이뤄졌으며 며느리인 명성황후가 궁중예법과 가례 절차를 교육받고 가례를 치른 의례 공간이기도 하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는 1866년 3월에 치러졌다. 이로당은 노락당과 함께 운현궁의 안채 역할을 하던 건물이다. 1869년에 추가로 세워졌다. 이로(二老)는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두 노인을 위한 집’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대원군은 이곳에서 부인 민씨와 짧은 노년의 기간을 보냈다. 아름다운 운현궁 풍경 대원군은 자신의 똑똑한 아들이면서 장남이었던 재면을 왕으로 세우지 않고 당시 12세로 아직 나이도 어리고 조금은 어리숙한 차남 재황(명복)을 왕으로 세웠다. 당시 44세였던 자신이 왕의 생부인 대원군으로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대원군이 초기 집권한 1863년 12월 8일부터 1873년 11월 5일까지의 10년은 개혁과 외척세력 견제, 그리...
`운현궁_하늘과의 거리 한 자 다섯 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최용수

흥선대원군과 함께, 운현궁에서 서울역사박물관까지

`운현궁_하늘과의 거리 한 자 다섯 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종로구 운니동에는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가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소나무를 재료로 건설한 후 단 한 번의 훼손이나 화재도 없이 150년 동안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운현궁이다. 흥선대원군(이하응)과 운현궁 관련 유물 8,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대원군과 운현궁에 얽힌 역사와 유물 이야기를 한 곳에서 둘러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를 마련했다. 운현궁 내 노안당의 모습 특별전 ‘운현궁_하늘과의 거리 한 자 다섯 치’는 1863년 고종 즉위부터 청나라 유폐기, 1898년 흥선대원군의 상장례까지 그의 생애와 시선을 따라 운현궁에 담긴 역사와 유물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하늘과의 거리 한 자 다섯 치”라는 글귀처럼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왕도 정치에 대한 야망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국왕인 고종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시절의 운현궁의 노안당(老安堂), 명성왕후가 가례를 치른 노락당(老樂堂), 권력을 내려놓은 뒤 노년을 보낸 이로당(二老堂)과 운현궁의 재정 등을 흥선대원군의 회고로 재구성하였다. 또한 흥선대원군이 청나라 보정부(保定府)로 유폐되어 지냈던 시기도 최초로 소개한다.  흥선대원군 정치권력의 산실 ‘노안당’ ‘아들이 임금이 되어 좋은 집에서 노년을 보내게 되어 흡족하다’라는 뜻의 노안당은 1864년에 건립되었다. 대원군은 이곳에서 통치체제 재정비, 경복궁 중건, 서원철폐, 호포제 등 개혁정책을 펼쳤고, 집권과 실각을 반복할 때에는 묵란(墨蘭, 수묵을 사용한 난초그림)를 치며 마음을 달래던 예술적 공간이다. 추사 김정희(金正喜)로부터 서화를 익힌 대원군의 묵란은 30대에 조선의 제일이라는 극찬을 받았을 정도였다. 마지막 임종을 맞은 곳도 노안당이니 그야말로 대원군의 삶이 온전히 담겨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노안당의 현판은 대원군이 존경했던 스승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다. 노안당을 완공하고 스승에게 현...
운현궁 특별전시가 이달12월8일부터 내년 3월 4일까지 진행된다

흥선대원군 삶 이야기 ‘운현궁’ 특별전 열려

운현궁 특별전시가 이달12월8일부터 내년 3월 4일까지 진행된다 서울역사문화특별전 ‘운현궁-하늘과의 거리 한 자 다섯 치’ 전시가 이달 12월8일부터 2018년 3월4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된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운현궁-하늘과의 거리 한 자 다섯 치’ 전시는 고종 즉위부터 청나라 유폐기, 흥선대원군 상장례까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생애와 시선을 따라 운현궁에 담긴 역사와 유물을 만나는 기회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번 기획전시회를 위해 소장 중인 운현궁 유물을 선별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 1993년부터 지금까지 운현궁 소장 유물을 10여 차례에 걸쳐 기증받았고, 현재 관련 유물 8,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대원군 부부가 노년을 보낸 이로당 전경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송수구장십첩병풍’이 최초로 공개된다. 이 병풍은 이재면이 회혼(回婚)을 맞이한 흥선대원군 부부의 장수를 비는 아홉 악장(樂章)을 비단에 써서 흥선대원군 부부에게 올린 것으로 전해지며, 알려지지 않은 당시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국왕인 고종보다 더 강력한 권위를 지녔던 시절의 노안당, 명성왕후가 가례를 치른 노락당, 권력을 내려놓은 뒤 노년을 보낸 이로당 등 운현궁 공간들을 흥선대원군의 회고로 재구성하여 전시하였다. 흥선대원군이 청나라 보정부(保定府)에서 유폐되어 지냈던 시기도 소개된다. 가족들에게 보낸 짧은 편지들, 손자 이준용의 생일 선물로 그려 보낸 묵란화, 유폐 생활 기록인 ‘석파잡기(石坡雜記)’ 등을 통해 흥선대원군의 고독한 유폐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운현궁으로부터 기증받은 임인진연도병풍(壬寅進宴圖屛風) 아울러 이번 전시에서는 예장청등록(禮葬廳謄錄)의 내용을 바탕으로 상장례 과정 전체를 정리하고 세부 내용을 살펴본다. 예장청등록은 흥선대원군과 부인 여흥부대부인 민씨 장례에 관한 의식·절차 및 경위·전말 등을 기록한 책이다. 부대부인은 1897년 12월 16일 먼저 세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