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 협약식 및 설명회가 있었다

일상에서 독립역사를 마주하는 그날을 위해!

7월 2일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 협약식 및 설명회가 있었다 지난 2일 서울시청에서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을 위한 협약식이 개최됐다. 2019년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7인의 독립운동가 묘소가 있는 효창공원을 독립운동을 기리는 ‘효창독립 100년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서울시, 국가보훈처, 문화재청, 용산구가 손을 잡은 것이다. 이날 협약식에서는 ‘공존’과 ‘개방’, ‘역사’라는 세 가지 원칙 하에, 독립운동가 묘역과 효창운동장이 공존해야 하며,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이곳의 역사가 온전히 구현되어야 함을 방향으로 설정했다. 효창공원은 조선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묘역인 ‘효창원’이 있던 자리다. 일제는 1940년대에 전쟁 희생자를 위한 충혼탑 설립을 명목으로 조선 왕실 무덤을 서삼릉으로 이장하면서 ‘효창공원’을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묘역은 원래 규모의 3분의 1로 줄었고, 도로로 둘러쌓이면서 고립된 공간이 되고 말았다. 광복이 되자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삼의사(1946년)와 임정 요인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을 모시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기다리며 가묘를 조성했다. 그리고 1949년 7월 본인도 이곳에 잠들었다.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은 효창공원에 독립운동가를 모신 최초의 국립묘지를 조성했다 1956년 이승만 정부는 독립운동가의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거센 반대에 부딪혀 이장은 포기했으나, 운동장은 강행해 1960년 준공됐다. 1961년에는 박정희 정권이 골프장 건설을 시도하다 저지당했다. 이후 공원에는 반공투사 위령탑, 노인회서울시연합회와 대한노인회중앙회 시설 등이 들어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효창공원 재조성 계획은 구체적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날 네 기관이 업무협약을 통해 이러한 암초를 모두 끊어내고 미래 효창공원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
효창독립 100년 공원 조성 업무협약식

‘효창독립 100년 공원 조성을 위해’ 공론화 시작

효창독립 100년 공원 조성 업무협약식 서울시가 효창공원의 위상을 바로 세워 오는 2024년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조성한다고 밝힌 가운데, 유족, 보훈, 체육‧축구계와 지역주민부터 일반시민까지 집단지성을 통해 새로운 효창공원의 밑그림 그리기를 본격화한다. 시는 ‘효창독립 100년공원(가칭)’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갈 144인의 거버넌스인 ‘효창독립 100년포럼’(이하 ‘포럼’)를 구성 완료하고, 본격적인 대시민 공론화 작업에 착수한다고 2일 밝혔다. 포럼은 독립운동가 묘역과 효창운동장을 비롯해 효창공원 일대 기본계획 수립을 주도, 조성방향을 결정하고 주요내용을 논의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해커톤, 심포지엄, 엑스포, 토론회 등 다양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도 나선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7월 2일 서울시청 본관 대회의실(3층)에서 박원순 시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정재숙 문화재청장, 성장현 용산구청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식 및 효창독립 100년포럼 발대식’을 개최한다. 축사 중인 박원순 시장 우선 1부 협약식 및 포럼발대식에서는 사업주체인 서울시와 국가보훈처, 토지소유주인 문화재청, 공원관리주체인 용산구가 상호 협력하는 내용으로 4개 기관 간 업무협약을 체결, 사업실행 기틀을 확고히 한다. 협약의 주요내용은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을 위해 ①독립운동장 묘역과 축구장이 공존하되 하나의 공간으로 조성 ②단절된 공원을 주변과 연계, 항상 쉽게 이용하는 열린 명소 ③운동장 일부 철거 및 축구장 존치, 역사·장소 가치 존중’, 크게 3가지 조성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위한 각 기관별 협력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효창독립 100년포럼’은 ▴43인의 포럼위원과 ▴101인의 시민참여단으로 구성된다. 포럼위원은 유족, 보훈, 축구․체육계, 지역주민 등 주요인사 33인과 관련기관 당연직 10인으로 구성된다. 시민참여단은 공...
효창공원에는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의열사가 있다

2024년 달라지는 효창공원 지금 가보니…

효창공원에는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의열사가 있다 집 가까이 있어 자주 찾던 효창공원이 2024년 변모한다. 특히 올해는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 효창공원을 독립운동 기념공간으로 조성한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무척 반가웠다. 관련기사 ☞ 용산 효창공원 ‘독립운동 100년 기념공원’으로 만든다 그동안 효창공원이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지역 사람들 이외에는 많이 찾지 않지 않는 편이라 아쉬웠었던 것도 사실이다.  공원 내부를 보면 여느 근린공원과는 달리 '민족의 얼이 담긴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 중요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효창공원 입구 효창공원은 원래 효창원으로 조선 22대 정조대왕의 장남인 문효세자와 생모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 속의 박씨 및 영온옹주 3개의 묘가 있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사적의 격하를 위해 공원법을 제정하고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개칭해 강제 이장케 했다. 그런 곳이었지만, 이곳에는 현재 김구 선생의 묘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사의 묘,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안중근 가묘까지 삼의사와 임정요인 더욱이 임시정부의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의 묘까지 있는 중요한 곳이다. 정문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임정요인 묘역 효창공원은 정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을 따라 올라가면 임정요인 묘역이 나온다. 설명을 읽고는 태극문양이 새겨진 문을 지나 윗부분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면 비로소 임정요인 묘소에 다다른다. 임정요인을 생각하면서 한번쯤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그 옆으로 가면 원효대사 동상과 어린이 놀이터가 자리한다. 백정기 무궁화를 비롯, 5명의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딴 무궁화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다시 정문 쪽으로 내려오면 현재 쓰이지 않는 연못과 제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뒤로 각 5명의 이름을 딴 무궁화들이 있는데 단지 이름만 딴 무궁화가 아니다. 예를 들어 김구 무궁화는 마곡사에서, 윤봉길 무궁화는 윤봉길 생가 터에서...
수상 메모리얼 예시(일상시)

용산 효창공원 ‘독립운동 100년 기념공원’으로 만든다

수상 메모리얼 예시 용산 한복판에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공원,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 정조의 장자인 문효세자의 묘역인 효창원이 있던 곳입니다. 일제는 이곳에 골프장과 유원지를 짓고, 묘역은 이전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규모가 작아졌고, 도로로 단절되면서 섬처럼 폐쇄적인 공원이 됐습니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했고, 효창운동장을 비롯한 여러 시설이 추가로 들어섰습니다. 이렇듯 복합적인 역사와 의미가 깃든 장소지만 시민들과 멀어졌던 효창공원이 이제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열린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이봉창 의사 등 7인의 독립운동가가 잠들어 있는 용산구 ‘효창공원’(총면적 16만 924㎡)이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같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마주하며 그 정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상 속 기념공원, 미래세대가 뛰어노는 새로운 명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효창공원 내 시설현황 서울시는 4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1919.4.11) 100주년을 하루 앞두고 ‘효창독립 100년 공원 구상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협의가 여의치 않았던 ‘효창공원 바로 세우기’를 위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것. 효창공원의 새로운 공간 구상 방향은 ▲효창운동장은 창의적 계획을 통해 변화 가능한 ‘다층적 공간’으로 ▲독립운동가 7인의 묘역은 ‘일상 속 성소’로 ▲주변 지역은 ‘확장된 공원’의 개념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폐쇄적이고 정적인’ 공간이었던 효창공원을 ‘함께 기억하는 열린’ 공간으로 바꿔나간다는 목표다. 기존 효창운동장 벽면을 활용한 축구 기념물 조성 예시 첫째, 효창운동장은 창의적인 계획을 통해 리모델링을 추진, 공원과 하나 되는 축구장으로 거듭난다. 효창운동장은 그동안 전면철거, 축소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60여 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