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시가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 일환으로 홍제천 유진상가 지하 공간을 '홍제유연'이라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50년간 방치된 유진상가 지하 ‘홍제유연’으로 재탄생

서울시에 또 하나의 예술 공간이 탄생했다. 지난 1일, 서울시는 서대문구에 위치한 유진상가 지하에 홍제천이 흐르는 예술 공간 ‘홍제유연(弘濟流緣)’을 시민에게 처음 공개했다. 홍제유연은‘물과 사람의 인연(緣)이 흘러(流)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유진상가 지하 250m 구간에 8개 작품들이 설치됐다. 50년간 버려졌던 공간을 시민의 예술놀이터로 승화시킨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2019년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로 선정된 유진상가 지하 홍제유연은 서울시 공공미술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의 일환이다.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는 2016년부터 ‘서울의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 된다’는 취지로 시작한 사업이다. 시민의 삶이 담긴 동네의 고유한 이야기를 찾고 예술과 함께 동네마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항상 시민과 함께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들로 재탄생한 유진상가 지하 공간. 작품명은 '온기' ⓒ김진흥 유진상가는 1970년 대전차 방호기지이자 최초 주상복합상가다.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해 ‘화합과 이음’의 메시지를 담은 홍제유연과 남북대립 속 북한의 남침을 대비해 지은 유진상가의 역사성, 50년 만에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사업 취지와 잘 맞아 공공미술 프로젝트 공간으로 채택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월드컵경기장, 독산동남문시장 등 8개 장소들이 제안됐다. 그 중에서 유진상가가 지닌 사회, 역사적 맥락의 특수성이 매우 컸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라고 귀띔했다. 홍제유연 입구 ⓒ김진흥 홍제유연은 새로운 형태의 공공미술을 선보이는 예술가들의 전시 무대다. 공간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빛, 소리, 색, 기술을 통해 다양한 시선에서 발견한 주제들로 장소의 의미를 이어간다. 건물을 받치는 100여 개 기둥 사이로 흐르는 물길 안에서 설치미술, 사운드 아트, 미디어 아트 등 8개의 작품들이 설치됐다. ‘홍제천은 어떤 곳인가’ 물음에 작품으로 답하다 작품들은...
홍제유연의 온기

물과 빛이 흐르는 미술관 ‘홍제유연’

홍제천은 북한산의 문수봉, 보현봉, 형제봉에서 발원해 서울시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 등을 걸쳐 한강의 하류로 흘러드는 지방하천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하천 연안에 중국의 사신이나 관리가 묵어가던 홍제원이 있었던 까닭으로 ‘홍제원천’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지리적,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담고 있는 홍제천은 산업개발이 한창이던 70, 80년대 오물과 쓰레기 등으로 시민들에게는 불쾌한 장소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명 가수들이 출연하는 지역의 노래자랑, 마을 축제 등이 열리기도 했던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였다. 지난 1일 유진상가 지하 250m 예술길 열린홍제천길이 첫 공개됐다. ⓒ박찬홍 특히 홍제천 상류는 물과 산이 좋다는 의미로 '이요동(二樂洞)'이라 불릴 만큼 많은 예술인, 시민들이 찾던 서울의 대표 여가 활동의 장소이자 힐링 공간이었다. 그러나 도시화로 하천길이 단절되고 경관이 악화되면서 이요동이라는 의미가 퇴색될 정도였다. 서울시는 그동안 서울지역 하천의 홍제천과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으로 다양한 수변 식물, 산책로, 자전거 길 등을 조성하여 시민의 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과 정성을 통해 홍제천도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50년간 버려졌던 홍제동 유진상가 하부 하천길이 '홍제유연'이라는 공공미술의 빛의 예술길로 탄생하였다. ⓒ박찬홍 지난 7월 1일 50년간 버려졌고, 한때는 대전차 방호기지 공간이었던 홍제동의 유진상가 하부 하천길을 예술길로 재탄생시킨 '홍제유연'이 개방됐다. 그동안 시민들이 지나다니지 못하게 막혀있던 유진상가 하부공간 250m 구간이 홍제천이 흐르는 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홍제유연(弘濟流緣)은 ‘물과 사람의 인연이 흘러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름 자체만으로도 홍제천의 ’이요동’이라는 의미가 재탄생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제유연 입구의 홍제 마니차 작품에는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이란 주제로 시민 1,000여 명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안산자락길을 따라 만난 안산도시자연공원의 오름카페를 이용하는 시민의 모습으로 안산이 갖고 있는 의미를 한눈에 담은 사진

딱 1시간 코스! 작지만 알찬 안산자락길 산책

몸과 마음이 지칠 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사색이 깃든 나만의 산책을 해 보면 어떨까.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안산’은 작지만 알찬 산책 명소로 발걸음이 즐겁다. 높이 295.5m의 안산은 북한산(836m), 도봉산(740m), 관악산(632m) 등 서울의 유명 산들에 비하면 야트막한 편이다. 하지만 산 정상에 서울시 기념물 13호로 지정된 ‘봉수대’가 자리하고, 6.25 당시 최후의 격전지였던 만큼 의미 있는 역사적 명소이다. 안산은 모악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조선시대 ‘어머니의 산’이라 해서 ‘모악산’으로 불렀다는 설과, 호랑이가 출몰해 여러 사람을 모아서 산을 넘어가야 해 ‘모악산’이라고 불렀다는 재미있는 설도 내려온다.  독립문역에서 하차, 무악재 고개방향으로 올라가면 무악재 하늘다리가 보인다. 하단에 위치한 데크 계단을 이용해 출발했다. ⓒ박찬홍 안산은 여러 길을 통해 등반을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대문구청 출발 코스부터 연희b지구 시민아파트, 연세대학교 기숙사, 봉원사, 무악재역, 독립문역, 경기대학교 뒤편에서 출발하는 코스까지 정말 다양한 길이 안산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서대문도서관에서 안산 자락길에 이르는 연결 등산로도 개통되었다. 연희동 산2-3 일원에 조성된 이 길은 길이 400m, 폭 1.5m의 목재 데크(deck) 길과 계단으로 구성돼 있다. 이 연결 등산로와 안산자락길이 만나는 지점에는 자연 속에서 특별한 독서활동과 힐링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숲속 ‘산책도서관’도 마련했다. 서대문도서관에서 출발해 안산자락길까지 이르는 길을 세 부분으로 나눠 각각 사유의 길, 소통의 길, 나눔의 길로 꾸며질 예정이라고 하니 더욱 다채롭고 새로워진 안산의 매력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무데크 계단을 이용해 들어서면 시원한 숲이 반겨준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도 준비되어 있다. ⓒ박찬홍 안산은 꼭 등반이 아니어도 가볍게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다. 필자도 특별한 준비 없이 간편한 옷...
도심 속에 조성한 홍제천인공폭포

시원한 폭포수 콸콸콸⋯도심 속 ‘홍제천 인공폭포’

서울 도심에서 인공폭포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서대문구에 위치한 홍제천이다. 편히 쉴 수 있는 쉼터와 인공폭포, 음악분수 등을 갖춘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이곳은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힐링을 책임지는 산책로로 조성됐다. 한낮의 기온이 올라 거리에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한 4월의 어느 날, 서울 홍제천의 인공폭포를 찾았다.  시원한 풍경을 자랑하는 홍제천 산책로 ⓒ박은영 홍제천은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서울특별시 종로구·서대문구·마포구의 일부 또는 전 지역을 포함해 흐르다가 한강의 하류로 흘러드는 지방하천이다. 망원동에서 서류하면서 한강의 하중도에 해당하는 마포의 난지도를 형성하고 한강 본류와 합류하는, 마포구에서는 가장 긴 한강의 지류라 한다. 홍제천은 여러 가지 별칭으로 불린다. 가장 오래된 지명 유래는 조선시대 이 하천 연안에 있던 빈민 구제기구이자 중국 사신들이 묵어가던 홍제원에서 비롯됐다. 이에 홍제원천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모래가 많이 쌓여 물이 모래 밑으로 흘렀다고 해서 모래내 또는 사천으로도 불렸다. 또한, 세검정 인근의 상류 부근에서는 세검천, 홍제천 하류의 성산동을 거치므로 성산천이라고도 불린다.   다채로운 자연 풍광을 만나는 안산초록숲길 ⓒ박은영 1974년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고, 1983년과 1988년에 각각 하천 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해 1999년 2월 18.94km에 달하는 유역의 하천 개수가 완료되었다. 2006년 평균 너비 50m인 홍제천 복원공사는 다시 시작됐다. 총공사비 692억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다. 5년 후 완공을 목표 진행됐으며, 2011년 모든 공사를 마치고 준공에 이른다.   돌다리만 건너면 연희숲속쉼터로 이어진다 ⓒ박은영 홍제천은 현재,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문수봉·보현봉·형제봉에서 발원, 서대문구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으로 총 8.52㎞에 이른다. 홍제천 길은 내부순환도로 건설 이후 생태계 복원, 쾌적한 친수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조...
홍제천과 유진상가

50년 만에 연결된 홍제천 산책로를 걷다

홍제천과 유진상가 최근 홍제천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홍제천의 유일한 산책로 단절구간이었던 유진상가 하부 500m 구간이 50년 만에 이어졌다. 이 구간은 하천을 덮고 있는 유진상가(통일로 484)와 통일로로 인해 홍제천 산책로 11㎞ 중 유일하게 단절돼 있던 곳이다. 그동안 지역 주민들도 통행에 불편이 많았는데, 드디어 지난 23일 개통식을 열고 걷기 행사가 펼쳐졌다. 유진상가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 유진상가는 1969~1970년에 건축하면서 북한군 남하에 대비해 폭격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콘크리트 구조로 설계된 냉전시대 아픔을 지닌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건축물로 인해 홍제천 산책로가 단절됐던 만큼, 이날 개통식은 주민들의 통행 불편이 해소된 날인 동시에 평화로 가는 또 하나의 작은 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에 개통한 구간은 ‘완전밀폐식 악취차단기술’을 적용해 하부구조물 양쪽에 위치한 하수시설에서 발생하는 악취 문제를 해결했다. 장마철 폭우 발생 시 진출입 통제를 위해 수위감지기와 차단시설을 설치하고 안전을 위해 감시카메라와 비상벨도 달았다. 특히 인왕시장이나 유진상가는 하천 계단을 이용해 바로 올라 갈 수 있어서 지역 상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은1동 사물놀이 동아리 축하 공연 홍제천 걷기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 모습 개통식 이후 홍제교에서 홍제천 폭포까지 가서 돌아오는 걷기 행사가 열렸는데 따뜻한 날씨로 걷기에 참 좋았다. 완주를 한 시민들에게 추첨을 통해 기부한 자전거를 선물로 받는 이벤트도 진행됐다. 홍제3동에 사는 한 주민은 “홍제천이 열려 앞으로 운동하며 걷는데 더욱 편리합니다. 집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홍제천이라 구청에 일이 있을 때 걸어 다니는데, 이제 신호등을 받지 않고 하천 산책로를 이용하면 한 번에 갈 수 있어 좋습니다”라며 말했다. 홍제천 폭포 홍제천을 따라 안산 끝자락에 홍제천 폭포가 있으며 물레방아와 연자방아도 있어 운치를 자랑...
모래가 많아 모래내로 불렸던 홍제천 ⓒ김종성

도심속 쉼터, 홍제천에서 놀아요~

홍제천은 북한산 형제봉에서 발원하여 홍제동, 남가좌동, 성산동을 거쳐 한강으로 들어가는 길이 14㎞의 소담한 도심 하천이다. 동네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가 옆으로 흐르는 개천으로, 홍제천의 천변길에는 사람들의 삶이 보이고, 정겨운 풍경들도 만날 수 있다. 상류 지역으로 가면 개천가 양편에 작고 낮은 집들이 올망졸망 들어서 있어, 옛날 개천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모래가 많아 모래내로 불렸던 홍제천 홍제천(弘濟川)은 ‘널리 인간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정다운 우리말 이름은 ‘모래내’다. 상류인 세검정 맑은 냇물이 흐르면서 모래가 많아지고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 내려간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대동여지도에는 ‘사천(沙川)’ 이라 표시되어 있고, 사람들은 ‘모래내’라고 불렀다. 그 흔적은 하천 중류 천변에 있는 오래된 전통시장 모래내 시장(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시 하천에서는 보기 드물게 산 지형을 살린 자연형 인공폭포와 안산 들머리가 있는가 하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된 백불(白佛)이 있는 암자, 탕춘대성 오간수문과 홍지문, 1636년(인조14) 병자호란 당시 인질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還鄕女)의 슬픈 사연, 조선 시대 인조반정에 출현하는 누각 세검정 등 역사의 유적들을 품고 있는 하천이다. 홍제천은 원래 수량이 적은 모래하천이었던 데다, 1999년 홍제천 위를 지나는 내부순환로 교각 설치로 인해 물줄기가 마르는 현상이 발생하게 됐다. 상류 쪽 일부 구간에만 약간씩 물이 흐르는 ‘무늬만 하천’이었다. 이에 서대문구는 인위적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등 하천을 살리기 위한 개발을 하였다. 홍제천의 명소가 된 시원한 인공폭포 생태계 복원과 휴식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2003년부터 자연생태하천 조성 계획이 추진되었고, 2008년 6월 물줄기가 다시 흐르게 됐다. 홍제천의 명물 중 하나는 급수 관리소에 위치한 인공폭포다. 산에서 폭포수가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모습이 정말 자연스럽다. 한여름에는 인근 주민들에게 최고의 피...
커다란 바위에 새겨놓은 관음보살상을 찾아 기도하는 불자들ⓒ김종성

새해 새마음으로 찾아가본 홍은동 옥천암

커다란 바위에 새겨놓은 관음보살상을 찾아 기도하는 불자들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몸과 마음을 다잡고 새해 새 소망을 기원하고자 서대문구 홍은동 옥천암(玉泉庵) 백불(白佛)을 찾았다. 홍제천변 산책로를 지나다 보면 천변가 절벽 밑으로 작은 암자와 누각이 보인다. 옥천암(서대문구 홍지문길 1-38)이라는 아담한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직할사찰로 비구니의 수도 도량이자 서울시 전통사찰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모래가 많아 옛날엔 모래내로 불렸던 홍제천. 산속이 아닌 하천가에 있는 이채로운 암자라 더욱 눈길을 끄는 곳이다. 오늘날처럼 주변 동네가 도시화되기 이전만 해도 이곳은 옥같이 맑은 물이 흘렀단다. 홍제천의 상류지역이라 물이 더욱 맑았으리라. 도성에 있는 남녀들이 줄을 서서 물을 마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서 절 이름 또한 옥천암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절은 사찰 자체보다 높이 6m의 커다란 바위에 새겨놓은 관음보살상으로 더 유명하다. 하천변 암자 안에 하얀 옷을 입은 불상이 앉아있다. 옛날 옛적 큰 홍수나 산사태 때 떠내려 왔을 거대한 바위 앞면에 장대한 마애좌상을 새겼다. 정식명칭은 ‘홍은동 보도각 마애보살좌상(弘恩洞普渡閣磨崖菩薩坐像)’이란다. ‘옥천암 보도각 백불(白佛)’이라고도 불리는 부처상으로 흰색 분이 전체적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고, 머리에 관모를 쓰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얼굴은 둥근 편이고, 가늘고 긴 눈과 작은 입으로 표현돼 있어 고려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인다. ‘보도각’은 흰 부처를 둘러싼 전각을 말하고, ‘보도(普渡)’는 모든 중생을 구원한다는 의미다. 바위의 왼쪽 편과 뒷면에는 소원을 빌면서 바위를 갈았던 붙임바위가 남아 있다. 조선초 태조임금도 찾아왔던 오래된 옥천암 옥천암은 예부터 서울의 여인들이 줄을 서서 예불했던 제일의 기도처였다. 그런 역사를 증명하듯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 있는 백불 아래에서 기도를 하는 불자들이 줄을 이었다. 백불 뒤편 붙임바위 아래 앉아 고...
놀라운 비밀을 품은 유진상가 1층 기둥들

갖가지 사연 품은 1970년생 ‘유진상가’

B동(왼쪽 건물)이 A동(오른쪽 건물, 유진맨숀)보다 낮다서대문구를 품은 아담한 하천, 홍제천이 아래로 흐르는 홍은동 네거리를 지나다보면 언제나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종로의 세운상가(1967년 완공)나 낙원상가(1968년 완공)처럼 오래된 건물 유진상가다. 1970년에 2개동 5층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엔 드물었던 주상 복합 아파트로 한 눈에 봐도 육중하고 튼튼하게 지어졌다.건물 B동이 A동보다 낮은 것은 1994년 개통된 내부순환로가 상부를 지나게 돼 B동의 4층과 5층을 철거했기 때문이다. B동은 사무실 공간으로 리모델링돼 서대문구 신지식산업센터 등의 공공기관이 들어서 있다. A동은 1층 전체와 2층 일부가 상가와 마트로 쓰이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주거용이다. 바로 앞 건너편에 인왕시장이 있다.유진상가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곳은 북쪽으로 향한 B동 건물 1층에 세워져 있는 기둥들이다. 기둥 사이 사이에 널찍한 크기의 공간이 비어 있다. 나머지는 주거용으로 ‘유진맨숀’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다. 맨션은 아파트의 원조 격으로 아파트가 드문 시절에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사람들이 살았던 고급 공동주택의 상징적인 이름이었다.유진맨숀은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동네 교회 누나가 살던 ㅇㅇ맨숀이 떠오르게 했다. 일요일마다 교회 친구들과 누나의 집에 놀러가곤 했던 추억을 떠올리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유진상가로 들어섰다. 그건 아마 짝사랑 누나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유진’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에 지어진 맨션이라 그런지 그 구조나 모양이 어릴 적 내가 살았던 동네의 맨션과 유사했다. 집집마다 취향껏 다르게 꾸며 놓은 대문이며, 큰 복도에 자리한 화분과 정다운 항아리들… 유진맨숀 복도에 늘어선 화분들당시 일반주택보다 3배가량 비싼 고급 공동주택답게 집의 평수가 33평~68평으로 큰 편이다. 1980년대만 해도 청와대, 정부청사, 법원, 검찰청 등이 가까워 고위 공무원과 법조인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두 개 동 사이 2층에 마치 공중정원처럼 넓은 옥외공간이 있는 것도 특징...
홍제천과 포방교

막바지 단풍여행, 가까운 이곳 어떠세요?

홍제천과 포방교 깊어가는 가을, 서울 속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참새 무리와 직박구리 몇 마리가 갈대밭을 소란스럽게 들쑤시는 이곳은 홍제천이다. 졸졸 흐르는 냇물 소리와 맑은 공기가 그리울 때 가끔 가보는 곳이다. 서대문구 홍은동에 속하는 홍제천은 북한산 계곡에서 흘러 내려 내부순환도로를 따라 한강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하천이다. 북한산은 물론 북악산과 인왕산과도 인접해 있어 홍제천 물빛은 단풍이 드는 이때쯤이면 더욱 맑고 투명해진다. 때마침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물에 비쳐 홍제천 주변의 풍광은 수려하기 그지없다. 물가로 몰려다니는 송사리떼와 징검다리, 너럭바위 등 도시에서는 보기가 드문 풍경을 이곳에선 볼 수 있다. 왜가리와 청둥오리들이 유유자적 노닐고 수면에 비친 그림 같은 가을 단풍 길에서 천천히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을 쉼터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40여 년 전만 해도 홍제천에는 빨래터가 있었고 멱을 감기도 했다고 전했다. 겨울철에는 아이들의 신나는 썰매장이 되기도 한단다. 북한산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는 역시 맑고 시원해 보였다. 졸졸 흐르는 냇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송사리떼, 마을을 잇는 징검다리, 너럭바위 등 도시에서는 여간해서 보기기 드물고 자연적인 개천 풍경을 보여준다. 홍제천의 왜가리와 청둥오리 마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겹겹이 두른 북한산자락 아래 홍제천을 구심점으로 양편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림 같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홍제천을 따라 상류로 쭉 올라가다 보면 ‘포방교’라는 아주 이색적인 이름을 가진 다리와 만난다. 전해진 바로는 포방교가 있는 이곳은 한국전쟁 때 퇴각하는 북한군을 쫓기 위해 대포를 설치했던 곳으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격전지이기도 했다. 이후로 줄곧 ‘포방터’로 불렸고 1970년대에 시장이 형성 되고 다리도 놓이면서 각각 ‘포방터시장’과 ‘포방교’란 명칭을 갖게 됐다. 홍제천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홍은동과 홍제동으로 마을이 나뉘지만 어디까지나 지역적 구분일 뿐 두 마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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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향녀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었건만~

홍제천은 종로구 구기동, 평창동에서 발원하여 홍제동, 남가좌동, 성산동을 거쳐 한강으로 들어가는 평범한 하천이다. 홍제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정겨운 우리말 이름 '모래내'는 세검정의 맑은 냇물이 흐르면서 모래가 많아지고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 내려간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서대문 동네를 흘러가는 이 아담하고 평범한 하천가에 오래된 역사속의 유적들과 이야기, 문화재가 존재한다니 놀랍다. 그런 하천길을 유유자적 걸어가기 위한 들머리는 개천의 이름과 비슷한 3호선 전철 홍제역이다. 홍제역 앞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왕시장을 지나 효제약국 앞에 서면 건널목 건너로 홍제천이 보인다. 하천가에 흔히 만들어 놓은 자전거도로 대신 한편에 산책로가 나있어 주민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냇가를 걸어본다. 홍제천은 우리 여성 선조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정묘, 병자호란(인조)때 공녀로 청나라에 잡혀갔던 여자들이 돌아왔으나 어디에서도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다. 피해자인 그녀들은 오히려 '환향녀'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을 뿐이다.(후일 '화냥년'이라는 여성 비하적인 욕의 유래가 된다) 나라에서는 궁여지책으로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된다는 명을 내렸다. 공녀들이 나라의 명을 받아 홍제천에서 몸을 씻지만, 결국은 도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이곳 주변에 눌러 앉아 살게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천변가 절벽 밑으로 작은 절과 누각이 눈길을 끈다. 옥천암 이라는 절인데 누각 안에 앉아 있는 건 놀랍게도 하얀 옷을 입은 부처상이다. 정식 명칭은 홍은동 보도각 백불(白佛)로 서울 유형 문화재란다. 옥천암의 보도각 백불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할 때 기도를 올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고종의 어머니이자 대원군의 부인이 아들 고종을 위해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하니 한 왕조의 처음과 끝을 살았던 왕실 사람들의 기원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약 5m 높이의 하얀 불상이 범상치 않아 절 안으로 들어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