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 가옥

초가을 홍난파 가옥에서 만난 ‘고향의 봄’

홍난파 가옥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5) 월암 근린공원과 홍난파 가옥 사람들은 길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이라는 선입견에 걸음을 멈추곤 한다. 나에게는 정동의 끝자락에 있는 강북삼성병원의 뒤편이 그러했다. 분명 도로가 연결되어 있었지만 오르막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강북삼성 병원에 김구 선생님이 계셨던 경교장이 있고, 그 맞은편에 10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역사문화 마을인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용기를 내서 장벽을 넘는 전사의 기분으로 오르막길을 오르자 잘 조성된 화단이 있는 길과 새로 재개발된 아파트 단지들이 보였다. 성곽길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따라 가다보면 오른편에 한양성곽이 보인다. 강북삼성병원 사거리에 있는 돈의문에서부터 인왕산까지 이어지는 성곽인데 새로 쌓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래쪽에는 조선시대 축성한 부분이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시대 쌓은 것도 시대별로 모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 때 처음 쌓았을 때는 자연석을 그대로 가져와서 약간만 다듬은 상태로 쌓았고, 세종대왕 시절에는 모서리를 다듬어서 쌓았다. 마지막으로 순조 때 쌓은 부분은 마치 벽돌처럼 크기를 일정하게 다듬은 돌들을 올렸다. 성곽을 따라 월암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잔디밭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중간 중간 운동기구과 놀이기구들이 있다. 그리고 성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보인다. 무엇보다 언덕에 만들어져 있어서 주변 전망이 잘 보인다는 점도 이곳에 발길을 머물게 했다.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 근린공원 월암 근린공원은 단순히 한양 성곽을 따라 지어진 쉼터가 아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지나간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산책로 중간 즈음에는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운영하면서 일제 침략의 부당함에 저항했던 영국인 베델의 집터가 있었다는 표지석이 있다. 배설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그는 일본의 모함 때문에 재판을...
홍난파 가옥 전경

홍난파 가옥에서 부르는 울밑에선 봉선화

홍난파 가옥 전경 봄과 함께 찾아온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젖어 문득 가곡 봉선화가 떠오른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 네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되는 홍난파 작곡, 김형준 작사 ‘봉선화’는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의 모습을 초라한 초가집 울타리 밑 봉선화의 이미지에 투영하고 있다. 이곡 제3절의 ‘화창스런 봄바람에 / 환생키를 바라노라’라는 구절에서는 혼백만은 죽지 않고 길이 남아서 새봄에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홍난파의 작곡 세계를 소개한 전시물 특히, 봉선화를 처음 부른 평안남도 출신 가수 故 김천애는 훗날 통일이 되면 꼭 고향에 돌아가서 ‘봉선화’를 부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평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송월 1길 38(홍파동)에 위치한 홍난파 가옥을 찾았다. 경교장과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지나 경희궁 자이 아파트와 서울시 교육청 사이 송월길을 따라 십여 분을 걷다보면 홍난파 선생의 흉상과 함께 월암근린공원 옆에 위치한 홍난파 가옥을 만나게 된다. 홍난파의 생애를 볼 수 있는 전시물 홍난파 가옥은 1930년 독일 선교사가 지은 서양 주택으로, 홍난파 선생이 인수하여 여생의 마지막 6년을 보낸 곳이다.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제90호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하절기(4월~10월)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 동절기(11월~3월)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에만 짧은 시간 개방한다. 아쉽게도 지난 주말에는 관람을 하지 못했던 터라 처음으로 내부를 관람할 수 있어 설레었다. 홍난파의 집이라는 문구 아래 벽난로와 그랜드 피아노가 인상적이다 초인종을 누르니 중년의 여성 관리인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먼저 거실 한 켠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창작 음악의 선구자인 홍난파 선생이 작곡한 ‘봉선화’,‘ 봄처녀’ 등 가곡과 ‘고향의 봄’, ‘퐁당퐁당’ 등 동요들이 소개돼 있다. 또 한 편에는 오래된 첼로와 홍난파 선생의 업적소개와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홍난파 선생...
행촌성곽마을의 현재 모습. 과거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아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였다. ⓒ최용수

우리가 몰랐던 행촌성곽마을 이야기

행촌성곽마을의 현재 모습. 과거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아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였다. 광화문에서 경교장~서울교육청을 지나 10여분 올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교남동, 행촌성곽마을’이라는 안내간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행촌권 성곽마을의 시작점인 ‘월암근린공원’ 입구이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성곽마을을 7개 권역으로 나누어 역사, 도시형태 및 생활문화자료조사, 주민인터뷰 등을 실시하여 최근 『성곽마을 생활문화기록집』을 발간하였다. 그중 ‘행촌성곽마을’은 한양도성 서쪽 인왕산 성곽아래 자리한 행촌동과 교남동 일대를 말한다. 이곳은 조선 후기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성곽 바깥마을로,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이자 한국 커피 문화의 발상지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였으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투사들의 옥바라지 마을이었다. 행촌권 성곽마을을 안내하는 입간판과 성곽이 보이는 교남동 월암근린공원 입구 1884년 고종황제는 부국강병의 일환으로 일종의 관영회사인 ‘잠상공사(蠶桑公司)’를 설립한다. 잠상공사는 중국 상해로부터 뽕나무 100만 그루를 수입하여 서울·인천·부평에 심었고, 급기야 경희궁 후원에도 수천 그루의 뽕나무를 심었다. 경희궁과 인접한 행촌권 성곽마을 일대에도 자연스럽게 수많은 뽕나무가 재배되었고, 이에 근대 서울 실크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행촌동에선 만난 주민 장충래(76세) 어르신은 “60여년 넘게 행촌동에서 살고 있는데 어릴 때는 동네 곳곳에 대추나무, 유자나무 등이 많았고 특히 뽕나무는 앞마당, 뒤뜰 할 것 없이 없는 집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동네에서 더 이상 뽕나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토질과 기후조건이 좋아 지금은 다른 종의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근린공원 개화기에 접어들자 조선에도 커피가 전래되었다. 조선에서 최초로 커피향을 맡은 사람은 고종이다. 초대 러시아 공사였던 웨베르가 그에게 커피를 선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