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촌성곽마을의 현재 모습. 과거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아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였다. ⓒ최용수

우리가 몰랐던 행촌성곽마을 이야기

행촌성곽마을의 현재 모습. 과거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아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였다. 광화문에서 경교장~서울교육청을 지나 10여분 올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교남동, 행촌성곽마을’이라는 안내간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행촌권 성곽마을의 시작점인 ‘월암근린공원’ 입구이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성곽마을을 7개 권역으로 나누어 역사, 도시형태 및 생활문화자료조사, 주민인터뷰 등을 실시하여 최근 『성곽마을 생활문화기록집』을 발간하였다. 그중 ‘행촌성곽마을’은 한양도성 서쪽 인왕산 성곽아래 자리한 행촌동과 교남동 일대를 말한다. 이곳은 조선 후기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성곽 바깥마을로,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이자 한국 커피 문화의 발상지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였으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투사들의 옥바라지 마을이었다. 행촌권 성곽마을을 안내하는 입간판과 성곽이 보이는 교남동 월암근린공원 입구 1884년 고종황제는 부국강병의 일환으로 일종의 관영회사인 ‘잠상공사(蠶桑公司)’를 설립한다. 잠상공사는 중국 상해로부터 뽕나무 100만 그루를 수입하여 서울·인천·부평에 심었고, 급기야 경희궁 후원에도 수천 그루의 뽕나무를 심었다. 경희궁과 인접한 행촌권 성곽마을 일대에도 자연스럽게 수많은 뽕나무가 재배되었고, 이에 근대 서울 실크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행촌동에선 만난 주민 장충래(76세) 어르신은 “60여년 넘게 행촌동에서 살고 있는데 어릴 때는 동네 곳곳에 대추나무, 유자나무 등이 많았고 특히 뽕나무는 앞마당, 뒤뜰 할 것 없이 없는 집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동네에서 더 이상 뽕나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토질과 기후조건이 좋아 지금은 다른 종의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근린공원 개화기에 접어들자 조선에도 커피가 전래되었다. 조선에서 최초로 커피향을 맡은 사람은 고종이다. 초대 러시아 공사였던 웨베르가 그에게 커피를 선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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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촌 성곽 마을의 도시재생 이야기

서울미디어메이트 김은지극심한 기후변화로 발생될 식량부족에 대비하는 세계 추세에 맞춰 서울시 또한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을 갖고 ‘ 서울 도시농업 2.0 마스터플랜 ’을 실천하고 있다. ‘서울 도시농업 2.0 마스터플랜’은 10분 이내의 거리 안에 도시농업 공간을 확보하여 도시재생과 자연순환을 도모하고 공동체 활성화 및 녹색 일자리 창출, 도시농업 확산 홍보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지난 25일 서울 대신 중고교에서 지역 주민들과 전문가, 학생들이 모여 ‘도시농업’행사가 있었다. 먼저 대신 중고교 옥상에 운영되고 있는 상자 텃밭에 대해 담당교사의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대신 중고등학교 옥상 텃밭은 학생들에게 도시농업에 대한 이해와 농작물 재배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농업’이라는 특성상 지역 주민 간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시킬 것을 기대로 조성되었다고 하였다. 올해 봄부터 대신고 원예 동아리와 대신중 학생들이 가지, 고추, 수박, 토마토 등의 모종을 심고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전했다. 8월 15일 전후로는 배추와 무를 관리하여 수확 후 마을 양로원과 복지시설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옥상 텃밭에는 여름 작물인 수박과 토마토가 보기 좋게 열려있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야 하는 과일이라 잘 익었을지 걱정이었지만, 수박뿐만 아니라 토마토, 가지가 보기 좋게 열려 있었다. 이 날 행사에 참여한 박원순 시장은 학생들이 재배한 가지를 직접 먹으면서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학생은 “농업이 힘들지만 꽤 재밌고 뿌듯하다.”고 말해 학생들이 도시농업을 통해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학생과 선생님이 텃밭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다음으로 행촌共터 1호점을 방문했다. 행촌共터 1호점은 행촌 성곽 마을의 재생본부로서 방문자 안내센터, 마을 상품 판매, 옥상 경작 홍보 등을 하는 공간이다. 1층 식물 약국은 전문가인 식물 약사로부터 도시농업 자문 및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관련된 물품을 사거나 대...
서울의 울타리 한양도성

성곽처럼 길고 오래된 성곽마을 이야기

서울의 울타리 한양도성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울에 있는 여러 지역에 대한 궁금증은 늘 설렘으로 다가오곤 한다. ‘어떤 곳일까?, 어떤 역사성을 품고 있을까? 어떤 감동이 그 지역에 숨어 있을까?’하고 말이다.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 이하 한양도성)의 일부 구간인 인왕산 구간 길과 오래 전부터 한양도성이 마을의 담장이었던 종로구 행촌성곽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소풍가는 날 아침 아이의 심정처럼 기대 가득했다.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을 가기 위해 지하철 5호선 3번 출구로 나와 ‘돈의문 터’로 나섰다.도성 따라 걸으며 만난 공간들이 주는 약간의 아쉬움한양도성은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면(남산), 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쌓은 성이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다. 4대문은 북쪽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이다. 이 중 소의문과 도성의 서대문이었던 돈의문은 현존하지 않는다. 1915년 일본은 서대문을 지나는 전차를 개통하면서 도로 확장을 위해 이 문을 해체해 건축 자재로 매각했다 한다. 현재 돈의문 터에는 공공미술품 ‘보이지 않는 문’ 이 설치돼 있다. 나무 계단과 나무 벽으로 된 공공미술품 ‘보이지 않는 문’만이 이곳이 한양도성의 4대문 중 돈의문이 있던 자리임을 알리고 있다. 4대문과 4소문의 위치돈의문 터에서 왼쪽 방향으로 올라가면 강북삼성병원의 일부 시설로 쓰이다가 2013년 3월 복원을 거쳐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된 경교장(사적 제 465호)이 보인다. 1945년 임시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열렸던 곳으로,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숨진 장소이기도 하다. 방문객들은 1층 영상실에서 경교장과 김구선생 관련 영상을 본 후 지하 전시실과 1층 응접실, 귀빈식당, 선전부 활동공간과 2층 김구선생의 집무실(서거 현장), 선생의 침실 등을 돌아 볼 수 있다. 복원된 경교장은 대한민국...
베델 집터 아래에 위치한 홍난파 가옥

파란 눈 독립운동가 ‘베델과 테일러’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위치한 앨버트 테일러 묘지 “나는 죽지만 신보(申報)는 영생케 하여 대한민국 동포를 구하시오”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잠들어 있는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의 유언이다. 광화문에서 경교장-서울교육청을 지나 10여분 올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교남동, 행촌성곽마을’이라는 안내 간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근린공원’ 입구이다. 아흔이 넘은 동네 토박이 할머니는 “원래 베델의 집터는 저기였다”며 기자에게 공원 끝의 아파트를 가리켰다. 실제 집터는 아파트가 되었고, 지금은 공원 안의 표석만이 ‘베델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남아 있었다. 베델의 집이 있었던 월암근린공원 입구(좌), 어거스트 베델 집터(우) 어니스트 베델은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영국인 독립운동가이다. 32세 때인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영국 특파원으로 한국에 온다. 조선의 독립을 돕기 위해 곧바로 양기탁과 함께 국·한문 및 순 한글판, 영어판 등 3개의 신문을 발행한다. 그는 헤이그 특사파견, 국채보상운동, 시일야방성대곡 영어 발행, 황무지 개간권 반대 보도 등을 통해 일제에 맞서 싸웠다. 결국 공안을 해친다는 죄로 체포되어 6개월 근신형과 상하이로 끌려가서 3주간의 금고형을 살았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909년 5월 37세로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안장됐다. 고종은 베델의 독립운동을 평가하여 ‘배설(裵說)’이라는 한국명을 하사했고,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위치한 베델의 묘지 이어서 베델 집터 인근의 미국인 독립운동가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를 찾아 행촌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은행나무가 심겨진 권율 장군의 집터에서 내려다보면,  ‘딜쿠샤(DILKUSHA)’란 현수막이 나붙은 2층의 서양식 주택이 보인다. 테일러가 19년 동안 살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바로 그 집이다. 딜쿠샤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아들 브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