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관광안내판

천천히 사색하기 좋은 산책길, 성북동 역사문화마을

가을이 무르익는 길상사 내 주변 풍경 ⓒ김영주 곱게 물들어가는 가을 단풍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심 여행지, 역사문화마을 성북동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길상사다. 본래 그 모습만으로도 멋있는 길상사의 가을은 붉은 단풍으로 물들며 한층 화려해 진 모습다. '길상사'라는 이름의 절은 전국에 산재해 있다고 하는데, 성북구에 위치한 길상사가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 조용했다. 주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그냥 아무 곳이나 사진을 찍어도 그림이다. 이태준 가옥은 현재 후손들이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김영주 이태준 가옥으로 향했다. 이태준은 1904년에 태어난 소설가이며 1925년 조선문단에 <오몽녀>로 작품활동 시작을 시작했고 그 외에도 <행복> <그림자> <온실화초> <누이> 등 수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현재 이태준 가옥은 그 후손들이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의 전통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차와 음식의 맛보다 분위기에 더 취할 정도로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만해 한용운의 유택, 심우장에는 그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김영주 만해 한용운의 유택도 만날 수 있다. 한용운은 1933년 벽산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방응모, 박광 등 지인들의 도움으로 성북동 깊은 골짜기에 방 두칸짜리 집을 지어 '심우장'으로 이름 지었다. 한용운이 심우장에서 기거하던 1930년대 중반 이후는 일본 제국주의의 극성기로 독립운동에 대한 강한 탄압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최린, 최남선 등이 친일로 변절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한용운은 끝까지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그가 기거하던 심우장도 민족자존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한용운은 광복을 1년 여 앞둔 1944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이종석 별장 ⓒ김영주 고즈넉한 이종석 별장에 도착했다. 조선 말기 마포강에서 젓갈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석이 1900년경에 지은 별장이다. 이 가옥은 크게 안채와 이에 부속된 행랑채로 구성되었다....
남한산성 만해기념관 모습

남한산성 겨울 풍경 속에서 만난 ‘만해 한용운’

남한산성 만해기념관 모습 기해(己亥)년이 밝았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특별한 새해를 맞아 민족대표 33인이자, 불교계를 대표한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만해 한용운을 만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그는 1933년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짓는다. 심우장은 ‘불교의 무상대도(無常大道)를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는 집’이란 뜻으로, 남향으로 하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돼 북향으로 지었다. 1944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생전의 발자취를 모아 ‘만해 기념관’이 탄생했다. 원래 성북동 심우장에 있던 만해기념관은 1990년 남한산성으로 옮겨졌다. “남한산성은 승군(僧軍)에 의해 축성된 호국(護國)의 상징입니다. 또한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역사적 장소여서 이곳으로 옮기면 더 많은 사람들이 만해 선생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기념관을 옮겼습니다.” 전보삼 기념관장이 기자에게 귀띔해준 기념관 이전 배경이다.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에 가려면 지하철 8호선 산성역(번출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9, 9-1, 52번)를 타면 된다. 종점인 남한산성 정류장에 내려 ‘만해기념관’ 표지판을 따라 120여 미터 오르면 기념관이 나타난다. 상설종합전시실, 기획전시실, 교육관, 체험학습실 등 60여 평의 전시관과 야외조각공원으로 꾸며진 복합문화공간으로현재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돼 있다. 7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진 상설전시장 상설전시실에는 만해의 삶이 담긴 스토리를 따라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다. ▲뜻을 세우다 ▲불교인으로의 지향 ▲3·1운동의 선봉에 서서 ▲침묵의 미학 ▲설중매화 ▲심우장의 정절 ▲만해가 떠난 그 후 등 7개 소주제로 나뉘어 전시돼 있다. 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일화, 초간본을 비롯한 160여종의 판본 및 그 외 800여 편이 넘는 연구서, 기념주화, 건국훈장 등 선생의 다양한 면면을 만날 수 있는 자료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상설전시장에서는 님의 침묵 초간본과 인도 시성 타고르...
성북동문화재야행의 메인 행사장이 있었던 홍대부속중고교 버스정류장이 있던 거리

두고두고 찾아봐도 정겨운 동네 ‘성북동 야행’

성북동 문화재 야행의 메인 행사장이 있었던 홍대부속중고교 버스정류장이 있던 거리 호호의 유쾌한 여행 (96) 성북동 문화재 야행 성북동은 서울 도성 밖에서 문화재가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산과 산이 마주하는 골짜기에 오롯이 들어선 마을은 성안을 들어가지 못한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위로와 휴식, 창작 의욕을 불러일으킨 아름다운 동네입니다. 지금은 이름 들으면 알만한 문화예술인들은 이 동네를 사랑방 삼아 아지트로 삼으며 또 다른 역사와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도심에서 약간 비켜있다고 개발되지 못한 이곳에는 아직도 그때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서울시는 2013년 최초로 이곳을 ‘역사문화지구’로 지정했습니다. 성북동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최순우 옛집의 저녁풍경 성북동의 역사는 조선 시대 성곽 축조와 함께 시작됩니다. 성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라서 성북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곽은 오늘날에도 이 마을 역사와 문화, 풍경의 중심이 됩니다. 성북동 입구의 혜화문은 동북쪽을 향하던 관문이었습니다. 타국의 사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과 물자가 이곳을 드나들었습니다. 성북동의 대표 문화재인 만해 한용운이 거주하던 심우장. 성북동문화재야행 기간을 맞아 태극기로 장식된 앞마당 선잠단은 성북동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입니다. 누에를 치기 시작하면서 양잠의 풍요를 기원하기위해 태종 때부터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는데 선잠제는 왕비가 집전하는 유일한 제례였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 이 동네 사람들은 복숭아, 자두를 심어 성안에 갖다 팔았는데 산, 계곡과 함께 유실수들이 어우러지니 경치가 좋아 별서정원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꼽은 3대 정원 중 하나인 성락원이 성북동에 있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손인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사용했던 별장입니다. 현재 복원 및 정비 중이라 일반 관람이 어려운 것이 아쉽습니다. 성북동을 거쳐간 대표적인 문인 중의 한명인 시인 조지훈의 시비(좌), 조지훈 시인의 거주지 표지석(우)...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서울사랑] 누가 사는 집일까? 알아맞혀 보세요!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모든 집은 집주인이 일궈낸 행복을 이야기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세월이 흐를수록 집과 주인의 모습은 닮아간다.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생각할 때 물리적 장소 뿐 아니라 심리적 의미로도 집을 떠올리는 이유다. 밖에서 휘둘리고 떠밀려 피폐해진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피난처 같은 곳. 근대의 예술가들에게도 그런 집이 있었다. 멋 부리지 않았지만 멋스럽고, 풍경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풍경을 돋보이게 하며, 겸손하지만 우아한 집에 예술가들의 평범한 일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심우장(尋牛莊)은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내다가 광복을 1년 앞두고 타계한 집이다. 일반적으로 한옥을 남향으로 짓는 것과 반대로 이곳이 북향에 자리 잡은 이유는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서였다. 대문 왼쪽에는 소나무, 오른쪽 에는 은행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다. 집 구성 또한 소박하고 검소해 가운데 대청을 놓고 양옆으로 온돌방과 부엌 그리고 찬마루방 하나만을 두었다. 만해는 이 집에서 장편소설 을 집필했으며, 조국의 독립운동을 이끌다 일제 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일송 김동삼의 주검을 수습해 5일장을 치르기도 했다. ○ 위치 : 성북구 성북로29길 24 심우장이 북향에 자리 잡은 이유는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서였다 춘곡 고희동 가옥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직접 지은 집이다. 1908년 한국 최초의 미술 유학생이 되어 도쿄로 건너간 춘곡은 1915년 귀국해 서울의 학생들에게 서양화를 가르쳤다. 서화협회를 창립해 새로운 미술 운동을 전개하며 서양화풍을 조국에 알리고 동양화와 접목하고자 힘쓰기도 했다. 제자를 양성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생전에 안채보다 사랑채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고 전해진다. 춘곡의 화실이기도 했던 사랑...
서울시는 망우리 묘지공원에 7월1일부터 53개 조명을을 밝힌다

최근 망우리묘지공원 밤산책 늘어…조명 설치

서울시는 망우리 묘지공원에 7월1일부터 53개 조명을 밝힌다 중량구 망우리 묘지공원에 야간조명 53개가 설치돼 7월1일부터 불을 밝힌다. 서울시는 망우리 묘지공원 '사색의 길' 산책로 1.9km 구간에 조명을 신규 설치했다. 최근 유족과 추모인 외에도 공원에서 아침·저녁으로 산책이나 운동을 위한 이용자가 많아지면서다. 서울시설공단 조사에 따르면 일평균 이용자는 주중 1,600여명, 주말 3400여명 정도. 야간조명 운영시간은 각각 하절기 일몰~23시, 새벽4시~일출까지, 동절기 일몰~22시, 새벽5시~일출이다. 망우리 묘지공원 사색의 길은 총 4.7km이며, 이 가운데 서울시 관리 범위가 1.9km다. 망우리묘지공원에는 만해 한용운, 도산 안창호(묘터), 소파 방정환, 대향 이중섭 등 유명인 묘역이 있어 추모를 목적으로 찾는 수요도 다수다. 서울시설공단은 이와 관련해 시민견학 프로그램 ‘추모힐링투어’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공공시스템예약 웹사이트(yeyak.seoul.go.kr) 교육-체험견학에서 예약해 참여할 수 있다. 망우리 묘지공원 구리한강전망대 ...
심우장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에서 가을 사색을…

제법 날이 풀린 늦가을,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을 찾았다. 심우장은 승려이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가파른 언덕에 좁다란 길을 따라 걷다보니 흰색 페인트가 곱게 칠해진 문이 나타났다. 마당으로 들어가면 북향으로 지어진 한옥이 보인다. 빨간 단풍잎이 한옥과 한데 어우러져 멋을 더한다. 따사롭게 들어오는 볕을 등지고 지어진 집. 왜 집을 북향으로 지었을까? 그 이유를 들여다보니 가슴이 아려온다. “남향하면 바로 돌집(조선총독부)를 바라보게 될 터이니 차라리 볕이 좀 덜 들고 여름에 덥더라도 북향하는 게 낫겠다.” 날이 풀렸다고 하지만 북향으로 지어진 집을 들어가면 발끝부터 시려온다. 이곳에서 대략 10년 생활하셨던 한용운 선생은 이곳에서 차디찬 겨울을 어떻게 견뎠을까? “조선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이다. 그러니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히 산단 말인가.” 한용운 선생이 쓴 글이 가슴에 박힌다. 선생이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와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선생의 삶의 흔적을 발견하고 시대정신을 되새길 수 있다. ‘심우장’이란 집 이름은 불교에는 본성을 찾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것인데, 툇마루에 앉아 조용히 사색을 즐기니 마음이 절로 정화되는 듯하다. 심우장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관람시간 내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 심우장 가는 길 ○ 관람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 가는방법 : 4호선 한성대 입구 → 6번 출구 → 1111번, 2112번 → 서울다원학교 하차 ○ 주소 : 성북구 성북로29길 24 ...
지난 2013년에 공개된 경교장 접견실 ⓒ뉴시스

삼일절 샌드위치 연휴, 어디 갈지 고민된다면?

지난 2013년에 공개된 경교장 접견실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간절한 의지와 열망이 온 세계로 터져 나왔던 그 날. 뜻 깊은 삼일절을 보내고 싶다면, 뜨거웠던 독립투쟁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보시길 바랍니다. ※ 파란색 글자를 클릭하시면 관련 정보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3) 3.1절 가볼만 한 곳 ② 백범 김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경교장’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 백범(白凡) 김구 ‘나의 소원’ 서울시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 위치한 경교장은 백범 김구가 1945년 11월부터 1949년 6월 26일까지 사용했던 개인 사저이며, 김구 선생의 저격사건이 벌어진 현장이기도 합니다. 1939년 지어진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인 경교장은 김구 선생의 숙소 겸 집무실로 사용됐으며 임시정부 국무회의를 열기도 했습니다. 1층에서는 시청각 영상으로 백범 김구를 만날 수 있으며 응접실과 선전부 활동 공간 등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경교장 유리창에 남겨진 탄환 흔적(좌), 김구 선생이 저격당할 당시 입었던 옷(우) 2층에 유리창에 남겨진 탄환 흔적과 지하 전시실에 보관된 혈흔이 묻은 김구 선생의 옷은 1949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그 밖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을 유물과 영상물 등을 통해 상세히 알 수 있어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09:00-18:00 ...
2014040401331670_mainimg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이거구나!

수많은 개발로 인해 역사적인 건축물과 인물들의 흔적들이 많이 사라진 서울. 하지만 그 안 어디엔가는 보석처럼 문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옛 집터가 남아 있고, 시비가 서 있는가 하면 문인들의 삶을 기리는 문학관들이 만들어져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부터 문인들이 살았을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국제펜클럽한국본부에서 주관하는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서울 시(詩) 문학기행>이 지난 3월 27일 첫 문학기행의 문을 열었다. 문인들의 삶과 그들이 일궈낸 문학의 궤적을 찾아보는 의미 있는 여행이 시작된 것. 이번 문학기행에는 김경식 시인의 해박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곁들여졌다. 한용운의 고택 성북동 심우장과 이태준 고택 성북동 수연산방 지난 3월 27일, 지하철 시청역 5번 출구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서울 시(詩) 문학기행>의 첫 번째 일정에 참가하기 위한 문인들과 시민들이 속속 약속 장소로 모인 것. 44명의 일행은 <서울과 인연이 되었던 시인의 고택 탐방>이란 테마에 따라 첫 탐방 장소인 성북동 심우장으로 이동했다. 심우장으로 오르는 길 오른편엔 '만해의 산책공원'이 얼마 전 조성됐다.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시인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10년간 살다가 임종한 집이다. 심우장의 '심우'는 소처럼 우직하게 불성을 찾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다'며 북향으로 집을 지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총독부 반대 방향으로 집을 지어 살며 '우리 국토의 모든 곳이 감옥인데 무슨 불을 피우느냐'며 불도 피우지 않고 생활했다고 한다. 죽는 날까지 일제와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던 이런 지조 탓에 한용운 시인의 심우장을 찾는 답사객들은 절로 숙연해진다. 이곳에서 만해 한용운은 첫 장편소설 '흑풍'을 집필하기도 했다. 조국 해방을 눈앞에 둔 1944년 세상을 떠난 시인은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심우장의 지척엔 상허 이...
2013110704330288_mainimg

시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가을 여행

예년과 달리 길었던 여름이 지나가니, 야외에서 활동하기 좋은 가을은 어쩐지 짧게 느껴진다. 가로수에서 잔잔히 내린 은행잎으로 길은 노랗게 변하고 산새는 붉게 변했다. 손에 쥔 책을 한 장씩 읽어 내려가다 보면 가을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드는 것만 같다. 떠나가는 가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남겨진 문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단법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와 함께 <서울 시(詩)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시인 김경식 선생님의 해설과 함께 시작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북촌. 이곳은 오래된 한옥이 아름답게 보존된 곳으로 국내뿐 아니라 국외 관광객들까지 즐겨 찾는 곳이지만, 일본 강점기라는 민족의 아픈 역사와 함께한 작가들의 흔적도 간직돈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의 전통 불교를 수호하고 사찰정책에 저항했던 선학원. 백담사에서 수행하던 민족시인 한용운 선생님은 당시 경성에 오면 이곳에서 숙식하며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고민을 하셨다고 한다. 북촌의 계동 43번지 만해당과 함께 한용운 선생님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어 찾은 만해당은 1918년 9월에 창간된 잡지 <유심>이 발행된 곳으로 최린이 한용운 시인을 찾아 불교계를 3.1운동에 참여하게 만든 곳이다. 현재 만해당의 간판은 걸려있지만, 우리 역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안타깝게도 개인이 운영하는 한옥 홈스테이 장소로 남았다. 외세가 밀려오던 구한말, 국내의 선각자들은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뜻을 품고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구국 정신으로 세워진 중앙고등학교는 북촌 계동 골목길 끝에 자리 잡고 있다. 3.1운동의 발상지인 중앙고등학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저항시인 이상화와 은유법이 탁월한 <국화 옆에서>의 서정주 시인을 배출한 근대문학의 중요한 장소이다. 지금도 고등학교로 남아 있어 주말에만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서울 북촌의 서쪽 입구에 있는 정독도서관은 현재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경기고등학교의 터로 1976년 강남 개발 정책에 따라 이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