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숙공 묘역

6월에 걷기 좋은 길! 노원 ‘충숙근린공원’

노원구 하계동 서울시립과학관 바로 옆에 1988년 4월 2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문신 충숙공 이상길 묘역이 있다. 묘역과 그 주변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충숙근린공원이란 이름이 붙여져 있다. 충숙공의 충절도 느끼고 숲속에서 산책과 운동을 즐길 수 있는 하계동 주민들에게 보배 같은 공간이다. 충숙근린공원 표지석 ⓒ최병용 충숙근린공원이라는 이름만 듣고는 동네에 작은 공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 묘역 안내도를 보니 왼편에 사당이 자리잡고 있고, 중앙에 묘역, 우측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충숙공 이상길이 생전에 거처했던 동천재는 조선시대 사대부 기와집의 전형으로 보인다. 기와의 수려한 곡선과 오랜세월을 버텨온 나무 기둥, 흑과 백이 잘 조화를 이룬 건물로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동천재 앞의 솟을대문은 조선시대 사대부집의 권위의 상징이다. 대문이 집안 건물과 수직으로 놓여 있어 적당히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역할도 한다. 반면에 주변의 담장을 낮게 만들어 마을과 소통의 공간으로 열려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천재 ⓒ최병용 동천재의 솟을대문 ⓒ최병용 충숙공 묘역은 홍살문, 신도비, 묘역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릉에서 보던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홍살문이 사대부 묘소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신도비는 임금이나 사대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앞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상길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이상길 선생은 선조 18년(1585)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인조 때에는 공조판서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조정의 명을 받아 영위사가 되어 80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강화도에 들어갔다가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로 몰려오자 아들에게 뒷일을 부탁한 뒤 자결로 생을 마쳤다. 이러한 그의 충절을 기려 ‘충숙공(忠肅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비는 사각의 받침돌 위로 비몸을 ...
수상 메모리얼 예시(일상시)

용산 효창공원 ‘독립운동 100년 기념공원’으로 만든다

수상 메모리얼 예시 용산 한복판에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공원,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 정조의 장자인 문효세자의 묘역인 효창원이 있던 곳입니다. 일제는 이곳에 골프장과 유원지를 짓고, 묘역은 이전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규모가 작아졌고, 도로로 단절되면서 섬처럼 폐쇄적인 공원이 됐습니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했고, 효창운동장을 비롯한 여러 시설이 추가로 들어섰습니다. 이렇듯 복합적인 역사와 의미가 깃든 장소지만 시민들과 멀어졌던 효창공원이 이제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열린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이봉창 의사 등 7인의 독립운동가가 잠들어 있는 용산구 ‘효창공원’(총면적 16만 924㎡)이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같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마주하며 그 정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상 속 기념공원, 미래세대가 뛰어노는 새로운 명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효창공원 내 시설현황 서울시는 4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1919.4.11) 100주년을 하루 앞두고 ‘효창독립 100년 공원 구상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협의가 여의치 않았던 ‘효창공원 바로 세우기’를 위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것. 효창공원의 새로운 공간 구상 방향은 ▲효창운동장은 창의적 계획을 통해 변화 가능한 ‘다층적 공간’으로 ▲독립운동가 7인의 묘역은 ‘일상 속 성소’로 ▲주변 지역은 ‘확장된 공원’의 개념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폐쇄적이고 정적인’ 공간이었던 효창공원을 ‘함께 기억하는 열린’ 공간으로 바꿔나간다는 목표다. 기존 효창운동장 벽면을 활용한 축구 기념물 조성 예시 첫째, 효창운동장은 창의적인 계획을 통해 리모델링을 추진, 공원과 하나 되는 축구장으로 거듭난다. 효창운동장은 그동안 전면철거, 축소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60여 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