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뉴시스

왜소증 4형제, 그들이 사는 세상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2)‘백설공주’에게는 항상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일곱 명의 친구들이 있다. 어려움에 처한 공주에게 기꺼이 잠자리를 내어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키 작은 친구들, 바로 어릴 때 책장이 닳도록 읽었던 동화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소위 일곱 난쟁이들이다. 동화책 속 그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있을까? 항상 품어오던 궁금증이었다. 그러다 4형제를 만난 건, 미니시리즈 형식의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집필할 때였다. 당시 나는 휴먼다큐의 주인공이 될 왜소증을 가진 장애인 가족들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지방의 한 대도시에서 함께 모여 사는 4형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설마 한 두 명도 아니고 네 형제 모두 왜소증이라는 말이 사실일까? 둘째 황세영씨와 첫 통화를 하면서도 긴가 민가 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키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세영씨는 쿨하게 답했다.“저요? 한 110센티미터 될 낍니더. 동생요? 동생들은 저보다 좀 크지 싶네요. 제가 젤 작아요. 그래도 우리 집 대장이 접니더. 우리 낼모레 서울 올라갈낀데 한번 와보셔도 되고요.”당시 세영씨는 동생들과 중국동포인 아내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천막공연을 하고 있다며 때마침 서울에 일정이 있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PD와 함께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우리는 형제들이 TV 출연에 대해 거부감이 전혀 없는데 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을까 의아해했다. 혹시 우리가 찾는 그 키 작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키가 평균보다 조금 작은 정도는 아닐까. 온갖 상상을 다 하며 만나기로 한 곳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차 한 대가 들어와 멈추고 차문이 열리더니 정말로 동화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키 작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는 게 아닌가. 작은 거인 4형제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형제들은 연골무형성증이라는 유전질환을 안고 태어나, 평생 왜소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다. 아버지도 왜소증 장애인이었고, 어머니는 하나라도 멀쩡한 자식이 ...
피아노ⓒ뉴시스

축복받은 천재, 서번트 쌍둥이 형제를 만나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1) 벌써 10년 전 일이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놀라운 사람들을 보게 됐다. 그들은 미국과 말레이시아 등에 사는 천재들이었는데, 자폐증으로 알려진 발달장애아들이었다. 사회성과 표현력이 떨어지고 지능지수도 평균이하로 알려져 있는 이 발달장애아들이 음악과 미술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이며 막힘없이 연주를 하고 사물들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뇌기능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천재성을 보이는 사람들 가리켜 석학이라는 뜻의 ‘서번트’라 부르고 있었다. 주로 발달장애인들 중 극히 일부에서 이런 천재성이 발현된다고 했다. 영화 ‘레인맨’의 주인공이 자폐 증세가 있는 장애인이면서 탁월한 암기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서번트이기 때문이다. 당시 관련학계에서는 이 서번트에 대한 연구가 그리 심도 있게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서번트는 암기력, 기억력, 수리력을 갖고 있어서 악보를 외워서 절대음감으로 곡을 연주한다거나 눈에 보이는 사물을 그대로 그려낸다거나 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창의력은 떨어진다는 것이 그때까지의 연구결과라고 했다. 감탄을 하며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에도 서번트들이 있을까?’ 시사다큐멘터리를 집필하면서 아이템회의 시간에 용어도 낯선 ‘서번트’를 들고 나온 건 그 호기심 때문이었다. 먼저 국내의 관련학자들을 접촉해서 조언을 구하려고 했지만, 모두 그런 발달장애아를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다 외국 논문에서 본 게 다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는 아이의 재능을 발견한다 해도 먼저 생활훈련을 시키는 일이 더 다급하고 절실한 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혀있는 서번트를 찾기는 난망했다. 추천을 받거나 제보를 받는 것도 진척이 없었고 남은 방법은 저인망식으로 훑는 것 뿐. 막내작가가 전국에 있는 특수학교에 일일이 전화를 돌려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청주의 한 특수학교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졸업생 중에...
벚꽃ⓒ뉴시스

우리 모두 지금 위안이 필요하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0) 포물선을 그려주던 의사처럼 한 때, 지독한 몸살기가 돌면 E씨가 무작정 찾아가는 동네 병원이 있었다. 흰머리 성성한 수더분한 이웃집 아주머니 같던 의사선생님은 청진기로 진찰을 하고 압설자로 입안을 들여다본 뒤 영어로 된 의학전문용어로 증상을 기록했다. 거기까지는 보통의 내과 의사들과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환자에게 포물선 모양의 그래프 하나를 그려 보인다는 것이다. “한번 시작한 몸살감기는 꼭 포물선을 그리면서 지나가게 돼 있어요. 갑자기 씻은 듯이 나을 순 없는 겁니다. 과정은 반드시 겪어야 해요. 쑤시고 열나고 목 아프고 기침하고 콧물 나오는 증상은 거쳐야 한다는 뜻이에요. 약 먹고 주사 맞는 건, 단지 포물선 높이를 조금 낮춰주는 것뿐이에요.” “....네 ” 그렇게 의사선생님은 E씨가 갈 때마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포물선을 그려보이곤 했다. E씨는 몸살감기를 앓는 내내 그 포물선을 떠올리면서 지금 내 몸의 상태가 포물선의 오르막길인지, 정점인지, 아니면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인지 판단하게 되더라고 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그림이 적잖이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때로 온 몸을 휘감는 아찔한 통증이 감기바이러스로 인한 몸살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증세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단다. 의사선생님이 포물선을 그려주면 어쩐지 금방 좋아질 것 같아서였다. 어차피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사이엔 포물선의 과정이 있게 마련이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마음을 다진다 해도 시련의 힘겨운 과정을 견디려면 무언가 위로될 만한 것, 혹은 비상약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E씨에게 의사선생님이 그려주는 포물선 그래프는 말하자면 비상약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10년도 넘게 찾아갔던 동네 내과가 어느 날, 가보니, 문을 닫았더란다. 꽤 연세가 지긋했던 의사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은퇴를 한 것인지 사정을 파악할 길은 없었단다. 그저 ...
경찰서ⓒ시민작가 한동헌

강도 잡은 용감한 시민 “소원이 있어요”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9) 자정이 넘은 시각, 귀가를 서두르는 한 여자를 몰래 뒤따르는 남자가 있었다. 여자가 주택가 인적이 드문 골목에 들어서자 남자는 본색을 드러내며 강도로 돌변했다. 여자가 격렬하게 저항을 했지만, 남자를 물리치기는 역부족이었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바로 그 때, 강도를 향해 간이용 의자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이가 있었다. CCTV에 찍힌 용감한 사내는 도주하는 강도를 끝까지 쫓아가 격투 끝에 제압했다. 사내는 경찰에서 용감한 시민으로 표창을 받게 됐다. 그런데 용감한 시민 Y씨는 경찰에게 뜻밖의 부탁을 했다고 한다. “보통 용감한 시민상 받으면 경찰청 홈페이지에 상 받는 사진을 올리게 되는데, 이 분은 5살 때 사진을 올려달라고 하셨습니다.” 40대 초반의 노총각 Y씨는 왜 사람들에게 5살 때 얼굴로 알려지길 원했던 걸까? 사실 그는 37년 전인 5살 때, 길을 잃고 가족과 헤어졌다고 한다. 그 후 집 대신 보육원에서 자라야 했다. 너무 어릴 때라 가족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5살 보육원 입소 당시 찍은 사진이 유일한 과거모습이라고 했다. 그 사진 한 장이 유일한 희망이고 부모님을 찾고 싶은 그의 평생소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저는 기억을 못하지만, 5살 때 사진을 보면 부모님은 반드시 알아보실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모습을 찍은 것보다 옛날 사진을 올려달라고 경찰에 부탁드린 거예요. 이것마저 없었으면 진짜 찾기 힘들겠죠. 이름도 생년월일도 불확실하니까요. 친척들이나 가족들이 살아 계시면 어릴 때 저를 기억하지 않을까요?” Y씨가 자랐던 보육원에서 찾을 수 있는 기록은 입소날짜와 생일 정도였다. 그런데 생일마저도 그가 미아로 발견된 날짜인 것으로 추정됐다. 5살 어린 Y가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미아가 된 것인지 과거 기록들이 있으면 짐작이라도 해볼 테지만, 보관기간 30년이 지나 입소 서류 등이 전량 폐기된 상태였다. 70년대 후반, 가난했던 시절 보...
로또ⓒ뉴시스

“로또 한방이면 인생 쫙 피는 건데…”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8) 돈벼락의 저주요즘처럼 살기 힘들 때, 누구나 한번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한다.“로또 한방이면 인생 쫙 피는 건데. 로또 밖에 길이 없어.”박봉으로 집을 마련하기는 요원하고, 전세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대출금에 이자 갚기에 매달 허덕여 허리띠를 조르다 못해 허리가 끊어질 지경인데, 이대로라면 내일에 대한 희망은커녕 1년 뒤나, 10년 뒤나 뻔한 날들이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어디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허황된 마음이 생기곤 한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적다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도 나만은 예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여기 한 30대 초반의 남자 S씨가 있다. 그는 지방도시에서 휴대전화 매장에 들어가 지역 조직폭력배 이름을 들먹이며 최신 스마트폰을 주문하고는 가게주인이 잠시 방심하는 사이, 그대로 들고 달아나는 수법으로 1년 동안 130여대의 휴대전화를 훔쳐오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그런데 경찰 조사에서 그는 이상한 말을 했다고 한다.“로또가 안됐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안됐을 텐데 하면서 후회를 하더라고요.”알고 보니 S씨는 10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된 행운의 사나이였다. 당첨금만 18억 원. 세금을 제하고 나면 13억 원이라는 돈벼락이 20대였던 그에게 떨어진 것이다. 하루아침에 거액을 손에 쥔 그는 10년 만에 어쩌다 도둑신세가 돼 나타난 것일까? 10년 전, 그가 살던 곳은 한 서민아파트였다. 할머니와 형, 아버지와 함께 살던 S씨가 거머쥔 행운은 가족들에게도 역전의 기회였을 것이다. 모두 집 한 채, 가게 하나씩을 장만해줬다는 S씨. 그런데 그를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은 그가 절도범으로 수배 중인 상태에서 로또에 당첨된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 6개월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S씨, 죗값을 치렀으니 당첨금으로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로또에 당첨된 행운의 사나이가 ...
빨래ⓒ시민작가 정은영

‘언니’가 된 오빠의 기막힌 인생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7) 한 대도시, 허름한 여관에 불을 지른 사람이 있었다. 큰 불도 아니고, 현관문 앞에 신발 몇 개를 모아놓고 불을 지폈다고 한다. 다행히 여관주인이 초기에 발견해 큰 피해는 없었다. 방화미수범은 1년 넘게 장기 투숙하던 C씨. 여관에 투숙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었고, 갈등도 없었다는 C씨는 대체 왜 여관에 불을 지르려 한 것일까? 사실 여관 방화미수사건은 단순한 사건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맡았던 경찰도, 변론을 맡았던 국선변호사도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C씨를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C씨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도 없었고, 10년 전 사망선고까지 돼 있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불을 지른 이유는 교도소에 가기 위해서였단다. “온 몸이 퉁퉁 부어서 잘 걷지도 못했어요. 이 양반이 살려달라는 심정으로 불을 지른 거예요. 간곡히 원했다고 봐야지요. 구속을 시켜놓으면 치료는 해주잖아요.” 검찰에 송치된 뒤에야 C씨는 병원에서 중증의 심부전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신분이 없어 무료 진료병원도 이용할 수 없었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교도소행을 택했던 것이다. 두 달 뒤 C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또 어딘가에서 교도소로 가기 위해 범죄를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행방이 묘연한 상태, 그나마 여동생과 겨우 연락이 닿았다. 막내 여동생도 C씨가 수감돼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면회를 한번 갔었는데 출소한 뒤로는 어디에 있는지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취재진에게 오래된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그런데 사진 속에 C씨의 모습이 좀 이상했다. 남자인 것 같기도 하고 옷차림을 보면 영락없는 여자 같기도 했다. “둘째 오빠인데 언니가 됐어요. 참 기가 막힌 일이죠. 오빠가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형편이 무척 어려웠는데, 어머니를 가장 많이 도와줬어요...
스토커ⓒ뉴시스

나를 배신해? 무서운 집착이 부른 참극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6) 한 10여 년 전부터 ‘스토킹’이라는 낯선 단어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스토킹’이란 상대방 의사와 상관없이 의도적으로 계속 따라다니면서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입히는 행동을 말한다. 짝사랑하는 상대 혹은 헤어진 애인에게 집착을 보이며 전화나 문자메시지, 메일 등을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 상대의 뒤를 밟으며 어디든지 나타나서 만나줄 것을 계속 요구하며, 협박이나 자해를 하는 것 등이 모두 스토킹이다. 스토커는 한결같이 자신의 행위가 ‘사랑’이었다 말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위협’이고 소름끼치는 ‘집착’이며 잔인한 ‘범죄’일 뿐이다. 3년 전, 끔찍한 살인사건 하나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강남의 한 빌딩 안에서 20대 후반의 여성 A씨가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현장은 그녀의 직장이 있던 빌딩이었고, 살인범은 범행 직후 그녀의 휴대전화까지 챙겨들고 주변을 배회하다 경찰에 검거됐다. 범인 B는 22세의 유학생, 놀랍게도 피해여성 A씨의 옛 제자였다. 살인이 일어나기 4년 전, 고등학교에서 진학상담 교사였던 A씨는 상냥하고 자상한 성품으로 학생들이 무척 따랐다고 한다. 학생이던 B도 선생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 하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착을 보이며, 마치 연인에게 하듯 A씨에게 문자메시지와 메일을 반복해서 보내기 시작했다. A씨는 처음엔 좋은 말로 타이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거부의사를 밝힐수록 강도가 더 심해졌다고 한다. 참다못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경고하자, B는 집 근처에 숨어 있다가 귀가하는 A씨의 목을 조르고 성폭행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친 적도 있었다. 당시 B를 충분히 처벌받게 할 수도 있었지만, A씨는 미성년자라는 점을 고려해 B를 용서했다고 한다. 대신 그의 부모에게 알려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조치했고, 석 달 동안 심리 상담치료를 받은 B는 유학길에 올랐다. 그것으로 A씨를 괴롭히던 스토킹도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4년 ...
현금ⓒ뉴시스

“당신 돈만큼은 내가 꼭 갚을게”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5) 사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눈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다. 우리 주변엔 사기꾼이 넘쳐나고 까딱 잘못하다간 그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기 십상이다. 아무리 똑똑하다 자부해도, 나는 감언이설에 쉽게 속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신해도 작정하고 덤벼드는 데 당해낼 사람은 별로 없지 싶다. 사건사고를 많이 다루는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온갖 종류의 사기사건을 접하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기를 당했다는 제보도 끊이지 않는다.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야채팔고, 과일 팔며 평생 어렵게 돈을 모은 상인들이 자식들 결혼자금으로, 노후자금으로 목돈마련을 위해 조금이라도 이자가 높은 계를 들었다가 계주가 종적을 감추는 일은 다반사, 그런가하면 자신이 유명 아이돌그룹의 코디네이터라고 하면서 연예인 협찬으로 각종 해외 고가품, 심지어 아파트까지도 절반 값에 구입할 수 있다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경우도 있다. 기가 막한 것은 대형마트 소시지 1+1 행사처럼 최고급 외제승용차를 싼 값에 사면서 국내 중형 SUV차량을 한 대 더 준다고까지 했단다. 그리고 가뜩이나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쉴 수 없는 대학생들에게 대출을 받아오면, 원금은 물론이고 수고비까지 듬뿍 챙겨주겠다는 말에 속아 제2 금융권에서 수천만 원의 대출을 받아 넘긴 후, 빚 독촉에 시달리며 죽음까지 생각하는 20대 청년들도 있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사기꾼의 눈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호구로 보일 것이고, 돈줄로 보일 것이니, 큰 노력 없이 돈 생기는 일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쑤는 말도 안 되는 것도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한 것처럼 사기를 친다. 어이없어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속아 넘어간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깜빡 속아 넘어가는 사기의 수법엔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우선, 사기꾼은 굉장히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자상하거나 혹은 엄청난 재력을 뽐낸다. 그 지역에서 누구나 아는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거나(물론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방송에 출연...
화분ⓒ뉴시스

누가 그녀의 33년을 뺏어갔나…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4) 그녀의 잃어버린 33년33년이면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다. 33년이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7번이나 바뀌는 엄청난 시간이다. 예순 다섯 살 할머니가 된 H씨에겐 그 긴 시간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아픔이 있었다. 바로 1980년 행방불명된 막내여동생 때문이었다. 당시 여동생은 취직을 하러 간다며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동생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그래서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지냈는데 어느 날, 부산의 한 구청으로부터 등기우편 하나가 날아왔다. 소식이 끊겼던 동생이 어느 병원에 행려환자로 입원해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간 그곳엔 정말 막냇동생이 머리가 하얗게 센 채로 앉아있었다. 집을 나갈 때 스물두 살, 꽃같이 예뻤던 동생이 쉰다섯 살이 돼 언니 앞에 나타난 것이다. 동생은 할머니로 변해버린 언니를 단번에 알아봤다고 한다.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고, 왜 행려자가 돼 정신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는 건지, 왜 가족들에겐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막냇동생은 자신에 대해 아무런 기억도,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밥도 떠먹여야 할 정도로 어린아이처럼 돼 버렸다. 언니 H씨는 제작진에게 동생이 어쩌다 33년 만에 돌아온 건지,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다고 했다. 80년 당시, 집을 나간 뒤 몇 달 동안 소식이 없던 동생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전화가 온 거예요. 잘 있다고만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전화번호를 가지고 찾아 나섰어요. 전라도 광주였는데, 나지막하고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음침했던 기억이 나요. 아가씨 장사하는 곳 같아보였어요. 방에다 아가씨 여러 명 두고. 근데 남자가 딱 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내 동생이 나가서 안들어 온다고, 여기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못 만나고 왔어요. 그때만 만났어도...”동생이 있었던...
모래ⓒ뉴시스

11살 아이가 세상에 던진 숙제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3) 세상에 이럴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가 믿어왔던 상식이 이렇게 뒤집힐 수는 없다. 부모의 사랑은 타고나는 것이고 무조건적이라고, 자식을 향한 희생과 헌신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어왔건만, 요즘 터져 나오는 뉴스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여름 반바지 차림의 앙상하게 마른 여자아이가 마치 할머니처럼 구부정한 걸음걸이로 한 주택가 슈퍼마켓에 들어서서는 여보란 듯이, 장바구니에 과자를 가득 담아 그대로 나가려다 주인에게 붙잡혔다. 발각된 뒤에도 아이는 먹을 것에 강한 집착을 보였고, 계단 하나 오르는 것도 힘겨워할 만큼 오래 굶은 것 같았다고 한다. 그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 아이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는 슈퍼주인은 오히려 따뜻한 음료와 빵을 건네며 아이를 안심시켰다고 했다. 그러자 차츰 입을 열기 시작한 아이는 자신이 고아원에서 탈출했노라고 반복해서 이야기를 했다. 남루한 행색이며 깡마른 몸이 심상치 않았던 슈퍼주인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조사 결과, 아이가 슈퍼 인근의 집에서 친부와 동거녀, 그리고 동거녀의 친구에게 지속적인 학대와 감금을 당해오다 스스로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말,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던 11살 여아 감금학대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11살이었지만, 실제 키와 몸무게는 4,5세 수준이었고,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였으며, 갈비뼈 골절을 비롯해 온 몸이 멍투성이였다. 아이가 고아원에서 탈출했다고 거짓말을 한 이유는 자신을 다시 지옥 같은 집으로 돌려보낼까봐 두려워서였다. 1년여 전에도 탈출을 시도했다가 지나는 행인이 집으로 데려다주는 바람에 그 뒤에 친부와 동거녀, 그녀의 친구로부터 감시와 폭행, 그리고 굶기는 일이 더 심해졌던 것이다. 아이는 무려 3년이 넘게 학교를 다니지 않는 장기결석생이었지만, 학교도, 교육청도, 지자체도 이 사라진 11살 초등학생이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당해왔는지 파악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