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시민작가 문청야

당산역 구둣방에 살던 천사, 하늘로 떠나고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32)지하철 당산역 일대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상가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돼 있는 당산역 근처 거리엔 1평 남짓한 작은 구둣방이 하나 있었다. 늘 그곳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없었던 그 구둣방의 철문이 굳게 닫힌 채 주인이 나타나지 않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중순. 구둣방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메모가 붙기 시작했다. 모두 구둣방 주인에게 쓰는 편지들이었다.‘성실함이 무엇인지 알려주신 아저씨 잊지 않을게요.’ ‘친구! 당신의 삶에 대한 의지는 우리들의 본보기였소.’ ‘아저씨 행복하세요. 감사했습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시던 아저씨. 늦은 시간에 겨우 찾으러 온 제게 보여줬던 그 미소를 잊을 수 없습니다.’ ‘항상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정말 감동스러웠습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구둣방 주인은 58세 강상호씨. 지난 30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휴일에도 쉬는 법 없이 항상 구둣방 문을 열었던 그는 자정 넘어 퇴근하던 길에 과속으로 달려오던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오토바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졌고, 강씨도 그 자리에서 숨졌다.그의 부고가 알려지자, 구둣방을 드나들었던 이와 이웃들과 친구들이 추모의 글들을 붙여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구둣방 천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왜 많은 이들이 그토록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것일까?사실 강상호씨는 뇌성마비로 인해 한쪽 팔, 다리가 불편한 1급 지체장애인이었다. 장애 때문에 말하는 것도 어눌했지만 그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늘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화를 내는 법 없이 늘 환한 미소로 답했다는 강씨. 추운 겨울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도 비좁은 구둣방에 앉아 열심히 구두를 닦고 고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강씨의 구둣방에서 구두를 고친 적 있었다는 한 30대 직장인은 이렇게 말했다.“직장생활에 회의감도 생기고 ...
점프ⓒ뉴시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방송작가 최경의 (31) 인생의 점프를 기다립니까?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이 말장난 같은 표현을 나는 가끔 자신감이 넘치거나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후배들에게, 혹은 갓 사회로 나온 어린 후배들에게 쓰곤 한다. 새로 팀원을 뽑기 위해 공고를 내면 어김없이 많은 지원자들이 이력서를 보내온다. 이력서가 그 사람의 전부를 이야기해주진 않지만 대략 어떤 프로그램에서 나름대로의 경력을 쌓으며 시간을 보냈는지, 그 궤적을 조금은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몇 명을 선별해 면접을 보면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해 보곤 한다. 물론 개중에는 면접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을 포장하기도 하고 원래 갖고 있는 성격을 숨기기도 한다. 외모가 좋다고 해서 이 분야의 일을 잘해내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다 아는 프로그램에 몸 담았었다고 해서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또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변방에서 경력을 쌓았다 해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 남보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이력서의 행간을 읽어내고, 짧은 시간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지원자의 시각과 열망과 의지 같은 것뿐이다. 그 역시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 뿐,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뽑아도 몇 달 안 돼 그만둬 버리거나, 처음 예상과 달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함께 일할 팀원을 뽑는 과정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경력이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많은 프로그램을 이리저리 짧게 짧게 옮겨 다니는 경우다. 이런 지원자는 속된 말로 ‘모 아니면 도’다. 솔직하게 말하면 ‘도’에 가깝다. 한번은 면접에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기대를 하고 갔는데 배울게 없어서요.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느라 그랬어요. 나중에 제가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을 하려면 빨리 배워야 하니까요. 그 다음으로 다시 옮긴 건, 배울 만큼 배운 것 같아서예요. 만족이 안 되더라고요.” 이 자신감 넘치고 발칙한 지원...
노부부ⓒ뉴시스

부부로 산다는 건 이런 걸까?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30) 부부로 산다는 것 2편 - 신열부전살면 살수록 참 흉흉한 일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보고 듣고 겪는 일들이 많아져서인지, 아니면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흉폭해진건지 모르겠지만 특히 가족끼리 일어나는 범죄, 부모가 어린 자식을 학대하거나 죽이고, 반대로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또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들이 넘쳐난다. 가족 공동체, 마을 공동체가 무너져버린 현대사회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문제인 걸까.그런데 어느 바닷가 마을에 믿기 힘든 이야기를 37년째 이어가는 부부가 있다. 이른 새벽 그 집에선 어김없이 밥 짓는 소리가 들린다. 부엌에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도마소리를 내고 있는 이는 77세의 할아버지다. 반찬을 만들다가 뭔가 부족한 것 같으면 방쪽을 향해 물어본다.“고춧가루는 조금 많이 넣어도 되지?” “너무 많이 갈지 말고 모자라면 그때 넣으면 돼요.”방안에서 이것저것 요령을 일러주는 이는 할머니. 백발을 한 채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반듯이 누워 있는 할머니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온몸이 굳어 손가락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30대에 시작된 병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됐고 37년을 남편의 병수발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아픈 아내를 대신해 그동안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왔고, 아들 3형제를 키워냈다고 한다. 매일 아내를 씻기고 닦이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이 할아버지의 일상이다. 그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병은 계속 악화돼 7년 전부터는 시력까지 거의 잃은 상태였다. 말이 37년이지, 실제로 그 세월이 어디 쉬웠을까. 남들 같으면 진작 포기하거나 내치거나 도망갔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한결 같이 아내 곁을 지켜온 것일까?“말이 그렇지, 내 마음 속에서 한결 같았겠어요? 마음속에 약간의 굴곡은 있었지요. 그래도 겉으론 표현을 절대 안했지. 표현하면 아내가 얼마나 미안하고 고통스럽겠어요. 몸도 아픈데.”이들 부부...
논ⓒ뉴시스

사랑을 믿느니 차라리 의리를 믿겠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9) 부부로 산다는 것 1편 - 한 실종 노인의 잔인한 결말단 한순간도 떨어져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숨 쉬는 매순간 생각나고,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고장 난 것처럼 벌떡이는,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랑노래의 가사가 다 내 얘기 같은 그런 죽고 못살 만큼 뜨겁던 사랑도 유효기간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수백 번 했어도 사랑이 식고, 마음이 돌아서고 나면 철저하게 남남이 되는 게 남녀 간의 사랑이라지 않던가. 자식들을 낳고 살을 맞대며 수십 년 살았던 부부도 갈라서고 나서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2년 전, 제작진에게 한 할아버지가 형님을 찾는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대기업에서 30년 넘게 운전기사로 근무하다 퇴직했다는 형님은 윤모 할아버지. 실종 직전, 서울의 한 택시회사에서 기사로 성실하게 일해 왔는데, 월급날을 불과 며칠 앞두고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윤할아버지가 살던 단칸 월세방엔 설거지도 하다 말고 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면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형님은 8개월째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동생은 형님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을 당한 것 같다고 했다. 이상한 점은 할아버지의 아내와 자식들이 적극적으로 찾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동생도 그게 석연치 않다고 했다. 형님이 실종되기 전에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했다가 겨우 나온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형님이 정신병원에서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보냈어요. 강제로 들어왔는데 나 좀 빼내 달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놀라서 찾아갔었죠. 형수가 입원을 시킨 거더라고요. 근데 퇴원이 안 되는 거예요. 결국 소송까지 해서 겨우 나왔는데 그 사이 형님 집도 팔아버렸더라고요. 이혼까지 해주고 빈털터리 돼서 혼자 택시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동생은 이번에도 형수와 자식들이 형님을 아무도 모르는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지만, 가족들과 연락을 시도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
야경ⓒ시민작가 신문식

아픔을 강요받는 이 땅의 청춘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8) 청춘에게 아픔은 당연한가? 아까운 청춘들이 자꾸만 저물고 있다. 꽃 같은 청춘들이 피어보기도 전에 꺾이고 있다. 물론 전에도 그랬었다. 집에서, 차에서, 건물에서 혹은 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린 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이다. 그중 몇몇은 뉴스에서 단신으로 등장했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런데 요즘 뭔가 심상치 않다. 출구를 찾아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애를 쓰다 끝내 절망 끝에 서버린 젊은이들의 몸부림이 단신 뉴스 이면에서 꽤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20대 청년들이 취직을 못해서, 실연의 아픔을 견딜 수 없어 목숨을 끊는 경우는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전과는 다르다. 개인의 의지, 처한 환경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뭔가 단단하고 두껍고도 잔인한 장벽이 그들 앞에 놓여있는 것 같다.바로 얼마 전, 서울의 한 주택가에서 때 아닌 물난리가 났다. 집주인은 처음엔 수도관이 터진 줄 알고 급한 대로 물을 퍼냈지만 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물이 새어나오는 곳은 반지하 월세방. 그러나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그곳엔 20대 후반의 쌍둥이 형제가 두 달 전 이사와 살고 있었다. 집주인이 문을 따고 들어갔을 때 집안은 물이 발목까지 차있었고, 그 속에서 쌍둥이 형제가 숨져 있었다. 형제는 늘 붙어 다닐 정도로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경찰조사 결과, 외부침입의 흔적은 없었고, 형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됐다. 스물아홉 살 청년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살아갈 숱한 날들에 대한 미련을 접어버린 것일까.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형제는 내성적이었고, 주변에 왕래하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먼저 여의었고, 어머니와 두 아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었는데 어머니마저 병으로 2년 전 세상을 떠난 뒤 세상엔 형제만 남겨졌다. 지인은 형제의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병든 어머니를 쌍둥이 형제가 부양해왔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
거짓말과 말바꾸기ⓒ뉴시스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면…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7) 거짓말쟁이의 모래성‘저 사람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믿지 마’이런 말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살면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래도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한, 내 삶에 그리 치명적이진 않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거짓말로 포장된 것이라면, 그래서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제보자들 중에는 결혼을 앞두고 신랑이 혹은 신부가 잠적했는데 찾아달라는 사연이 꽤 많다. 불타는 연애를 하고, 결혼약속을 하고, 분홍빛 미래를 꿈꾸는 중에 애인이 사업자금이 필요하다고, 혹은 갑자기 집안에 큰 일이 생겼다며 큰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눈에 콩깍지가 씐 와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다는데 발 벗고 나서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서라도 목돈을 마련해 건네주게 되는데, 얼마 뒤 홀연히 종적을 감추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다. 그런데 뒤늦게 뭔가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우리에게 제보를 해오면서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그 사람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말 모르겠어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르겠어요.”취재를 해보면, 대부분 그 사람은 이름부터 학력, 이력, 가정환경, 직업 등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전제로 사귀며 목돈을 뜯어내 잠적하는 수법으로 당한 피해자들이 줄줄이 딸려 올라오는 고구마처럼 튀어나온다. 그 사람에게 거짓말로 둘러싼 포장지는 한 몫 챙기기 위한 필수도구다. 그래서 사기꾼들은 그럴 듯한 거짓말을 장착하고 계속 진화시키며 떠돌아다니는 것이다.그런데 돈을 목적으로 한 사기꾼은 아니면서 거짓말로 인생을 포장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위해 습관적으로 부풀리기를 잘하는 사람과 병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면서 허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불행한 건지, 누구나...
청소년ⓒ뉴시스

학교폭력, 20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6) 거울 속 일그러진 어른들그 해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제작진을 찾아왔다. 아들이 당한 일을 제보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조금 절었다. 뭔가에 쫓기는 듯 표정은 초조해보였고, 수염은 까칠했다. 자신은 원래 지방대도시에 살았었는데 아들 일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왔노라고 했다. 어느 국책연구소에서 인정받는 연구원이었다는 그가 지난 3년 동안 겪은 일이라며 털어놓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집단 따돌림을 심하게 당해왔고,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했던 부모는 그저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쯤으로 생각을 했다고 한다.아들이 학교에서 동급생 여러 명에게 놀림을 받고, 맞으며 심지어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성적인 희롱까지 당해왔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았을 때는 이미 시간이 꽤 흘러서였다. 학교에 찾아가 가해자들 처벌과 사과를 요구하는 건 피해학생 부모가 할 수 있는 당연한 순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 측의 태도가 예상과 전혀 달랐다고 한다. 가해학생들이 꽤 여럿이었는데, 대부분 모범생들이었고 부모도 엘리트라면서 그럴 아이들이 아니며, 이 학교는 폭력 없는 우수학교로 교육청의 인정을 받을 정도인데 아이가 집단따돌림을 당해왔다는 건 뭔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아들에게 성격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친구들의 장난을 과도하게 받아들인 것이라고도 했다. 이미 아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학교 측은 책임을 지고 가해학생들을 처벌하기보다 문제를 덮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고 한다.“저는 아이 문제가 이대로 덮이는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은 학교도 못가고 이미 망가졌는데 가해자들은 버젓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더 활개를 치고 다닙니까? 그것도 올바른 사람으로 길러내야 하는 학교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제...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시민청ⓒnews1

‘결핍’이 만들어 낸 악마를 보았다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시민청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5) 결핍의 두 얼굴부족한 것을 채우고, 넘치는 것을 비우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쩌면 세상의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렇게 성장하며 개인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많은 강력사건과 사고들의 이면을 살펴보고, 사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프로그램으로 담으면서 느낀 공통적인 키워드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결핍’이다. 사전적인 뜻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을 결핍이라고 한다. 강력사건의 피의자들은 많은 경우 어릴 때 가정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다.특히 세상을 큰 충격에 빠뜨리는 끔찍한 살인범들의 상당수가 부모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랐고, 가난이나 학대 속에 노출된 채 유년시절을 보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따뜻하게 품어주는 보호자나 어른들이 주위에 없을 때, 결핍은 점점 더 큰 수렁을 만들어 한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가게 되는 것 같다. 왜 나만 이렇게 가난해야 하고, 왜 나는 존재감이 없어야 하며, 왜 나만 어른들에게, 사회에 의해 내쳐지고 고통 받아야 하는지 답을 얻지 못하면서 타인을 향한 공격성과 반사회성을 가지게 되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개인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개인의 인성 문제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한 사람의 결핍이 자칫 큰 사회적인 파문과 타인의 무고한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데 있다.꼭 잔혹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해도, 결핍이 가져온 비틀린 욕망 때문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거나 타인의 감정에 대해 배려하지 않으며 극단적인 이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그렇게 결핍은 부정적인 단어로만 느껴지기 쉽다.하지만 때론 결핍이 한 인간을 성장시키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며 더 나아가 세상을 조금 더 진보하게 만들기도 한다.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이거나, ...
노부부ⓒ뉴시스

죽은 아내를 실종신고한 푸른 눈의 노신사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4) 고든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기억 한 지구대로 푸른 눈의 노신사가 찾아왔다. 그는 아침 운동을 다녀와 보니 집에 있어야 할 한국인 아내가 없어졌다고 했다. 잠깐 외출을 했나보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며, 실종신고를 하러 온 것이다. 영국인 고든 할아버지의 심상치 않은 이야기에 경찰은 집까지 동행해 집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화장대에 종이 하나가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고든 할아버지가 아내에게 쓴 편지였다. 곧 천국에 가서 아내를 만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근처 병원과 주민센터를 통해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미 한 달 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왜 고든씨는 죽은 아내가 없어졌다며 지구대를 찾아간 걸까? 할아버지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은 제작진에게, 고든씨의 아내가 집에서 쓰러졌다는 걸 알린 이도 할아버지 자신이었다고 말해줬다. 그 후, 구급차를 함께 타고 병원까지 갔고 곁에서 임종을 지켰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모든 이야기를 해주자, 고든씨는 마치 아내의 사망소식을 생전 처음 듣는 듯, 숨죽여 눈물을 쏟았다. “그녀는 정말 최고의 아내였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여자였지요. 그녀를 만난 건 내게 행운이에요.” 고든씨는 5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다. 최근의 기억들이 치매로 자꾸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숨을 거두던 순간마저 머릿속 지우개가 지워버렸다. 자신이 무엇을 잊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만드는 잔인한 병... 심지어 아내의 발인 날에도 할아버지가 없어지는 바람에 화장터로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 시간, 정작 고든씨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잠옷 바람으로 집안에 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항공기 기관사였다는 고든씨는 비행스케줄 때문에 들른 한국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던 아내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한눈에 반한 그는 열정적으로 구애를 했고, 아내가 허락하면서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고 한다. 그 뒤, 외국을 돌아다니며 생활해오다 그...
국립5·18민주묘지ⓒ뉴시스

“1980년 5월, 그 날 이후부터 그랬어요…”

국립5·18민주묘지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3) 살아남은 소시민의 트라우마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기 전까지 그곳은 그냥 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곳에 살지 않았고, 인연이 없는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36년 전, 그 일이 일어나고 난 뒤, 그곳은 가장 아프고 슬픈 우리의 현대사가 됐고,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역사로 기록됐다. 해마다 5월이 되고, 그곳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유독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그와의 대면은 95년 경, 뜻하지 않게 조용히 찾아왔다. 119 구조구급 프로그램을 하면서 나는 전국의 사고를 쫓아다니며 구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했었다. 그러다가 찾아간 광주... 주인공은 ‘총기 오발사고’를 낸 40대 초반의 A씨였다. 구급일지에 적혀 있는 내용은 집에서 사냥용 엽총을 닦다가 총알이 있는 것을 미처 모르고 방아쇠를 당겨 탄환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민간인이 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특이할 뿐 아니라, 어떻게 했기에 총신이 긴 엽총에서 탄환이 발사돼 머리를 스쳤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사고를 당했어도 다행히 큰 부상이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인터뷰를 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우리를 맞은 A씨는 무척이나 조용조용했고 어쩐지 표정이 침울해 보였다.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하고, 그날 어떻게 총기사고가 일어난 건지 물어보는데, 그는 한사코 이야기하기를 꺼려했다. TV에 나오고 싶지 않다며, 사고도 원래는 총을 손질하다 그런 게 아니라는 둥 계속 알아듣기 힘들게 이야기했다. 이리저리 이야기를 퍼즐처럼 맞춰 봐도 잘 맞지 않는 대목이 많다 보니 나는 자꾸만 캐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총기가 집에 있었나요?” “총신이 긴 엽총을 닦는데 어떻게 방아쇠가 당겨졌다는 거죠?” “어떻게 총알이 머리를 스칠 수가 있죠?” .......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는 데도 시종일관 침묵만 지키던 A씨가 갑자기 눈을 빛내면서 내게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