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박물관에서 '청계천 벼룩시장 황학동'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추억 돋는 ‘청계천 벼룩시장’

불과 50년 사이, 서울은 참 많이 달라졌다. 청계천도 마찬가지다. 청계천은 복개되어 그 위로 청계고가도로가 놓였다가 다시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원래의 물길을 되찾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6년 완공돼 약 30년 동안 청계천의 상징처럼 존재하던 청계고가다리 아래로 서민들의 웃고 우는 일상들도 펼쳐졌다. 그 가운데 한국전쟁 이후부터 벼룩시장이 형성됐던 황학동 풍경이 재현된다고 해서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박물관을 찾아보았다. 성동구 마장동에 위치한 청계천박물관 ⓒ이선미 청계천 판잣집 뒤로 청계천박물관이 보인다. ⓒ이선미 개관 이후 청계천을 주제로 한 전시를 이어온 박물관은 이번에는 ‘청계천 벼룩시장 황학동’ 전시를 준비해 1980년대 풍경을 연출했다고 밝혔다. 노점과 손님들로 왁자지껄하던 청계 7, 8가 황학동이 재현되었다. 청계천박물관 전경 ⓒ이선미 청계천박물관에서 ‘청계천 벼룩시장 황학동’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선미 코로나19로 긴장 속에 문을 연 박물관은 열 체크를 하고 관람자 명단을 작성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재는 수도권 강화된 방역조치 시행에 따라 서울역사박물관(본관·분관)이 임시 휴관중이다) 마스크 착용과 열 체크를 확인하고 이름과 연락처 등을 작성하고 들어갔다. ⓒ이선미 '청계천 벼룩시장 황학동' 전시장 ⓒ이선미 마치 청계고가도로 아래로 들어선 것처럼 전시가 시작되었다. 콘크리트 다리 옆으로 파라솔이 펼쳐진 수레에는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놋그릇들 사이에 심지어 상평통보까지 보였다. 말 그대로 ‘벼룩 빼고 다 판다’는 황학동 벼룩시장을 보여주는 수레였다. 청계고가도로 다리 아래 있던 수레가 재현되어 있다. ⓒ이선미 개미시장, 도깨비시장, 만물시장으로도 불리던 황학동 벼룩시장은 한국전쟁 후에는 군수품들이 거래되기도 했고, 1970년대에는 전국의 골동품이 몰렸는데 국보급이나 문화재급도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에는 각지에서 수집된 중고품이 주로 자리를 잡았다. 올림픽 ...
지금 이 계절에 걷기 가장 좋은 청계천

바람이 살랑~걷기만 해도 좋은 ‘봄날의 청계천’

삼일교에서 바라본 청계천의 모습 ⓒ김은주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과 서울시청 사이 종로구와 중구 사이를 가르는 10 km 남짓의 '청계천'은 도심 속 힐링 명소다. 빌딩숲 사이를 가르며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청계천은 봄이 가장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청계천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유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쉼과 여유를 누려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2005년 복원된 후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청계천은 언제나 계절에 걸맞는 모습으로, 도시인의 분주한 일상 속 힐링이 되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삭막한 마천루 속에서 자연의 감성으로 도시인의 상처투성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니 이보다 매력적인 곳이 또 있을까. 맑은 물과 푸르른 식물들이 조화롭게 조성되어 있는 청계천 ⓒ김은주 청계천은 대충 자연을 느껴보는 공간이 아니다. 푸르른 녹음과 깨끗한 물이 동식물과 함께 도심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다.  누군가에게 청계천은 휴식처이자 산책 코스가 되고,  뛰면서 운동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곳이 되기도 한다. 가족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가족나들이 장소가 되어준다.  청계천 길을 걷다 보면 청계천을 따라 조성된 나무와 식물, 꽃들을 감상할 수 있다. 언제나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흐르며 졸졸졸 물소리를 감상할 수 있고 가끔 물 위에 떠 있는 새들의 모습도 볼 수 있어 도시라는 생각을 잊게 만들어 준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조류에는 쇠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중대백로, 청둥오리 등이 있다. 청계천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로는 갯버들, 매실나무, 능소화, 창포, 자귀나무, 산수유 등이 있으며, 상류 지역에는 잉어, 피라미, 버들치 등의 어류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봄꽃이 피어있는 청계천 ⓒ김은주 이렇듯 아름답게 가꿔진 청계천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으며, 계절과 다채로운 행사에 따라 다양한 변신을 거듭하는 곳이다. 청계천을 제대로 즐겨보려면 5호선 광화문역에서 하차해 청계광장에서...
옛 청계천

타임머신 타고 옛 청계천으로! 청계천박물관 시간여행

서울의 대표적인 명소 청계천. 종로와 중구를 경계로 흐르는 청계천은 연인들에게는 데이트코스, 가족들에게는 나들이, 직장인들에게는 쉼터, 여행객들에게는 최고의 여행지가 되는 곳이다. 낮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 위를 헤엄치는 오리를 볼 수 있고 밤에는 은은한 조명으로 진한 감성의 여운을 전해주는 공간이 된다.  청계천박물관 외관 Ⓒ이훈주 마장동 청계천변에 위치한 '청계천박물관'에서는 시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이자 서울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인 청계천을 보다 리얼하게 만날 수 있다. 2005년 9월에 개관한 청계천박물관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살아있는 역사 속에서 늘 함께했던 청계천의 이야기, 그리고 청계천변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청계천박물관의 1층은 자체적으로 기획한 다양한 전시가 이루어지는 기획전시실이 있다. 2층부터 4층까지는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담은 상설전시실이 있고, 지하 1층은 교육실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다. 청계천박물관 4층 기획전시실 전경 Ⓒ이훈주 옛 청계천의 모습을 담은 그림 Ⓒ이훈주 청계천박물관 관람의 시작은 1층이 아닌 4층부터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 우측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면 청계천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으로 천천히 역사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각 층이 계단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빙글빙글 건물을 돌아가며 스무스하게 길이 이어져 자연스럽고 몰입도 있게 즐길 수 있다. 청계천박물관은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드는 박물관과는 달리 다양한 그림이나 사진, 피규어를 활용해 당시의 모습을 좀 더 역동적으로 표현해 관람하는 내내 지루할 새가 없었다. 다채로운 볼거리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당시 청계천변 판자촌의 모습을 모형으로 재현 Ⓒ이훈주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청계천 역시 끊임없이 변화했다. 조선시대 한양의 중심에 흐르던 개천을 중심으로 서...
봄이 멀지 않았다. 4계절 청계천여행 Ⓒ박세호

어느 날 문득 떠나도 괜찮아! 청계천 힐링 여행

불빛으로 감싸인 거리에서 시민들은 새로운 감동과 기쁨을 얻는다 Ⓒ박세호 도회지 생활의 번잡함에 찌든 영혼을 달래며 때로는 청계천 물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득 되는 일이다. 그것은 동시에 서울 시민으로서의 특권이며, 주어진 행복이다. 물길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은 외로운 겨울나그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고즈넉한 ‘나’의 모습 그대로이다. 혼자 걷다가 외로울 때면 물속에 비친 내 얼굴도 보다가 문득 그리운 사람들을 뇌리에 떠올려보자. 사계절 어느 때 여행하기에 청계천은 아름다운 투어 코스이며, ‘힐링의 정석(定石)’을 일러주는 내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청계천 계단과 징검다리를 밟으며 새해 계획을 구상해 본다 Ⓒ박세호 우리들 도보여행의 시작은 광화문 옆 청계광장에서 시작한다. 연말연시 시즌을 보내며 화려한 빛의 축제가 요란하다. 청계천변은 분주하다.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지고, 다양한 전시물이 설치된다.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해체하는 모든 작업마저 볼거리가 된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 시즌에는 그리운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 받는다 Ⓒ박세호 크리스마스를 목적으로 이뤄진 조명 건축물들은 2020년 1월 1일까지 볼 수 있다. 그때까지는 청계광장에서 장통교에 이르는 멋진 장면들을 친구, 친지들과 함께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명건축물을 가장 멋지게 감상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부츠 설치물 하나도 지나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준다 Ⓒ박세호 어스름 저녁이라고 말하고 싶다. 반짝 점등(點燈)하는 그 순간, 조명 불이 타오르는 깜짝 쇼가 시작된다. 감격의 순간은 이후 최소 1시간 동안 지속된다. 이 시간 동안 주변 배경과 함께 반짝이는 조명을 감상할 수 있다. 어두워지면 빛만 보이고 실제 형상은 사라진다. 사진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다. 청계천이 흐르고 흘러 큰 물줄기를 형성한다 Ⓒ박세호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바다)으로 간다.” 노래 한 소절 따라 불러도 좋다. ...
평화시장은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그곳에 희망과 꿈이 있었다 Ⓒ 박세호

청계천박물관서 만난 동대문 패션의 시작, 그리고 전태일

평화시장은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그곳에 희망과 꿈이 있었다 Ⓒ박세호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변의 청계천박물관에서는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전시회가 오는 11월 24일(일)까지 열린다. 동대문에서 오간수교를 건너다 보면 일대가 평화상가로 대한민국 섬유 의류산업의 중심부라 할 수 있다. 전시회는 평화시장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장, 사무실, 작업장의 모습을 미니어처, 화면,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녀노소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는 청계천박물관  Ⓒ박세호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기획전시장은 1층이라, 윗층에서 시작되는 청계천박물관 상설전시 '서울의 역사를 품은 물길, 청계천'을 관람 후 내려와 볼 수 있지만 원한다면 바로 1층 기획전시장 입구로 입장해도 된다.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의 기획전시장 입구 Ⓒ박세호 실제 크기 공장사람들의 모형이 창을 통해 비춰지는 가운데, 당시의 역사적 경제적 배경을 해설해 놓았다. 1960~70년대 평화시장에서 제작됐던 상품과 그 상품을 제작했던 노동자들의 값진 삶의 자취들이 자리잡고 있다.  좁은 공간 낡은 작업대에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는 모습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았다  Ⓒ박세호 미니어처들은 동심에 가득찬 흥미로운 창작품들이었다. 청계천 변을 중심으로 처음에는 판자촌 동네가 형성되었고, 이곳에서 생활과 더불어 생산, 유통 등 상거래가 이뤄지는 중심지로도 작용을 했다. 원자재와 부자재 조달, 판매와 운송이 편리한 지리적 이점 덕에 의류 유통의 중심지로서 평화시장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장 바쁜 거리 중 하나인 평화시장 앞길  Ⓒ박세호 재현된 봉제공장의 모습을 통해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던 당시 사람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선 특별한 자격 없이도 쉽게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청년들에게 기회가 되었다. 외지에서 들어와 서울에서의 안정적인 삶과 미래에 대한 성공의 ...
청계천 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동대문 패션의 시작,평화시장' 기획전

국내 패션산업의 출발점, 청계천 평화시장

도심 속 쉼터인 청계천에도 가을이 깃들었다. 파란 하늘을 고스란히 담아낸 맑은 물이 있는 이맘때의 청계천은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두물다리 북단에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청계천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청계천박물관과 1960년대 청계천판잣집을 복원해 체험공간으로 꾸민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이 자리 잡고 있어 둘러볼 만하다.   1960년대 청계천판잣집을 복원한 체험공간 ⓒ박분 청계천판잣집은 1960~1970년대 옛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는 곳으로 옛 초등학교 교실과 만화가게, 구멍가게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다. 현재 청계천 박물관에서는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이라는 기획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전시 구성은 평화시장의 탄생, 의류 유통의 중심지 평화시장, 그 시절의 평화시장, 변화하는 평화시장 등 4개 부분으로 나뉜다.  전시에서는 사진과 문서, 당시 사용됐던 재봉틀 등 전시물을 통해 평화시장의 특징과 변천과정, 이후 동대문 주변에 끼친 영향 등을 조명하고 있다. 특히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을 1960~1970년대 모습으로 재현한 모습이 시선을 끈다. 전시에서는 사진과 문서, 당시 사용됐던 재봉틀 등 전시물을 통해 평화시장의 특징과 변천과정, 이후 동대문 주변에 끼친 영향 등을 조명하고 있다. 평화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남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이 청계천변 판자촌에 모여 살며 재봉틀 한두 개를 놓고 옷을 지어 팔았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평화시장이라는 이름에는 평화를 바라는 시장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청계천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박분 옷을 염색하는 1960년대 청계천 모습도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물자가 부족했던 때라 당시 미군부대에서 나온 군복을 염색하고 수선해 활용한 옷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청계천 주변에 노점이 많이 생기면서 배출된 생활하수로 오염이 되자 1958년 청계천을 복개하는 공사가 시작됐다. 판잣집들이 철거되고 복개공사를 마친 자리에 평화시장 건물이 들어섰다....
청계천 판잣집 체험존

청계천 끝자락 ‘판잣집’으로의 감성여행

청계천을 따라 걷다 청계천박물관 앞에 다다르면 1960년~1970년대 청계천 주변 서울 시민의 대표 거주공간을 재현해 놓은 판잣집을 만날 수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내부에는 음악다방, 교실, 만화가게 등 그 시절 삶과 추억을 체험할 수 있도록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어린 시절을 소환해줄 것 같은 정겨운 청계천 판잣집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진행됐다. 청계천로 530에 위치한 청계천 판잣집 체험존 ©이종태 이번에 진행 된 행사는 '추억의 판잣집 체험마당'을 콘셉트로 추억의 물건과 만화방, 음악다방, 교실 등 추억의 공간을 재현한 전시와 어린 시절 즐겨 먹었던 달고나, 뽑기, 옛날과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졌던 오락기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짱구만화가게, 어린 시절 공부보다 만화 보는 재미에 빠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 올랐다. 수십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에 나는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 시절 우리가 즐길 수 있었던 최고의 오락거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청계천 판잣집 입구에 걸려 있는 만화 포스터 ©이종태 만화가게를 지나자 금세 마음이 어린시절로 돌아갔다. 코 묻은 50원짜리 동전 하나 들고가서 대박의 꿈을 꾸며 뽑았던 뽑기를 무료로 해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뽑기 운은 없는 것 같다. 다행히 '꽝' 없는 5등을 뽑아서 공짜 과자를 하나 얻었고, 과자 하나 고를 때도 그 시절과 똑같이 몇 번을 망설이다 과자를 하나 집어 들었다. 어린시절을 소환해주는 '꽝' 없는 뽑기 ©이종태달랑달랑 과자 한봉지를 손에 들고 옆을 돌아보니 달고나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인기폭발이다. 달고나를 만드는 동안 기억을 더듬어 보니 국민학교 앞 달고나 아저씨가 찍어준 모양을 온전히 떼어내면 공짜로 한 개를 더 만들어 주셨기에 침을 묻혀가면서 한땀한땀 떼기에 집중했지만 매번 실패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70년대 대표 간식, 달고나 ©이종태 먹거리에 흠뻑 옛 추억...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의 모습

요즘 볼만한 전시! 동대문 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 ‘동대문 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구자운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동대문 평화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려 다녀왔다. "서울에 사는 까닭을 하나만 대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오래 망설일 것 없이 평화시장에 물건 사러 다니는 재미를 들리라" (박완서 산문집 중에서) 1960~70년대 평화시장은 한마디로 ‘핫플레이스’였다. 전시실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평화시장의 탄생 및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평화시장은 1953년 ‘평화시장 상우회’ 설립을 시작으로 의류 유통의 중심지로 도약했다. 의류 제작에 필요한 모든 원자재들이 들어오고 유행을 따르는 옷들이 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옷을 만들기 위해 또는 사고팔기 위해 이곳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의 모습 ⓒ구자운 그러나 평화시장의 명성과는 달리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전시실 중앙에 재현된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숨 막힌다. 당시 의류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노동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평화시장 ⓒ구자운 전시관 한쪽에는 평화시장 속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유해한 작업환경 속에서 매일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아왔다.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전태일은 이곳에서 분신자살을 함으로써 노동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전시된 사료들을 통해 당시 평화시장의 격동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평화시장의 발자취를 생생히 담은 이번 전시를 통해 평화시장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평화시장은 의류 제조업의 상징적 장소뿐만 아니라 희생과 투쟁의 노동운동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로서 당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의류산업의 발전은 과거 많은 노동자들의 땀과 희생 그리고 투쟁이 없었다면 일궈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의류산업의 메카였던 평화시장의 ...
청계천박물관 입구. 청계천박물관 앞에는 조선시대 물의 높이를 재는 측량기구인 수표석이 서 있다.

가보셨어요? 청계천 물줄기 새롭게 느껴지는 박물관

청계천박물관 입구. 청계천박물관 앞에는 조선시대 물의 높이를 재는 측량기구인 수표석이 서 있다.청계천 하류 구간을 지나다보면 '청계천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천변에 자리한 이채로운 판자촌 덕분에 이 박물관을 알게 됐다. 박물관 앞에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무인대여반납소가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오기에도 좋다. 청계천변에 1950~60년대 판잣집이 재현돼 있다천변에는 1950~60년대 청계천에 자리하고 있었던 판잣집이 재현돼 있다. 외관도 눈길을 끌지만 안에 들어가면 40~60대 향수를 자극하는 것들이 가득하다. 연탄가게, 만화가게, 구멍가게와 소품 하나하나가 다 정겹다. 교실 안 나무 책상과 걸상, 연탄난로 위의 양은주전자, 동그란 나무 밥상에 놓인 양은냄비와 노란 양재기도 눈에 띈다. 벽에 걸린 까만 교복과 교모는 직접 입어보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청계천 영상을 볼 수 있는 동영상실판잣집 구경을 마치고 청계천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구경은 입구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으로 먼저 올라가길 추천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길의 속성을 따라 자연스럽게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를 관람할 수 있다. 조선 시대 한양의 젖줄 청계천을 다룬 4층에서 청계천 복원 후 10년의 기록이 담긴 1층으로 이동하도록 돼 있다.청계천은 조선 초부터 나라에서 신경 쓰고 관리하던 하천이었다. 1411년 태종 이방원은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을 정비하고 축대를 쌓게 하면서 이름을 ‘개천(開川)’이라 명명했다. 개천이란 자연하천의 바닥을 파고 물길을 넓히는 일, 또는 그렇게 만든 하천을 말한다.3층 관람하면서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개천→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고 청계천이 북촌과 남촌의 경계가 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1914년은 일제가 ‘창지개명’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지명을 새로 지은 해다. 이때 일본은 서울의 당시 이름인 ‘한성’을 없애고 ‘경성부(京城府)’로 고치는 등 우리의 산·강·지명을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다. 박물관 바닥에 옛 청계천 일대 지도가 깔...
빽판의 음질을 체험해보세요

대중문화의 유적지 ‘청계천’을 추억하다

빽판의 음질을 체험해보세요 “어렸을 때, 청계천에서 빨간 책이나 빨간 비디오를 구하기 쉬웠어요. 하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웃으면서 하는 말. 빨간 책과 빨간 비디오가 나오면 무조건 언급되는 곳이 청계천이었다. 여기서 빨간 책과 빨간 비디오는 성인 전용 책과 비디오를 말한다. 청계천이 얼마나 그런 자료들이 성황이었으면 ‘음란물의 보고’라고 불릴 정도였다. 심지어 ‘빽판’이라고 했던 해적판을 사고파는 곳들이 청계천에 많았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불과 30여 년 전 일이었다. 왜 청계천에서 그런 문화가 형성됐을까. 그 해답을 '청계천박물관'에서 알려주고 있다.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 입구 11월 11일까지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선  전시가 개최 중이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청계천이 서울에서 대중과 대중문화에 끼친 역할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꾸몄다. 1980년대까지도 대중문화는 고급의 반대되는 말 혹은 퇴폐적이거나 조금 가벼운 문화를 포괄하는 단어였다. 그런 의미에서 청계천은 대중문화의 메카였다. 미디어 매체의 복제와 유통, 대중적 소비의 접점을 이뤘던 곳이 청계천이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에서 청계천은 유적지 같은 곳이기도 하다. 세운상가 주변 지역 상점 조선시대 청계천 3, 4가는 서민의 거주 공간이었다. 해방 직전에는 공습 시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빈 터였다. 해방 후 월남민, 이촌향도 한 이주민이 이곳에 모여 생계와 주거를 해결하는 터전으로 삼았다. 군수품 등을 거래하는 암거래시장이기도 한 청계천 3, 4가에 김현옥 시장이 등장하면서 큰 변화를 일으켰다. 판자촌을 정리하고 세운상가를 건립한 것이었다.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 경제가 좋아지면서 대중문화 매체의 보급이 신속히 이루어졌다. 1959년 최초의 국산 라디오 금성 A-501이 출시됐고 라디오 방송사들이 개국하면서 라디오 수요가 더 높아졌다.  또한 TV 수요도 점점 늘어났다. 서울시민의 대중문화에 대한 욕구가 더욱 높아졌다. 이러한 미디어 매체의 생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