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용, 가정용 빈티지 재봉틀이 전시되어 있는 이움피움 봉제역사관

한땀 한땀 봉제의 역사가 한눈에!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평소 옷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평소 가보고 싶었던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재개관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찾았다.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에 부풀었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의 이름은 실과 바늘로 천을 이어서 옷을 탄생시키듯 서로를 잇는다는 의미의 '이음'과 꽃이 피듯 피어난다는 의미의 '피움'을 합해 만들었다. 시장 골목골목을 지나 역사관으로 향하는 길에서 재봉틀 소리가 들려왔다. 원단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와 바닥 곳곳 배수구에서 나오는 스팀을 보며 이곳이 봉제 산업의 현장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움피움 봉제역사관이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이유는 이곳이 동대문 패션타운의 든든한 배후 생산기지이기 때문이다. 몇 남지 않은 도심의 제조지역으로 가치를 재조명하고 봉제 산업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움피움 봉제역사관에서는 과거에서부터 현재와 미래까지 조명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가위 모양의 현판이 인상적인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의 외관 ©홍수지 2층에서는 봉제역사관이 상설 전시 중이다. 창신동 봉제마을의 형성 과정과 더불어 봉제산업의 역사를 소개하고 개인 소유의 빈티지 재봉틀을 대여받아 전시 중이다. 재봉틀은 1957년에 생산되고 1970년대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가정에도 많이 보급되었다. 하지만 이후 기성복이 발달하면서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 일이 줄어들었고, 공업용 재봉틀 보급이 이루어졌다. 이 때 봉제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 월간 봉제계라는 잡지가 발행되었고 모범 봉제공을 뽑아 잡지에 싣기도 했다. 현재 서울 의류 제조업체 지역별 분포도를 보면 종로구(캐주얼, 여성정장, 남성정장), 성북구(캐주얼, 여성정장), 중랑구(스웨터, 아동복) 와 같은 곳에 주로 밀집되어 있고 주된 사업이 지역별로 작업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거 봉재산업에 몸 담았던 분들이 현재는 사장님이 되어 봉제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 ...
동대문 문구완구거리 입구

‘동대문 문구완구거리’에서 신학기 준비물 득템!

커다란 캐릭터가 반겨주는 동대문 문구∙완구거리 ⓒ김창일 초∙중∙고를 다닐 때, 신학기가 되면 노트와 연필, 실내화 등을 준비했다. 학교 가기 전날이면 연필깎이로 무뎌진 연필들을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요즘은 좀 다르다. 신학기가 되면 필기도구, 책가방 외에도 우산, 알림장, 물병, 문구류, 네임스티커 등 준비할 게 많다.  도매시장이라 평균 20~30%, 최대 50%까지 할인 판매한다 ⓒ김창일 물론 마트에 가면 신학기 준비용품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재미있고, 저렴하게 신학기 준비를 해보면 어떨까? 동대문역 4번 출구 인근에 있는 '동대문 문구∙완구거리'는 문구류, 완구류 등을 시중 판매가보다 20~30% 정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점포별, 이벤트로 40~50%까지 할인하는 품목도 있다. 지명은 동대문 문구∙완구거리(또는 시장)이지만, 주소지는 종로구 종로52길이다. 그래서 동대문 문구∙완구거리 또는 창신동 문구∙완구거리라고도 불린다. 손세정제를 판매하고 있는 동대문 문구∙완구거리 가게 ⓒ김창일 동대문 문구∙완구거리는1960년대 동대문역 앞에서 출발해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초창기에는 문구류가 주를 이뤘지만 이후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하면서 우리나라 최대의 문구·완구 전문 시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현재는 약 120여 개의 다양한 점포가 영업 중이다. 다양한 기념품도 있어 외국인 친구와 함께 방문해도 좋다 ⓒ 김창일 동대문 문구∙완구거리에서는 문구, 완구뿐만 아니라 판촉용품, 각종 잡화, 민속공예품, 파티 용품, 운동회 용품, 불꽃놀이 용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수입품을 포함해 직장인들을 위한 사무용품과 일명 어른이들을 위한 피규어까지 다양한 종류의 문구∙완구를 만날 수 있어 남녀노소 모두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점포마다 학교, 학원, 어린이집 등에 납품을 전문으로 한다는 안내를 볼 수 있다. 도매 판매를 주로 취급하는 시장이지만, 그렇다고 소매 판매를 하지...
산마루 놀이터의 정글짐은 우주선을 연상시킨다.

세상에! 이런 놀이터는 처음 봐~

동대문 밖 언덕마을 창신동, 비탈진 골목길을 올라가다 보면 회색빛 절벽인 ‘채석장 절개지’를 만날 수 있다. 창신동은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이 채굴되어 ‘돌산마을’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절개지 주위로 마을들이 자리 잡았다. 절벽 위에까지 빼곡히 늘어선 주택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7, 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도심제조업 지역이었던 창신동은 봉제마을로 유명했다. 하지만 봉제산업의 쇠퇴와 함께 낙후되기 시작했다. 뉴타운으로 개발되기 직전까지 갔던 창신동을 살린 건, 주민들의 마을을 지키고자 한 노력이었다. 그 결실로 전국 최초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되었다. 낙후된 마을이 정비되고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창신동, 그 변화의 바람을 절개지 위 언덕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돌산마을 창신동. 좌측에는 채석장 절개지가, 우측에는 황톳빛 외벽의 산마루 놀이터가 보인다 ©민정기 도전과 모험, 자유와 즐거움이 있는 산마루 놀이터 원단과 의류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쉼 없이 오고 간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마다 오래된 집들과 봉제공장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언덕을 올라가 본다. ‘산마루 놀이터’가 눈에 띈다. 황톳빛의 산마루 놀이터, 옆에는 여러 가지 문화활동이 이루어지는 열린 광장이 보인다 ©민정기 산마루 놀이터는 기존의 획일화된 놀이터에서 탈피하여 만들어졌다. 봉제산업의 메카인 창신동의 지역적 의미를 되살릴 골무 모양의 건축물이 있는 새로운 개념의 창의적인 놀이공간이다. 외부에는 전형적인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시소와 그네, 미끄럼틀과 같은 기구들 대신, 열린 광장을 중심으로 황토 놀이터, 모래 놀이터 등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들이 준비되어 있다. 열린 광장에서는 정기적으로 공연도 열린다고 한다. 놀이터 내부의 정글짐의 모습 ©민정기 정글짐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본 모습, 아이들의 모험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민정기 내부에는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모양의 9m 높이의 정글짐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에너지가 넘...
백남준의 뉴욕 작업실의 모습

웃음꽃 피는 창신동 새명소 ‘백남준기념관’

세계적인 아티스트이자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모습 “문화도 경제처럼 수입보다는 수출이 필요해요. 나는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서 세상을 떠도는 문화상인입니다” 이 말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 1984년에 “왜 한국 무대를 놔두고 외국 무대에서만 활동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말이다. 그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으로 출국해 독일과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다가 34년만인 1984년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류의 영향력으로 전 세계에 한국 문화를 수출하고,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을 창출해 낸다는 점에서는 그는 정확하게 미래를 예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백남준기념관의 옆모습 ©민정기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백남준은 퍼포먼스 예술을 했던 시절이나 비디오 아트를 개척한 이후에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대한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주로 해외에서 예술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의 독창성이나 예술적 가치관이 해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실 그렇지 않다. 백남준은 현대판 글로벌 유목민으로서 세계 각지를 누비며 살았지만,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자신의 예술적 모태이자 사상적 기원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서울시는 2015년에 창신동에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의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197번지 일대 집터에 작은 한옥을 매입해 ‘백남준기념관'을 오픈했다. 백남준기념관의 모습 ©민정기 백남준기념관은 백남준의 옛 집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과 도시 개발을 거치며 파편화된 집터에 자리 잡은 가옥들 중 하나에 새롭게 조성됐다. 원본의 발굴 대신에 가본의 재구성에서 출발한 백남준기념관은 이러한 태생적 역설에 착안하여 완성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백남준을 만들어가는 '기억의 집'이 되고자 한다. 현재 백남준기념관에서는 두 가지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하나는 개관전인 로 1984년 삼십여 년 만에 모국을 방...
봉제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재봉틀의 모습

한땀한땀 역사가 엮이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1970년대, 동대문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이 창신동으로 이전하면서 일대에 의류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도심제조업 지역이 형성되었다. 80년대에는 서울의 대표적인 도심제조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7,80년대 산업화를 이끌었다. 창신동의 봉제공장은 활발한 내수시장 덕분에 쏟아지는 물량을 대기 힘들 정도로 번창했고 한때 봉제공장이 3천여 곳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리면서 국내 봉제산업은 활력을 잃었다. 쇠퇴하고 낙후된 마을을 뒤흔든 건 뉴타운 개발이었다. 창신동은 동대문 패션타운의 배후 생산기지로 전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도심제조업 지역이다. 역사적인 가치에다가, 도심제조업의 기반 약화는 패션 중심지로서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기에 한국의 패션 산업을 지탱해주고 있는 창신동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뉴타운 개발을 반대했고, 마을을 지켜냈다. 거기다 뉴타운 지정이 해제되면서 2014년 전국 최초로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되었다. 창신동 거리 곳곳에서 보이는 봉제산업의 풍경들 ©민정기 도시재생 사업 이후 창신동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낙후되고 위험해진 골목길을 안전하게 단정하고, 마을 명소를 가꾸면서 거리가 활기를 띠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봉제산업의 역사를 보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설립하였다. 주민들이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노력의 상징이자 봉제산업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봉제역사관에 가기 위해 창신동 골목길로 향했다. 원단과 의류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쉼 없이 오고 가며,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마다 오래된 집들과 봉제공장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봉제거리 끝자락에 위치해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새롭게 정비된 간판과 봉제와 관련된 다양한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 봉제용어에 대한 설명이 적힌 표지판을 읽다 보면 봉제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봉제공장들의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열심히 작업하는 사람들과 새어 나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2층의 모습

한 땀 한 땀 ‘이음피움’에서 즐기는 바느질 체험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창신동은 동대문패션타운의 든든한 배후 생산기지이자 전 세계 몇 남지 않은 도심 제조지역이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그 가치를 재조명하고 봉제 산업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봉제와 밀접한 창신동에 설립되었다. 봉제역사관에서는 이 시대 봉제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봉제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제공하며, 지역 연계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상생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봉제 산업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하는 도심 속 문화 공간, '이음피움'은 실과 바늘로 천을 이어서 옷을 탄생시키듯 서로를 잇는다는 의미의 ‘이음’과 꽃이 피어나듯 소통과 공감이 피어난다는 뜻의 ‘피움’을 합해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단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 “드르륵 드르륵” 빠르게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 하얀 김을 뿜으며 나가는 스팀다리미, 옷이 만들어지는 이 곳에서 봉제 산업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직접 목격 하고 체험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전경 ⓒ박찬홍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찾아 가는 길은 창신동이 갖고 있는 매력처럼 오밀조밀 이어진 다양한 골목길을 만나게 한다. 또한 역사관으로 가는 길에는 인근에 창신동 골목시장, 네팔 음식거리와 같은 먹거리 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즐거움을 더해 준다. 동네의 특성을 알리는 듯 다양한 원단을 싣고,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 오토바이와 차량, 봉제공장 등이 조금은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무엇인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과 활력이 넘친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봉제역사관은 봉제공장들이 들어선 긴 골목길 안에 위치하고 있다. 봉제역사관의 1층에는 ‘단추가게’라는 곳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의 봉제인들에게 공정한 작업 단가를 제공하여 생산한 워크웨어, 에코백 등의 봉제 제품과 실무용 패턴자와 작업지시서 등의 봉제 도구를 구매할 수 있으며, 형형색색의 단추는 구매한 후 지하 1층 봉제 체험실에서 반짇고리를 이용해 직접 달아볼 ...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성장기를 보낸 한옥, ‘백남준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백남준기념관부터 봉제역사관까지…창신동 골목탐방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성장기를 보낸 한옥, ‘백남준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창신동에 살았던 시절 얘기다.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 나오는 골목시장에서 자주 떡볶이를 먹었다. 도시재생으로 새롭게 단장한 창신동을 다시 찾은 마음이 작게 설렌 것도 그 때문이다. 한때 창신동 주민이었지만, 세계적 거장 백남준이 창신동에 살았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창신동 197번지. 이곳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다시 찾고 싶어 하는 그리운 지역이었다.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창신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창신동 집을 마당이 넓고 뒤쪽에 동산이 있는 거대한 한옥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 파괴된 그 자리에 다시 아담한 한옥이 지어졌고, 서울시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한옥을 매입, 2017년 ‘백남준기념관’으로 문을 열었으며 이는 지역 주민과 소통을 통해 이루어졌다. 백남준기념관에 전시된 백남준 책상 백남준이라는 예술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도록 리모델링한 기념관에 들어서면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작품과 백남준의 어린 시절 영감을 얻었다는 작품을 볼 수 있다. 내부에 들어서면 백남준의 일대기를 비롯해 ‘백남준의 책상’이 등장하는데, 의자에 앉아 직접 아날로그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서 시대별로 방영되는 그의 전시와 어록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다른 작가들이 백남준을 기억하며 제작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또한, 기념관 내부에는 백남준 카페도 자리하고 있어 작품 감상 후 이곳에서 쉬어가도 좋다. 비록 그는 창신동을 다시 찾지 못했지만, 도시재생은 그를 이곳에 다시 소환해 사람들의 가슴에 기억하도록 했다. 창신골목시장 입구 안내판 백남준 기념관을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창신골목시장’을 향해 걸었다. 오래된 분식집과 떡집, 족발집과 반찬집 등, 도시재생의 개발에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시장골목에는 여전히 일상이 흐르고...
창신동의 지역적 의미를 살려 골무 모양으로 만든 주요 시설물

“시소도 그네도 없지만 신나요” 창신동 산마루놀이터

창신동의 지역적 의미를 살려 골무 모양으로 만든 주요 시설물 지난 5월 2일 개장한 산마루 놀이터에 다녀왔다.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이곳은 낡고 오래된 어린이 공원을 체험형 놀이터로 새롭게 바꾼 것이다. 동묘역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골목길 끝에 다다르니 산마루 놀이터가 눈앞에 나타났다. 놀이터라고는 하지만 시소나 그네 등은 보이지 않고 흙놀이를 하는 아이들만 눈에 들어왔다. 아빠와 줄넘기를 하는 아이도 보였다. 흙놀이에 빠진 아이들 산마루 놀이터는 어린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놀이터라고 한다.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든 놀이터라서 그런지 그 어떤 곳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놀이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와 함께 모래놀이를 즐기는 백설공주 ‘모래 놀이터’는 흙, 모래 등을 만지며 놀 수 있는 곳으로, 지역적으로 주택가 가운데 위치해 있어 부모와 함께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어린이들이 모래의 촉감을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백설공주 옷을 입은 아이가 옷이 버려지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모래놀이에 열중이다. 아이들이 열린 광장 바닥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다 산마루 놀이터는 봉제산업의 메카인 창신동의 지역적 의미를 되살려 설계한 부분이 눈에 띈다. 주요 시설물이 골무 모양이다. 골무 공간 안에는 정글짐처럼 둥글게 상층부로 걸어 오를 수 있도록 설계해 놓았다. 곳곳에 줄로 엮어 만든 이색 구조물은 모험놀이 공간으로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정글짐은 육각형의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밧줄로 만들어진 흔들다리를 걸어가면 정글짐과 연결돼 있다. 기존의 정글짐과 달리 출구와 입구가 정해져 있지 않아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로 나가든지 상관없다. 육각형 모양의 정글짐, 출구와 입구가 정해져 있지 않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지붕없는 시설물 안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이 보인다 지붕 없는 시설물 안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깨끗한 하늘에 기분까지 좋아진다. 마을 쪽을 바라...
종로 창신동 ‘산마루 놀이터’ 전경

창신동 새롭게 생긴 어린이 명소 ‘산마루 놀이터’

종로 창신동 ‘산마루 놀이터’ 전경 한양도성 낙산구간 시발점인 창신동 산마루에 친환경 놀이터가 5월에 오픈된다. 낡고 오래된 어린이 공원이 위치해 있었던 창신동 23-350 등 4필지가 체험형 놀이터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이 ‘산마루 놀이터’의 특징은 미끄럼틀, 시소 등 흔한 놀이기구를 두지 않는 대신 흙, 모래 등을 만지며 놀 수 있는 자연친화적 놀이터라는 점이다. 지역적으로도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자연을 체험하며 놀 수 있는 공간이다. 5월 정식개장을 앞두고 마무리 단계에 있는 ‘산마루 놀이터’를 먼저 다녀와 봤다. 골무 모양의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정글짐처럼 만든 이색 구조물을 만날 수 있다 봉제산업의 메카인 창신동의 지역적 의미를 되살려 설계를 한 부분이 특히 눈에 띈다. 우선 주요 시설물이 골무 모양이다. 골무 공간 안에는 정글짐처럼 둥글게 상층부로 걸어 오를 수 있도록 설계해 놓았다. 곳곳에 줄로 엮어 만든 이색 구조물은 모험놀이 공간으로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일 듯싶다. 지붕 없는 시설물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육각형 구조물이 모여 이색 놀이터를 이루고 있다 자세히 보니, 골무 모양의 메인 공간은 육강형 구조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육각형 칸은 전부 다른 형태로 되어 있다. 밧줄로 된 흔들다리와 나무로 된 지지대 등 다양한 놀이터가 조합을 이루고 있다. 많은 놀이터들이 입구와 출구가 정해진 것과 달리, 이곳은 어느 방향에서든 들어가고 나갈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지붕이 없어 꼭대기에서 창신·숭인 동네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다. 놀이터가 있는 창신동 산마루 일대는 언덕에 위치해 있어 서울 도심을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하늘을 향해 탁 트인 여기서 아이들은 언제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육각형 구조물은 밧줄로 된 흔들다리로 연결돼 있다. 메인 시설물 맞은편엔 ‘흙벽 놀이터’가 조성돼 있다. 또 ‘모래 놀이터’에는 어린이들이 모래의 촉감을 마음껏 느끼고 보물찾기도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
창신동 마을 꼭대기에 자리한 창신소통공작소, 철제 나무 작품 ‘천년의 바람’

무엇이든 예술이 되는 동네, 창신동 거닐記

창신동 마을 꼭대기에 자리한 창신소통공작소, 철제 나무 작품 ‘천년의 바람’ 서울 강북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낙산(125m)은 나무와 숲이 적은 대신 화강암이 많아 인근 주민들에게 ‘돌산’으로 불렸다. 낙산에 기대어 자리한 창신동은 그래서 예부터 돌산마을이라는 정겨운 별칭이 있다. 지금의 창신동은 다가구주택이 빽빽한 서민 주거지로, 구한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저택과 별장이 많았다고 한다. 한일은행 설립자 조병택,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아버지인 한국 최초의 재벌 백낙승, 고리대금업으로 큰돈을 번 임종상 등이 도심과 가깝고 경치 좋은 창신동에 큰 집을 짓고 살았다. 낙산이 깊은 산이었던 조선 시대엔 비운의 임금 단종을 떠나보낸 어린 부인 정순왕후가 돌아가실 때까지 60여 년간 홀로 지낸 곳이기도 하다. 창신동 마을, 낙산 성곽, (바위)절개지 등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한 창신소통공작소 창신동은 2007년 뉴타운 재개발 대상에 포함되어 마을 자체가 사라질 뻔했으나, 삶의 터가 된 정든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반대로 재개발은 무산됐다. 이후 서울시는 동네의 노후화된 곳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문화와 공간을 조성하는 ‘마을 재생’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공유도시 사업과 더불어 낙후된 지역을 새롭게 재단장하는 도시재생 사업에 힘쓰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오래되고 낙후된 지역에서 꼭 필요한 부분들을 재정비하고, 마을의 전통과 특색을 새로운 시설과 잘 접목해 도시를 매력적인 지역으로 재단장하는 사업을 이른다. 창신동 최고의 전망대이기도 한 창신소통공작소 돌산마을 창신동에 가면 언덕과 계단을 걸어올라 꼭 가보는 '창신소통공작소'(종로구 창신6가길 47)도 마을재생사업으로 생긴 곳이다. 무엇이든 예술이 되고 누구든지 예술가가 되어 어울리고 소통하는 것을 모토로 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2015년 10월 개관한 창신소통공작소는 공공미술시범사업에 의해 세워진 주민을 위한 공간이자 지역재생 거점 공간이면서, 창신동 마을과 낙산은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