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마을 꼭대기에 자리한 창신소통공작소, 철제 나무 작품 ‘천년의 바람’

무엇이든 예술이 되는 동네, 창신동 거닐記

창신동 마을 꼭대기에 자리한 창신소통공작소, 철제 나무 작품 ‘천년의 바람’ 서울 강북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낙산(125m)은 나무와 숲이 적은 대신 화강암이 많아 인근 주민들에게 ‘돌산’으로 불렸다. 낙산에 기대어 자리한 창신동은 그래서 예부터 돌산마을이라는 정겨운 별칭이 있다. 지금의 창신동은 다가구주택이 빽빽한 서민 주거지로, 구한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저택과 별장이 많았다고 한다. 한일은행 설립자 조병택,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아버지인 한국 최초의 재벌 백낙승, 고리대금업으로 큰돈을 번 임종상 등이 도심과 가깝고 경치 좋은 창신동에 큰 집을 짓고 살았다. 낙산이 깊은 산이었던 조선 시대엔 비운의 임금 단종을 떠나보낸 어린 부인 정순왕후가 돌아가실 때까지 60여 년간 홀로 지낸 곳이기도 하다. 창신동 마을, 낙산 성곽, (바위)절개지 등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한 창신소통공작소 창신동은 2007년 뉴타운 재개발 대상에 포함되어 마을 자체가 사라질 뻔했으나, 삶의 터가 된 정든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반대로 재개발은 무산됐다. 이후 서울시는 동네의 노후화된 곳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문화와 공간을 조성하는 ‘마을 재생’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공유도시 사업과 더불어 낙후된 지역을 새롭게 재단장하는 도시재생 사업에 힘쓰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오래되고 낙후된 지역에서 꼭 필요한 부분들을 재정비하고, 마을의 전통과 특색을 새로운 시설과 잘 접목해 도시를 매력적인 지역으로 재단장하는 사업을 이른다. 창신동 최고의 전망대이기도 한 창신소통공작소 돌산마을 창신동에 가면 언덕과 계단을 걸어올라 꼭 가보는 '창신소통공작소'(종로구 창신6가길 47)도 마을재생사업으로 생긴 곳이다. 무엇이든 예술이 되고 누구든지 예술가가 되어 어울리고 소통하는 것을 모토로 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2015년 10월 개관한 창신소통공작소는 공공미술시범사업에 의해 세워진 주민을 위한 공간이자 지역재생 거점 공간이면서, 창신동 마을과 낙산은 물...
봉제의 역사

한땀한땀 수놓듯 더디게 걸으면 좋은 길, 창신동

봉제의 역사 호호의 유쾌한 여행 (98) 창신동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동대문 하면 화려한 쇼윈도와 두 손 가득 들고 있는 쇼핑백, 흥정하는 사람들, 외국인 관광객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유행을 선도하는 화려한 동대문 패션시장 뒤에는 창신동의 봉제공장들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곳에 대한 기록입니다. 먼지 자욱한 공간, 들들들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 원단을 옮기는 오토바이의 바쁜 몸짓이 있는 곳입니다. 봉제 거리 박물관 봉제산업의 과거를 찾아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골목 전체가 서울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신동 봉제 거리 박물관입니다. 창문이 열린 작업장 안으로 수북이 쌓여 있는 옷감들과 미싱으로 빼곡히 늘어선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나라 의류 산업이 발전하게 된 결정적 계기인 창신동 골목의 모습입니다. 70년대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봉제공장들이 창신동으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하는데요. 전국에서 가장 높은 봉제공장 밀집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봉제 거리 박물관은 봉제 용어와 의류 생산 공정 작업 등과 관련된 내용이 곳곳에 표지판으로 놓여 있습니다. ‘최상의 서비스’, ‘소통왕’ 등의 문구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합니다. 봉제인 기억의 벽에는 창신동 봉제공장들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성실한 땀과 수고로 메이드 인 창신동 제품을 만들고 있는 봉제인의 경의를 표하고자 남긴 역사의 일부입니다. 창문 밖 너머로 열악한 작업 환경을 보자 괜스레 숙연해집니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봉제 거리 박물관 끝에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봉제를 테마로 만들어진 역사관입니다. 2018년 4월에 개관한 곳이라 그런지 건물이 번듯합니다. 봉제역사관 건물은 재봉틀을 형상화해서 만들었고, 앞에 있는 전봇대는 바늘을 형상화했습니다. 봉제 테마에 걸맞은 건물 양식이죠? 이름이 무척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이음은 ’잇다...
이음피움봉제역사관 4층에서 내려다본 창신동 봉제거리전경

느린 걸음으로 떠나는 창신동 골목 여행

이음피움봉제역사관 4층에서 내려다본 창신동 봉제거리전경 호호의 유쾌한 여행 (91) 창신동 골목 서울의 골목에는 수많은 풍경이 깃들어 있습니다. 종로구 창신동 골목도 예외는 아닙니다. 종로거리는 수없이 많이 지나 다녔지만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날씨 좋은 5월. 창신동 골목을 따라 산책을 했습니다. 창신동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동대문 패션타운, 평화시장과 가까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봉제 산업이 들어섰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 완구 도매 시장도 창신동에 있고요. 예술가 백남준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이기도 합니다. 쪽방촌이 남아있는 자리에는 예술전시가 열리기도 합니다. 백남준 기념관 종로구민회관으로 올라가는 골목 모퉁이에 아담한 한옥 한 채가 있습니다. 마당에는 현대적 감각의 조형물이 우뚝 서있습니다. 이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장소입니다. 지난해 3월, 음식점으로 쓰였던 단층 한옥을 리모델링해 백남준 기념관으로 재탄생 되었어요. 백남준 기념관 전시작품 ‘백남준 아카이브를 찾아서’ 백남준 기념관은 서울 시립미술관 분관 중 하나입니다. 백남준의 삶과 예술을 기억하고, 새롭게 조명하는 곳이지요. 규모는 작지만 백남준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백남준의 책상’이라는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책장을 넘기면서 감상하는 미디어 전시입니다. 의자에 앉아 직접 아날로그 TV채널을 돌리면 시대별로 그의 전시와 어록 등이 상영되는 미디어월 전시도 독특합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전시관과 이어진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습니다. 창신동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전시관 내부 창신골목시장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곳곳에서 미싱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연기의 정체는 스팀다리미가 내뿜는 수증기입니다. 좁은 골목마다 원단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가 요리조리 지나다닙니다. 창신동 봉제공장은 대부분 다세대 주택에 자라집고 있는...
손때 묻은 낡은 재봉틀, 재봉틀을 돌릴 때마다 옷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동대문 봉제 역사를 한눈에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손때 묻은 낡은 재봉틀, 재봉틀을 돌릴 때마다 옷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창신역에 내려 길 찾기 앱을 켜고 ‘이움피움 봉제역사관’을 찾아가는 길, 골목골목 집집마다 열려있는 창 안으로 옷을 만드는 풍경이 보인다. 정말 온 동네가 다 옷을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하 또는 1층에 봉제공장 겸 작업장이 들어서 있다. 미처 보지 못한 2층에서도 옷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드르륵 드르륵’ 빠르게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는 스팀다리미, 길가의 하수구에서도 하얀 연기가 올라온다. 잘 찾아가고 있는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순간 휙휙 지나가는 오토바이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든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원단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만든 옷을 동대문 시장으로 배달하느라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것이다. 신기한 듯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길을 찾다보니 어느새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1번지이자 패션산업의 메카 동대문의 배후 생산지인 종로구 창신동에 개관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이음피움은 '잇는다'는 뜻과 '피다'는 뜻에서 따온 말이라 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새로운 미래를 피우기 위해서란다. 먼저 계단을 내려가 지하 1층부터 투어를 시작했다. 지하 1층은 안내/봉제작업실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봉제 자료실에 내렸다. 봉제와 관련된 책자와 잡지, 지역 봉제인 인터뷰 영상 등을 관람할 수 있다. 2층 단추가게, 바느질 키트를 사용해 봉제 굿즈를 만들어볼 수 있다. 2층으로 올라왔다. 우선 색색 단추가 눈에 띈다. 2층은 봉제역사관과 단추가게가 있다. 봉제역사관은 과거의 기억에서 시작하여, 손으로 완성되는 봉제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현재의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전시장의 중앙에는 손때가 묻은 낡은 재봉틀이 놓여 있는데 재봉틀의 휠을 돌리면 옷 한 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영상이 상영되었다. 휠을 돌릴 때마다 영상...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카드뉴스] 새롭게 생긴 봉제역사관 ‘이음피움’

#1 잘생겼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2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3 조국 건설의 역군이 된 미싱공들을 노래한 80년대 운동가요 ‘사계’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또 저물도록’ 미싱은 잘만 돌아갔습니다 #4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는 어리게는 12살, 13살 때부터 실먼지에 뒤덮이고 재봉틀에 찔려 손가락이 찢기며 미싱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경제적 부(富)도 수많은 미싱공 덕분입니다 #5 그러나 이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은 점차 개발도상국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봉제공장은 베트남과 중국으로 옮겨갔고, 국내 봉제산업의 규모는 축소되었죠 #6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 봉제산업을 이끌어왔으며 현재도 산업이 활발히 살아 움직이는 종로구 ‘창신동’ 서울시는 이곳에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세웠습니다. #7 ‘이음피움’이란 이름은 실과 바늘이 천을 이어 옷이 되듯, 서로 이어 소통과 공감이 피어난다는 뜻입니다 #8 봉제역사관의 가장 큰 특징은 봉제장인들을 브랜딩한 것! 봉제산업이 축소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전문성을 구축해오 ‘봉제마스터’ 10인의 인터뷰와 그들이 직접 사용했던 장비와 물건을 전시했습니다. #9 단순한 물품의 전시에 그치지 않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전시를 꾀해 사람 냄새를 더한 것이죠 #10 이러한 봉제마스터 기념관 이외에도 나만의 옷을 만들어볼 수 있는 봉제체험공간과 단추가게, 바느질카페, 야외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이 있습니다. 누구나 무료 관람할 수 있다는 것! #11 잘 생긴 서울의 명소 20곳에 선정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꽃 피우는 봄날에는 과거를 이어 오늘을 피운 ‘이음피움’으로 떠나보면 어떨까요? ...
9월2일 개막하는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배형민 총감독이 미디어브리핑하고 있다ⓒ뉴시스

배형민 총감독이 말한다 ‘공유도시’ 주제로 열리는서울비엔날레

9월2일 개막하는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미디어브리핑하고 있는 배형민 총감독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오는 9월2일부터 11월5일까지 열립니다. 세계 50여개 도시, 120여 기관에서 총 1만6200명이 움직일 예정인 대형 이벤트입니다. ‘비엔날레’라는 명칭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름만으로는 무엇을 하는 이벤트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궁금증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배형민 총감독이 직접 칼럼을 통해 설명해드립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의의와 어떤 행사가 진행되는 지 등을 미리 알아볼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 도시들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미래를 위한 건강한 도시가 될 것인가? 아니면 환경파괴와 불평등 현장으로 전락할 것인가? 20세기 세계 도시 근간이 되었던 대량생산, 대량고용, 대량소비는 이제 반대로 급속한 도시화, 극심한 기후 변화, 자원 부족, 공공재 사유화 등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또 자연과 인공, 공공과 사유의 구분이 흐트러지면서 도시로 인한 대기오염, 에너지, 식량문제 등이 점점 가속화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시는 새로운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기와 물, 식물과 기계, 정보와 사람이 연결된 총체적인 공유 질서를 만들어야한다. 600년 수도이자 세계적인 도시로 주목받고 있는 서울이 오는 9월부터 11월까지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이하 서울비엔날레)를 개최할 예정이다. 2년마다 열리는 정기 예술 행사 비엔날레는 전 세계적으로 230여개가 있고, 건축가들이 중심이 되는 건축비엔날레도 여럿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비엔날레는 현대 도시 문제와 미래 도시 지향을 함께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기획됐다. 서울비엔날레 `도시전`에서는 현재의 평양 도시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비엔날레의 큰 특징은 도시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가 주최이자 후원을 맡았다는 점이다. 사실 세계 어느 비엔날레가 됐건 기획자나 참가자, 언론, 시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 ...
길고도 깊은 골목과 언덕이 이어진 창신동 ⓒ김종성

낙산기슭의 돌산마을, 창신동 골목여행

길고도 깊은 골목과 언덕이 이어진 창신동 오랜만에 골목여행을 했다. 요즘 골목길에 유행처럼 번진 벽화 하나 없는 평범한 골목이었지만, 길을 잃어버리고 헤맸을 정도로 길고 깊은 골목이 있는 곳. 서울 낙산 기슭의 언덕동네 종로구 창신동이다. 창신동은 몇 년 전 뉴타운 재개발 대상에 포함되어 마을 자체가 사라질 뻔했으나, 삶의 터가 된 정든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반대로 재개발은 무산됐다. 이후 서울시는 동네의 노후화된 곳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문화와 공간을 조성하는 ‘마을 재생’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런 도시 재생 사업 가운데 하나가 백남준 기념관과 박수근 집터다. 화가 박수근과 백남준이 살았던 곳 지하철 1· 6호선 동묘앞역 6번 출구로 나오면 화가 박수근(1914~1965)의 작품이 그려져 있는 기념석과 집터(창신동 393-16)를 알리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1952년부터 1963년까지 11년 간 창신동에 살았던 화가 박수근은 한국전쟁 후 곤궁한 삶을 이어가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에 인간애를 담아 그림 속에 그려냈다. 후일 사람들은 이 시기를 ‘창신동 시절’이라 말한다. 그의 대표작인 ‘길가에서(1954)’, ‘절구질하는 여인(1954)’, ‘나무와 두 여인(1962)’ 등 많은 작품이 이때 나와서다. 집터 알림 기념석에 창신동 집 마루이자 그의 아틀리에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왠지 행복해 보여 눈길을 끌었다. 창신동과 주민들 풍경을 주로 그렸던 화가 박수근의 집터 기념석 창신동 마을 그림이 그려져 있는 기념석을 지나 길을 건너면 시대를 앞서간 전위 예술가 혹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기념관(창신동 197)이 나온다. 화가 박수근과 한 동네에서 살았지만, 1950년 백남준이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한다. 서울시에서 복원한 아담한 한옥집으로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이란 간판이 여행자를 맞는다. 당시 ‘큰 대문 집’이라 불렸다는 이곳은 99칸에 뒷동산이 있는 거대한 한옥집이었다고...
흥인지문과 반원 모양의 옹성 ⓒ김영옥

낙산성곽길 따라 반나절 힐링 산책

흥인지문과 반원 모양의 옹성 서울에 살고 있지만 서울이 6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라는 걸 일상생활에서 느끼긴 힘들다. 작정하고 궁궐을 찾거나 박물관을 찾아 그 시대를 반추해 보면 모를까. 하지만 요 근래 들어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시선을 강탈하는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종로구 성북동 북정마을을 지날 때도,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을 갔을 때도, 서대문구 행촌‧교남동을 지나갈 때도, 시내에 들어가기 위해 동대문을 지나갈 때도 멀리 성곽 길이 멋스럽게 펼쳐졌다. 600년 역사 도시 한양이, 서울을 지켜 온 '서울한양도성'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최근 한양도성의 멸실 구간이 복원되면서 한양도성 전체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양도성 성곽 길을 찾아 그 매력적인 풍광을 접하고 있다. 걸으면서 느끼는 한양도성의 역사와 아름다움 동대문에서 낙산공원까지 한양도성 성곽 안쪽 길과 바깥쪽 길을 걸어보는 ‘다 같이 걷자 낙산순성놀이’란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늘 먼빛으로 보던 터라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무척 반가웠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7번 출구로 나오자 왼편으로 바로 동대문을 만날 수 있었다. 새벽녘까지 비가 온 뒤라 맑은 하늘 아래 위용을 뽐내는 보물1호 동대문(흥인지문)은 그 자태가 남달라 보였다. 태조 7년에 완공됐고 현재의 모습은 고종연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조선후기의 장식이 많은 건축양식을 잘 담고 있다. 동쪽 지형이 낮고 평탄하기 때문에 성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이 옹성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계획된 시설물로 서울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다. 서울한양도성은 조선을 개국(1392년)한 태조 이성계에 의해 1396년에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곽이다. 한양을 둘러싼 백악, 낙산, 목멱, 인왕의 능선을 따라 축성됐고, 전체 길이는 약 18.6km이며, 동서남북 방향으로 4개의 문과 각 ...
백남준 기념관 발대식에는 서울시장, 고 백남준의 유가족 등 문화계 인사 80명이 참석했다

창신동에 백남준 기념관 생긴다

백남준 기념관 발대식에는 서울시장, 고 백남준의 유가족 등 문화계 인사 80명이 참석했다 2013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린 국제예술페스티벌. 새로운 문화세상을 연 두 명의 혁신적인 예술가를 집중 조명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한명은 누구일까… 20세기를 대표한 미디어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었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국내에 머물지 않고, 일본을 거쳐 독일, 미국 등 세계 각지로 활동무대를 넓혔다. 피아노 부수기, 머리로 붓글씨 쓰기 등 충격적인 행위 예술은 놀라움에서 찬사로 이어졌다. ‘TV 부처’, ‘TV 물고기’,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비디오 아트의 새장을 열었다. 인류 문화예술의 지평을 확대하며 세계를 주유한 백남준이 가장 그리워했던 곳이 어디일까. 서울 종로구 창신동이다. 바로 그곳에서 그의 생일인 7월 20일에 맞춰 백남준 기념관 사업 발대식이 열렸다. 28평 크기의 백남준 기념관 부지는 음식점으로 쓰이던 한옥이다. 리모델링을 거쳐 11월에 백남준의 예술혼이 깃든 새 공간으로 태어날 예정이다. 기념관 문 앞에는 소 머리가 내걸렸다. 2,500년 전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궁전 장식을 떠올려 주는 검은 색 소머리는 백남준이란 탁월한 예술가의 탄생을 알렸던 상징이다. 백남준이 첫 전시회를 열었던 1963년 독일 파르나스화랑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 머리를 갤러리 입구에 내건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당시 백남준은 자신의 첫 갤러리인 만큼 한국의 전통에 따라 돼지머리로 고사를 지내고 싶었다고 한다. 돼지 머리를 구하지 못해 소 머리를 걸었고 그 충격적인 퍼포먼스에 독일 언론의 뜨거운 조명을 받을 수 있었다. 백남준 기념관 입구에 소 머리가 걸려있다. 백남준의 예술혼 잇는 부조화속 조화 비디오 아트 개막 연주 시각예술가 백현진을 비롯한 7명의 예술인이 펼친 발대식 기념연주는 백남준의 예술혼을 잇는 비디오 아트였다. 스크린에 페이스북 생방송으로 창신동에서 트롬본, ...
꼭대기 장터(꼭장)은 남녀노소 연령구분 없이 즐기는 축제다

주민이 스스로 만든 마을 축제, ‘꼭대기 장터’

꼭대기 장터(꼭장)은 남녀노소 연령구분 없이 즐기는 축제다지난 5일 일요일 오후, 종로구 창신동 낙산어린이공원에서 ‘꼭대기 장터’가 열렸다. 꼭대기장터는 창신·숭인동의 꼭대기인 낙산 삼거리에서 매달 한 번씩(5월부터 11월까지, 첫째주 일요일) 열리는 마을 장터다.2015년 6월부터 시작한 꼭대기 장터는 주민들 스스로 지역의 역사 문화적 자산을 발굴하여 만든 마을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민들은 1990년대 창신동 시민아파트가 철거되기 전까지 낙산 꼭대기 일대에 시장이 열렸다는 기억을 바탕으로 장터를 되살려 냈다.기자는 꼭대기 장터를 찾아가기 위해 혜화동 2번 출구에서 이화마을을 지나 낙산(☞ 서울 야경 명소의 으뜸, 낙산공원)에 오르기 시작했다. 오후 3시 쯤 낙산공원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이미 시끌벅적한 노래 소리가 한양 성곽길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기자의 발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다.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낙산어린이공원에는 나이와 국적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졌다. 그 속에서 사람 간의 정이 오고갔다. 주민들은 ‘먹거리 뜰’에서 계절 과일, 팥빙수 등을 판매하기도 하고, 먹거리를 이웃과 함께 나누며 서로를 알아갔다. 봉제 체험코너에서는 에코백, 파우치 등을 직접 제작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특히 꼭대기장터에서는 봉제 종사자들이 많은 창신동 지역의 특성상 봉제 관련 물품과 체험 프로그램이 유독 눈에 띄었다. ‘수공예 뜰’에는 주민들이 직접 봉제로 만든 에코백, 파우치, 의류 등이 장터에 펼쳐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누구나 봉제를 체험해 볼 수 있는 ‘봉제 뜰’은 이날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봉제 뜰에서는 ‘냅킨 아트’를 체험하며 봉제를 체험하는 아이들, 직접 장터 판매자로 참가하여 소원 팔찌를 판매하는 청소년 등이 한곳에서 어우러졌다. 할머니들이 주워온 나무로 수제나무펜을 만든다꼭대기장터는 주민뿐만 아니라, 외부인에게 열려 있는 장터다. 이날 꼭대기장터 판매자로 참여한 박호철(35) 씨는 수원에서 와서 수제나무펜과 가죽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