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동백나무

동백꽃 필 무렵… ‘창경궁 대온실’ 풍경

창경궁 대온실 외관 ⓒ정인선 창경궁 대온실은 창경궁 입구에서 소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궁을 보다가 10분 후 쯤 만나게 된다. 1909년 건축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건축 뼈대는 목재와 철재로 이루어져 있고, 겉면은 온통 유리로 덮여있다. 일제는 1907년 우리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온 것에 맞추어 창경궁 전각들을 헐고 그 자리에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고, 1909년 일반인에게도 개방했다. 그 목적은 궁궐의 권위를 격하시키기 위해서 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온실은 일제의 나쁜 의도 아래 훼손된 창경궁의 일면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하지만 건축된 지 이미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그 자체가 역사적 가치와 건축적 의미를 지닌 근대문화유산으로 문화재청에 등록된 등록문화재이다. 대온실 앞에는 르네상스풍의 분수와 미로식 정원도 함께 조성했다. 대온실 내부 ⓒ정인선 현재 대온실은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야생화, 자생식물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보지 못할 울릉도와 독도의 자생식물도 있어 새로운 식물에 대한 정보를 얻는 재미가 있다. 웅장하고 화려한 느낌은 없지만 단아하고 품위가 느껴지는 온실이다.  또한 내부가 습하지도 않고, 너무 덥지도 않아서 쾌적함이 느껴지고 관람을 하고 나면 저절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유리를 통해 햇살이 들어와서 온실의 온도도 유지시켜주고, 빛이 온실을 꽉 채우며 흰색 창과 어울려 식물마저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햇빛이 예쁘게 들어와서 사진 찍기 좋은 공간이라 사진기 매고 출사 나온 분들도 많다.  온실의 구조는 직사각형으로 길어서 복도를 걷는 기분이고, 중앙에 또 다른 직사각형 공간이 있어 미로처럼 돌다 보면 작은 온실이지만 한참 돌게 되어 마치 큰 온실 같은 느낌을 준다. 추운 겨울, 따뜻하고 청량한 봄날을 만날 수 있다. 금감나무 ⓒ정인선 금감나무는 백색 꽃이 1~2개 달리며 열매는 오렌지색으로 익...
창경궁 야간 관람 중 만난 하늘

해 질 녘 떠나는 서울여행! 인사동·창경궁 나들이

창경궁 야간 관람 중 만난 하늘 호호의 유쾌한 여행 (146) 인사동 & 창경궁 점점 무더워집니다. 대낮에 거리를 걷다 보면 머리가 지끈 아파집니다. 아직 제대로 된 여름이 오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부터 이렇게 더워서 어떡하나 걱정입니다.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가라앉고 난 이후인 오후 5시부터 움직여볼까요? 인사동 일대를 산책하고, 창경궁 야간 관람까지 구경하는 코스입니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가득한 인사동 거리 주말의 인사동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주말 나들이를 나온 사람과 한국 여행 중인 외국인이 뒤섞여 있습니다. 볼거리, 먹을거리도 풍성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 카페도 성업 중이었는데요. 런닝맨, 놀이동산, 다이나믹 메이즈 등 갈 곳도 많아 무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즐기기 좋습니다. 인사동 탐험은 먹거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꼭 먹어봐야 하는 간식은 바로 꿀타래와 터키 아이스크림입니다. 꿀타래는 임금님이 드시던 디저트인데요. 돌처럼 딱딱한 꿀에 전분 가루를 뿌리며 주물러주면 말랑말랑해지기 시작합니다. 두 가닥이 네 가닥이 되고, 네 가닥이 여덟 가닥이 되고, 여덟 가닥이 열여섯 가닥이 되며 순식간에 2배씩 늘어납니다. 꿀타래 만드는 장인 옆에서 리드미컬하게 하나씩 추임새를 넣어주어 흥을 돋웁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올 때는 영어나 일본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실처럼 얇은 가닥이 만들어지면, 안에 땅콩가루를 넣어 돌돌 말아줍니다. 꿀타래 완성입니다. 임금님이 먹던 디저트라 그런지 아이들이 더욱 신나합니다. 두 번째는 터키 아이스크림입니다. 손재주, 말재주 좋은 터키 아저씨가 쫀득이 아이스크림을 판매합니다. 마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이스크림 쇼는 30초 남짓이지만 여운이 깁니다. 만드는 과정이 요란스러워 맛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쫀득거리는 맛이 일품입니다. 쌈지길에서 파는 똥빵도 맛있습니다. 똥 모양으로 생겨서 살짝 거부감이 들지만, 안에 든 팥소와 잘 어울립니다. 서울 여행 기념품으로 독특한 모자 어때요...
창경궁 통명전 모습

창경궁 안, 숨은 봄꽃 명소는 어디?

창경궁 통명전 모습 봄나들이 명소 창경궁, 50대 이상 상당수는 지금도 창경궁을 동물원이 있고 벚꽃놀이를 즐겼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09년 일제는 창경궁의 전각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장했다. 이름도 창경원으로 낮춰 부르게 했다. 해방 이후에도 창경원은 가족들과 동물 구경, 꽃 구경하러 가는 봄나들이 1번지였다. 오랫동안 놀이공원이었던 창경궁은 1986년에야 다시 궁궐의 모습을 갖추고 궁의 이름도 되찾게 됐다. 창경궁 대비전인 환경전과 경춘전 창경궁에서 특히 꽃을 보며 산책하고 싶다면 통명전과 환경전, 경춘전 등이 자리한 궁궐 내전을 추천한다. 창경궁은 성종 1483년에 정희왕후(세조비)와 소혜왕후(성종 어머니)를 비롯한 왕실의 어른들을 모시기 위해 건립했다. 왕실의 여인들을 위해 지은 궁궐이었던 만큼 내전의 영역이 넓다. 이곳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곳은 통명전으로 창경궁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장희빈이 사약을 받은 곳이 바로 통명전으로, 드라마틱한 역사 이야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왕실 여인의 삶을 위로라도 하듯 올해도 봄꽃이 만발했다. 왕이 학자나 신하를 접견하던 장소로 쓰인 함인정 함인정에 이르면 더욱 다양한 봄꽃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인자로움에 흠뻑 취하다’라는 뜻의 이 정자는 왕이 학자나 신하를 접견하던 장소로 쓰였다. 진달래, 앵두꽃, 개나리 등 화사한 봄꽃, 돌담과 함인정의 고상한 자태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둘레길 삼아 산책하기에 좋은 창경궁 춘당지 여인들의 후원을 벗어나 춘당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전 내린 봄비에 몸을 말갛게 씻은 연못가 나무며 풀과 꽃들이 투명한 빛을 발했다. 화려한 봄꽃과는 사뭇 대비되는 모습으로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경궁 대온실 전경 춘당지를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1909년에 지어진 창경궁의 대온실이 나온다. 일제는 창경궁 내의 여러 전각들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 등을 만들어 창...
창경궁은 고궁 공원으로 불릴 만큼 서울 도심 한복판에 울창한 숲을 자랑한다

망극할 따름! 천원으로 화사하게 누리는 고궁 산책

창경궁은 고궁 공원으로 불릴 만큼 서울 도심 한복판에 울창한 숲을 자랑한다 호호의 유쾌한 여행 (136) 창경궁 봄꽃여행 창경궁으로 더욱 특별한 봄 여행을 떠나봤습니다.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년)에 세조비 정희왕후와 예종비 안순왕후 등을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입니다. 수강궁은 세종이 즉위한 1418년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 마련한 궁이었습니다. 창경궁은 서울의 5대 궁궐의 하나이지만 그 위상은 좀 모호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경복궁, 창덕궁처럼 법궁도 아니고 덕수궁처럼 특정 시대를 대표하지도 않습니다. 창덕궁과 연결되어 있는 궁으로 알려져 사실 창덕궁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창경궁의 화계. 이웃 창덕궁과의 담벼락인 계단식 담장에는 봄꽃들이 알록달록 꽃잔치를 벌리고 있다 하지만 창경궁은 누구나 언제든 방문하고 산책하기 가장 좋은 고궁 공원이라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교수는 말합니다. 창경궁의 규모만 7만평. 도심 한 가운데 그 넓은 규모 대부분이 창경궁의 숲이 차지합니다. 낙산공원이나 삼청동 성곽길 등에서 도심 쪽을 바라보면 숲이 우거진 곳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창덕궁과 창경궁의 숲입니다. 진달래가 피어있는 창경궁 궁과 어우러진 도심 풍경이 이색적이다 창덕궁의 후원이 아름답고 넓지만 미리 예약해서 해설자의 안내에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반면 창경궁은 궁이 열려있는 때면 언제든 자유롭게 산책이 가능합니다. 고궁 공원으로서의 궁궐을 만끽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오로지 시민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궁궐 입장료가 전반적으로 3,000원으로 오를 때도 창경궁은 1,000원을 유지한 궁궐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밤 9시까지 휴궁일을 제외한 매일 야간 개장도 합니다. 창덕궁의 인공연못 춘당지 주변에는 능수버들이 연두빛 새 잎으로 봄을 알린다 숲이 우거진 창경궁은 그래서 봄에 방문하기 가장 적합한 궁...
첫눈 맞은 창경궁 옥천교 돌짐승 조각

11월 첫눈 오던 날, 창경궁 가보니 “한 폭의 그림”

첫눈 맞은 창경궁 옥천교 돌짐승 조각 지난 토요일(11월 24일)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1981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니 11월 첫눈이 이례적이긴 한가보다. 서울지역에 내려졌던 대설주의보가 해제된 오전 10시경, 따뜻한 이불 속 유혹을 뿌리치고 창경궁을 찾았다. 눈 내린 고궁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소복소복 눈이 쌓인 창경궁 모습 창경궁에 들어서면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옥천교. 궁궐 안을 흐르는 물을 금천이라 하는데 서울에 남아 있는 다른 궁궐의 물줄기는 말라버렸지만 창경궁 다리 아래엔 아직도 물이 흐른다. 옥천교는 창경궁에서 가장 오래된 건조물로 보물 제386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리의 돌기둥 위에 앉은 돌짐승의 모습은 심플하면서도 귀여운 모습이다. 옥천교 난간의 돌짐승이나 다리 아래 석조물들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세월의 깊이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보물 제386호 옥천교는 창경궁에서 가장 오래된 건조물이다 옥천교를 건너 바로 명정전의 중문인 명정문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창경원 조성 때 없앴던 걸 1986년에 복원했다.  바로 보이는 건물이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이다. 조선시대 궁궐의 다른 법전,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웅장하고 권위적인 규모와 달라 아담한 모습이다. 이는 성종 때 시작한 창경궁의 확장 목적이 대비전의 세 어른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외전보다 내전 중심이라고 한다. 명정전 조정 마당에 세워진 품계석들 숭문당은 경종 때 세운 건물로 순조 때 큰 화재로 소실된 해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학문을 숭상한다’는 의미 대로 영조 때 이곳에서 성균관의 태학생을 불러 시험을 치르거나 주연을 베풀었다. 숭문당(崇文堂)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앞뒤 반전매력을 선사하는 숭문당 영조 때 과거에 급제한 인재들을 접견하는 등 크고 작은 행사가 이루어졌던 함인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 구조이다. 면적이 좁아 지붕 규모는 작지만 팔작지붕 모...
가을이 내려앉은 창경궁 모습

단풍 지기 전에 가을가을한 창경궁에서 추억 쌓기

가을이 내려앉은 창경궁 모습 서울 어느 산 속 등산객의 뒤태라 착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사진 속 모습은 창경궁을 찾은 방문객이란 사실. 창경궁은 보통의 궁처럼 평지와 일직선을 이루도록 구획하지 않고 언덕과 평지를 따라가며 자연스레 터를 잡았다. 그래서인지 창경궁은 더 자유로운 분위기를 내고 숲 속 같이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궁궐들은 도심에 있어 접근성이 아주 좋다. 게다가 11월 4일 일요일까지 가을여행주간이라 궁궐전각 입장료가 50% 할인되어 창경궁의 경우 500원짜리 동전 하나면 둘러볼 수 있다. 또한 만 24세 이하와 만 65세 이상 어르신, 한복 착용 시에는 입장료가 무료다. 가을 등산로 같이 느껴지는 창경궁 산책길 창경궁은 처음에 ‘수강궁(壽康宮)’이란 이름으로 세종이 태종을 위한 공간으로 지은 궁이었다. 그 후 성종 때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 수리를 시작했다. 확장공사가 진행되어 주요 전각을 완공하고 이름도 지금의 ‘창경궁’으로 새로 만들었다. 창경궁은 아담한 규모로 전각 수가 많지 않고 왕실 가족 생활공간으로 발전한 궁이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 재건했으나 그 후 또 일어난 대화재로 일부는 소실되고 말았다. 타지 않고 남은 ‘명정전’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 전각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던 장소로 사용했다. 빈양문은 외전과 내전을 이어주는 문이다. 명정전 뒤 행각 끝으로 외전과 내전을 이어주는 ‘빈양문’이 있다. 이 문을 건너면 바로 보이는 전각이 ‘함인정’이다. 햇볕이 잘 들고 넓은 뜰이 전면에 펼쳐져 왕들이 자주 찾던 곳이라 한다. 과거시험에 합격한 인재들을 만나던 곳이자 신하들과 고전을 읽으며 경연을 나눈 장소이다. 탁 트인 시야로 방문객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명소이기도 했다. 왕과 신하들의 경연 장소였던 함인정 함인정을 지나 조금 걷...
하얀색 외관이 이국적 풍광을 자아내는 창경궁 대온실 ⓒ최은주

궁궐 속 비밀정원 ‘창경궁 대온실’ 재개장

하얀색 외관이 이국적 풍광을 자아내는 창경궁 대온실 ◈ 창경궁 대온실-지도에서 보기 ◈ 가을 막바지 창경궁은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비경과 늦가을 서정에 빠지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1년 3개월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 11월 10일 재개장한 창경궁 대온실에 대한 시민들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창경궁 대온실은 1909년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는데, 그때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또 일제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시킨 뒤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동물원과 함께 지은 것이었다. 아름다운 외관과 달리 아픈 역사가 담겨 있는 건축물이다. 하얀색 철골과 화려한 외관의 유리가 눈에 띄는 대온실은 재개장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가족, 연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대온실 안의 꽃과 나무를 관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온실을 가득 채운 시민들(좌), 창덕궁 향나무를 비롯한 천연기념물 후계목들(우)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후계목이었다. 후계목이란 어머니 격인 천연기념물 나무에서 직접 유전자를 채취해 성장시킨 후손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천연기념물 제194호인 ‘창덕궁 향나무’를 비롯해 ‘통영 비진도 팔손이나무’, ‘부안 중계리 꽝꽝나무’ 후계목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울릉도 자생식물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곳에선 울릉도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식물들을 인공 증식으로 재배하고 있다. 시민들은 울릉도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자생식물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식충식물도 큰 인기였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신기한 모양의 식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식물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눈빛에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공덕동에서 왔다는 한 시민은 “궁궐 안의 온실이라 그런지 진귀한 식물들이 가득한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최초 준공 시에 사용했던 영국제 타일을 복원...
나무가 드리운 풍성한 그늘 아래 맑은 공기를 맡으며 걷기 좋은 고궁 ⓒ김종성

도심 속 청정구역 ‘고궁 나무 산책’

나무가 드리운 풍성한 그늘 아래 맑은 공기를 맡으며 걷기 좋은 고궁 연일 폭염주의보, 오존주의보가 발효되는 도시의 여름은 더욱 무덥게 느껴진다. 고궁은 그런 도심 속에서 시원한 그늘과 청정한 공기를 선사해 준다. 며칠 전 기자는 서로 이웃하고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방문해 산책했다. 이곳은 나무 그늘이 그리운 요즘 같은 날 자주 찾게 된다. 큰 나무일수록 내뿜는 산소가 많아서인지 그늘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햇빛, 물, 공기만으로도 푸르게 높이 자라는 나무 아래에서 쉬다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모하며 사는지 생각하게 한다. 오래된 궁궐이 편안한 쉼터처럼 다가오는 건 품이 넉넉한 노거수(老巨樹: 오래되고 큰 나무) 덕분이다. 소나무, 회화나무, 느티나무와 같은 명목나무 외에도 느릅나무, 졸참나무, 들메나무 등 다채로운 수종의 나무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왠지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수년 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 방문 후 우리 조상들이 나무를 무척 사랑했음을 깨닫게 됐다. 경복궁의 두 배가 넘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자금성에는 나무가 거의 없었다. 알고 보니 궁에 나무가 많으면 자객이 들어와 숨기 쉽고 왕족을 경호하기 어려워 심지 않았다고 한다. 창덕궁을 지키는 듬직한 노거수 회화나무 창덕궁 정문으로 들어서면 카메라 렌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노거수 회화나무 세 그루가 따가운 햇볕을 가리고 우뚝 서 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일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듬직한 어른 같은 나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하다. 고궁에서 자주 만나는 소나무는 조선의 선비와 시인들이 사랑했던 나무다. 용이 승천하듯 휘어진 소나무의 자태는 그림과 사진의 훌륭한 소재가 되어준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았던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복원 작업이 진행될 때 왕실이 있는 경복궁보다 먼저 복원할 정도로 조선 시대 왕들에게 사랑받았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지난 1997년 서울 5개 궁 가운데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놀라운 생명력을 ...
왕비의 침전이었던 통명전에서 야간 음악회가 열린다. ⓒ이동규

창경궁에서 음악힐링 함께 하실래요?

왕비 침전이었던 통명전에서 야간 음악회가 열린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서울 곳곳에서 공연·영화관람료, 입장료 등 할인 혹은 무료인 문화의날 행사가 열린다. 이날 창경궁을 찾았다. 창경궁은 아담한 규모로 전각 수가 많지 않다. 경복궁처럼 평지와 일직선 축을 이루도록 구획되지 않고 언덕과 평지를 따라가며 터를 잡아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왕실 가족 생활공간으로 발전해 다른 궁궐에 비해 외전보다 내전이 더 넓은 것도 창경궁 특색이다. 언덕을 따라 펼쳐진 창경궁 나무들 창경궁에는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짓던 ‘내농포’라는 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큰 연못을 만들었다. 이 연못이 지금 춘당지다. 서울 도심에 흔치 않은 넓은 연못이고 주변에 숲도 울창하여 많은 새가 찾는다. 천연기념물인 원앙도 눈에 많이 띈다. 천연기념물 원앙이 머무는 춘당지 도심 속 숲을 만끽하며 걷는데,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왔다. 창경궁에서는 다양한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특히 이날은 함인정에서 특별 낮공연 진행되고 있었는데, ‘한빛예술단’과 ‘아우름’이 함께하는 창경궁 음악회였다. 시각장애인 연주단의 클래식 연주와 전통 음악이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젊은 풍류단체가 만나 들려주는 하모니를 만끽했다. 한국 풍류정신을 바탕으로 한 음악을 모티브로 악(樂)·가(歌)·무(舞)가 조화된 작품을 국내외 무대에 올리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벨기에 등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다. 시나위를 비롯한 아리랑 연곡을 연주했다. 특히나 귀에 친숙한 아리랑이 새롭게 편곡되어 흥미롭게 들렸다. `창경궁 음악회`에서 공연한 한국전통예술단 `아우름` 세계 유일 시각장애인 전문연주단 한빛예술단은 클래식 명곡을 악보 없이 연주한다. 50여 명 오케스트라가 지휘자 없이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곡을 통째로 외워야 한다. 장애의 편견을 넘어 서로가 하나 되어 만든 화음이라 더욱 감동 깊었다. 세계 유일 시각장...
함인정 앞의 300년 된 고목 ⓒ최은주

궁궐의 아름다움은 나무에서 나온다

함인정 앞의 300년 된 고목 조선의 궁궐은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아름답지만, 꽃 대궐을 이루는 봄에는 더욱 아름답다. 꽃피는 봄의 궁궐 나들이는 바쁜 일이 있어도 놓치면 안 된다. 때마침 창경궁에서 궁궐에 어떤 나무들이 있고 그 나무들은 몇 살이나 되었는지 등 궁금증을 해소하고, 조선왕조 역사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역사와 함께 하는 창경궁 숲 이야기’를 시행한다. 창경궁관리소와 (사)한국숲해설가협회가 함께 진행하는 무료(입장료 별도) 해설프로그램이다. 창덕궁 후원을 관람한 뒤 궁궐의 나무에 관심이 생겼는데, 동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다녀왔다. 창경궁으로 봄나들이 나온 시민들 창경궁은 성종이 할머니와 어머니 등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수강궁이 있던 자리에 지은 궁이다. 소실과 복원을 거듭하여 궁궐로서 위상을 지키다가 일제에 의해 많은 전각이 헐리고 동·식물원이 들어서는 수모를 겪었다. 1983년 이후 정부는 창경궁 내의 동물과 식물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본격적으로 궁을 복원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빈터에는 나무를 심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궁궐의 아름다움은 나무에서 나온다. 창경궁에는 500년 역사를 간직한 나무들이 선조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해설사는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 전해주었다. 문정전 근처, 선인문 앞에는 매우 특별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400년이 넘은 이 나무는 줄기와 가지가 마구 뒤틀어져 구불구불한 모습이다. 이제는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서있을 수 없는지 철골 지지대에 기대고 있는 것이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다. 해설가가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사도세자는 27세에 뒤주에 갇혀 문정전 앞뜰에서 돌아가셨어요. 이 나무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모습과 피맺힌 비명소리를 다 들었을 겁니다. 그가 죽은 후에 선인문으로 나가는 것도 지켜봤겠지요.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퇴궐했던 문도 이곳, 선인문입니다. 왕도 떠나가고, 슬피 울던 사람들도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