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경회루 전경, 인터넷을 통해 내부 관람을 사전 예약할 수 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동! 경회루 내부 개방

경복궁 경회루 전경, 인터넷을 통해 내부 관람을 사전 예약할 수 있다 연못 위, 떠있는 섬 같은 ‘경회루’와 고종이 서재 겸 사신 접견소로 사용한 ‘집옥재’를 한시적으로 개방한다고 해서 경복궁으로 달려갔다. 먼발치에서 바라봐야 했던 우리나라 보물(국보 제224호 경회루)을 내부까지 직접 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다.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1412년(태종 12)에 만들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867년(고종 4)에 재건됐다. 사방이 훤히 트여 있어 건물과 함께 아름다운 연못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경회루는 원래 담장이 있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본 경회루는 더욱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경회루(慶會樓)의 경회는 ‘군신경회(君臣慶會)’에서 따온 말로 임금과 신하가 즐겁게 만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누각을 굳건히 받쳐주고 있는 튼튼한 돌기둥에서는 힘이 넘쳐난다. 전체의 기둥 수가 48개나 되는 경회루는 단일 평면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으로 꼽힌다. 바깥 쪽 24개, 안쪽 24개의 튼튼한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경회루 모습 경회루는 건축술에도 유교적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경회루의 바깥쪽 24개 기둥들이 24절기(節氣)를 의미함도 이와 무관치 않다. 2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과 천장을 수놓은 화려한 단청도 보인다. 누각에 오르는 이유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바깥 풍광을 즐기기 위해서다. 높이 오른 만큼 멀리 볼 수 있어 좋다. 경회루와 근접해 있는 수정전과 교태전, 자경전을 비롯한 궁궐의 전각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경회루 연못가 ‘만세산’으로 불리는 작은 섬들 경회루 연못에는 네댓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는 ‘만세산’으로 불리는 작은 섬들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낸다. 연못에 반사된 경회루와 나무들이 물결 위에 또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인공으로 조성한 연못이지만 자연미가 천연 연못 못지않다. 봄바람에 가지를 흔드는 버들 잎새와 눈 맞추며 연못 ...
경복궁 집옥재

고종은 궁궐 속 작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읽었을까?

경복궁 집옥재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10) 경복궁 속 작은 도서관 ‘집옥재’ 늘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경복궁은 숨겨진 보물들이 많은 곳이다. 비록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지만 경회루만큼 아름다운 향원정과 을묘왜변의 비극이 서려있는 건청궁, 그리고 북쪽 끝에 자리 잡아서 늘 한적한 집옥재가 바로 그곳이다. 집옥재는 경복궁 안의 다른 전각들과는 여러모로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눈길이 간다. 옥을 모으는 곳이라는 뜻의 집옥재는 원래는 창덕궁의 함녕전 근처에 있다가 1891년,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고종의 거처가 경복궁으로 바뀌면서 함께 이사를 온 것이다. 건물은 전통 한옥 형태로 지어졌지만 여러모로 다르다. 일단 벽돌을 사용했고, 용마루에는 중국풍의 용 두 마리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다. 우측의 협길당은 전통적인 한옥 형태지만 좌측에 있는 팔우정 역시 유리창을 사용했다. 현판의 집옥재라는 글씨 역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는 가로가 아닌 세로로 적혀있다. 건물에 칠해진 단청은 궁궐임을 감안해도 굉장히 화려한 편인데 특히 내부의 지붕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천정 가운데에 팔각형으로 솟은 공간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용이 그려져 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후 조선에 큰 영향력을 미치던 청나라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고종은 이곳을 여러 용도로 사용했다. 선대 임금의 어진을 보관했으며,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는 장소로도 사용했다. 후원 가까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골치 아픈 일에 시달렸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용도로도 사용했을 것이다. 가장 큰 용도는 왕실의 도서관이었는데 서구의 각종 문물과 기술을 소개하는 책들을 비치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청나라와 일본의 영향력을 벗어나 서구화를 진행하려던 고종의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장소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집옥재는 19세기 후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벽돌과 유리라는 새로운 건축 재료와 한옥이 만났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옥은 지붕이 무겁기 때문...
경복궁 집옥재는 작은 도서관이자 역사체험공간이다. ⓒ김종성

서울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집옥재’

경복궁 집옥재는 작은 도서관이자 역사체험공간이다. 경복궁을 방문해 북쪽 끝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숨겨진 명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궁궐 속 작은 도서관으로 변신한 ‘집옥재’이다. 집옥재는 궁 안쪽 깊숙이 자리한 작은 연못 위에 있는 향원정을 지나 걷다보면 모습을 드러낸다. 경복궁 안에 있는 전각으로, 궁내 건물과 다른 이질적 건물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봄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의 협업을 통해 작은 도서관으로 개관했다. 집옥재(集玉齋)는 옥처럼 귀한 보물을 모은다는 뜻이다. 여기서 보물은 서책이다. 북악산이 뒤로 보이는 고종의 서재 집옥재 경복궁 정문으로 들어서서 근정전, 강녕전, 경회루 등 여러 전각과 명소를 지나 집옥재로 가는 길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산책의 시간이었다. 집옥재를 찾아가다 보니 경복궁은 생각보다 넓었다. 경복궁 면적은 43만2703㎡로 그리 넓다는 중국 자금성(72만㎡)의 절반을 넘는다. 소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등 고목들이 서 있는 널찍한 궁궐 마당을 지나다 보면 경회루 너머로 인왕산이, 집옥재 뒤로 북악산이, 동양화처럼 운치 있게 나타난다. 집을 지을 때 자연과의 조화도 세심히 고려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미적 감각을 실감하게 되는 길이다. “고종의 서재로 지은 집옥재는 중국풍의 입식 생활공간으로 되어 있다. 당시 고종은 이곳에서 외국사절을 맞이하였다. ‘중국식’이라기보다 당시로써는 ‘현대식’으로 지은 것이었다. 왼쪽으로는 전통 건물인 협길당을 두고, 오른쪽으로는 이층의 팔각누각을 달아 신구양식이 흔연히 어울리고 있다” – 유홍준 중에 - 고종의 쉼터였던 정자 팔우정, 현재는 북카페로 쓰이고 있다. 1891년 건립된 집옥재는 고종 황제의 서재와 집무실,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됐던 곳이다. 유홍준 선생의 말처럼 당시 선진문물 수입국이었던 청나라 건축양식으로 지은 우리나라 궁궐 전각이다. 화려한 장식에 벽돌 같은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여 지은 건물이다. 현판도 중국 북송(北宋)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