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 상 너머 깨끗하게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붙어있다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리네” 고맙고 아픈 태극기史

이순신장군 상 너머 깨끗하게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붙어있다 “삼각산 마루에 새벽빗 비쵤제 / 네 보앗냐 보아, 그리던 태극기를 / 네가 보앗나냐, 죽온 줄 알앗던 우리 태극기를 / 오늘 다시 보았네 /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니네 / 이천만 동포야 만세를 불러라, 다시 산 태극기를 위해 / 만세만세 다시 산 대한국(大韓國)……” 1919년 11월 27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태극기’라는 제하의 시 앞부분이다. 2009년 5월, 해체 복원공사를 시작한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벽에서 보퉁이 하나가 발견되었다. 물건을 싼 보자기는 귀퉁이가 불에 타고 얼룩져 낡았지만 분명히 태극기였다. 그 안에는 1919년 6월에서 12월 사이에 발행된 신문기사와 여러 건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3·1만세운동 이후를 전하는 ‘조선독립신문’과 ‘자유신종보’,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과 신채호가 발행한 ‘신대한’ 등 무척이나 귀하고 드문 자료였다.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들을 꾸짖는 경고문도 있었다. 태극기에 싸여 발견된 경고문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를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누가 왜 법당의 벽을 파고 숨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낡고 때 묻고 찢긴 태극기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일장기 위에 청색을 덧칠해 태극 문양을 만든 태극기라는 점이었다. 만든 이의 의분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태극기였다. 그 후 십 년 동안의 연구 결과 밝혀진 것은 이 보퉁이를 벽에 감춰 보관한 이가 백초월 스님으로 보인다는 사실뿐이다. 20대에 이미 큰스님 반열에 올랐던 스님은 독립운동을 지원하느라 20년 동안 숱한 체포와 구금을 당하고 고문을 받아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또 다시 독립운동 자금 건으로 수감되었던 청주교도소에서 1944년 순국한 스님의 시신은 현재 자취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에 전시중인 ‘진관사 태극기’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 이 진관사 태극기를 들고 입장했다. 그날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