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공원은 한양도성과도 이어진다. 한양도성에서 바라본 운치 있는 겨울 풍경

‘삼청공원’에서 겨울산행 기분 만끽

삼청공원은 한양도성과도 이어진다. 한양도성에서 바라본 운치 있는 겨울 풍경 ◈ 삼청공원-지도에서 보기 ◈ 서울엔 저마다 개성을 갖춘 공원들이 많다. 그 중 종로구 삼청공원은 작지만 다채로운 산책길이 많은 곳이다. 나무들로 우거진 공원길, 카페가 있는 숲속도서관, 한양도성 성곽길과 북악산 가는 길도 이어져 있어 찾는 이에게 여행하는 기분을 선사하는 공원이다. 삼청공원은 무려 1940년에 도시계획공원 1호로 지정된 오래된 공원이다. 경성부(서울시)가 조선총독부로부터 삼청동 안 임야를 빌려 지금의 공원을 조성했다. 일제강점기 때 심어놓은 왕벚나무, 산벚나무와 이후 늘어난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등의 참나무류 등 40여 종 1000여 그루의 수종(樹種)들로 울창하다. 삼청공원은 눈이 내리면 꼭 가고 싶은 공원이기도 하다. 한양도성 성곽길이나 북악산의 들머리로, 눈이 쌓이면 한층 운치가 깃든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어서다.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삼청공원도 그런 대표적인 곳이다. 버스를 타고 삼청공원을 찾아가도 되지만, 3호선 전철 안국역(1번 출구)에서 걸어서 찾아가도 좋다. 골목을 따라 걷기 좋은 삼청동 거리가 이어진다. 볼거리 풍성한 거리여선지 도보로 30분 정도 되는 거리가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고 개성 있는 가게들은 그 자체로 멋진 갤러리이지 싶다. 한옥을 품고 있는 정감 가는 안동교회, 등나무가 있는 넓은 마당이 좋은 정독도서관을 지나 풍년쌀집 간판을 한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다니는 외국인들 사진도 찍어주며 걷다보면 어느 새 삼청공원이 저 앞에 나타난다. 삼청공원 안 숲속도서관,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책 읽기 좋은 공간이다 삼청공원은 오랜 역사에다 북악산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어느 공원보다 나무들이 우거지고 산책하기 좋은 숲속 같은 공원이다. 옛날엔 청계천의 상류 삼청천이 흘렀고, 지금 삼청터널 자리로 울창한 계곡이 이어져 있는 등 천혜의 명승지였다고...
전통한옥 문화공간 `상촌재`에서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김수정

상촌재에서 한복 입고 다도 체험해요~

전통한옥 문화공간 `상촌재`에서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 상촌재-지도에서 보기 ◈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옛 골목들 사이사이로 한옥이 들어서 있는 북촌과 서촌. 북촌이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면서 서촌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름 부르기 쉽게 북촌과 서촌이라고 말하지만, 서촌의 본래 이름은 세종마을이다. 1397년 5월 15일, 이곳 준수방 장의동 본궁에서 세종대왕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현재 600여 채의 한옥과 옛 골목들이 세종마을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그중 전통한옥 문화공간 ‘상촌재’는 한국 문화 콘텐츠 활성화를 위한 거점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2013년 상촌재는 종로구에서 장기간 방치된 경찰청 소유 한옥 폐가를 매입해 1년여에 걸쳐 복원하여 2017년 6월에 개관하였다. 방석에 다소곳이 앉아 한복 설명을 듣는 아이들 19세기 말 전통한옥 방식으로 조성된 상촌재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난방기술인 온돌문화와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글인 한글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전통문화 전시실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한옥, 한복, 한글, 전통공예, 세시풍속에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그중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복을 올바르게 입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한복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았다. 신발을 벗고 안채의 방으로 들어가니 방석이 준비되어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방석사용법부터 알려주셨다. 방석은 발로 밟아서는 안 되며,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앉을 때 조심하고 던지거나 갖고 놀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설명을 들은 후 수업시간 동안 아이들은 방석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복을 입고 다도예절을 배우는 아이들 선생님은 또 남자 한복과 여자 한복을 보여주면서 특징과 명칭을 알려주셨다. 남자 바지에는 큰사폭, 작은사폭이 있는데 큰사폭에 오른쪽 다리가 들어가도록 입어야 한다. 한복에 대해 알아본 후 아...
오코노미야키

[정동현‧한끼서울] 인사동 오코노미야키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1) 종로구 와 인사동 일식주점 '와'에서는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봐야 한다 ◈ 인사동 오코노미야키-지도에서 보기 ◈ 밤이고 낮이고 인사동에 있었다. 낮에는 작고한 천상병 시인 부인이 운영하는 찻집 '귀천'에 가서 차를 마시고, 밤이 되면 인사동 어귀 술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인사동 거리를 걷다보면 내가 자주 가는 곳 주인장을 마주칠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나와 상대방은 얼떨결에 인사를 하기도 했다. 옆 객(客)과도 친분이 생겨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많다. “인사동에 사나 봐?” 실상 나는 버스로 30분 걸리는 영등포에 살았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들어차는 인사동이 나는 좋았다. 일주일에 두 세번 꼴로 인사동에 갔다. 너른 중앙대로 옆으로 핏줄이 퍼지듯 깔린 골목길이 좋았다. 골목길을 걷고 또 걸으며 지형을 익혔다. 골목에 깔리는 빛은 사납지 않았고 아늑했다. 사람들은 그 불빛 아래로 모여들었다. 계곡이 있으면 물이 흐르듯, 그 좁은 골목 사이 사이 자연스레 자리한 가게들은 신기한 것들로 가득찬 다락방 같았다. 인사동 골목에 깔리는 빛은 아늑했다 그 중 특히 아꼈던 곳은 막걸리를 파는 흔한 민속주점도 아니고, 방석 위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야 하는 전통 찻집도 아니었다. ‘와(和)’라고 이름 붙인 일본식 주점이었다. ‘에지리상 건강하세요’라는 포스트잇이 붙어있던 그곳은 말 그대로 오사카 출신 에지리씨가 하는 주점이었다. 딸린 직원들도 모두 일본인이었던 그 술집은 주인장 건강 문제로 며칠 씩 쉬기 일쑤였다. 게다가 좌석도 얼마 되지 않고 그마저 금세 차버리는 까닭에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곳을 즐겨 찾았던 가장 큰 이유는 맛과 분위기였다. 아르바이트생이 틀어놓은 댄스음악이 들리는 주점의 산만함도, 만들어놓은 것을 데워 맛도 향기도 빠진 음식도 없었다. 대신 어깨가 둥근 여자들이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어색하지만 친절한 억양으로 주문을 받았다. 오사카 출신 에지리씨가 운영했던 가게 ...
[카드뉴스] 돈의문박물관마을+종로여행

[카드뉴스] 돈의문박물관마을+종로여행

“돈의문 박물관마을에서 떠나는 종로 여행” #1 한옥, 근대가옥, 그리고 도시재생의 공간까지! 시간의 층이 살아있는 곳, 종로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서 출발해 행촌 共터까지, 종로의 매력을 찾아 떠나요. #2 아날로그 감성 충전 돈의문 박물관 마을 근현대에 형성된 골목과 한옥 등 멀지 않은 과거의 풍경을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역사문화마을. 현재 2017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가 열리고 있다. ■ 위치: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3 도시건축 비엔날레가 열리는 마을 전시장 비엔날레 기간 동안 돈의문 박물관 마을 곳곳에서 독특한 전시를 볼 수 있다. 비엔날레 식당에서 남인도 가정식 '탈리'로 배를 채우고, 카페에서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며 한숨 돌릴 수도 있다. #4 붉은 벽돌이 이국적인 홍난파 가옥 1930년대 독일인이 지은 가옥으로, 당시의 서양식 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홍난파 선생이 인수하여 1935년부터 세상을 뜰 때까지 머무른 집. ■ 위치: 서울 종로구 송월1길38 #5 감미로운 선율을 따라 과거 엿보기 이곳은 현재 홍난파 선생의 기념 전시관, 공연장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부 공간에 홍난파 선생의 피아노, 책이 전시되어 과거에 머무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6 함께 사는 도시의 미래,행촌공터 풀내음 가득한 성곽마을 행촌권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도시농업 특화마을로 조성되고 있다. ‘행촌共터’는 도시농업의 중심으로, 주민들이 공유하는 공간이다. ■ 위치: 서울 종로구 통일로12길 20-23 외 #7 마을재생의 동력을 엿볼 수 있는 비밀공간 3호점까지 있는 행촌共터는 도시농업 관련 정보를 나누고, 함께 요리나 공동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특히 이웃 간의 추억을 함께 일구는 옥상 경작소에서 도시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8 서울의 한복판 종로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즐거운 시간 산책을 해보세요! #핫스팟 in ...
다양한 풍미의 파스타를 맛보는 갈리나데이지 시그니처 파스타_지도보기

[정동현·한끼서울] 서촌 이탈리안 파스타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⑪ 종로구 갈리나데이지 다양한 풍미의 파스타를 맛보는 갈리나데이지 시그니처 파스타 ◈ 갈리나데이지-지도에서 보기 ◈ 통인시장에 기름 떡볶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촌에 해물라면에 소주를 파는 계단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왕산 아랫자락은 층수가 높지 않은 건물이 대부분이고,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가늘고 넓게 깔려 있다. 그 가운데는 몇몇 유명하고 저렴한 곳들 외에도 작게 빛나는 집이 있다. 본래 양반들이 모여 살았다는 서촌 터줏대감 격인 삼계탕집 토속촌을 지나 조금 더 올라오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중 하나인 추어탕집 용금옥이 있고, 그 다음 마주하는 골목에서 좌편으로 방향을 바꾸면 낮게 달린 간판 하나가 있다. 식당 이름은 ‘갈리나데이지’. 암탉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갈리나’에, 셰프 예명을 붙여 지었다. 이름처럼 이곳을 책임지는 셰프는 여자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간판을 지나면 작은 정원과 나무 벤치가 있다. 비밀의 화원을 지나듯 타임과 같은 허브가 자라는 정원을 지나 나무문을 열면 작은 홀이 펼쳐진다. 반기는 것은 하얀 셔츠에 키가 훤칠한 직원들과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꽃이다. 갈리나는 이탈리어로 `암탉`, 데이지는 셰프 예명이다. 잰 걸음으로 걷는 직원들 모습을 보면 몇 가지를 예측할 수 있다. 우선 맛이 수준 이하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사 시간이 불쾌해지는 일은 드물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갖춘 곳은 인구 천만 명이 모여 산다는 서울에서조차 꽤 드물다. 인력 운영 면에서 최저 임금이 낮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혹은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급료를 많이 쳐줄 수도, 식재료 원가를 높게 쓸 수도 없어 자연히 서비스와 음식 질이 떨어지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아니면 오로지 싼 식사만을 원하는 일반 대중 때문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일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우리 모두의 수준이 낮기 때문으로 귀결해본다. 갈리나데이지 시저샐...
화목순대국 순대

[정동현·한끼서울] 광화문 순대국과 머리고기

◈ 순대국과 머리고기-지도에서 보기 ◈ 맛있는 한끼, 서울 ② 종로구 화목순대국 광화문 분점 누군가는 그랬다. 광화문에 화목순대국 분점이 생긴 것은 이곳 직장인들에게는 축복이라고. 사위에 장벽처럼 널린 빌딩, 그 사이에 초풀처럼 자라난 식당들은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들의 안식처다. 사람들은 작은 짐승이 풀숲 사이에 웅크리듯 저마다 안식처를 찾아 나선다. 긴 밤을 보내고 이글거리는 속과 지끈거리는 머리를 얻은 사람들은 상처를 다스리려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광화문에 산재한 해장국집이 여럿, 하지만 그 중에서 단연 손꼽히는 곳은 바로 화목순대국이다. 여의도 본점 역시 유명한 것은 마찬가지. 무엇보다 좁은 실내를 최대한 활용하려 주방을 다락방으로 올린 구조는 가히 문화재급이다. 광화문 분점은 하나의 식당을 복도를 사이에 두고 두 개로 나눈 여의도에 비하면 훨씬 크고 쾌적하다. 크다고 해봤자 단층에 30여 석 되는 공간이 전부지만 말이다. 본점은 밤 10시까지 영업인 반면에 분점은 일요일 밤 9시부터 월요일 오전 9시, 그리고 평일 오후 3시에서 5시 브레이크 타임을 빼놓고는 24시간 영업이라 시간에 쫓겨 방문할 필요도 없다. “순대 국밥 먹자.” 이 말이 나오면 주저 하지 않고 언제든 찾아가도 된다는 말이다. 화목순대국을 찾은 것이 몇 번인지 헤아릴 수는 없다. 비가 와도, 날이 추워도, 늦은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불을 밝힌 이 곳 문을 열었다. 밖으로 선 줄에 ‘아니 순대국집에 웬 줄?’이라며 놀라는 것은 초행객 티를 내는 것. 그러나 그 안을 차지한 손님의 90% 이상이 남자인 것은 매번 새삼스럽다. 광화문에 서식 중인 모든 남자들이 다 이곳에 모여 있는 듯한 풍경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재질의 벽, 낮은 천장에 ‘국밥 한그릇 말아먹어야’ 하는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또 다른 숙명 같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순대국밥 하나만 먹고 간 것은 언제인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의 무조건 시키는 메뉴는 모둠(2만2000원)이다. 모...
우리동네 한 뼘 문화유산

[카드뉴스] 나만 몰랐던 우리동네 명소-중구·종로구 편

우리동네 한 뼘 문화유산 - 중구·종로구 편 #1 나만(?) 몰랐던 우리동네 문화유산 이야기 1탄 화창한 봄 날씨도 즐기GO~ 거리 뒤에 숨은 우리동네 문화유산도 확인하GO~ >> 한양도성 성곽길 따라 데이트 코스 체크하고      중구·종로구의 문화유산도 찾아봐요! #2 탐색 첫번째 : 종로구 혜화동 - 젊음의 거리, 연극인들의 고향! 공연을 빼고 대학로를 말하지 마시라! >> 대학로 즐기기 TIP - OPEN-RUN 중인 소극장 공연 골라보기 -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할인공연 사전 확인! - 대학로 3,4번 출구 가운데 커핀그루나루 골목에 숨겨진 맛집이 가득!     식사 후엔 별그대 촬영지 에 가보는 것도 강추~ #3 대학로 연극을 보고 나와 산책코스로 제격인 성곽길을 따라가면 종로구 혜화동 한 뼘 문화유산 '혜화문' - 성곽길과 이어져 무심코 지나치기도 하는 혜화문(본래 이름은 홍화문)은     일제강점기 때 헐린 것을 1992년 복원한 것.     오히려 그렇기에 아픈 역사를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장소이지 않을까? #4 탐색 두번째 : 중구 동대문 - 패션 타운, 먹거리 천국!(동대문운동장을 기억하는 당신은 최소 80년대 생) >> 동대문 즐길거리 TIP - DDP에 숨은 이벤트 찾기(각종 전시, 체험 이벤트 등이 365일 진행중!) - 금요일, 토요일 밤에는 밤도깨비 야시장 놀러가기 (10월까지 야시장 개장!)   눈이 휘둥그레지는 각종 디저트(두*몰, 현*아울*시티 등) #5 화려한 동대문의 불빛을 뒤로 하고, 남산 쪽으로 걷다보면! 중구 동대문 한 뼘 문화유산 '광희문' - 광희문은 39년 간 닫혀 있다가 2012년에야 일반에게 개방된 문.   사람이 죽으면 시신이 나가는 문이라고 해서 '시구문'이라고도 불렸던 곳.   왠지 으스스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매력 포인트! #6 탐색 세번째 : 중구 다산길 - 여긴 몰랐지? 도심 속 새로운 문화예술골목! (장충체육관입구 ~ 다...
thumbnail

행촌동 성곽마을, 도시농업으로 다시 일어서다

서울미디어메이트 배영준 기온이 34도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날 서울 종로구 행촌동 대신 중·고등학교 옥상 텃밭에서 학생들이 직접 가꾼 농작물의 수확을 알리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촌동은 지난 해 도시농업 특화마을을 조성하기로 결정되고 현재 행촌동 곳곳에서 옥상경작소가 시범 운영되고 있습니다.   옥상에 올라가 학생들이 애지중지 기른 수박과 가지, 토마토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도시농업에서는 수박이 키우기 어렵고 수확 후에도 먹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걱정과는 달리 크기도 제법 크고 빨갛게 잘 익은 모습이었습니다. 박 시장님께서는 수박을 직접 수확하고 학생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렸을 때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는데 부모님이 주무시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새벽에 벌판에 나가셔서 일하시고 밤늦게 들어오시니 그랬다며 어릴 적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학생들에게 도시농업의 소감을 묻자 농작물을 기르면서 재밌었고 식물이랑 유대감이 생긴 것 같다면서 뿌듯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박 시장님은 도시농업이 먹는 음식만 공급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서로 돕고 협동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수확한 수박을 직접 시식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수박을 가를 때 수박이 익지 않았을까봐 조마조마 하기도 했지만 빨갛게 잘 익었더군요. 직접 맛을 보지 못했지만 학생들의 손이 멈추지 않는 것을 보니 그 맛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시식 후 도시농업에 대한 시장님의 말씀이 이어졌는데요. 도시농업을 통해 파괴된 도시 생태계를 복원하고 극심한 기후변화와 식량안보에 대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가족 뿐 만아니라 마을 공동체 간에도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어 협동과 협력의 모티브를 제공한다고 하더군요. 나와 이웃, 도시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대신 중·고교에서 멀지않은 곳에 행촌궁터 1호점이 공사 중입니다. 옥상경작소 뿐만 아니라 마을 상품을 판매하고 도시농업 홍보 역할도 한다고 합니다. 아직 공사 중이어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지만...
춘곡의 작업실 풍경

한국 최초 서양화가의 옛집, 고희동 가옥 탐방

춘곡의 작업실 풍경 햇살좋은 날 창덕궁 산책에 나서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종로구 원서동이다. 창덕궁과 옆구리를 맞대고서 궁궐 돌담을 따라 난 아담한 동네. ‘럭키 전파사’ 등 향수를 일으키는 정겨운 가게 간판에서 한국미술박물관, 궁궐의 궁인과 일반인들이 함께 썼다는 옛 빨래터가 있어 산책하는 재미가 있다. 정겨운 럭키전파사 간판(좌), 물이 마르지 않은 빨래터(우) 궁궐 옆 동네라서 그런지 한옥이 많은 데, 그 중 한국 최초 서양화가로 꼽히는 춘곡(春谷) 고희동의 거처였던 옛 집이 있다. 그의 작품이 탄생한 곳이자 당대 문화예술인들이 교류한 공간이다. 한식과 일본식 그리고 서양식 주거문화의 특징이 고루 녹아 있는 등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등록문화제 제 84호)다. 1918년 일본유학(동경대 서양미술 전공)을 마치고 돌아온 춘곡이 직접 설계해 지은 후, 40여 년 동안 살았다고 한다. 춘곡 고희동 가옥 마당과 입구 전경 열린 대문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서면 자박자박 경쾌한 발소리가 나고, 신발을 벗고 들어간 한옥 집 나무 바닥은 참 부드럽고 폭신해 인상에 남았다. 좁고 긴 복도와 유리문, 실내로 들어온 툇마루와 대청, 개량 화장실은 근대 초기 한국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좁은 복도, 유리문, 실내로 들어온 툇마루 등 근대 한옥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이 집은 1965년 춘곡이 세상을 뜬 뒤 소유주가 바뀌면서 한때 헐릴 뻔했는데, 시민들의 노력으로 문화재로 등록되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2008년 종로구청이 사들여 보수공사를 한 후, 2012년 전시회가 열리면서 일반 공개가 됐다. 이제는 시민 누구나 집 안으로 들어가 춘곡의 작품과 자취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이 지긋한 문화 해설사 한 분이 가옥 안에서 근무하며 춘곡의 삶과 작품들을 설명해 주셨다. 구한말 역관(통역관)이자 개화 지식인이었던 고영철의 아들 고희동은 십 대 시절 프랑스 선교사가 건립한 학교를 다니면서 처음 서양미술을 접하게 된다. 1909년 한국최초의 ...
베델 집터 아래에 위치한 홍난파 가옥

파란 눈 독립운동가 ‘베델과 테일러’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위치한 앨버트 테일러 묘지 “나는 죽지만 신보(申報)는 영생케 하여 대한민국 동포를 구하시오”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잠들어 있는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의 유언이다. 광화문에서 경교장-서울교육청을 지나 10여분 올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교남동, 행촌성곽마을’이라는 안내 간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근린공원’ 입구이다. 아흔이 넘은 동네 토박이 할머니는 “원래 베델의 집터는 저기였다”며 기자에게 공원 끝의 아파트를 가리켰다. 실제 집터는 아파트가 되었고, 지금은 공원 안의 표석만이 ‘베델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남아 있었다. 베델의 집이 있었던 월암근린공원 입구(좌), 어거스트 베델 집터(우) 어니스트 베델은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영국인 독립운동가이다. 32세 때인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영국 특파원으로 한국에 온다. 조선의 독립을 돕기 위해 곧바로 양기탁과 함께 국·한문 및 순 한글판, 영어판 등 3개의 신문을 발행한다. 그는 헤이그 특사파견, 국채보상운동, 시일야방성대곡 영어 발행, 황무지 개간권 반대 보도 등을 통해 일제에 맞서 싸웠다. 결국 공안을 해친다는 죄로 체포되어 6개월 근신형과 상하이로 끌려가서 3주간의 금고형을 살았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909년 5월 37세로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안장됐다. 고종은 베델의 독립운동을 평가하여 ‘배설(裵說)’이라는 한국명을 하사했고,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위치한 베델의 묘지 이어서 베델 집터 인근의 미국인 독립운동가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를 찾아 행촌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은행나무가 심겨진 권율 장군의 집터에서 내려다보면,  ‘딜쿠샤(DILKUSHA)’란 현수막이 나붙은 2층의 서양식 주택이 보인다. 테일러가 19년 동안 살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바로 그 집이다. 딜쿠샤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아들 브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