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 경종 임금과 선의왕후를 모신 서울 의릉 경내

도심 속 고요한 정원, 서울 의릉을 찾아서

조선 왕릉은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들의 무덤이다. 숲이 깊고 경관이 빼어난 청정지역에 있어 산책 장소로도 제격이다. 1대 태조(太祖)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해 모두 42기가 있고,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가운데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懿陵)을 찾았다.   홍살문 앞에서 바라본 의릉 참도로 방문객이 걸어가고 있다 ©염승화 의릉은 제20대 임금 경종(景宗)과 계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를 모신 능이다. 선왕 숙종(肅宗)에 이어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인 37세에 승하한 경종 왕릉을 1724년(영조 즉위)에 조성하였고, 6년 뒤 26세로 승하한 왕비 능을 1730년(영조 6)에 조성했다. 계비인 선의왕후능을 같은 영역에 쓴 것은 첫 번째 왕비인 정비 단의왕후(端懿王后)가 세자빈 시절에 세상을 떠났기에 그렇다. 왕후로 추존된 단의왕후는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 혜릉(惠陵)에 모셔져 있다. 경종은 부모인 숙종과 장희빈(張禧嬪), 이복동생인 영조(英祖) 덕분에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 임금 중 한 분이다. 어머니 장희빈이 경종의 하초를 잡아당겨 허약해졌다는 얘기나 경종이 자식이 없기에 왕세제에 책봉된 연잉군(延礽君) 영조가 왕위를 이은 일화는 유명하다. 근래에도 TV 사극 ‘해치’에 병약한 임금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금천교 개울가에서 바라본 의릉 전경 ©염승화  정문 앞에 놓인 세계문화유산 표석을 잠시 살펴본 뒤 경내로 들어섰다. 곧바로 푸른 숲이 울창한 천장산 아래로 널찍한 왕릉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신성한 영역임을 나타내는 금천교와 그 밑을 좌우로 흐르는 개울가 풍경에 눈길이 꽂혀 발길이 먼저 그리로 향했다. 여느 왕릉과는 다소 다르게 철쭉, 수국 등 각종 꽃나무들이 돋보이게 가꾸어져 있다. 초록빛 수초들이 넘실대듯 가득 들어차있는 수로는 한결 아늑해 보인다. 참도 옆에 전돌을 깔아 조성한 판위는 제관이 제례를 올리기 전에 절을 하던 곳이다 ©염승화  제향 공간의 시작점인 홍살문 앞으로 왔...
시야가 탁 트이고 널찍한 조선 왕릉 중 하나인 태릉 경내

고즈넉한 ‘조선 왕릉’ 산책

조선의 역대 임금과 왕비들의 무덤인 ‘조선 왕릉’은 서울 지역에도 몇 군데가 있다. 정릉(貞陵), 헌릉(獻陵), 선릉(宣陵) 등이 그러하다. 주위가 막히지 않고 숲이 우거져 평소 도심 속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날씨가 맑고 온화한 날, 조선 왕릉 중 하나인 '태릉(泰陵)'과 '강릉(康陵)'을 찾았다. 웅장한 느낌을 주는 태릉 능침 ©염승화 정자각과 능침 공간이 보이는 아늑한 강릉 전경 ©염승화 태릉은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비 문정왕후를 모신 능이다. 1565년(명종 20)에 조성되었으며 언덕 위에 봉분 하나가 있는 단릉이다. 강릉은 조선 제13대 임금 명종과 비 인순왕후를 모신 능이다. 1567년(명종 22년)에 왕릉이 조성되었고 1575년(선조 8)에 왕비 능이 조성되었다. 한 언덕 위에 좌우로 나란히 봉분을 썼기에 ‘쌍릉’이라고 부른다. 능침을 바라보며 왼쪽이 명종, 오른쪽이 인순왕후 능이다. 태릉과 강릉은 노원구 화랑로(공릉동)와 같은 영역에 있다. 두 능을 합쳐 흔히 태강릉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두 능은 자리가 가까운 것 이상으로 관계도 무척 가깝다. 문정왕후와 명종이 모자지간이니 어머니와 자식 내외의 능이 한 지역에 있는 것이다. 모두 사적 제201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두 능은 출입구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입장료를 한 군데만 내면 두 곳 모두 입장할 수 있다. 경내에서 두 능은 숲길로 연결되기도 한다. 약 1.8km가 이어지는 숲길은 소나무, 굴참나무숲과 진달래 군락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다만 늘 개방되지 않으니 그 기간을 미리 꼭 확인해야 한다. 5월 16일~6월, 10월~11월 정해진 기간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진입로 주변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염승화 태릉 경내로 들어서자 왼편으로 조선 왕릉 전시관이 보인다. 왕릉의 역사와 구조 등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아쉽게도 휴관 중이었다. 전경 사진을 몇 장 찍고는 곧장 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홍살문이 서 있는 제례 공간 앞까...
헌릉 능침공간으로 오르는 호젓한 숲속 나무 계단길

새해 첫 날, 도심 속 고요한 조선왕릉을 거닐다!

2020년 새해 첫날에 다녀온 곳은 서울 헌릉(獻陵)이다. 이 능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으로, 왕과 왕비의 봉분을 좌우로 나란히 붙인 이른바 ‘쌍릉’으로 모셔져 있다. 600년 전 1420년(세종 2)에 승하한 원경왕후의 능을 먼저 조성하였고, 2년 후 태종의 능이 조성되었다. 이 능은 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의 부모가 안장된 능이라는 특이점이 있다. 이 능을 포함해 조선 왕과 왕비들의 무덤인 조선왕릉 40기는 지난 200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소중한 문화유산들이다.헌릉의 주인공 중 한 분인 태종은 묘호 못지않게 휘(諱,) 즉 이름인 ‘방원’이 많이 알려져 있다. 정릉(貞陵)에 모셔져 있는 신덕왕후와의 정쟁과 왕자의 난을 통해서 집권한 뒤 건국 초기 조선의 기틀을 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호패법을 시행하였고, 조선왕릉과 함께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인 창덕궁을 지은 장본인이다.인릉 방면으로 돌아본 진입로 전경 ©염승화헌릉은 같은 경내에 있는 인릉(仁陵)과 함께 흔히 ‘헌인릉’으로 불린다. 규모는 약 119만3,000㎡(약 36만1,000평). 인릉은 조선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으로 19세기 중반(1856년, 철종 7)에 조성된 것이다. 두 능은 무려 400년이 훨씬 넘는 시간 차이를 두고 조성되었다. 그렇기에 시대별 능 조성 방법이나 양식 등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로 거론되기도 한다. 두 능이 함께 사적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헌릉의 신도비각은 규모가 크다 ©염승화헌릉은 인릉의 정자각, 비각 등이 있는 제례 공간을 왼쪽으로 끼고 오른쪽으로 난 길로 들어간다. 호젓한 길을 조금 더 지나니 좌우로 숲이 펼쳐진다. 주로 왼편으로는 송림, 오른편으로는 오리나무 군락이다. 물봉선, 둥굴레, 애기나리 등 여러 습지식물들까지 터를 박고 사는 오른편 군락은 서울시가 2005년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한 곳으로 경관이 뛰어나다. 숲 사이로 제법 커다란 전각이 나타난다. 능 허리 부분인 제례공간이 있는 ‘신도비각’이다. 이 비각을 스쳐지나 능 진입공간으...
정릉 능침에서 내려다본 능 경내

신덕왕후의 사연 깃든 정릉, 겨울숲 산책도 강추!

지난 주말, 조선의 왕과 왕비의 무덤인 조선 왕릉을 찾았다. 다녀온 곳은 성북구 아리랑로에 있는 서울 정릉(貞陵)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40기의 왕릉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를 모신 능이다. 대부분의 왕릉처럼 경관이 수려한 산기슭에 조성되었다. 약 29만 7,800㎡(약 9만 평) 규모다. 신덕왕후는 조선 최초의 왕비임에도 두 아들을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으로 모두 잃은 비운의 여성이다. 의붓자식이자 정적인 태종 이방원과 함께 자주 회자된다. 최근 절찬리에 방영되다가 종영된 TV 액션 사극 <나의 나라>에도 주요 인물로 등장한 바 있다. 오늘날에도 능 이름이 정릉동과 정동 등 지명으로 쓰이고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정릉의 병풍석과 난간석 등을 이용해 복원 공사 자재로 활용한 청계천 광통교 ⓒ염승화 정릉은 조선 건국 뒤 처음으로 쓴 왕조의 능이기에 마땅히 그 역사 가치와 의의가 높다. 1970년 5월 이래로 사적 제 20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다만 오랜 연혁에 비례하듯이 우여곡절 또한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96년(태조 5) 신덕왕후 사후 처음에는 능이 중구 정동, 옛 한성부 황화방(皇華坊)에 번듯하게 조성되었었다. 그러나 태조가 승하한 1408년 5월 25일 이후부터 본격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다. 계모인 신덕왕후와의 사이가 극히 좋지 않았던 태종이 그 이듬해 신덕왕후의 신분을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지금 자리인 옛 사흘한(沙乙閑)으로 천장한 것이다. 구 정릉(초장지)에 있던 병풍석 등 석물들을 홍수로 무너진 청계천 광통교의 보수 자재로 쓰는 수모를 준 1410년(태종 10) 8월 8일의 증거도 현 광통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느 왕릉과 달리 능 입구가 주택가와 밀접해 있다 ⓒ염승화 신덕왕후는 무려 260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왕후로 복위되고 능도 다시 왕릉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박해를 받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