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가 직접 탔던 어차

의외로 꿀잼 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를 빼놓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논할 수 있을까. 1392년 이성계에 의해 세워진 조선왕조는 519년 동안 이어졌고, 27명의 왕을 거쳤다. 조선의 도읍지는 지금의 서울인 한양이다. 조선 왕실 및 대한제국황실과 관련된 유물을 보존, 전시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국립고궁박물관'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단순한 유물 관람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전시기법을 통해 만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의외로 꿀잼 가득한 박물관이다. 아이들 역사 공부를 위해 방문했지만, 어릴적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보니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우리 역사의 가치가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입구는 2층이고 그 아래로 1층과 지하 1층까지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2층에는 조선의 국왕, 궁궐, 왕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있다. 2층 전시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정조의 화성행차'를 그림으로 그린 병풍이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참배를 간다. 수천 명에 이르는 대규모의 행차이다. 이 모습을 반차도, 그림병풍 등으로 그리게 했는데 그 당시 도화서 화원 중 한 명이 김홍도이다. 수천 명에 이르는 대규모 행차를 그리고 있는 정조의 화성행차 ⓒ김수정 화려하면서도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는 '적의'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적의는 조선시대 최고 신분의 여성을 위한 복식으로 왕비와 왕세자비의 궁중 대례복으로 사용되었다. 친애와 해로를 상징하는 꿩 무늬를 직조하고 앞뒤에는 금실로 수놓은 용무늬 보를 덧붙였다. 복식을 갖춰 입는 것은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한데 터치스크린으로 직접 조작하면서 차례대로 옷을 입는 과정을 살펴볼 수도 있다. 조선시대 최고 신분의 여성을 위한 복식인 적의 ⓒ김수정 1층으로 내려가면 로비에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가 탔던 빨간색 '어차'를 만나게 된다. 순종황제 어차는 미국의 GM 사가 제작한 캐딜락 리무진이고, 순정효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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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여행 가볼까"

'도성'은 한양(서울 옛 지명)을 둘러싼 성곽을 말하며, 조선 시대에는 한성(漢城)으로 불렸다.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상당한 구간 훼손됐으나 꾸준한 복원사업으로 약 70%가 제 모습을 찾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조선왕조 600년의 긴 세월 동안 한양을 지키던 도성이 유네스코 문화재 등재를 앞두고 있다. 서울시는 이를 기념하며 최근 '한양도성주간'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지금의 서울 도성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자. ▲ 태조 4년에 축성된 한양도성은 600년 동안 굳건히 서 있다 도성은 한양을 지키는 거대한 성곽이다. 지방의 성곽과 달리 궁궐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격 높은 '도성'이라 불렀다. 현재 도성의 길이는 약 18km 중 12km만이 남았다. 일부는 유실됐지만, 도성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한양을 막아주는 이 도성은 약 600년의 역사와 함께했다. 과거에는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현재는 역사 이야기를 담은 산책로로 탈바꿈했다. ▲ 현재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돼 있는 헌릉(좌)과 창덕궁(우) 지난 25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한양도성주간'은 도성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서울시가 마련한 행사다. 이 기간 동안 도성 인근에서는 다양한 활동이 벌어졌다. 서울 내 유네스코 문화재는 종묘(1995), 창덕궁(1997)을 비롯한 7개가 있다. 세계유산센터,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의 심사를 걸쳐 등재되는 유네스코 문화재는 인류 역사에 중요한 재산인 동시에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기도 하다. 한양도성의 유지 상태는 남다르다. 서양의 경우 도시가 들어서고 교통이 발달하자 필요 없는 성벽은 허물어졌다. 하지만 역사적 가치를 높게 생각한 한양도성은 현재 도시와 조화롭게 어우러져있다. 10월, 매주 토요일마다 도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산책하는 행사가 열렸다. 전문 스토리텔러와 약 50명의 사람이 함께 걸으며 역사 탐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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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얼마나 알고 계세요?

광화문을 정면으로 눈앞에 두고 보았을 때 혜화동 고개로 넘어가는 우측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창덕궁은 조선왕조가 건재했던 당시에 법궁(法宮)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소실되면서 조선의 임금들이 실질적으로 거주하여 정궁의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최근에는 일제에 의해 헐렸던 옛 규장각 건물 등이 복원되어 예전의 모습을 거의 되찾아 가고 있다. 지금은 전각의 배치와 자연의 조화가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많은 외국 관광객들로부터 진정한 한국의 아름다움이란 평가를 받지만,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조선왕조의 비애와 경술국치 이후 망국의 한과 설움,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옛 조선왕조 일가의 마지막 숨결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으로 역사의 큰 물줄기를 담고 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다. 창덕궁을 단순한 문화유산으로 여겨 즐기는데 그치지 말고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우리의 과거로써 둘러보기 위해 창덕궁 담겨 있는 구한말 조선왕조의 발자취와 건국 이후 마지막 숨결에 대해 찾아보기로 한다. 망국의 한이 서린 장소, 대조전(大造殿) 대조전은 창덕궁에서도 왕비의 침전이 있는 생활공간이었다. 그런데 대조전에 달린 부속 건물 중 흥복헌은 국권을 일제에 의해 피탈당하는 역사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1910년 흥복헌에서는 어전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되었고, 이후 일제는 우리의 국권을 피탈하여 나라가 없어지는 경술국치를 맞게 되었다. 조선왕조 일가가 여생을 마무리 한 곳, 낙선재 낙선재는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이 지은 서재 겸 사랑채로 일반 사대부의 주거 형태를 궁궐 안에 지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창덕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로 자연스런 멋과 함께 검소함을 중시했던 헌종의 성품이 느껴지는 곳이다. 헌종은 낙선재 건축 이후 그 옆에 석복헌과 수강재를 나란히 지어 자신의 후궁과 순조의 비인 대왕대비 순원왕후를 모셨는데, 낙선재와 수복헌이 바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