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15--16세기 묘제 연구 자료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서울 연산군묘

연산군 묘는 왜 능이 아닐까?…역사 품은 비경

연산군과 광해군은 조선을 통치한 27분의 군주 가운데 반정이 일어나 폐왕이 된 두 분이다. 사후 조성된 무덤도 신분이 격하되어 능(陵)이 아니라 묘(墓)로 불린다. 이중 도봉구 방학로에 있는 연산군묘를 찾았다. 도봉구 방학동 주택가 한 편에 자리한 연산군묘 정문 ©염승화 우이신설 경전철을 타고 종착역인 북한산우이역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묘소까지는 1.2km 거리다. 산책 삼아 걷거나 묘소 입구에서 내리는 버스로 환승을 하면 된다. 곧 사적 제362호라고 쓰인 표석이 서있는 정문 앞 안내박스에서 ‘연산군묘’ 리플릿을 쥐어 들었다. 1494년 왕위에 오른 제10대 임금 연산군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됨과 동시에 지위가 연산군으로 낮춰졌다.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등졌고 같은 곳에 묘가 조성되었었다. 지금 묘는 1512년(중종 7)에 이장되어 온 것이다. 연산군처럼 왕후에서 폐위된 거창군부인 신 씨가 11대 임금 중종에게 이장을 간청한 결과다. 군부인 묘는 1537년(중종 32) 연산군묘 옆에 모셔졌다. 어떻게 연산군의 묘가 현 위치로 오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결론부터 살피면 거창군부인의 인맥에서 비롯된다. 묘소 자리는 군부인의 외할아버지인 임영대군의 땅이었다. 임영대군은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로 계유정난을 도와 7대 임금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좁은 통로와 돌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묘역 경내가 한 눈에 펼쳐진다. ©염승화 묘역에는 연산군 부부를 비롯해 여러 기의 무덤들이 조성되어 있다. ©염승화 연산군묘는 대군묘제에 따라 조성되었기에 아무래도 왕릉과는 많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정문에서 묘역이 있는 곳까지도 짧고 홍살문조차 보이지 않았다. 좁은 입구 통로를 지나 돌계단을 밟아 오르니 묘역이 한 눈에 들어찬다. 안내 표지판에서 상단 끝부분까지 직선거리가 고작 50~60m에 불과하다. 일국의 왕이었던 분의 무덤이라고 보기에는 그 규모가 매우 협소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특이한...
강릉 숲길

봄·가을 딱 두 차례 열리는 ‘태릉강릉 숲길’, 지금 개방 중

서울 '태릉-강릉 숲길'은 5월 16일~ 6월, 10월~11월, 1년에 두 번 열리는 숨은 숲길이다. 작년 가을에 찾은 숨은 숲길의 매력에 흠뻑 빠져 올해 5월 숲길이 열리는 첫 날을 기다려 다시 찾았다. 아직 소문이 덜 난 탓인지 호젓한 숲길을 몇 안 되는 시민들과 즐길 수 있어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서울시내 어느 공공장소나 입구서부터 이제 마스크 착용, 발열체크는 기본이 됐다. 태릉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발열체크를 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최병용 '태릉'은 조선의 11대 왕 중종의 둘째 계비 문정왕후 윤 씨를 모신 곳으로 중종과 함께 안장되기를 바랐던 문정왕후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 태릉에 단릉으로 안장되어 있다. 태릉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왜적이 태릉에 금은보화가 묻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능을 파헤쳤으나 단단한 회격을 깨뜨리지 못해 실패했다. 왕릉이 500여 년을 손상없이 보존된 곳이 드물어  태릉과 강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문정왕후를 모신 태릉 ©최병용 조선 왕릉의 앞에는 신성한 영역임을 상징하는 홍살문이 서 있고 그 뒤로 릉까지 돌길이 놓여 있다. 왼쪽 높은 길은 제사 시 향과 축문을 들고가는 '향로'이고 오른쪽 낮은 길이 임금이 걷던 '어로'라고 하니 조선시대 왕들의 조상을 모시는 효심이 남달랐음을 느낀다. 왼쪽 높은 길이 제사 때 향과 축문이 들고나는 향로이고, 오른쪽 낮은 길이 임금이 걷던 어로이다 ©최병용 문정왕후는 중종의 세 번째 왕후로 아들 명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했다. 문정왕후는 불교에 관심이 많아 승려 보우를 신임하고 승려가 되는 승과를 설치하는 등 불교 진흥을 위해 노력했다. 1565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태릉에 모셔졌다. 문정왕후의 태릉 ©최병용 태릉을 떠나 본격적으로 강릉을 향하는 숨은 숲길 탐방에 나섰다. 작년 12월 1일부터 굳게 닫혀 있던 숲길 문이 열린 모습을 보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작년 10월 단풍이 물든 숲길을 걸었는데 5...
비운의 왕 경종 임금과 선의왕후를 모신 서울 의릉 경내

도심 속 고요한 정원, 서울 의릉을 찾아서

조선 왕릉은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들의 무덤이다. 숲이 깊고 경관이 빼어난 청정지역에 있어 산책 장소로도 제격이다. 1대 태조(太祖)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해 모두 42기가 있고,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가운데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懿陵)을 찾았다.   홍살문 앞에서 바라본 의릉 참도로 방문객이 걸어가고 있다 ©염승화 의릉은 제20대 임금 경종(景宗)과 계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를 모신 능이다. 선왕 숙종(肅宗)에 이어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인 37세에 승하한 경종 왕릉을 1724년(영조 즉위)에 조성하였고, 6년 뒤 26세로 승하한 왕비 능을 1730년(영조 6)에 조성했다. 계비인 선의왕후능을 같은 영역에 쓴 것은 첫 번째 왕비인 정비 단의왕후(端懿王后)가 세자빈 시절에 세상을 떠났기에 그렇다. 왕후로 추존된 단의왕후는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 혜릉(惠陵)에 모셔져 있다. 경종은 부모인 숙종과 장희빈(張禧嬪), 이복동생인 영조(英祖) 덕분에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 임금 중 한 분이다. 어머니 장희빈이 경종의 하초를 잡아당겨 허약해졌다는 얘기나 경종이 자식이 없기에 왕세제에 책봉된 연잉군(延礽君) 영조가 왕위를 이은 일화는 유명하다. 근래에도 TV 사극 ‘해치’에 병약한 임금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금천교 개울가에서 바라본 의릉 전경 ©염승화  정문 앞에 놓인 세계문화유산 표석을 잠시 살펴본 뒤 경내로 들어섰다. 곧바로 푸른 숲이 울창한 천장산 아래로 널찍한 왕릉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신성한 영역임을 나타내는 금천교와 그 밑을 좌우로 흐르는 개울가 풍경에 눈길이 꽂혀 발길이 먼저 그리로 향했다. 여느 왕릉과는 다소 다르게 철쭉, 수국 등 각종 꽃나무들이 돋보이게 가꾸어져 있다. 초록빛 수초들이 넘실대듯 가득 들어차있는 수로는 한결 아늑해 보인다. 참도 옆에 전돌을 깔아 조성한 판위는 제관이 제례를 올리기 전에 절을 하던 곳이다 ©염승화  제향 공간의 시작점인 홍살문 앞으로 왔...
서울 정릉

눈부시게 푸른 하늘 아래 ‘정릉’을 거닐다

미세먼지 하나 없이 파란 하늘의 봄날, 정릉을 찾았다 ⓒ최병용 요즘 가을처럼 하늘이 높고 파랗다. 역설적이게 코로나19로 인간이 멈춘 탓이라고 한다. 눈이 부시게 하늘이 아름다운 봄날 정릉을 찾았다. 정릉은 사적 제 208호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중 하나로 조선 태조의 두번째 왕비인 신덕고황후의 능이다. 정릉 입구 ⓒ최병용 서울 정릉은 1396년 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현 정동 영국대사관 부근에 조성했다. 하지만 태조의 첫번째 왕비의 아들인 태종이 왕자의 난으로 즉위한 후 '정릉이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다'는 상소에 따라 1409년 성북구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는 수난을 당했다. 정릉은 정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금천교를 만난다. 금천교는 속세와 성역의 경계역할을 하는 다리다. 60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금천교의 교각과 돌에서 역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속세와 성역의 경계인 금천교 ⓒ최병용 금천교를 지나 정릉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홍살문을 만난다.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 놓아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이다. 홍문 또는 홍전문이라고도 불린다. 신성한 지역을 뜻하는 홍살문의 모습 ⓒ최병용 홍살문을 지나면 정자각까지 이어진 박석을 깔은 기역자로 꺽인 향로와 어로를 만난다. 향로는 어로보다 약간 높게 조성되어있는데, 제향 때 향을 들고 가는 길이다.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로 어로라고 한다. 향로와 어로가 기역자로 꺽인 정릉은 일반적인 왕릉 조성양식과 차이가 난다. 높이가 차이나는 향로와 어로 ⓒ최병용 정릉 중앙에 세워진 정자각은 왕릉제례 때 제향을 올리는 곳으로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 건물이다. 정자각 내부에는 제단이 놓여져 있고 제례 때 상 차리는 법, 제기의 종류, 제례를 지내는 방법 등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설명서가 비치되어 있다. 온라인 개학 중인 아이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위해 찾아도 좋은 곳이다. 제향을 올리는 정...
정릉 입장권

이성계에게 버들잎 띄운 물그릇을 건넨 여인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조선왕릉은 왕과 왕비의 능으로, 독특한 우리 전통의 건축양식과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룬 문화유산이다. 서울에서도 여러 조선왕릉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 중 정릉은 태조가 사랑했던 신덕고황후를 위해 조성한 능이다. 성북구 아리랑로에 위치했다. 성북구에 있는 조선왕릉 정릉의 모습 ©김은주 정릉은 조선 제1대 태조고황제의 두 번째 황후인 신덕고황후의 능으로 사적 제298호다. 우이신설역 정릉역 2번 출구에서 아리랑시장 쪽으로 걸어오다 보면 골목길의 끝에서 정릉과 마주하게 된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들어서면 잘 가꿔진 왕비의 능을 만나게 된다. 조선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김은주 태조 이성계와 신덕고황후의 러브스토리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냥을 다녀오던 길에 목이 말랐던 이성계는 어느 우물가에 이르러 그곳에 있던 여인에게 물 한 그릇을 청했다. 그 여인은 물그릇에 버들잎 한 줌을 띄어 건네 주었고, 냉수를 급히 먹고 체하지 않게 배려했던 여인의 모습에 감탄하며 이성계는 둘째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후 그녀는 첫 번째 왕비인 신덕고황후가 되었다.  정릉은 한적한 봄날을 느끼며 걷기 좋은 산책로이다 ©김은주 처음 태조가 조성했던 정릉은 현 정동의 영국대사관 부근이었던 취현방에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태조는 세자 책봉에서 첫 번째 왕비인 신의고황후의 6명의 아들이 아닌, 어린 신덕고황후의 둘째 아들 방석을 선택했고, 결국 왕자의 난이 일어나는 비극이 초래되었다. 태종이 즉위한 후 정릉은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고 옮겨지는 과정에서 폐위와 함께 정릉의 형식은 일반인의 묘처럼 축소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이후 현종 때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되었다. 정릉의 비각 안에는 비석이 모셔져 있다 ©김은주 이러한 역사적 지식을 알고 정릉을 방문하면 이곳에 묻힌 신덕고황후가 죽어서도 편히 눈을 못 감았을 것을 느낄 수 있다. 태종은...
시야가 탁 트이고 널찍한 조선 왕릉 중 하나인 태릉 경내

고즈넉한 ‘조선 왕릉’ 산책

조선의 역대 임금과 왕비들의 무덤인 ‘조선 왕릉’은 서울 지역에도 몇 군데가 있다. 정릉(貞陵), 헌릉(獻陵), 선릉(宣陵) 등이 그러하다. 주위가 막히지 않고 숲이 우거져 평소 도심 속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날씨가 맑고 온화한 날, 조선 왕릉 중 하나인 '태릉(泰陵)'과 '강릉(康陵)'을 찾았다. 웅장한 느낌을 주는 태릉 능침 ©염승화 정자각과 능침 공간이 보이는 아늑한 강릉 전경 ©염승화 태릉은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비 문정왕후를 모신 능이다. 1565년(명종 20)에 조성되었으며 언덕 위에 봉분 하나가 있는 단릉이다. 강릉은 조선 제13대 임금 명종과 비 인순왕후를 모신 능이다. 1567년(명종 22년)에 왕릉이 조성되었고 1575년(선조 8)에 왕비 능이 조성되었다. 한 언덕 위에 좌우로 나란히 봉분을 썼기에 ‘쌍릉’이라고 부른다. 능침을 바라보며 왼쪽이 명종, 오른쪽이 인순왕후 능이다. 태릉과 강릉은 노원구 화랑로(공릉동)와 같은 영역에 있다. 두 능을 합쳐 흔히 태강릉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두 능은 자리가 가까운 것 이상으로 관계도 무척 가깝다. 문정왕후와 명종이 모자지간이니 어머니와 자식 내외의 능이 한 지역에 있는 것이다. 모두 사적 제201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두 능은 출입구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입장료를 한 군데만 내면 두 곳 모두 입장할 수 있다. 경내에서 두 능은 숲길로 연결되기도 한다. 약 1.8km가 이어지는 숲길은 소나무, 굴참나무숲과 진달래 군락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다만 늘 개방되지 않으니 그 기간을 미리 꼭 확인해야 한다. 5월 16일~6월, 10월~11월 정해진 기간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진입로 주변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염승화 태릉 경내로 들어서자 왼편으로 조선 왕릉 전시관이 보인다. 왕릉의 역사와 구조 등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아쉽게도 휴관 중이었다. 전경 사진을 몇 장 찍고는 곧장 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홍살문이 서 있는 제례 공간 앞까...
헌릉 능침공간으로 오르는 호젓한 숲속 나무 계단길

새해 첫 날, 도심 속 고요한 조선왕릉을 거닐다!

2020년 새해 첫날에 다녀온 곳은 서울 헌릉(獻陵)이다. 이 능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으로, 왕과 왕비의 봉분을 좌우로 나란히 붙인 이른바 ‘쌍릉’으로 모셔져 있다. 600년 전 1420년(세종 2)에 승하한 원경왕후의 능을 먼저 조성하였고, 2년 후 태종의 능이 조성되었다. 이 능은 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의 부모가 안장된 능이라는 특이점이 있다. 이 능을 포함해 조선 왕과 왕비들의 무덤인 조선왕릉 40기는 지난 200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소중한 문화유산들이다.헌릉의 주인공 중 한 분인 태종은 묘호 못지않게 휘(諱,) 즉 이름인 ‘방원’이 많이 알려져 있다. 정릉(貞陵)에 모셔져 있는 신덕왕후와의 정쟁과 왕자의 난을 통해서 집권한 뒤 건국 초기 조선의 기틀을 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호패법을 시행하였고, 조선왕릉과 함께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인 창덕궁을 지은 장본인이다.인릉 방면으로 돌아본 진입로 전경 ©염승화헌릉은 같은 경내에 있는 인릉(仁陵)과 함께 흔히 ‘헌인릉’으로 불린다. 규모는 약 119만3,000㎡(약 36만1,000평). 인릉은 조선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으로 19세기 중반(1856년, 철종 7)에 조성된 것이다. 두 능은 무려 400년이 훨씬 넘는 시간 차이를 두고 조성되었다. 그렇기에 시대별 능 조성 방법이나 양식 등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로 거론되기도 한다. 두 능이 함께 사적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헌릉의 신도비각은 규모가 크다 ©염승화헌릉은 인릉의 정자각, 비각 등이 있는 제례 공간을 왼쪽으로 끼고 오른쪽으로 난 길로 들어간다. 호젓한 길을 조금 더 지나니 좌우로 숲이 펼쳐진다. 주로 왼편으로는 송림, 오른편으로는 오리나무 군락이다. 물봉선, 둥굴레, 애기나리 등 여러 습지식물들까지 터를 박고 사는 오른편 군락은 서울시가 2005년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한 곳으로 경관이 뛰어나다. 숲 사이로 제법 커다란 전각이 나타난다. 능 허리 부분인 제례공간이 있는 ‘신도비각’이다. 이 비각을 스쳐지나 능 진입공간으...
정릉 능침에서 내려다본 능 경내

신덕왕후의 사연 깃든 정릉, 겨울숲 산책도 강추!

지난 주말, 조선의 왕과 왕비의 무덤인 조선 왕릉을 찾았다. 다녀온 곳은 성북구 아리랑로에 있는 서울 정릉(貞陵)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40기의 왕릉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를 모신 능이다. 대부분의 왕릉처럼 경관이 수려한 산기슭에 조성되었다. 약 29만 7,800㎡(약 9만 평) 규모다. 신덕왕후는 조선 최초의 왕비임에도 두 아들을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으로 모두 잃은 비운의 여성이다. 의붓자식이자 정적인 태종 이방원과 함께 자주 회자된다. 최근 절찬리에 방영되다가 종영된 TV 액션 사극 <나의 나라>에도 주요 인물로 등장한 바 있다. 오늘날에도 능 이름이 정릉동과 정동 등 지명으로 쓰이고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정릉의 병풍석과 난간석 등을 이용해 복원 공사 자재로 활용한 청계천 광통교 ⓒ염승화 정릉은 조선 건국 뒤 처음으로 쓴 왕조의 능이기에 마땅히 그 역사 가치와 의의가 높다. 1970년 5월 이래로 사적 제 20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다만 오랜 연혁에 비례하듯이 우여곡절 또한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96년(태조 5) 신덕왕후 사후 처음에는 능이 중구 정동, 옛 한성부 황화방(皇華坊)에 번듯하게 조성되었었다. 그러나 태조가 승하한 1408년 5월 25일 이후부터 본격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다. 계모인 신덕왕후와의 사이가 극히 좋지 않았던 태종이 그 이듬해 신덕왕후의 신분을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지금 자리인 옛 사흘한(沙乙閑)으로 천장한 것이다. 구 정릉(초장지)에 있던 병풍석 등 석물들을 홍수로 무너진 청계천 광통교의 보수 자재로 쓰는 수모를 준 1410년(태종 10) 8월 8일의 증거도 현 광통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느 왕릉과 달리 능 입구가 주택가와 밀접해 있다 ⓒ염승화 신덕왕후는 무려 260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왕후로 복위되고 능도 다시 왕릉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박해를 받은 ...
조선왕릉 전시관

유네스코세계유산 ‘태릉-강릉’ 11월 가기 전에 가야하는 이유

서울 노원구에 있는 태릉·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런 문화재이다. 왕조의 왕릉이 500여 년을 손상 없이 보존되고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기 때문이다. 태릉은 조선의 11대 왕 중종의 둘째 계비 문정왕후 윤 씨를 모신 곳이고, 강릉은 13대 왕 명종과 인순왕후를 모신 곳이다.   조선왕릉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조선왕릉전시관 ⓒ최병용 태릉을 방문하면 태릉 입구에 있는 조선왕릉 전시관을 먼저 만날 수 있다. 조선왕릉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어린이나 학생들이 찾아 와 조선 왕릉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 500년 이상 이어진 왕조의 왕릉이 거의 훼손 없이 온전히 남아 있는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조선왕릉은 왕을 기리는 공간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면서 오늘날까지 우리 가까이에서 살아 숨쉬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가 묻힌 태릉 ⓒ최병용 태릉은 문정왕후의 능이다. 문정왕후는 중종과 함께 묻히기를 원해 장경왕후 희릉과 함께 조성되어 있던 중종 정릉을 현재의 강남구 선정릉 지역으로 옮겨오게 된다. 그러나 이곳은 지대가 낮아 여름철 홍수 때면 재실과 홍살문이 침수되는 피해를 자주 입어 결국 중종과 함께 안장되기를 바랐던 문정왕후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 태릉에 단릉으로 안장되어 있다. 명종과 인순황후가 묻힌 강릉 ⓒ최병용 명종과 인순왕후의 강릉은 문정왕후 태릉의 동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데 왕릉은 명당에 위치하고 있어 백성들이 몰래 능역에 무덤을 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강릉을 만든 지 3년만에 정자각이 불에 타버린 사건도 있어 몹시 놀란 왕과 신하들이 모두 5일 동안 상복을 입었다.    태릉과 강릉을 잇는 1.8km의 숲길 ⓒ최병용 태릉과 강릉도 좋지만 태릉과 강릉을 잇는 숲길은 꼭 한번 걸을만한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다. 게다가 이 숲길은 5~6월, 10월~11월에만 제한적으로 개방된다. 태릉강릉 숲길은 소나무 숲과 ...
세계문화유산이자 멋진 도심 숲 공원이기도 한 조선 왕릉

가을 숲길로 이어지는 모자(母子) 왕릉, 태릉과 강릉

홀로 잠들어 있는 태릉의 주인 문정왕후 ⓒ김종성 총 42기(북한에 2기)의 조선 왕릉은 519년 동안 27대에 걸쳐 조선을 통치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500년 이상 이어진 한 왕조의 왕릉들이 거의 훼손 없이 온전히 남아 있는 덕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대의 후손들에겐 철마다 산책하기 좋은 도심 숲 공원이 되고 있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조선왕릉 가운데 모자(母子)의 무덤이 한 공간에 있는 왕릉도 있다. 문정왕후의 태릉(노원구 화랑로 681)과 아들 명종 부부가 잠들어 있는 강릉이 그곳이다. 하지만 1966년 태릉선수촌이 들어서면서 두 왕릉은 분리되었다. 태릉을 관람한 시민들은 매표소를 나와서 도로가를 따라 20분(약 1km) 정도 걸어야 강릉을 만날 수 있다.  다행히 매년 봄가을에는 분단된 모자간의 두 왕릉이 1.8km의 숲길로 이어진다. 이맘땐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다. 왕릉 해설사와 함께 산책하며 역사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과 같이 이용하면 더욱 좋겠다.  ▶왕릉 해설 프로그램 (토·일요일) : 오전 10시, 오후 2시(태릉 홍살문 앞) 신림(神林)이라 불릴 정도로 오래되고 울창한 태릉 소나무 ⓒ김종성 태릉은 경춘선 숲길공원에 있는 화랑대역에서 오솔길 같은 기차 길옆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이정표가 나와 찾아가기도 좋다. 태릉은 왕비가 홀로 묻혀있는 단릉(單陵)이라 믿기 힘들 만큼 웅장한 능으로, 당시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권세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한다. 조선시대 왕비 중에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고 한다.  무덤을 지키고 서있는 문인석과 무인석은 키가 3미터를 넘으며 머리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겨 보는 이를 압도한다. 조선 왕릉에 있는 석물 가운데 가장 크다. 왕후의 권세는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쳐 왕릉의 이름을 딴 지하철 태릉입구역, 태릉선수촌, 태릉고등학교, 태릉골프장 등도 있다. 경춘선 숲길공원에 있는 간이역 화랑대역의 원래 이름도 태릉역이었다가 육군사관학교(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