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도시정책의 좋은 선례가 된 공평도시유적전시관

한양의 견평방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종로에서 약속 시간이 남았을 때 꼭 들리는 곳이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다. 이곳은 지난 2015년 도시환경정비사업 시행 과정에서 조선시대 한양에서 근대 경성에 이르는 서울의 골목길과 건물터가 발굴된 곳이다. 유적을 원래 위치에 전면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빌딩 지하에 유적전시관을 조성한 것은 역사도시 서울의 도시정책의 좋은 선례가 됐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역사도시 서울의 도시정책의 좋은 선례다 ⓒ최병용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는 가로 77cm, 세로 81cm의 19세기의 한양을 그린 목판본 고지도인 '수선총도'가 있다. ‘수선(首善)’이란 ‘수도(首都)’를 가리키는 말로 한양지도(서울지도)를 의미한다. 수선총도는 도성 안쪽의 산, 하천, 궁, 종묘, 성문, 도로, 시전, 방·동 등이 자세하고 정밀하게 표시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 최고의 번화가였던 운종가(종로) 일대에 들어섰던 관영 상점격인 시전의 위치가 자세히 표시되어 당시 상점 분포 현황을 파악할 수 있어 흥미롭다. 한양의 중심지인 운종가(종로)를 나타낸 지도 '수선총도' 한양의 골목인 견평방을 볼 수 있다 ⓒ최병용 이번 방문은 공평도시유적 전시관에서 열리는 '한양의 家 견평방 가옥' 특별전 때문이다. '견평방'은 조선시대 최고의 번화가이자 시전의 중심지로 왕실 가족의 사가인 궁가, 사법기관인 의금부, 의료와 약재를 관장하던 전의감 등 관청 등 다양한 시설과 계층이 혼재하였던 명실상부한 한양의 중심지였다. 특별전은 ‘한양 중부 견평방’, ‘수도 한양의 가옥’, ‘견평방 가옥’, ‘견평방 가옥의 흔적’ 등 4개의 주제로 기획됐다. 특히 모형으로 복원한 가옥을 통해 한양에서 경제와 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견평방에 살던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내년 5월 2일까지 '한양의 家 견평방 가옥전'이 열린다 ⓒ최병용 '수선전도'도 눈길을 끈다. 가로 70cm, 세로 99cm의 수선전도는 19세기 말 조선에 체류하던 외국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서울의 고지도로 김정호가 제작...
한양도성유적전시관 전경

100년만에 공개된 ‘남산 한양도성 유적’ 직접 가보니

남산에 최근 특별한 전시관이 개관했다. 남산 길을 조용히 산책하던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바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다. 남산을 찾아 단풍 구경과 산책을 즐기던 시민들에게 100년 전 역사 유물을 만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 더해진 것이다. 사적 제10호인 서울한양도성은 조선 왕조의 도읍지인 한성부(서울의 옛 명칭)의 경계를 표시하고 방어하기 위해 쌓았던 성곽이다. 1396년 조선 태조 이성계는 전국에서 약 20만 명을 동원해 한양을 둘러싼 백악산(경복궁 북쪽에 있는 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과 그 사이 평지를 연결해 성을 쌓았다. 전체 길이 약18.6km. 대규모 성곽인 한양도성은 근대 도시화 과정에서 일부 훼손되었지만 본래의 가치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중요한 유산이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지난 11월 12일 시민들에 무료 개방되었다. ⓒ박찬홍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서울시에서 지난 2013-2014년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성벽 유구 2개소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신궁’ 배전 터와 방공호, 1968년에 설치된 둘레 20m의 분수대 등을 보존 및 정비해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특히 이 전시관은그동안 멸실된 줄 알았던 한양도성 남산구간의 성벽구간이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이 곳에 가면 조선시대 한양도성 유적에서부터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유적의 훼손과 수난의 아픔,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화, 도시화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유적전시관을 한 시민이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다. ⓒ박찬홍 전시관에 들어서면 총 길이 약 189m의 한양도성 유적을 접할 수 있는데 우리 선조들의 건축, 토목 기술의 우수함과 노고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태조(14세기), 세종(15세기), 숙종 이후(18~19세기)에 쌓았던 부분들이 하나의 성벽을 이루고 있어 시기별 축성양식의 변화와 성벽을 쌓을 때 임시로 나무 기둥을 박았던 구멍의 흔적을 관람할 수 있다. 성벽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한양의 家 , 견평방 가옥’展 ⓒ김미선

한양 최대 번화가를 엿보다 ‘한양의 家, 견평방 가옥’展

공평동 유적은 조선시대 한양의 행정구역에서 중부 '견평방'에 속한다. 견평방은 조선시대 최고의 번화가이자 시전의 중심지로 현재 청진동, 공평동, 인사동 일대이다. 한양에서 경제와 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곳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으로 조성되어 조선초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1,000점이 넘는 생활 유물과 건물터, 골목길을 관람한다. 투명한 유리 바닥과 관람 데크를 걸으며 발아래로 펼쳐진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발 아래 펼쳐진 다양한 집터를 볼 수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김미선 건물터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발굴된 유물을 확인한다. ⓒ김미선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는 상설전시로 개발과 보존의 상생, 조선시대 견평방, 근대 공평동, 도시유적 아카이브를 볼 수 있다. 공평동 주변 시전 거리는 조선 상업의 중심지이자 서울의 대표적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김미선 시전의 뒷골목 풍경이 이채롭다. ⓒ김미선 더불어 기획전시실에서는 11월 13일(금)부터 내년 5월 2일(일)까지 ‘한양의 家 , 견평방 가옥’ 전시가 펼쳐져 한양의 가옥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4개의 주제로 ‘한양 중부 견평방’, ‘수도 한양의 가옥’, ‘견평방 가옥’, ‘견평방 가옥의 흔적’ 등의 전시를 통해 견평방 가옥과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기획전시실에서 ‘한양의 家 , 견평방 가옥’ 전시가 열린다. ⓒ김미선 '한양 중부 견평방'에서는 견평방의 지리적 위치에 따른 역사적인 특성에 대해 알 수 있다. 견평방은 궁궐 관련 시설, 상업시설, 시전행랑 등 다양한 성격의 시설이 있었다. 특히 견평방에 거주했던 상인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화려한 여가문화를 꽃피웠다. 대규모 저택부터 골목 구석구석 위치해 있던 상인이 주로 거주하는 조그만 가옥들에서 사람들의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전시를 통해 한양 최고의 번화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김미선 '수도 한양의 가옥'에서는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추진되었던 가옥 보급 정책, 한양...
허준박물관에서 12월6일까지 진행되는 조선, 역병에 맞서다 특별전

조선에도 사회적 거리두기가?…허준박물관 특별전

불청객 코로나19가 불쑥 찾아와 우리 삶을 위협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커다란 공포로 다가왔던 전염병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두창과 홍역 등 역병으로 불리는 전염병이 돌던 때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견뎌냈을지 궁금하다. 한국 최초의 한의학 전문박물관인 허준박물관은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했다. ⓒ박분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됨에 따라 서울시내 박물관 운영이 재개되었다. 때마침 허준박물관에서 ‘조선, 역병에 맞서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한달음에 찾아가 보았다. 박물관 입구에서 마스크 착용 점검은 물론 손 소독과 함께 체온측정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이번 전시는 ‘조선을 습격한 역병’, ‘역병 극복을 위한 노력’, ‘신앙과 금기 치유를 소망하다’ 등 3가지 주제로 역병 속에서도 삶을 살아내고 공포를 이겨내고자 했던 선조들의 의지를 함께 느껴보고자 기획됐다. 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조선, 역병에 맞서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박분 ‘조선을 습격한 역병’에서는 조선시대 유행했던 주요 전염병과 역병에 희생되거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두창, 홍역, 온역 등의 전염병은 지금은 치료법이 개발됐지만, 당시에는 코로나19와 같이 걸리면 죽음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병이었다. 특히 두창(마마, 천연두)은 가장 맹위를 떨친 역병이었다. 두창으로 숨진 인흥군의 맏아들 묘지명 ⓒ박분 전시실에는 두창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묘지명, 역병에 희생된 아들을 기리며 쓴 제문 등이 전시돼 있어 당시 전염병의 참상으로 인한 슬픔을 가늠케 한다. 두창은 조선시대 유아 사망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왕실도 두창을 피해가질 못했다. 특히 선조는 1603년 겨울, 아들, 딸, 손자를 한 달 사이에 잃었다. 전시실에는 선조의 아들인 인흥군의 맏아들 묘지명(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전시돼 있다. 두 살 때 두창으로 숨을 거둔 왕실 아기씨의 백자 묘지명에 기록된 짧은 생은 애처로워 차마 볼 ...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임시 개관했다

미리 가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흙 구멍도 흥미롭네”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도심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한양도성’. 조선 시대에는 성곽을 따라 걸으며 도성 안팎의 풍경을 감상하는 순성 놀이를 즐겼다. ‘도성을 한 바퀴 빙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이 전해져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온 선비들이 순성하며 과거 급제를 빌기도 했다. 매년 가을이면 옛 선조들의 풍습을 이어 순성 놀이를 비롯해 성곽을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 올해 8회를 맞이한 '한양도성문화제'가 지난 10월 9일과 10일 양일간 한양도성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문화제 기간 임시 개관했다. ©김수정 제8회 한양도성문화제의 주 행사장은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었다. 남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아직 정식으로 개관하지 않았음에도 한양도성문화제를 위해 특별히 임시 개관하여 시민들을 맞았다. 한양도성 600여 년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를 미리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개관 이후 운영하게 될 전시해설도 들을 수 있었다. 한양도성은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능선을 따라 약 18.6km에 이르는 도성이다. 그 중 남산자락에 있던 한양도성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신궁이 세워지고, 1960~70년대에는 남산식물원과 동물원, 분수대 등이 만들어지며 잊혀져 가고 있었다. 2009년부터 남산의 지형을 되살리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발굴 조사를 통해 땅속에서 성벽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개관을 앞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3~2014년 발굴 조사를 통해 드러난 한양도성 성벽을 보존하고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연내 시범 운영을 통해 공식 개장을 할 예정이다. 2013년부터 2년여 간 발굴한 끝에 한양도성 성곽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수정 발굴된 성벽 앞부분에 움푹움푹 들어간 구멍들이 있다. 성벽을 쌓을 때 무거운 돌을 올리기 위해 지렛대 역할을 한 나무 기둥을 박...
이간수문과 성곽 건설

AR체험으로 생생하게 ‘동대문역사관’ 새단장

※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에 따라 별도 안내 시까지 동대문역사관 사전예약 관람을 중지합니다.대학 1학년 때 선배들을 따라 동대문야구장에 갔다. 출신 고교 후배들의 경기라며, 내야석에 앉아 목놓아 응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동대문운동장은 1926년 일제강점기 때 근대식 종합운동장인 경성운동장으로 시작돼, 1934년 테니스장, 1936년 수영장이 생기고, 1959년에는 야구장이 확장됐다. 해방 후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잠실종합운동장이 개장하면서 1985년 동대문운동장으로 변경됐다. 2007년 철거될 때까지 동대문운동장은 각종 경기가 열리며 우리나라 체육의 산실이자, 동시에 우리나라 역사가 잠들어 있던 곳이었다.동대문역사관이 상설전시장을 개편해 8월 재개관 했다. ⓒ김창일2007년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며 다량의 유물이 발견됐다. 동대문운동장 터에는 한양의 문화유산인 한양도성 성곽, 조선 전기 관청 및 군사시설, 조선 중기 생산시설, 후기 관청 터, 일제강점기 훈련원 공원의 연못과 산책로 등 근대조경시설이 묻혀 있었다. 또한 조선 태조 및 세종 때 축성된 한양도성과 이간수문, 조선 후기 영조 때 만든 치성의 기초 부가 발굴됐다. 서울시는 발굴된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해 2009년 동대문역사관을 세웠다.동대문역사관은 개관 후 11년 만에 상설전시장을 개편하며 지난 8월11일 재개관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https://yeyak.seoul.go.kr/)을 통한 사전예약 관람제로 운영하고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새로운 모습으로 시민을 맞이하는 동대문역사관 ⓒ김창일역사관 내부는 ▲훈련원과 하도감, ▲도성의 수문, ▲이십세기의 변화, ▲땅속에서 찾은 역사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됐으며, 어린이를 위한 공간에는 유물 발굴과정과 모형, 성벽과 치성, 이간수문의 홍예 구조 등을 알기 쉽게 안내하고 있다.조선시대 기창과 투구 ⓒ김창일동대문운동장 부지는 조선시대 군사들을 훈련시키던 훈련원과 훈련도감 군사들의 주둔지였던 하도감의 자리였다....
조선시대 대학이었던 성균관 명륜당

성균관 명륜당의 봄⋯600년 역사 현장 속으로!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등이 공부한 곳? 까마득한 역사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그 장소가 바로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이다. 몇 해 전에는 ‘성균관 스캔들’이라는 드라마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서울도보 관광코스에도 ‘성균관 유생들의 이야기’ 길이 만들어졌다. 성균관대학교 입구에 자리한 성균관을 찾아 옛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았다. 성균관 유생들의 이야기는 영조가 세운 탕평비 보호를 위해 세운 탕평비각에서 시작된다. ⓒ이선미 성균관대 표지석에 성균관이 문을 연 '1398' 연도가 적혀 있다. ⓒ이선미 조선시대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에는 중요한 두 공간이 있다. 하나는 유교의 공자와 그 제자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고, 또 한 곳이 바로 조선시대 대학 역할을 한 '명륜당'이다. 대성전 앞에는 각각 가지가 세 개, 다섯 개로 갈라진 두 그루 측백나무가 있는데 유교의 중요한 가르침인 삼강과 오륜을 의미한다고 한다. 유교의 공자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휘호는 조선의 명필 석봉 한호의 친필이다. ⓒ이선미 유교가 국가의 근간이었던 조선시대에 공자와 성현을 기리는 제사는 중요한 행사였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석전대제'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도 훼손되지 않고 오늘에 이어진 우리의 전통문화로 1986년에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공자의 나라이자 유학의 본산인 중국에서조차 문화혁명 등을 겪으며 원형을 잃어버려 우리나라 석전대제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졌다. 2019년 춘계 석전대제 장면 ⓒ이선미 매년 봄,가을에 거행되는 석전대제 ⓒ이선미 석전대제는 동북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만 온전히 보존된 문화이다. ⓒ이선미 대성전이 제향의 공간이라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명륜당'은 강학 공간이다. 말하자면 국립대학이었던 성균관의 문턱은 그만큼 높았다. 적어도 소과(생원시, 진사시)에 합격한 유생만이 특별한 혜택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여 학...
명륜당 건물의 현판은 1606년(선조 39년)

성균관과 반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성균관과 반촌 전시실 입구 ⓒ정인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그 마을 주변인 '반촌'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성균관과 반촌'을 지난 11월 8일부터 2020년 3월 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 '반(泮)'이란 글자는 나라의 학교라는 뜻으로, '반궁(泮宮)'은 성균관의 별칭이다. 조선시대의 국립대학인 성균관과 '반촌' 원조 대학가의 18세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로, 그 지역 속에서 성균관 유생과 반인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이야기다. 성균관과 반촌은 현재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다. 태학계첩(1747년 작,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4호) 성균관 조감도​ ⓒ정인선 태학계첩은 성균관 대사성 이정보가 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9명의 참여 유생들과 만든 계첩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계첩 가운데 성균관 유생들의 계첩으로서는 유일한 유물로서 성균관의 건물 구조와 배치 내역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고 조선시대 계첩 제작의 다양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그림 주변에 좀에 의한 훼손이 있으나 장황(粧潢) 형태와 화면 등은 제작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 후기 성균관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오랜 된 그림 '반궁도', '대학성전', '태학계첩', 윤기의 '무명자집', '대사례도' 등 성균관 명륜당의 모습을 전시실에서 생생히 재현했다. 또한 반인의 삶을 담은 영상도 전시된다. 1606년 제작된 명륜당 건물의 현판 (선조 39년) ⓒ정인선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이었던 동시에 유교문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는 성균관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했다. 성균관 유생들의 강학 공간의 중심은 명륜당이며, 역대 왕들은 글과 글씨를 성균관에 내리고 명륜당의 현판에 남김으로써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현재 명륜당에는 40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를 전시실에 그대로 재현했다. 그 중 중앙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현판은 정조가 내린 '어제 태학은...
숭늉

소화제를 겸한 국민 음료 ‘숭늉’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다. 건물마다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 있고, 점심시간이면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커피 한잔 마시려고 길게 줄지어 선 풍경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이제는 커피가 아예 국민 음료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우리 국민 음료는 숭늉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과 중국, 일본 중에서 유독 우리나라만 차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숭늉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차 재배 조건을 비롯해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차가 필요 없을 정도로 숭늉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식후에 커피나 차를 마시거나 디저트로 과일을 먹지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숭늉을 마셔야 식사를 끝낸 것으로 알았다. 숭늉을 마시지 않으면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속이 더부룩하게 느껴져 먹은 음식조차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 한때 한국을 벗어나 외국에 가면 김치와 고추장을 먹지 못해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우리 땅을 떠나 중국과 일본에 간 선비들이 숭늉을 마시지 못해 애먹었다는 기록이 문헌 곳곳에 남아 있다. 숙종 때 사신을 수행해 서장관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김창업이 기행문으로 《연행일기》를 남겼다. 여기에 숭늉을 마시지 못해 고생하다 숭늉 비슷한 물을 마시고는 속이 편해졌다며 기뻐하는 장면이 보인다. 식사는 쌀밥에 나물과 장 종류 몇 그릇이었지만 모두 먹을 만하고 수행원들도 배불리 먹었다. 나는 싸 온 밥이 있었으므로 뜨거운 물을 청하여 말아 먹었다. 승려가 미음 한 그릇을 가져다주었는데 그 맛이 우리 숭늉과 비슷해 마시고 나니 위가 편해지고 좋았다. 숭늉은 한국인에게 소화제나 다름없었다. 정조 때 서유문이 사은사를 수행하는 서장관으로 북경을 다녀온 후에 쓴 《무오연행록》에도 숭늉을 먹고 간신히 소화를 시켰다고 적혀 있다. 밤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호흡을 하지 못할 정도였고 또 등이 결려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지경이 됐기에 급히 주방에다 일러서 메밀로 숭늉을 끓여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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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의 조각천으로 아이 옷을 만든 이유?

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시대 왕실과 사대부들의 대표적인 복식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오늘(24일)부터 29일까지 운현궁 내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조선시대 왕실과 사대부가의 주요 복식을 고증 재현한 이번 전시에는 활옷, 원삼, 당의, 답호, 액주름, 대창의, 사규삼 등이 전시된다. 옷 전체를 빼곡하게 수놓은 활옷과 눈부신 금박이나 보(補)로 장식한 원삼, 당의, 사규삼 등을 통해 조선 복식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으며,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답호, 중치막, 대창의 등 남성 복식에서는 조선시대 선비 정신인 기개와 검약, 단아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어린이용 저고리는 겨드랑이 아래쪽에 정교한 주름을 잡은 액주름이나 색색의 조각천을 연결해 섶과 소매를 장식했는데 이는 당시 복식의 정교함과 섬세함을 보여준다. 자수나 직고, 금박으로 형상화된 다양한 문양은 아름다움을 넘어 여러 가지 길상(吉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 색색의 조각 천을 연결한 저고리 안에는 남은 천을 활용하는 경제적인 지혜와 함께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조선시대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회는 복식에 담겨 있는 선조들의 미적 감감뿐만 아니라 그들의 소망과 염원 및 지혜까지도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자세한 내용은 운현궁 홈페이지(www.unhyeongung.or.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전시 행사 안내  ○ 전 시 명 : 정완진 조선시대 복식전 '교감(交感), 옛 복식과 소통하다.'  ○ 기 간 : 7월 24일(화) ~ 7월 29일(일)  ○ 전시시간 : 09:00 ~ 18:00  ○ 장 소 : 운현궁 내 기획전시실  ○ 관람비용 : 운현궁 관람객은 무료   ※ 찾아오시는 길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       문 의 : 운현궁 관리사무소 02)766-9090                 운현궁 홈페이지 (www.unhyeongung.or.kr) -> Q&A 게시판  문의 :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