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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한끼서울] 맛있‘소’! 입에서 살살 녹는 한우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30) 중구 다동 ‘낙동강’ 넘실대는 그 강을 보면 죽음이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낙동강에 페놀 방류 사건이 일어나고, 부산 사람들은 한동안 수돗물 마시는 것도 꺼려했다. 가끔 서울에서 친척이 내려오면 ‘수돗물 냄새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동네에 흐르는 하천에서는 썩은 내가 나는 것이 당연했다. 때마침 완공된 낙동강 하구둑을 두고 여론이 나뉘었다. 밀물 때는 밀양까지 짠물이 밀고 올라와 김해평야에 댈 물이 없었다는 하구둑 건설 찬성논리와 하구둑 때문에 을숙도 철새 도래지가 파괴되고 갯벌이 사라졌다는 반대논리는 줄이 꼬인 두 개의 연처럼 서로를 엮고 또 엮었지만 어쨌든 지어진 둑을 없애버릴 수는 없었다. 민물과 짠물을 오고가던 물고기들의 길은 이미 막힌 뒤였다. 텔레비전에서는 기자가 강가에 가서 등 굽은 물고기를 들고 오염이 심각하다는 멘트를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약수터에 줄을 서서 물 받는 것도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휴일이면 산 중턱의 약수터에 물통을 줄 세워놓고 배드민턴을 치는 중년 남녀 사이에서 친구들과 돌 위를 건너뛰며 놀았다. 그때부터 ‘먹는 샘물’을 팔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물도 사먹는 시대’가 되었다며 수군거렸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물을 사먹는 시대가 되었다. 하다못해 정수 필터라도 걸러야 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 등 굽은 물고기 이야기는 사라졌지만 매년 여름이 되면 낙동강은 길고 긴 푸른 잔디밭이 된다. 녹조로 뒤덮인 낙동강 위로 물고기는 여전히 떼죽음을 당한다. 나는 그곳을 떠나 서울에 산 지 오래다. 낙동강 물이 아니라 한강 물을 마시며 사투리 대신 표준말을 쓴다. 갈매기는 보이지 않고 매연을 뒤집어 쓴 비둘기뿐이다. 태풍은 이 도시를 비껴나가고 바다는 멀리 있어 공기 중에 짠내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약수터에 올라가 친구들과 뛰어노는 대신 건물과 건물 사이 바람이 세차게 드나드는 골목 어귀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며 하루의 절반을 써버린다. 을지로 다동의 골목에서 ‘낙동...
1967년 창업한 이래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창성옥` 소뼈 선지 해장국

[정동현·한끼서울] 용문시장 해장국집

1967년 창업한 이래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창성옥` 소뼈 선지 해장국 ◈ `창성옥`-지도에서 보기 ◈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9) 용산구 창성옥(서울미래유산) 새해라는 단어가 반갑지 않았다. 어느 동물도 해를 가르지 않고 그저 해의 움직임과 날씨 변화에 따라 삶을 영위할 뿐이다. 어차피 오고 가는 시간, 그 연속적인 흐름을 분절적으로 인식하여 해를 나눈 것은 인간의 자의적인 습관이다. 무엇보다 나이가 든다는 것, 육체가 쇠하고 그에 따라 정신도 기백이 떨어지며 보수적으로 변하는 그 감각이 싫었다. 느끼지 않으려고 해도, 거부하려 해도, 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며, 무엇인가 변해 있기를 바라며 새해를 맞이하지 않는다. 나는 지킬 것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그 지킬 것에 파묻혀 하루하루 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다. 가까스로 부전승 처리를 하며 지낼 뿐이다. 한 때 `부부해장국`으로 운영하다 지금은 옛 이름을 다시 찾았다 새 밑, 재개발이 채 되지 않은 용문전통시장에 가게 된 것은 굳이 해장국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였다. 시장 근처에 들어서자 주차장이 모자란 탓에 좁은 2차선 도로 빽빽이 늘어서 있는 차들이 나타났다. 전통시장 주변에는 차변 주차를 해도 용인이 되는 때가 있다. 전통 시장에 넓은 주차장이 있을 리 만무하고, 사람들은 차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주차난 때문에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장사가 되지 않아 상인들이 민원을 넣으니 일종의 초법적인 구역이 형성된 셈이다. 앞에 마을버스가 한 번 정차 할 때마다 차가 밀렸고 신호가 떨어지면 꼬리를 문 차들이 움직이지 못해 더더욱 교통은 엉망이 되었다. 겨우 차를 세우고 시장 안에 들어서자 차를 대놓은 사람들이 다 여기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막을 쳐놓은 좁은 길 위로 사람들이 어깨를 치며 다녔다. 해장국 위에 신김치가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머리를 자르지 않은 생닭, 각종 전을 부치는 아낙네,...
테헤란로에 위치한 광교옥 곰탕

[정동현·한끼서울] 대치동 곰탕집

테헤란로에 위치한 광교옥 곰탕 ◈ 광교옥 곰탕-지도에서 보기 ◈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8)강남구 광교옥 테헤란로는 황량하다. 신이 쌓아올린 것처럼 거대한 빌딩 사이로는 햇볕조차 들지 않고 음지에 머무는 골목길 위에는 얼음이 쉽게 언다. 꼬리를 물고 도로를 지나는 차들 때문에 늘 신호가 밀리고 그 사이로 사람들은 몸을 비틀어 길을 건넌다. 나는 이곳에 매일 같이 머물며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데 제대된 식당 찾기가 쉽지 않다. 본래 황량했던 이곳이 신화적인 개발을 통해 주목을 받은 것은 실제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이 식사를 하는 것은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무방비 상태가 됨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조건은 장소가 오래 되어 안정감을 주고 또 편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모두 업력이 쌓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손님을 객단가라는 지표로 환산해 이익의 원천으로 여기는 이 시대에 그런 곳을 찾기는 쉽지 않고 테헤란로에서는 더더욱 힘들다. 나 역시 매일 같이 컴퓨터를 바라보며 똑같이 사람을 평가하고 환산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런 내가 바란 것은 크고 원대한 소망이 아니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나의 감각이 느끼는 맛에 대해 생각하며, 그 장소를 기억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그 곳을 찾아 테헤란로 언덕배기를 올랐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영하 10도를 우습게 넘기는 북극 바람을 헤쳤다. 언덕 위로 ‘광교옥’이란 이름이 쓰인 간판이 보였다. 세 음절의 단순한 이름, 하지만 수식이 많지 않은 그 이름에 괜히 마음이 놓였다. 이 식당의 명물처럼 느껴지는 광교옥 간판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북적이는 식당 앞에 줄을 서서, 누군가 내 차례를 뺐지 않을까 의심하고, 또 식사를 하는 사람이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고 미워하며 딱 한 시간 밖에 되지 않는 점심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누구도 의심하고 싶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이른 점심 시간인지라 여유 있는 ...
`진스마라` 마라탕

[정동현·한끼서울] 가로수길 마라탕

`진스마라` 마라탕 ◈ 진스마라-지도에서 보기 ◈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7)강남구 진스마라 신사동 가로수길에 먹을 만한 식당은 없다. 특히 2차선 도로가 뻗어 있는 대로변은 더욱 그렇다. 길가에 음식점과 카페가 가득하고, 어깨가 딱 벌어진 남자들과 맵시를 한껏 뽐내는 여자들이 그곳을 메우던 시절은 갔다. 이제 외국에서 들어온 옷가게와 ‘서울은 쇼핑하기 좋은 도시’라고 말하는 외국인들, 프랜차이즈 화장품 가게들뿐이다. 거리에 인적은 눈에 띄게 줄었고 시간 흐름도 느려졌다. 어떻게든 임대료를 회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게들은 절박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가로수길 임대료가 크게 치솟아 웬만한 식당들이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덕분에 알 만한 사람들은 가로수길에서 먹을 곳을 찾지 않는다. 대신 가로수길에서 일행을 만나 더욱 후미진 곳으로 들어간다. 가로가 아닌 ‘세로수길’이란 별칭을 얻은 좁은 골목 골목에는 맹수를 피해 모여든 초식동물처럼 작은 식당들이 모여들었다. 발렛 기사의 퉁명스러운 말도, 요란스러운 호객도 없는 그 길은 야트막한 산 사이를 흐르는 냇물처럼 가늘고 길며 바르지 않고 조금씩 굽어져 있다. 가게들은 저마다 간판을 달고 있지만 때로 너무 작아 발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두리번거리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기도 한다. 가로수길 진스마라 외관 기록적인 한파를 갱신하던 서울의 겨울날 ‘진스마라’를 지나칠 뻔 했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기억으로는 여러 번 그 앞을 지난 것 같았다. 작은 스마트폰에 의지한 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히 길을 걸었다. 50m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인터넷 지도 위에 우리는 작은 점이 되어 깜빡였다. 그리고 그 점은 진스마라를 표시한 또 다른 점을 지나 있었다. 구로와 건대가 아닌 세로수길에 있는 진스마라는 맵고 뜨겁다는 마라탕면을 파는 곳이다. 가로수길이 뜨던 시절, 마라탕면을 먹으려면 동대문과 동묘 사이 풍물시장이 있는 언저리에 가거나 비행기가 낮게 떠서 나는 가리봉동, ...
홍대 버터밀크 팬케이크

[정동현·한끼서울] 홍대 브런치 팬케이크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6) 마포구 버터밀크 홍대 버터밀크 팬케이크 ◈ 홍대 버터밀크 팬케이크-지도에서 보기 ◈ 한국은 브런치의 무덤이다. 외국에서는 흔해 빠진 브런치 집을 찾으려고 하면 강남까지 찾아들어가야 하는 것은 물론, 밀가루와 달걀 밖에 쓰지 않는 것 같은데도 값이 2만원을 훌쩍 넘긴다. 도대체 이런 걸 왜 찾아 먹어야 하나 회의를 품고 브런치 가게 앞에 서면 1분에 10장 씩 셀카를 찍어대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몇 십분을 기다려 안에 들어가면 사방에 영어를 섞어 쓰며 시끄럽게 떠드는 족속 가운데 앉아 유기농이라고 라벨을 붙인 풀 죽은 푸성귀와 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홀랜데이즈 소스를 찍어 먹게 된다. 그리고 나는 끝없이 오르는 강남 지대와 형편없는 음식에서 만족을 찾는 감식안 없는 사람들에 대해 홀로 분노하고 체념하며 결국 슬퍼한다. 그 형국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브런치를 먹어야 하는 날이 있다. 늦잠, 느즈막한 오후, 향기로운 커피와 달콤한 팬케이크, 뒤이어 찾아오는 나른한 포만감을 대체할 것은 없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간다. 홍대 버터밀크 외관 그 목적지가 홍대 앞이 될 줄은 몰랐다. 대학가는 먹을 것이 없다. 대학생들 지갑 사정은 뻔하고, 그 때문에 싼 값에 음식을 식당만 남는다. 홍대에서 먹을 만한 것은 1만원이 안 되는 일본 라멘 뿐이다. 애초에 한국에서 라멘 붐이 일어났던 곳이 홍대였고 덕분에 지금도 유명한 라멘 집들은 홍대 근처에 다 몰려 있다. 그런데 라멘 말고도 홍대에서 먹을 만한 것이 있다고 했다. 한국 추위는 매일 기록을 갱신했고 지하철 안은 두꺼워진 외투만큼 불쾌해졌다. 이 겨울 날, 외출 할 때마다 약간의 각오가 필요했다. 그 각오 총량이 늘어난 만큼 홍대 거리는 인적이 뜸했다. 점심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이미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홍대 정문에서 소극장 쪽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줄을 선 곳이 있었다. 팬케이크 전문점 ‘버터 밀크’였다. 이 집 유명세는 입소문 범주...
인사동 `조금(鳥金)` 솥밥

[정동현·한끼서울] 관훈동 솥밥집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5) 종로구 ‘조금(鳥金)’ 인사동 `조금(鳥金)` 솥밥 ◈ 관훈동 솥밥집-지도에서 보기 ◈ 눈에 발이 푹푹 빠졌다. 나는 눈밭에서 허우적대는 강아지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가 거추장스러웠다.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밭을 해치고, 추운 바람 속을 가로질러 호텔에 딸린 이발소에 갔다. 손님은 나 홀로였고 이발사도 한 명이었다. 눈에 내리듯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머리가 잘려나갔다. 이발사는 칼잡이처럼 가위질을 하다가 전기면도기를 잡아들었다. 변압기에 코드를 꽂은 모양을 보니 물 건너 온 물건이 확실했다. 그 전기 면도기는 미국산 바이크처럼 둔탁하고 힘 있게 진동했다. “면도기가 어디 꺼죠?” 나는 굳이 그 면도기의 출신을 물었다. “미국산입니다.” “아, 그래요? 보통 일제가 좋지 않나요?” “일제가 좋긴 한데, 미국산이 무게가 무겁고 잘리는 느낌이 다르거든요. 뭐, 겉멋이죠.” 종마의 갈기처럼 머리가 길고 윤기가 흘렀던 이발사는 ‘겉멋’이란 말에 멋쩍은 듯 웃었다. 나는 ‘그 맛에 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따라 웃었다. 여자가 다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면 늘 모르는 친구 집에 놀러온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미용사는 친절했지만 나의 존재는 축구 하프타임처럼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부록 같았다. 이발소는 달랐다. 넓고 편안한 팔받이와 목받침대는 어릴 적 아버지의 품을 닮아 저절로 눈이 감겼고, 무거운 전기면도기가 머리를 스칠 때면 몰래 앉아 타는 폼을 잡던 옆 집 아저씨 오토바이가 떠올랐다. 이발사가 거품을 볼에 묻힌 후 면도날로 구렛나루를 정리해주고 나서야 한 시간 여에 걸친 이발이 끝났다. 고기를 굽는 한 켠 머리를 시원하게 자르고 밖에 나섰다. 바람이 짧아진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시원함을 넘어 상쾌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 길로 인사동에 갔다. 이런 날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끓이고 볶는 번잡함이 싫었다. 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눈발처럼, ...
쫄깃한 찹쌀반죽이 일품인 탕수육

[정동현·한끼서울] 건대 양꼬치와 마파두부

쫄깃한 찹쌀반죽이 일품인 탕수육 ◈ 광진구 매화반점-지도에서 보기 ◈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4) 광진구 매화반점 길거리에 번쩍이는 붉은색은 노골적이었다. 진한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속마음을 감추지 않는 형형한 붉은색이 거리를 가득 채웠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길게 내린 차양처럼 가게 앞을 가릴 듯 크게 달린 간판에는 한글이 드물었다. 옛스러운 한자로 적힌 간판을 읽으려면 오래전 졸며 들었던 한자 수업 시간을 되뇌어야 했다. 지하철 건국대역에서 5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이 별천지는 차이나타운이란 멋드러진 이름을 다시 가졌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양꼬치거리라고 퉁치곤 한다. 언제부터 이곳에 이런 가게들이 모여들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략 2000년대 초반, 중국인 유학생들이 있는 대학가와 집값이 싼 서울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이른바 중국 북동부 지역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중 건대는 상권이 가장 젊고 따라서 역동적이며 번화한 곳 중 하나다. 그리고 그곳 맹주(盟主)는 단연 ‘매화반점’이다. 건대 상권을 이른바 ‘하드캐리’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매화반점은 이 좁은 지역에 점포 3개가 있고 그중 본점은 위풍 당당하게 4층까지 뻗어 올라가 있다. 어디를 가도 같은 맛이 나오지만 그 멋과 맛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아무래도 본점이 좋다. 아무리 자리가 많아도 저녁 7시가 넘으면 반드시 줄을 서게 된다. 매화반점은 건대 차아니타운을 대표하는 식당이다 그러나 꼭 유의할 것이 있다. 하얀 칠판에 이름을 적고 인원수를 적으면, 안경을 쓰고 한 쪽 귀에는 이어폰을 낀 주인장이 순번을 점검한다. 순서가 돌아왔을 때 주인장은 이름을 두 번 부르지 않는다. 단 한 번 호출에 대답이 없으면 아무 미련 없이 이름을 지워버린다. 아, 이 무정한 남자, 그러나 만인에게 평등한 사람아. 그러니 언젠간 순서가 돌아오리란 믿음과 이곳에서 꼭 식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칠판 앞에서 기다리도록 하자. 순서가 돌아와...
강남 상권의 언저리, 기름 냄새로 골목을 뒤덮는 집 `한성돈까스`

[정동현·한끼서울] 잠원동 돈까스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3) 서초구 한성돈까스 강남 상권의 언저리, 기름 냄새로 골목을 뒤덮는 집 `한성돈까스` ◈ 한성돈까스-지도에서 보기 ◈ 강남대로는 마치 강이 바다로 흘러들 듯 경부고속도로와 만나며 사라진다. 그리고 강남 상권 역시 강남대로가 도산대로를 만나며 그 영향력의 종지부를 찍는다. 산에 골짜기가 생기듯 도로와 도로 사이에 상권이 형성 되고 큰 산맥을 만나면 그 골짜기가 끝나는 것과 같다. 강남 상권의 언저리, 사람들이 걷고 걷다가 해장을 하고 택시를 잡아타는 그 나루터 같은 곳에는 여럿 유명한 해장국집과 꽃게장집들이 산재해 있다. 그 골목에만 들어서도 취기가 오르고 어느 집을 들어가든 똑같은 냄새와 똑같은 광경을 볼 수 있다. 취한 사람들, 지옥처럼 펄펄 끓는 해장국, 그 뚝배기를 나르는 종업원들의 찌든 얼굴을 보고 있으면 도시의 맨얼굴이란 바로 이런 것 같다. 밝은 햇빛이 비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그 사이 너머에는 기름 냄새로 골목을 뒤덮는 집이 하나 있다. 이 도시의 옛 이름을 딴 ‘한성돈까스’다. 어릴 적 보았던 간판이 그대로. 이 도시의 옛 이름을 딴 돈까스집 돈까스가 일본 음식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에서 돈까스를 먹어본 많은 사람들은 그 맛이 한국과 많이 다르고, 그 수준 차이 역시 크다고 말한다. 돈까스의 종주국이 일본이니, 그 역사와 시장의 크기가 다르니 자존심 상해할 것은 아니다. 한국에 일식 돈까스가 들어온 것도 실상 얼마 되지 않았다. 특급호텔들을 제외하고 일반 거리에서 일식 돈까스를 먹을 수 있기 시작한 때를 기껏해봐야 1970년대 후반으로 잡으니 채 50년이 되지 않은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를 성형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돼지 등심에 기름기를 떼어내지 않는 반면 한국은 기름기를 다 없애고 튀겨 입에 남는 식감이나 맛에 차이가 생긴다. 일본에서는 기름지고 그만큼 육즙도 많은 반면 한국의 것은 담백하고 또 그만큼 건조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일본과...
양고기를 구워 먹는 일식 `징기스칸 요리` 식당 이치류

[정동현·한끼서울] 여의도 징기스칸 요리

징기스칸은 양고기를 구워먹는 요리법이다 ◈ 이치류-지도에서 보기 ◈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2) 영등포구 이치류 어느 누구도 욕을 먹으며 밥을 먹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맛집에서는 '주인장의 욕'이 도리어 정감 있다는 찬사가 되기도 한다. 식사 사디즘(sadism)이라고 부를만한 이 가학 의식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가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던 농경 문화에서 비롯된다. 이러나 저러나 알만한 사람들이니 욕을 먹어도 그 본 뜻이 그렇지 않음을 알고 이해할 수 있었던 시절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내가 아는 사람은 서울 인구 1,200만명 중에 극히 소수다. 서울에서 사는 것은 매우 불친절한 환경 속에 스스로를 던져 놓는 일이다. 홍콩, 뉴욕보다 더 폭력적인 교통 환경,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다리를 벌리고 지하철을 타는 중년 남자와 아무데서나 통화를 하고 화장을 고치는 젊은 여자, 나를 뒤에서 밀치고 거리를 걷는 또 어떤 남자. 연예인 사생활을 집요하게 뒤쫓는 언론과 작은 휴대폰 창에 고개를 박고 그러한 가십을 24시간 내내 소비하는 사람들. 매 순간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하며 입으로만 정의를 쫓는 비굴함 속에 내가 오직 원하는 것은 친절한 인사와 손길이다. 무엇보다 식사를 할 때, 나는 한 사람으로 대접 받으며 사람다운 식사를 하고 싶다. 성격이 무뚝뚝한 것 뿐이라며 불친절함을 억지로 포장하고,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란 변명을 해대는 곳에 가기 싫다. 대신 나는 친절을 얻기 위해 나는 몇 끼 식사를 싸구려 햄버거로 떼우고 그 값을 모은다. 그렇게 돈을 모아 가끔 호사를 부릴 때가 있다. 특히 고기를 취급하고 다루는 방법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양고기를 찾을 때가 그러하다. 3가지 부위를 선택해 먹어볼 수 있다 양고기를 구워먹는 요리 징기스칸을 먹을 수 있는 이치류에 들어서면 고기집에서는 드물게 손님 옷을 따로 보관하는 서비스가 있다. 옷에 쉽게 냄새가 배는 업종 특성을 감안한 것. 손님 ...
오코노미야키

[정동현‧한끼서울] 인사동 오코노미야키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1) 종로구 와 인사동 일식주점 '와'에서는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봐야 한다 ◈ 인사동 오코노미야키-지도에서 보기 ◈ 밤이고 낮이고 인사동에 있었다. 낮에는 작고한 천상병 시인 부인이 운영하는 찻집 '귀천'에 가서 차를 마시고, 밤이 되면 인사동 어귀 술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인사동 거리를 걷다보면 내가 자주 가는 곳 주인장을 마주칠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나와 상대방은 얼떨결에 인사를 하기도 했다. 옆 객(客)과도 친분이 생겨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많다. “인사동에 사나 봐?” 실상 나는 버스로 30분 걸리는 영등포에 살았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들어차는 인사동이 나는 좋았다. 일주일에 두 세번 꼴로 인사동에 갔다. 너른 중앙대로 옆으로 핏줄이 퍼지듯 깔린 골목길이 좋았다. 골목길을 걷고 또 걸으며 지형을 익혔다. 골목에 깔리는 빛은 사납지 않았고 아늑했다. 사람들은 그 불빛 아래로 모여들었다. 계곡이 있으면 물이 흐르듯, 그 좁은 골목 사이 사이 자연스레 자리한 가게들은 신기한 것들로 가득찬 다락방 같았다. 인사동 골목에 깔리는 빛은 아늑했다 그 중 특히 아꼈던 곳은 막걸리를 파는 흔한 민속주점도 아니고, 방석 위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야 하는 전통 찻집도 아니었다. ‘와(和)’라고 이름 붙인 일본식 주점이었다. ‘에지리상 건강하세요’라는 포스트잇이 붙어있던 그곳은 말 그대로 오사카 출신 에지리씨가 하는 주점이었다. 딸린 직원들도 모두 일본인이었던 그 술집은 주인장 건강 문제로 며칠 씩 쉬기 일쑤였다. 게다가 좌석도 얼마 되지 않고 그마저 금세 차버리는 까닭에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곳을 즐겨 찾았던 가장 큰 이유는 맛과 분위기였다. 아르바이트생이 틀어놓은 댄스음악이 들리는 주점의 산만함도, 만들어놓은 것을 데워 맛도 향기도 빠진 음식도 없었다. 대신 어깨가 둥근 여자들이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어색하지만 친절한 억양으로 주문을 받았다. 오사카 출신 에지리씨가 운영했던 가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