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찹쌀반죽이 일품인 탕수육

[정동현·한끼서울] 건대 양꼬치와 마파두부

쫄깃한 찹쌀반죽이 일품인 탕수육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4) 광진구 매화반점 길거리에 번쩍이는 붉은색은 노골적이었다. 진한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속마음을 감추지 않는 형형한 붉은색이 거리를 가득 채웠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길게 내린 차양처럼 가게 앞을 가릴 듯 크게 달린 간판에는 한글이 드물었다. 옛스러운 한자로 적힌 간판을 읽으려면 오래전 졸며 들었던 한자 수업 시간을 되뇌어야 했다. 지하철 건국대역에서 5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이 별천지는 차이나타운이란 멋드러진 이름을 다시 가졌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양꼬치거리라고 퉁치곤 한다. 언제부터 이곳에 이런 가게들이 모여들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략 2000년대 초반, 중국인 유학생들이 있는 대학가와 집값이 싼 서울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이른바 중국 북동부 지역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중 건대는 상권이 가장 젊고 따라서 역동적이며 번화한 곳 중 하나다. 그리고 그곳 맹주(盟主)는 단연 ‘매화반점’이다. 건대 상권을 이른바 ‘하드캐리’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매화반점은 이 좁은 지역에 점포 3개가 있고 그중 본점은 위풍 당당하게 4층까지 뻗어 올라가 있다. 어디를 가도 같은 맛이 나오지만 그 멋과 맛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아무래도 본점이 좋다. 아무리 자리가 많아도 저녁 7시가 넘으면 반드시 줄을 서게 된다. 매화반점은 건대 차아니타운을 대표하는 식당이다 그러나 꼭 유의할 것이 있다. 하얀 칠판에 이름을 적고 인원수를 적으면, 안경을 쓰고 한 쪽 귀에는 이어폰을 낀 주인장이 순번을 점검한다. 순서가 돌아왔을 때 주인장은 이름을 두 번 부르지 않는다. 단 한 번 호출에 대답이 없으면 아무 미련 없이 이름을 지워버린다. 아, 이 무정한 남자, 그러나 만인에게 평등한 사람아. 그러니 언젠간 순서가 돌아오리란 믿음과 이곳에서 꼭 식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칠판 앞에서 기다리도록 하자. 순서가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몇 페이지나 되는 메뉴판...
강남 상권의 언저리, 기름 냄새로 골목을 뒤덮는 집 `한성돈까스`

[정동현·한끼서울] 잠원동 돈까스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3) 서초구 한성돈까스 강남 상권의 언저리, 기름 냄새로 골목을 뒤덮는 집 `한성돈까스` ◈ 한성돈까스-지도에서 보기 ◈ 강남대로는 마치 강이 바다로 흘러들 듯 경부고속도로와 만나며 사라진다. 그리고 강남 상권 역시 강남대로가 도산대로를 만나며 그 영향력의 종지부를 찍는다. 산에 골짜기가 생기듯 도로와 도로 사이에 상권이 형성 되고 큰 산맥을 만나면 그 골짜기가 끝나는 것과 같다. 강남 상권의 언저리, 사람들이 걷고 걷다가 해장을 하고 택시를 잡아타는 그 나루터 같은 곳에는 여럿 유명한 해장국집과 꽃게장집들이 산재해 있다. 그 골목에만 들어서도 취기가 오르고 어느 집을 들어가든 똑같은 냄새와 똑같은 광경을 볼 수 있다. 취한 사람들, 지옥처럼 펄펄 끓는 해장국, 그 뚝배기를 나르는 종업원들의 찌든 얼굴을 보고 있으면 도시의 맨얼굴이란 바로 이런 것 같다. 밝은 햇빛이 비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그 사이 너머에는 기름 냄새로 골목을 뒤덮는 집이 하나 있다. 이 도시의 옛 이름을 딴 ‘한성돈까스’다. 어릴 적 보았던 간판이 그대로. 이 도시의 옛 이름을 딴 돈까스집 돈까스가 일본 음식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에서 돈까스를 먹어본 많은 사람들은 그 맛이 한국과 많이 다르고, 그 수준 차이 역시 크다고 말한다. 돈까스의 종주국이 일본이니, 그 역사와 시장의 크기가 다르니 자존심 상해할 것은 아니다. 한국에 일식 돈까스가 들어온 것도 실상 얼마 되지 않았다. 특급호텔들을 제외하고 일반 거리에서 일식 돈까스를 먹을 수 있기 시작한 때를 기껏해봐야 1970년대 후반으로 잡으니 채 50년이 되지 않은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를 성형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돼지 등심에 기름기를 떼어내지 않는 반면 한국은 기름기를 다 없애고 튀겨 입에 남는 식감이나 맛에 차이가 생긴다. 일본에서는 기름지고 그만큼 육즙도 많은 반면 한국의 것은 담백하고 또 그만큼 건조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일본과...
양고기를 구워 먹는 일식 `징기스칸 요리` 식당 이치류

[정동현·한끼서울] 여의도 징기스칸 요리

징기스칸은 양고기를 구워먹는 요리법이다 ◈ 이치류-지도에서 보기 ◈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2) 영등포구 이치류 어느 누구도 욕을 먹으며 밥을 먹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맛집에서는 '주인장의 욕'이 도리어 정감 있다는 찬사가 되기도 한다. 식사 사디즘(sadism)이라고 부를만한 이 가학 의식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가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던 농경 문화에서 비롯된다. 이러나 저러나 알만한 사람들이니 욕을 먹어도 그 본 뜻이 그렇지 않음을 알고 이해할 수 있었던 시절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내가 아는 사람은 서울 인구 1,200만명 중에 극히 소수다. 서울에서 사는 것은 매우 불친절한 환경 속에 스스로를 던져 놓는 일이다. 홍콩, 뉴욕보다 더 폭력적인 교통 환경,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다리를 벌리고 지하철을 타는 중년 남자와 아무데서나 통화를 하고 화장을 고치는 젊은 여자, 나를 뒤에서 밀치고 거리를 걷는 또 어떤 남자. 연예인 사생활을 집요하게 뒤쫓는 언론과 작은 휴대폰 창에 고개를 박고 그러한 가십을 24시간 내내 소비하는 사람들. 매 순간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하며 입으로만 정의를 쫓는 비굴함 속에 내가 오직 원하는 것은 친절한 인사와 손길이다. 무엇보다 식사를 할 때, 나는 한 사람으로 대접 받으며 사람다운 식사를 하고 싶다. 성격이 무뚝뚝한 것 뿐이라며 불친절함을 억지로 포장하고,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란 변명을 해대는 곳에 가기 싫다. 대신 나는 친절을 얻기 위해 나는 몇 끼 식사를 싸구려 햄버거로 떼우고 그 값을 모은다. 그렇게 돈을 모아 가끔 호사를 부릴 때가 있다. 특히 고기를 취급하고 다루는 방법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양고기를 찾을 때가 그러하다. 3가지 부위를 선택해 먹어볼 수 있다 양고기를 구워먹는 요리 징기스칸을 먹을 수 있는 이치류에 들어서면 고기집에서는 드물게 손님 옷을 따로 보관하는 서비스가 있다. 옷에 쉽게 냄새가 배는 업종 특성을 감안한 것. 손...
오코노미야키

[정동현‧한끼서울] 인사동 오코노미야키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1) 종로구 와 인사동 일식주점 '와'에서는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봐야 한다 ◈ 인사동 오코노미야키-지도에서 보기 ◈ 밤이고 낮이고 인사동에 있었다. 낮에는 작고한 천상병 시인 부인이 운영하는 찻집 '귀천'에 가서 차를 마시고, 밤이 되면 인사동 어귀 술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인사동 거리를 걷다보면 내가 자주 가는 곳 주인장을 마주칠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나와 상대방은 얼떨결에 인사를 하기도 했다. 옆 객(客)과도 친분이 생겨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많다. “인사동에 사나 봐?” 실상 나는 버스로 30분 걸리는 영등포에 살았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들어차는 인사동이 나는 좋았다. 일주일에 두 세번 꼴로 인사동에 갔다. 너른 중앙대로 옆으로 핏줄이 퍼지듯 깔린 골목길이 좋았다. 골목길을 걷고 또 걸으며 지형을 익혔다. 골목에 깔리는 빛은 사납지 않았고 아늑했다. 사람들은 그 불빛 아래로 모여들었다. 계곡이 있으면 물이 흐르듯, 그 좁은 골목 사이 사이 자연스레 자리한 가게들은 신기한 것들로 가득찬 다락방 같았다. 인사동 골목에 깔리는 빛은 아늑했다 그 중 특히 아꼈던 곳은 막걸리를 파는 흔한 민속주점도 아니고, 방석 위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야 하는 전통 찻집도 아니었다. ‘와(和)’라고 이름 붙인 일본식 주점이었다. ‘에지리상 건강하세요’라는 포스트잇이 붙어있던 그곳은 말 그대로 오사카 출신 에지리씨가 하는 주점이었다. 딸린 직원들도 모두 일본인이었던 그 술집은 주인장 건강 문제로 며칠 씩 쉬기 일쑤였다. 게다가 좌석도 얼마 되지 않고 그마저 금세 차버리는 까닭에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곳을 즐겨 찾았던 가장 큰 이유는 맛과 분위기였다. 아르바이트생이 틀어놓은 댄스음악이 들리는 주점의 산만함도, 만들어놓은 것을 데워 맛도 향기도 빠진 음식도 없었다. 대신 어깨가 둥근 여자들이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어색하지만 친절한 억양으로 주문을 받았다. 오사카 출신 에지리씨가 운영했던 가게 ...
[정동현·한끼서울] 논현동 이북냉면

[정동현·한끼서울] 논현동 이북냉면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0) 강남구 평양면옥 ◈ 이북냉면-지도에서 보기 ◈ 선배는 선글라스를 쓰고 파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파란 하늘이 까만 선글라스 위에 비추었다. 씩 웃는 선배 얼굴을 보며 나는 손을 흔들었다. 편의점에서 산 캔커피를 마시던 선배가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다.” 영상 10도를 하회하는 낮 최고 온도와 선배가 든 캔커피는 썩 잘 어울렸다. 나도 선배를 따라 그 파란 탁자 앞에 앉았다. 찬바람에 몸을 움추렸다. 어떻게 지냈냐 따위의 이야기를 나눴다. 큰 일 없이 별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 하루였다. 근래 벌어진 가장 대단한 일이 바로 오늘 점심 식사일거란 농담을 던졌다. 그쯤 멀리서 중절모를 쓴 남자가 걸어왔다. 며칠 전 지나가는 말로 던진 약속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입에서 김이 나오는 점심 나절, 우리 셋은 논현동 평양면옥으로 들어섰다. 많은 노포(老鋪)들이 그렇듯, 이 집도 가지치기를 하듯 혈연관계에 따라 여러 분점을 거느리고 있다. 본류로 치는 곳은 장충동. 그 곳은 큰아들이 맡고 논현동은 그 어머니가 작은아들과 함께 맡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외 백화점에 들어가 있는 분점도 있다. 창업주가 있고 그 창업주 자식들이 커감에 따라 가게를 하나씩 떼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노포가 분점을 낼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은 창업주 자식 연령대다. 혈연이 아닌 타인에게 가게를 내어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 날은 분명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하얀 머리 할머니가 우리를 방 안쪽으로 안내했다. 누가 작은 아들인지 분간할 이유도, 틈도 없었다. 그저 빨리 따뜻한 방바닥에 엉덩이를 지지고 싶을 따름이었다. 보지 않아도 외울 수 있는 메뉴판을 굳이 다시 한 번 살펴봤다. “일단 소주 하나에 제육 한 접시 주세요.” 내가 메뉴판을 보는 사이 주문이 들어갔다. 날이 차서 맥주는 시키지 않았다. 어차피 할 일 없는 오후, 남들처럼 냉면 한 그릇을 마시듯 먹고 자리에서 일어날 필요도 없었다. 대신 가...
[정동현·한끼서울] 종로구 오뎅 김치찌개

[정동현·한끼서울] 경운동 오뎅 김치찌개

맛있는 한끼, 서울 (19) 종로구 간판없는 김치찌개집 오뎅이 잔뜩 들어가 있는 김치찌개 ◈ 경운동 간판없는 김치찌개집-지도에서 보기 ◈ 난감한 질문이 있다. ‘첫사랑이 누구냐’, 혹은 ‘불을 보면 흥분되느냐’ 같은 것이 아니다. 전자는 ‘유치원 때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릴 수 있고, 후자는 ‘불을 발명한 호모 사피엔스라 불을 보면 당연히 흥분된다’고 둘러댈 수라도 있다. 이미 몇 차례 겪은 일인데도 매 번 난감하다. 이 질문을 받으면 어김없이 먼 산부터 쳐다보게 된다. 산이 없으면 지나가는 사람 뒤통수라도 쳐다본다. 바로 이것이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요?” 그리하여 세상에 널리고 널린 음식들 이름을 하나둘씩 생각해본다. 돈까스, 떡볶이, 튀김, 스시, 감자튀김, 부르기뇽, 봉골레 스파게티… 그 이름은 윤동주 시인이 별 헤는 밤에 불러본 이름처럼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마련이다. 고를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우문이 아닐 수 없다. 무릇 때와 장소란 것이 있고 거기에 맞춰 어울리는 음식이 있다.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기 보다 상황에 맞는 음식이 있을 뿐이다. `간판없는 김치찌개`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10길 23-14(경운동 66-2)에 위치한다 만약 내가 도쿄에 있다면 긴자의 스시집을 찾을 것이고, 그날 밤이면 라멘을 찾을 것이다. 파리에 있다면 당연히 바게트로 아침을 시작해 점심에는 푸아그라를 두부 썰 듯 뭉텅뭉텅 잘라 집어넣은 샐러드를 먹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이다. “가장 애틋한 음식은 무엇인가요?” 마음에 짠하게 남아 이따금 가슴을 울리는 음식,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놓는 음식을 떠올려본다. 그런 음식은 보통 화려하지 않다. 대신 질리도록 먹어서 몸에 인이 박힌 음식이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먹었다. 가장 값이 쌌고 흔했다. 바로 어묵을 넣은 김치찌개다. 부산에서 살던 시절, 어머니는 가...
을지로 영락골뱅이

[정동현·한끼서울] 을지로 골뱅이무침

맛있는 한끼, 서울 (18) 중구 영락골뱅이 을지로 영락골뱅이 ◈ 을지로 영락골뱅이-지도에서 보기 ◈ 밤이 되면 파 써는 소리가 들렸다. 시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늦은 밤이었을까, 아니면 가끔 비가 와서 시장이 쉬는 날이었을까? 아버지 주문이 있었는지, 어머니가 짜놓은 메뉴 중 하나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작은 상에 올라가 있는 골뱅이 무침뿐이다. 그 골뱅이 무침은 간장으로 간이 되어 있었고 큼지막한 골뱅이와 북어채, 파채가 들어가 있었다. 고춧가루를 간간히 뿌린 그 골뱅이 무침에 아버지는 소주잔을 기울였다. 나와 동생은 그 곁에 앉아 골뱅이에 파채를 올려 먹었다. 맵고 알싸했다. 간장과 식초로 버무린 맛은 은근히 입맛을 돋우었고 그러다보면 아버지가 몫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그쯤 어머니가 또 북어채를 덜어와 그 간장에 다시 버무렸다. 바로 먹기에는 심이 살아 있어 입 안이 아팠다. 해결 방법은 골뱅이 국물과 간장이 자박이 고인 그릇 밑에 푹 담궈 먹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도 외진 영도로 온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와야 하는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 때문인지 혹은 원래 아버지 취향 때문인지, 밤마다 그렇게 소주와 골뱅이 무침을 곁들여 먹어야 되는 날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곁들이는 말이 있었다. “니네 엄마가 해주는 게 영락골뱅이랑 맛이 똑같아.” 북어채 등을 취향에 따라 크기를 맞춰 잘라 즉석에서 버무려 먹는다. 양념간장과 마늘, 고춧가루가 버무려진 맛 그 영락골뱅이는 을지로에 있다고 했다. 부산 섬, 영도에서 나는 을지로가 어디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저 서울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소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늦은 밤이 되면 골뱅이 무침 따위를 시켜줬다. 그 골뱅이 무침은 내가 먹던 것과 달랐다. 간장이 아닌 초장 양념이었고 북어채도 없었다. 밤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새벽이 되어 ...
[정동현·한끼서울] 명동 돈까스

[정동현·한끼서울] 명동 돈까스

맛있는 한끼, 서울 (17) 중구 명동돈가스 돈까스 애호가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명동돈가스` ◈ 명동돈가스-지도에서 보기 ◈ 어려서, 돈까스가 좋은 줄 알았다. 보통 어린이는 돈까스를 좋아하니 나도 그런 일반적인 성장 과정을 밟는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서는 제일 싼 단백질 공급원이 돈까스였다. 그래서 돈까스를 먹는다고 여겼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먹었지만 그 정도면 평균에 수렴한다고 여겼다. 군대에서는 어쩔 수 없이 모두가 입맛이 유아적으로 변하는 시기다. 초코파이도 없어서 못 먹는 군인에게 돈까스는 특식의 일부였다. 그래서 나는 돈까스가 메뉴인 날에는 굳이 두 덩이씩 먹었지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돈까스를 좋아해야 하는 것은 군인이 지녀야 하는 의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돈까스를 좋아하지 않는 군인이란 초코파이를 마다하는 것과 비슷한 불경이었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와서도 나의 취향이 바뀌지 않았다. 메뉴에 돈까스가 적혀 있으면 시키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명동에 가면 나는 ‘김유신의 백마’로 변했다. 이번에는 가지 말아야지라고 여러 번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나는 바람이 불면 날갯짓을 하는 새처럼, 지평선이 보이면 달리는 말처럼, 수학 문제가 보이면 풀고 마는 천재처럼 ‘명동돈가스’라는 간판이 보이면 그 문을 열고 만다. 명동돈가가 최근 내부공사를 마치고 재개장했다 명돈돈가스가 영업을 시작한 것은 1981년, 그 후로 서호돈까스와 함께 명동을 호랑이와 사자처럼 이분했던 것이 수십 년이었다. 서호돈까스 주인장이 이민을 갔다는 풍문이 들려오며 문을 닫은 후 돈까스 세계 유일 강자는 명돈돈가스로 정해진 것이 당연한 순리였다. 그러나 명동돈가스가 문을 닫고 리뉴얼에 들어간 것이 2년 전이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다. 어차피 리뉴얼이라는 것이 몇 개월이면 마무리 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명돈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다시 여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었다. 나는 문이 닫힌 명동돈가스 앞을 지날 때마...
[정동현·한끼서울] 염창동 닭볶음탕

[정동현·한끼서울] 염창동 닭볶음탕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16) 강서구 유림 유림 닭볶음탕. 가양동 유림으로 유명하나 실제 소재지는 염창동이다 ◈ 강서구 유림-지도에서 보기 ◈ 일과를 마치고 코를 풀면 검댕이 나왔다. 지금은 미세먼지 타령을 해대지만 그때는 ‘먼지’로 퉁 치던 시절이었다. 창고에 틀어박혀 박스를 정리하다보면 먼지가 뿌옇게 날렸고 탄광 속 광부처럼 그 속을 헤맸다. 마스크를 쓰는 것도 한두 번, 땀이 흘러 눈이 따가워지고 입이 답답해지면 마스크를 던져버리고 빨간 고무가 붙은 면장갑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가양동 대형마트에서 나는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아침이면 남들이 퇴근하는 길로 출근했고 밤이면 그 반대였다. 근무조는 두 개로 아침부터 저녁, 점심부터 자정까지로 나뉘었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는 경우는 하루에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현장 근무가 원칙.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가야 했다. 자정이 되어 마트 문이 닫히면 버스 막차를 타기 위해 뜀박질을 했고 그마저도 놓치고 나면 같은 방향으로 가는 동료 차를 얻어 탔다. 회식은 자정부터, 새벽 무렵 술자리가 끝나면 아침조 사람들은 몇 시간 쪽잠을 자다 다시 마트로 나왔다. 한 달에 한 번씩 운동화가 뜯어졌고 먼지 때문인지 귀가 아파 계속 병원에 다녔다. 방도 여럿 있어 여럿이 방문하면 오붓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래도 몸을 쓰는 일이 좋았다. 명절이면 마트 뒤쪽에 한복을 입고 앉아 담배를 나눠 피우던 어린 여자애들과 나이든 아주머니들, 용돈벌이가 목적이라며 세단을 몰고 출퇴근을 하던 캐셔 아주머니와 고구마 몇 개를 훔치다 마트를 나가야 했던 또 다른 아주머니, 휴학을 하고 등록금을 벌던 남자애와 갓 취업한 나, 마트를 드나들던 수십 개 업체 영업사원과 트럭 기사들, 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부대끼던 그곳이 나는 싫지 않았다. 그 마트 옆, 가양빗물펌프장이 있는 그곳에서 그 시절 자주 회식을 했다. 몸을 써서일까, 가볍게 먹어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영화에 나오는 불...
[정동현·한끼서울] 홍대 와우산 해물파전

[정동현·한끼서울] 홍대 와우산 해물파전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⑮ 마포구 미로식당 미로식당에서 첫 손에 꼽는 추천 메뉴는 해물파전이다 ◈ 홍대 와우산 해물파전-지도에서 보기 ◈ 갈매기 떼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상갓집에 온 것 같기도 했다. 20대 후반 창창한 젊은이들이 한결같이 음울한 옷을 차려 입고 일렬로 앉았다. 그 앞에는 나이 든 남자와 여자가 중후한 옷을 입고 내려온 안경을 바로 잡고, 볼펜을 돌리며 그들을 쳐다봤다. 마치 시장에 나온 물건이 흠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모양새였다. 그 중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고집이 세 보이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을 받은 이는 나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참 회사 면접을 보러 다니던 때였다. 질문을 받고 찰나였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상이 고집 세 보이나? 만약 인상이 그렇다면 어떤 요소 때문인가? 째진 눈? 꽉 닫힌 안중? 까만 피부? 아니면 그 전 답변 중에 고집 세 보일만한 것이 있었나? 첫번째? 두번째? 그리고 고집 세 보인다는 것은 긍정적인 것일까? 부정적인 것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꽤 자주 고집 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이 이런 자리에서 들통 날 줄은 몰랐다. 그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나는 머리를 굴려 아마 이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고집이 셀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고집이 센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고집 그 자체는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지 않을까요?” 홍익대학교 뒤편 와우산자락으로 이전한 미로식당 결과는 내 기대와 달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고집 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성격은 결과에 따라 해석된다. 즉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고집이 아니라 신조가 있다, 추진력이 강하다, 지조가 있다고 해석이 되고 만약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안하무인, 똥고집, 아집 등 다른 말로 불리기 일쑤다.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