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서촌 이탈리안 파스타

[정동현·한끼서울] 서촌 이탈리안 파스타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⑪ 종로구 갈리나데이지 다양한 풍미의 파스타를 맛보는 갈리나데이지 시그니처 파스타 ◈ 갈리나데이지-지도에서 보기 ◈ 통인시장에 기름 떡볶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촌에 해물라면에 소주를 파는 계단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왕산 아랫자락은 층수가 높지 않은 건물이 대부분이고,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가늘고 넓게 깔려 있다. 그 가운데는 몇몇 유명하고 저렴한 곳들 외에도 작게 빛나는 집이 있다. 본래 양반들이 모여 살았다는 서촌 터줏대감 격인 삼계탕집 토속촌을 지나 조금 더 올라오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중 하나인 추어탕집 용금옥이 있고, 그 다음 마주하는 골목에서 좌편으로 방향을 바꾸면 낮게 달린 간판 하나가 있다. 식당 이름은 ‘갈리나데이지’. 암탉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갈리나’에, 셰프 예명을 붙여 지었다. 이름처럼 이곳을 책임지는 셰프는 여자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간판을 지나면 작은 정원과 나무 벤치가 있다. 비밀의 화원을 지나듯 타임과 같은 허브가 자라는 정원을 지나 나무문을 열면 작은 홀이 펼쳐진다. 반기는 것은 하얀 셔츠에 키가 훤칠한 직원들과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꽃이다. 갈리나는 이탈리어로 `암탉`, 데이지는 셰프 예명이다. 잰 걸음으로 걷는 직원들 모습을 보면 몇 가지를 예측할 수 있다. 우선 맛이 수준 이하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사 시간이 불쾌해지는 일은 드물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갖춘 곳은 인구 천만 명이 모여 산다는 서울에서조차 꽤 드물다. 인력 운영 면에서 최저 임금이 낮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혹은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급료를 많이 쳐줄 수도, 식재료 원가를 높게 쓸 수도 없어 자연히 서비스와 음식 질이 떨어지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아니면 오로지 싼 식사만을 원하는 일반 대중 때문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일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우리 모두의 수준이 낮기 때문으로 귀결해본다. 갈리나데이지 시저샐...
[정동현·한끼서울] 양평동 된장찌개

[정동현·한끼서울] 양평동 된장찌개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⑩ 영등포구 또순이네 서울에서 된장찌개로 유명한 ‘또순이네’ 집에는 나와 된장찌개, 고양이만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하며 '자소서'를 쓰던 대학교 4학년 가을학기는 수업도 별로 없었다. 대신 나 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노트북 컴퓨터 한 대를 등산 배낭 같이 큰 가방-실제 등산 배낭이었는지도 모른다-에 넣고 늦게 학교로 출발하는 나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아르바이트는 경제 현실을 체험하고자 한 경영학도의 현장 실습으로 탈바꿈 했고, 우연히 참가한 봉사활동은 나의 희생정신과 높은 도덕률을 증명하는 기록이 되었다. 설익은 자괴감은 인터넷 사이트 위에 찍힌 ‘합격’과 ‘불합격’ 표시가 반복됨에 따라 희미해졌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심정으로 나의 사소한 과거 하나 하나에 의미부여를 했다. 아르바이트도 끊고 이름만 지우면 위인전 같은 ‘자소설’을 쓰며 이력서를 고치고 또 고쳤다. 한 번 매식(買食)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된장찌개 뚝배기로 이른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속편했다. 어머니가 끓여놓은 된장찌개에 들은 내용물들, 감자, 양파, 파 등속은 모두 잘게 잘려 있었다. 출근길에 된장찌개를 끓이느라 1분이라도 빨리 익히기 위한 어머니 노하우였다. 그 된장찌개를 다시 끓이며 나는 계란프라이 두개를 부쳐 단백질을 보충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만 더해지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야말로 밥 먹듯 된장찌개를 먹었다. 외관은 대중식당이지만 그 맛은 유일무이하다. ‘또순이네’만의 깊은 맛을 가진 된장찌개를 내놓는다. 그러나 이때만큼 된장찌개 맛이 다르게 느껴진 때는 없었다. 된장과 감자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달달하면서도 짙은 흙 맛, 그 위에 올라탄 양파와 호박의 단맛과 청양고추 매운맛, 화장을 하듯 초록 기운을 품은 파가 녹아들어간 된장찌개. 보온밥솥에서 푼 밥에 비벼가며 하루를 시작하던 20대 후반이었다. 아무 것도 쌓인 것 없는 과거 위에 서서 뚜렷하게 아...
[정동현·한끼서울] 공평동 꼼장어 구이

[정동현·한끼서울] 공평동 꼼장어 구이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⑨ 종로구 공평동꼼장어 숯불에 초벌구이 해서 나오는 공평동꼼장어 중간이 없는 나라다. 뭐든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전국에 폭염 경보가 떨어진 날, 멈출 줄 모르는 태양의 기세는 땅을 뜨겁게 달궜다.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은 본인 인격이란 가변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날 불판 앞에 앉겠다는 생각은 자학과 극기 둘 중 하나에 속한다. 하지만 뜨거운 날씨보다 더 필요했던 것은 뜨겁고 매콤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입 속에서 꿈틀댄다면 더욱 좋았다. 그리고 독주 한 잔을 목구멍으로 넘긴다면 더위 따위, 소리 한 번 크게 내지르면 끝나고 말 것 같았다. 종로로 향했다. 이제는 사라진 지번 주소인 공평동에 음식명이 붙으면 이곳 이름이 완성된다. ‘공평동 꼼장어’다. 오피스 빌딩들이 줄을 선 이 곳에 바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다. 날이 선선해지면 백이면 백 줄을 서야 간신히 드럼통 앞 낮은 의자에 엉덩이를 뉘일 수 있다. 그러나 날은 삼복더위, 숯불 앞에 앉아서 꼼장어를 굽겠다는 기백을 가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섰다. 여름에도 줄이 서 있는 공평동꼼장어 그 계산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퇴근 하자마자 간 ‘공평동 꼼장어’에는 우리를 위한 단 하나 자리가 있었다. 우리 뒤로 온 사람들은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듯한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줄을 서야 했다. 사실 이 집에서 꼼장어를 굽는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모두 다 구워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메뉴는 안쪽 주방에서 계량이 되어 식당 밖으로 향한다. 그곳에 이 생물을 굽는 사내들이 있다. 얼굴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고 온 몸에서는 땀이 흘렀다. 이 식당 성공 비결이란 이 사내들 땀에서 비롯된다. 저 메뉴들을 일일이 불판 앞에서 굽다보면 시간은 오래 걸리고 수고는 수고대로 들기 마련이다. 술잔을 앞에 두고 하염없이 집게를 들고 꼼장어를 뒤척이는 것도 일, 게다가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앉아서 기다리면 다 익은 ...
[카드뉴스]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카드뉴스]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오늘은 뭘 먹을까?” 정동현·한끼서울 * 서울시 시민소통 웹진 에서 대중식당애호가 정동현의 ‘맛있는 한끼, 서울’이 매주 월요일 연재되고 있습니다. # 1 화목순대국 “사위에 장벽처럼 널린 빌딩, 그 사이에 초풀처럼 자라난 식당들, 긴 밤을 보내고 이글거리는 속과 지끈거리는 머리를 얻은 사람들은 상처를 다스리려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 2 화목순대국 “밥을 토렴해서 나오는 이 집 순대국밥은 작은 양철 접시에 담겨 나온다. 부글부글 끓는 뚝배기 위로 코를 내밀면 특유의 돼지 내장 냄새가 난다” ■ 위치: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5일 11 전화: 02-723-8313 예산: 모듬(머리고기 한 접시+순대국) 22,000원 # 3 산불등심 “사람들은 피서철 영동고속도로를 가득 채우듯, 불만을 터뜨리면서 어김없이 점심시간이 되면 줄을 서고 어깨를 부딪혀가며 된장찌개 한 그릇을 기다린다. 이유는 사람들이 영동 고속도로를 타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 길로 가야 강원도가 나오듯, 산불등심에 가야만 장안에서 손꼽히는 된장찌개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 4 산불등심 “붉은 기가 도는 된징찌개를 하얀 밥 위에 올리고 잘 비벼서 입에 넣은 뒤, 무를 듯 말 듯 속 심이 살아 있는 시큼한 열무김치를 한 입 베어물면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구나’ 싶은 것이다” ■ 위치: 서울시 중구 을지로3길 30 전화: 02-754-7584 예산: 된장찌개 10,000원 # 5 소문난 성수 감자탕 “가죽공방과 구두공방, 차수리소가 군락을 이룬 성수동에 사람 팔뚝만한 돼지 등뼈와 야구공만한 감자,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넣은 것 같은 시래기를 끓인 감자탕집은 홍콩 누아르 영화 속 도박장 만큼이나 필수불가결한 요소 같다” # 6 소문난 성수 감자탕 “돼지 등뼈에는 살이 넉넉하다 못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붙어 있다. 등뼈 사이에 붙은 살을 발라 먹다가 빈정 상할 일은 없다. ‘이것이 섬유질이다’라는 기세로 우적거리면...
[정동현·한끼서울] 모래내시장 갈치속젓과 청국장

[정동현·한끼서울] 모래내시장 갈치속젓과 청국장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⑧ 서대문구 전라도 식이네집 김치, 간장, 고추장, 된장을 직접 만들어 쓴다는 모래내시장 `전라도 식이네집` 자리에 앉자마자 큰 소리를 들었다. “저기 앉지 말라고. 복잡해서 안 된다니까!” 다행히 우리를 향한 소리가 아니었다. 우리 다음에 들어온 중년 남자 일행에게 날아온 불호령이었다. 우리가 둘, 저쪽이 넷이었다. 간발의 차로 우리가 자리 잡은 테이블은 홀 중앙이었고 남자들은 우리를 피해 머뭇머뭇 거리다 문 옆 테이블에 앉으려던 찰나였다. 홀 중앙에 앉아있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그 소리 원천이었다. 문 옆이라 오고 가기 복잡하다는 고함이 뒤따랐다. “아참, 이제 욕쟁이 할머니라고 불러야겠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가 자리를 옮기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할머니가 그대로 받아쳤다. “그래. 욕쟁이 할머니라고 불러.” 그 목소리에는 화가 없었다. 대신 속을 감추지 못하는 솔직함이 있었다. 그 남자들은 의자가 없는 상에 앉았다. 그네들이 말하는 소리가 우리 테이블까지 들렸다. “내가 이번 주에만 이 집을 네 번째 오는 건데 말이지 아주 좋아.” 전라도 식이네집 청국장 그 남자가 일주일에 네 번이나 찾은 그 집은 남가좌동 모래내 시장 초입에 있는 ‘전라도 식이네집’이다. 메뉴를 보면 딱히 전문으로 하는 음식은 없어 보인다. 가짓수가 많아서다. 홍어를 시작으로 오리로스, 오리훈제, 닭도리탕, 추어탕, 묵은지고등어조림, 갈치조림, 청국장, 김치찌개, 삼겹살 등등 하지 않는 음식을 찾는 것이 빠를 것 같다. 대충 보면 이북 음식을 제외한 일반 대중 음식 일체를 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경험 상 헤매기 쉬운 메뉴판 앞에서는 ‘다음에 또 오면 된다’는 식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런 곳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머뭇거리다가는 본의 아니게 핀잔을 듣기 쉽다. “삼겹살하고 고등어조림 주세요.” 나의 빠른 주문에 할머니는 “그래, 다 해줄게”라며 말을 받았다. 장난스럽게 둥글둥글...
[정동현·한끼서울] 왕십리 등심구이와 깍두기볶음밥

[정동현·한끼서울] 왕십리 등심구이와 깍두기볶음밥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⑦ 성동구 대도식당 왕십리본점 왕십리 대도식당 등심구이 낮은 기와집 몇 채가 붙어 있다. 사람들은 박람회에 온 듯 줄을 서서 이 기와집에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서면 연기가 뿌옇다. 입구 한 켠에는 유리 벽 뒤로 한 무리의 남자가 하얀 옷을 입고 고기를 썰고 있다. 그 앞으로는 문이 없는 방과 여러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 안에 사람이 또 가득이다. 종업원들은 스테인리스 쟁반에 빨간 고기를 깔고 방 사이를 잰 걸음으로 오고 간다. 방에 앉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잰 척 하는 이가 하나 없다. 다들 폼이 느슨하고 표정이 밝으며 말과 웃음소리가 크다. 일하는 종업원들도 손이 크고 빠르다. 이곳에 오면 옛날 산도적이라도 된 것 같다. 고기를 더 내놓아라. 술도 더 달라. 있는 것 모두 다 가지고 와라. 그렇게 큰 소리 치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놀고 웃고 싶다. 왕십리 대도식당에 오면 그렇다. 대도식당은 1964년 왕십리에 문을 열었다. 역사를 따지자면 한 할머니로부터 시작한다. 할머니는 옛 조선왕실 상궁으로부터 음식 솜씨를 전수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대도식당 음식 차림을 보면 할머니가 비법을 전수받았던, 아니면 본래 음식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간에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나오는 찬은 단촐함을 넘어 심플하다. 깍두기와 양배추, 파채, 고추장과 기름장이 전부다. 고급스런 고기집에 가면 으레 딸려 나오는 숯불도 아니다. 묵직한 주물팬이 화력 좋은 업장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가 있을 뿐이다. 파채 버무리와 양배추는 대도식당 특유의 맛 비결 메뉴를 보면 또 어찌나 간단한지 고기 메뉴는 등심 하나 뿐이다. 식사는 된장죽과 깍두기볶음밥 두 종류. 여느 고기집에서처럼 따로 국이나 찌개를 내어주지 않는다. 육회와 같은 사이드 메뉴도 없다. 오로지 등심, 오로지 식사 두 종류로 땡이다. 하긴 소고기를 부위 별로 골라 먹는 것도 알고보면 최근이다. 그전에는 부위 가릴 것...
[정동현·한끼서울] 성수동 감자탕

[정동현·한끼서울] 성수동 감자탕

소문난 성수 감자탕(이 사진은 가스불을 사용했을 때 촬영한 것. 지금은 인덕션으로 바뀌었음)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⑥ 성동구 소문난 성수 감자탕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듯 낮은 공장 건물이 넓게 깔린 성수동에 감자탕 집이란 당연한 것이다. 가죽을 오리고 이어붙이는 가죽공방과 사람 발 모양에 따라 신을 짜고 징을 박는 구두 공방, 그리고 톤(ton)에 가까운 차를 들어올려 하부를 뜯고 전기 배선을 이어 붙이는 차 수리소가 군락을 이룬 성수동에 사람 팔뚝만한 돼지 등뼈와 야구공만한 감자, 그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넣은 것 같은 시래기를 끓인 감자탕집은 홍콩 누아르 영화 속 도박장 만큼이나 필수불가결한 요소 같다. 성수역 1번 출구를 나와 햇볕 한 점 가릴 곳 없는 황량한 공단 거리를 조금만 걸으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는 집 하나가 나온다. 본래 유명했으나 방송에 나오며 아예 불이 난 듯 사람들이 몰리는 ’소문난 성수 감자탕’이다. 줄을 서지 않으려면 점심시간 보다 살짝 일찍 가는 것이 좋은 선택. 공부를 잘 하려면 예습·복습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조언처럼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전쟁터 같은 점심시간을 겪어 보고 나면 이는 무심히 더하는 말참견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언임을 알 수 있다. 이 집 점심시간은 호떡집에 불난 규모가 아니다. 외관이 흔히 연상되는 노포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소문날 만한` 맛을 경험하게 한다 1983년에 문을 연 이 집 메뉴가 감자탕인 것을 잊지 말자. 냉면집처럼 손에 쥐기 쉬운 차가운 그릇을 옮기는 것이 아니다. 국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돼지 통뼈가 든 벌건 탕을 쟁반에 이고 지고 테이블 사이를 움직이는 식모들을 보면 이곳은 ‘먹고사니즘’의 철학적 현장이 아니라 먹고 먹히는 전쟁터 한 가운데라는 사실이 몸으로 다가온다. 땀을 흘리고 근육을 쓰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백질과 탄수화물, 그 모두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감자탕 식사 한 끼는 7000원, 만약 혼밥을 한다면 이보다 나은 선택이 ...
[정동현·한끼서울] 다동 소고기 된장찌개

[정동현·한끼서울] 다동 소고기 된장찌개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④ 중구 산불등심 산불등심 소고기 된장찌개. 한결같이 나오는 반찬 고등어조림과 달걀찜, 물김치 반찬도 유명하다 ‘산불등심’은 악명이 자자한 식당이다. 비싼 된장찌개와 더더욱 비싼 등심에 점심시간이 되면 모르는 사람과 비좁은 테이블을 나눠 써야 한다는 불평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피서철 영동고속도로를 가득 채우듯, 불만을 터뜨리면서 어김없이 점심시간이 되면 줄을 서고 어깨를 부딪혀가며 된장찌개 한 그릇을 기다린다. 이유는 사람들이 영동 고속도로를 타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 길로 가야 강원도가 나오듯, 산불등심에 가야만 장안에서 손꼽히는 된장찌개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점심시간이 아니어도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다. 퇴근 후 약속은 뭔가 기진맥진한 느낌이 든다. 주중이면 더욱 그렇다. 눈치를 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시내를 나오는 동시에 시계를 본다. 내일은 일찌감치 찾아와 있고 오늘은 이미 끝나가고 있다. “된장찌개 먹을까?” 이 한 마디에 대한 답으로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다동에서 산불등심을 찾는 것은 쉽고도 어렵다. 아마 매일 같이 찾는 사람이면 근처에 가서도 된장 냄새를 맡을 것이요, 초행길인 사람들은 두 명이 지나갈 만 한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음식점들 사이에서 노란색 간판을 살펴야 할 것이다. 식당이름과 관련이 있는 메뉴 `등심구이` 사람들이 점심에 그토록 열광하던 산불등심도 저녁 무렵이면 사람이 많지 않아 한산했다. 점심에 찾은 곳은 다시 찾지 않는 직장인의 생리일지도 모른다. 벽과 구별되지 않는 문을 열면 눈에 띄는 것이 좁다란 실내와 끝에 붙은 방. 그 방에 앉아 모임을 하고 있던 한 무리 중년 여성들은 점심과 커피 한 잔을 한 시간 안에 해치울 것 같지는 않았다. “편한 데 앉으세요.” 아마 다른 때라면 듣지 못할 말이었다. 텅 빈 실내에 우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널려 있었다. 어두운 시멘트 바닥 한 편에 있는 나무 테이블이 좋아 보였다. 끝이 닳아 둥글둥...
[정동현·한끼서울] 마포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정동현·한끼서울] 마포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맛있는 한끼, 서울 ③ 마포구 굴다리식당 세계 3대 어쩌구 하는 말이 나오면 일단 웃음이 나온다. 세계 3대 불가사의로 시작해 세계 3대 수프, 세계 3대 진미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3대 시리즈는 사실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다. 줄 세우기 좋아하는 것은 그쪽이나 이쪽이나 매 한 가지. 게다가 딱 세 개만 외우면 되니 간편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욕을 하지만 ‘다이제스트’ 풍으로 만든 잡학 사전류 3대 시리즈는 재미나다. 3등 안에 들면 상을 주듯, 순위 놀음 하는 재미는 끊을 수가 없다. 먹을 것 가지고 3대를 꼽는 것은 아예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 생겨버렸다. 사실 그 방송을 쫓아 다니지는 않는다. 음식과 취향을 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김치찌개만은 예외다. 어릴 적 가벼운 주머니를 차고 남들이 3대 운운하는 집들을 찾아다닌 경험이 있는 탓에 김치찌개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3대 김치찌개 집이 있는데 말이야”라고 운을 띄운다. 논란 여지는 분명히 있지만 그 3대 안에 마포 ‘굴다리 식당’이 들어갈 자리는 꽤 넉넉해 보인다. 그날 밤 갑자기 굴다리 식당 생각이 난 것은 저녁 무렵 선선한 바람 때문인지 모른다. 혹은 오후에 내린 가랑비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둘은 갑자기 식욕이 동했다. “굴다리 식당 갈까?” 나의 제안이 속전속결로 통과됐다. 축축한 밤길을 달렸다. 마포 구석 도로변에 있는 굴다리 식당에 도착했을 때 식당 안은 테이블 위에 소주병을 쌓아올린 사람들이 한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자리는 그들 옆 작은 테이블이었다. “뭐 먹을래?”라는 질문은 형식적이었다. 어차피 시킬 메뉴도 몇 되지 않았다. 김치찌개 전문이니 김치찌개는 기본, 제육볶음도 아니 먹을 수 없었다. 나는 익숙한 척 “찌개 하나, 제육 하나 주세요.”라고 손을 들고 말했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은 쟁반을 든 아주머니가 홀을 왔다 갔다 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나오는데, ...
[정동현·한끼서울] 광화문 순대국과 머리고기

[정동현·한끼서울] 광화문 순대국과 머리고기

맛있는 한끼, 서울 ② 종로구 화목순대국 광화문 분점 누군가는 그랬다. 광화문에 화목순대국 분점이 생긴 것은 이곳 직장인들에게는 축복이라고. 사위에 장벽처럼 널린 빌딩, 그 사이에 초풀처럼 자라난 식당들은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들의 안식처다. 사람들은 작은 짐승이 풀숲 사이에 웅크리듯 저마다 안식처를 찾아 나선다. 긴 밤을 보내고 이글거리는 속과 지끈거리는 머리를 얻은 사람들은 상처를 다스리려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광화문에 산재한 해장국집이 여럿, 하지만 그 중에서 단연 손꼽히는 곳은 바로 화목순대국이다. 여의도 본점 역시 유명한 것은 마찬가지. 무엇보다 좁은 실내를 최대한 활용하려 주방을 다락방으로 올린 구조는 가히 문화재급이다. 광화문 분점은 하나의 식당을 복도를 사이에 두고 두 개로 나눈 여의도에 비하면 훨씬 크고 쾌적하다. 크다고 해봤자 단층에 30여 석 되는 공간이 전부지만 말이다. 본점은 밤 10시까지 영업인 반면에 분점은 일요일 밤 9시부터 월요일 오전 9시, 그리고 평일 오후 3시에서 5시 브레이크 타임을 빼놓고는 24시간 영업이라 시간에 쫓겨 방문할 필요도 없다. “순대 국밥 먹자.” 이 말이 나오면 주저 하지 않고 언제든 찾아가도 된다는 말이다. 화목순대국을 찾은 것이 몇 번인지 헤아릴 수는 없다. 비가 와도, 날이 추워도, 늦은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불을 밝힌 이 곳 문을 열었다. 밖으로 선 줄에 ‘아니 순대국집에 웬 줄?’이라며 놀라는 것은 초행객 티를 내는 것. 그러나 그 안을 차지한 손님의 90% 이상이 남자인 것은 매번 새삼스럽다. 광화문에 서식 중인 모든 남자들이 다 이곳에 모여 있는 듯한 풍경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재질의 벽, 낮은 천장에 ‘국밥 한그릇 말아먹어야’ 하는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또 다른 숙명 같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순대국밥 하나만 먹고 간 것은 언제인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의 무조건 시키는 메뉴는 모둠(2만2000원)이다. 모둠을 시키면 순대와 머리 고기 한 접시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