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를 맞아 10월 27일~31일까지 동아시아 민중연극제가 열린다, 사진은 태국 극단의 작품

전태일 50주기 맞아 민중연극제 개최…100% 사전예약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10월 27일~31일 민중연극제가 열린다, 사진은 태국 극단의 작품 국내 공연은 100% 사전예약 후 관람가능, 해외 공연은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동아시아 4개국 젊은 연극인들이 ‘노동’, ‘인권’, ‘생명’, ‘평화’를 주제로 12편의 연극공연을 선보인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은 10월 27일~31일까지 5일간 한국, 태국 등 4개국 12개 극단(국내 8, 해외 4)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민중연극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국내극단은 서울혁신파크에서 100% 사전예약제로 공연을 진행하고, 해외극단공연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된다. 이번 ‘동아시아 민중연극제’는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아시아의 젊은 연극인들이 노동과 인권의 가치를 함께 짚어보고 각국의 현실을 성찰하는 자리로, 다양한 주제와 표현방식으로 관람객을 만나게 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 맞이 동아시아 민중연극제 포스터 특히 이번 연극제는 참여 작품을 연극에만 국한하지 않고 악극, 시낭송, 전위예술, 댄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동아시아 민중연극제’ 관련 자세한 일정은 유튜브 ‘동아시아민중연극제’에서 확인 가능하며, 국내 공연 관람을 원할 경우에는 전화 010-9926-7404로 사전 예약하면 된다. 모든 공연은 유튜브 ‘동아시아민중연극제’채널에서 실시간 관람이 가능하다. ■ 동아시아민중연극제 안내 페이지 바로가기 ☞ 클릭 ○ 일시 : 10월 27일(화) ~ 31일(토) 매일 18시 ○ 장소 : 서울혁신파크 및 '아시아극장' 유튜브 채널 생중계 - 생중계 : https://youtu.be/MnB-L6jgDI4 ○ 사전예약 및 문의 : 010-9926-7404 ▶ ‘내 손안에 서울’ 앱으로 받아보기 ▶ '코로나19 서울생활정보' 한눈에 보기 ▶ 내게 맞는 '코로나19 경제지원정책' 찾아보기 ...
전태일 50주기 추모의 달 선포식 안내화면 ⓒ서울시

전태일 50주기 문화제 시작, 내달 13일까지

전태일 50주기 추모의 달 선포식 안내화면 ⓒ서울시 학창시절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관련한 수업을 할 때면 항상 등장하는 청년이 있었다. 바로 스물셋 젊은 나이에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치고 분신한 노동운동가 전태일이다. 지난 14일 오전 11시, 청계천 평화시장 전태일다리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 추모의 달 선포식이 열렸다. 이날 선포식에는 우리나라 노동자 관련 단체 대표들과 아르바이트 학원 강사, 청년 아르바이트생 등 노동자 6인이 내빈으로 참석했다. 선포식이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된 덕에 필자는 스마트폰으로 선포식을 관람할 수 있었다. 전태일 50주기 추모의 달 선포식에서 한석호 위원장은 “이번 선포식은 전국의 노동자, 시민 모두가 50년을 쉬지 않고 걸어온 전태일 정신을 새롭게 기억하고 계승하고 실천하기 위한 의미 있는 출발을 선포하는 자리”라며 선포식의 의미를 알렸다.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50주기 추모의 달 선포식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 ‘2020 우리모두 전태일문화제’는 전태일 페스티벌, 온라인 노동문화박람회, 전태일50주기 국제포럼, 찾아가는 전태일기념관의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되었다. 전태일 페스티벌에서는 50주기 추모의 달 선포식과 추모 문화제를 진행한다. 선포식이 열린 이달 14일부터 11월 13일까지가 전태일 추모의 달로 지정됐다. 추모문화제는 11월 6일 18시 전태일 다리에서 진행되며, 대북공연, 아트드로잉쇼, 전태일 추모가 대합창 프로젝트 등의 공연을 온라인 생중계로 만나볼 수 있다. 2020 우리모두 전태일문화제 홈페이지 ⓒ서울시 온라인 노동문화박람회에서는 평화시장 VR전시, 노동미술제, 시사만화전 등 예술가들이 기획한 다양한 노동문화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동대문 평화시장 외벽에 전시된 노동미술 작품을 접할 수 있는 ‘평화시장 VR전시’와 전태일의 삶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전태일기념관 3층 이음터 온라인 관람’은 10월20일부터 11월15일까지 진행된다. ‘몫 없는 이들의 몫...
‘2020 우리모두 전태일문화제’가 10월 14일부터 11월 15일까지 한 달 간 개최된다

전태일 50주기 추모 “우리모두 전태일 문화제” 한 달간 개최

‘2020 우리모두 전태일문화제’가 10월 14일부터 11월 15일까지 한 달 간 개최된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입구에서 한 청년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면서 쓰러졌다. 다시 일어난 그는 “일요일은 쉬게 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한 번 더 외쳤다. 그의 이름은 바로 ‘전태일’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정신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노동권의 상징으로 남아있다.서울시는 전태일 50주기를 추모하고,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시민 누구나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특별한 축제를 마련했다. 체험, 전시, 문화‧공연, 학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태일 정신의 현재적 가치를 확인하는 노동문화축제다.서울시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 위원회’는 10월 14일부터 11월 15일까지 한 달 간을 전태일 추모의 달로 선포하고, 이 기간 동안 ‘2020 우리모두 전태일 문화제’를 개최한다.서울시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대부분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개최하고, 현장 행사는 무관객으로 진행한다. 대신 홈페이지(www.taeil50.org)와 유튜브 ‘전태일 티비’ 등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시‧공간 제약 없이 프로그램을 즐기도록 할 계획이다.주요 프로그램은 ▴‘추모의 달’ 선포식(사전행사)과 ‘전태일 50주기 추모문화제’(본행사) ▴온라인 노동문화 박람회 ▴찾아가는 전태일 기념관 ▴온라인 국제포럼 등이다.① ‘전태일 추모의 달 선포식·문화제’ 첫째, ‘추모의 달’의 시작을 알리는 선포식과 전태일 50주기 ‘추모문화제’를 각각 개최해 전태일 정신을 잇고 연대와 화합을 다짐하는 시간을 갖는다.‘추모의 달’ 선포식(10월 14일 11시 전태일다리)은 ‘연대의 50년 평등의 100년’을 주제로 지난 50년의 노동운동 역사를 돌아보고 평등의 미래 100년을 기약하는 자리다. 선포식에서는 비정규직 청년 등 6명의 노동자가 ‘개막 선포...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중인 전시에서는 여성 노동자들 직접 만들어낸 다양한 패턴을 나만의 패턴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엄마, 시다가 뭐예요?

청계천 수표교 앞에 있는 전태일기념관 전경 ©이영남 기념관 앞을 장식한 한글은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 내용. 미술가 임옥상님의 작품 ©이영남 청계천을 따라서 걷다 보면 수표교 앞에 한글로 전면을 장식한 독특한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전태일기념관이다. 기념관 앞을 장식한 한글은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 내용이다. 미술가 임옥상님이 작업했다. 글씨체에서 느껴지는 절실함이 가슴을 울린다.  1961년생인 필자는 70~80년대 시대를 살아왔다. 미싱, 봉제, 시다, 요꼬 이런 단어들이 무심히 들리지 않는다. 전태일 노동운동가가 가난한 집, 배우지 못한 세대이었던 것처럼 그 당시에는 모두가 비슷한 현실이었다. 당시 노동 현장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도 기억난다. 필자의 막내 이모가 일하던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직접 가 보았기 때문이다. 가난한 것은 당연하고, 부모가 봉제 공장에서 일해야 한다고 말하면 당연하고, 학교를 안 가도 당연하고,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던 시기였다. 전태일기념관에서는 부당한 것이 당연했던 시기를 말하고 있었다. 현재 전태일기념관 1층에서는 사진가 전경숙과 네 명의 여성노동자가 협업한 독특한 사진 작업이 전시 중이다. 전경숙은 ‘시정의 배움터’ 교사로 네 명의 여성노동자를 만났다. 전경숙은 네 명의 여성노동자들의 현재를 담은 사진을 광목천에 인화했고, 네 명의 노동자는 재봉틀을 이용해 자신의 사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식하였다. 홍경애 여성 노동자가 광목천에 인쇄된 사진을 장식해 콜라보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이영남 2층 울림터에서는 노동 연극 '넘어가네' 낭독극 영상을 볼 수 있다 ©이영남 2층에서는 ‘시다’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시다는 일본어 시타바리에서 유래한 말로, 꼭 필요하지만 가장 쉬운 일을 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시정의 배움터’ 문집에 실린 노동 연극 ‘넘어가네’를 낭독극 형식으로 재현한 영상도 상영 중이다. 입구에 있는 모니터에서는 청계피복노...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할 수 있기를.

봉제공장 ‘시다’의 꿈…사진, 연극, 소설로 펼치다

새 옷에 달려있는 상표엔 여러가지 정보가 적혀 있다. 사이즈, 세탁방법, 소재, 수입처, 바코드, 제조국 등. 하지만, 어느 브랜드 옷을 사든 상표에서 절대 밝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옷을 누가 만들었으며, 그 노동자는 한 달에 얼마를 받았고,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는지 소비자들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은 소위 ‘시다’라고 불리는 미싱사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의 봉제업은 1980년대 까지 승승장구 하던 사업이었다. 하지만, 근로자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임금에 시달렸다. 시간이 지나 노동법 개선과 인식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많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에서 '시다의 꿈'이라는 기획전이 3월 29일까지 열린다. 봉제업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 연극, 소설의 형태로 기록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시다의 꿈 기획전시가 3월 29일까지 열린다 ⓒ정유리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 특별전시장에서는 4명의 미싱사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천 위에 인쇄한 후, 그 위에 패턴을 삽입한 작품들이다. 사진 속의 미싱사들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고 있거나 일에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색깔의 실로 짜여진 별, 물결무늬 등이 그들의 일터를 장식하여, 미싱사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모습을 표현하는 듯 했다. 2층에서 볼 수 있는 노동야간학교 졸업연극 대본 낭독 영상 ⓒ정유리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가면, ‘시다’들이 일터에서 겪은 억울한 일화를 담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그들은 하루 14시간을 일했으며, 휴식시간마저 빵 하나 먹으면 끝날 정도로 짧았다.  노동야간학교 “시정의 배움터”에서 만든 졸업연극 대본을 읽는 영상도 볼 수 있었다.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건강이 나빠져도 보상 하나 받지 못했고, 외부적 압박으로 인해 공권력 앞에서도 사실을 폭로할 수도 없었던 현실을 비판한다. 3층 전시공간에는 소설 속 이야기들을 시각적...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의 모습

전태일기념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마주하다

청계 2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김은주 청계천을 따라 광교사거리를 지나, 청계 2가로 향하다 보면 건물의 외벽을 한글로 된 글씨가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흘려 쓴 듯한 하얀 색 글씨가 줄지어 연결되어 장식된 외벽을 가진 이곳은 '전태일기념관'이다. 외벽을 장식한 글씨들은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를 미술가 '임옥상'이 재해석해 놓은 것이다. 전태일이 직접 쓴 진정서를 모티브로 만든 외벽장식 ⓒ김은주 종로구 청계천로에 들어선 전태일기념관은 한국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전태일의 역사적 의미를 모든 사람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전태일기념관은 전시실과 함께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허브 등 노동과 관련된 시설들을 포함하여 노동복합시설로 만들어졌다. 전시뿐만 아니라 인문학 프로그램, 공연으로 다양하게 시민들과 접점을 마련하고 있다. 전태일기념관 3층 상설전시장의 모습 ⓒ김은주 평화시장에서 봉제노동자로 일했던 전태일은 1948년생이다. 그는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고 공부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1970년 분신하며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 전태일의 꿈과 사랑, 연대 정신이라는 커다란 의미를 새겼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에서 미싱의 모습 ⓒ김은주 전태일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지향하며 연대를 통해 현실적 문제를 개선하고자 했고, 말로만 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시에 의해 세워진 전태일 기념관은 가난했지만 일하면서 배움과 행복을 찾았던 소박한 꿈을 가진, 스물셋 젊은 청년 전태일의 삶이 담겨 있는 곳이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 ⓒ김은주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특별 전시장으로 사용되는 1층과 공연장으로 쓰이는 울림터가 있는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면 상설전시가 열리는 '이음터'가 나온다. 전시장에는 전태일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과...
세운상가에서 내려다본 종묘 전경

‘충무로에서 을지로까지’ 이 거리 매력 넘치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거리, 과연 나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지만, 낮에는 아직 따뜻한 햇볕이 느껴지는 가을의 마지막 문턱, 서울 토박이로 살면서 숱하게 걸었던 충무로부터 을지로 거리를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직접 걸어보았다. 평소 익숙한 거리지만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주는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걷다보니, 서울 거리의 새로운 숨은 매력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거리 전체가 전시회장...충무로 필동 문화예술거리 도보해설여행의 첫 코스는 충무로 일대의 예술 거리. 과거 '영화 거리'로 유명했던 충무로가 요즘은 젊은층들이 자주 찾는 문화예술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고 한다. 바로 필동 문화예술거리인 '예술통'과 '스트리트 뮤지엄' 덕분이다. 필동예술문화거리 '예술통'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 ©박우영 스트리트뮤지엄은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중구 필동 예술통 삼거리와 남산골 한옥마을 일대에 조성돼 있다. 이 스트리트뮤지엄에는 총 8개의 작품들이 도로변 자투리 공간이나 골목길 버려진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 일대 거리를 걸으며 8개의 예술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본격적으로 필동 문화예술 거리를 걷기 전에 꼭 들려야 할 곳은 바로 남학당이다. 남학당은 조선시대의 중등교육기관인 한성 사부학당 중 하나로, 남부학당 터의 서까래와 대들보를 살려 지은 건물이다. 마침 비어 있는 남학당 2층에 올라가니, 40여 명 정도가 앉을 수 있을만큼 넓은 공간이 나온다. 현재는 다양한 클래스와 이벤트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일반인 대여도 가능하다. 남학당 외부 전경 ©박영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남학당을 나와보니, 바로 옆에는 예술통 안내데스크가 보인다. 이곳에선 스트리트뮤지엄 안내 브로슈어와 스탬프투어 용지도 받을 수 있으니 꼭 한번 들려 보기를 추천한다. 남학당 옆에 위치한 예술통 안내데스크 전경 © 박영실 필동문화예술거리 예술통은 스트리트뮤지엄, 마이크로뮤지엄, 오픈뮤지엄 등으로 구성...
충무로.을지로 노가리골목

충무로·을지로 골목길 따라 걷는 시간 여행

필동문화예술거리, 예술통 안내 표지판 ⓒ정인선 '걷는 도시, 서울' 도보해설관광이 10월부터 중구 거리 '충무로·을지로 골목 시간 여행'을 추가했다. 충무로 남산한옥마을에서 시작해 필동 문화예술거리-반도카메라 갤러리-중부 경찰서 역사관-을지로 골뱅이·노가리 골목-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청계천-세운상가까지 2시간 30분 정도를 걸으며 그 지역 역사와 문화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골목길 여행이다. 충무로 예술통 거리 모습 ⓒ정인선 필동문화예술거리 예술통은 도시의 낡은 건물에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담아 문화예술공간으로 재창조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거리 미술관, 옛 정취를 담은 공연극장,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과 필동 골목 일대 거리에 전시된 회화, 조소, 설치 미술 등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더해지니 걷는 내내 예술 작품과 함께 움직이는 기분이 든다. 충무로 주자소 터 ⓒ정인선 주자소는 조선시대 활자를 주조하고 도서의 출판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1403년(태종 3년) 왕명에 따라 설치된 국가기관이다. 충무로가 영화의 거리가 되기 전에 이 거리가 인쇄골목이다. 서울시내 인쇄업체가 거의 자리 잡고 있다. 이 거리에서만 볼 수 있는 '삼발이'는 비좁은 골목길이 구불구불 어지럽게 이어져 있어서 인쇄골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운송 수단이다. 삼발이를 보니 1970년대 거리로 돌아간 느낌이다. 낡은 건물과 좁은 골목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주자소 터, 균역청 터, 영희전 터, 등 군데 군데에서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을지로에 처음 생긴 노가리집 ⓒ정인선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1980년대 형성된 노가리 전문 골목이다. 노가리와 맥주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먹거리가 특화되어 있는 거리로 보전 가치가 있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1970년대 중반 주류 도매상 창고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맥주를 팔 던 것이 시초가 되어 자연스럽게 안주로 노가리 골목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
익명의 노동자가 노동환경개선을 위해 피땀 흘려 투쟁한 청년 전태일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노동자의 마음을 움직이다

익명의 노동자가 노동환경개선을 위해 피땀 흘려 투쟁한 청년 전태일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정기휴가, 복지보장, 형평성 있는 임금보장 등 현재에 이러한 요소들은 근로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들이 확립되고 보장된 것은 마냥 옛날 옛적의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일궈낸 결과들이다. 이러한 희생을 감수한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회가 종로에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 건물 상단에 그의 아름다운 이름 세 글자가 적혀져 있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의 위치는 종로3가역과 가깝게 위치되어 있다. 종로3가역 15번 출구에서 나와 5분정도 걸으면 ‘전태일’이라는 아름다운 세 글자가 적힌 건물과 조우할 수 있다. 건물내부로 들어가 3층으로 올라가면 마침내 ‘전태일’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는 전시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실은 크게 4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청년 전태일이 태어났을 때부터 성장을 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 있는 ‘전태일의 어린 시절’ 파트이다. 전태일의 삶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그가 살아온 행적들을 가슴깊이 느껴볼 수 있는 전시이다. 그의 다사다난 했던 어린 시절을 보며 우리들의 영웅, 청년 전태일이라는 인물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전태일의 다사다난 했던 어린시절이 일대기 구성으로 펼쳐져 있다 2부에서는 청년 전태일이 봉제노동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함과 동시에, 본인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열악한 노동환경을 인지하고 노동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의 서사를 다루고 있다. 전태일의 1인칭 시점을 통해 그 당시 그가 느꼈던 참혹한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 그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따라가 보며 그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큰 결심을 하게 된 굳건한 의지를 함께 느낄 수 있다. 3부에서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인지한 청년 전태일이 물건을 만드...
전태일 기념관 전면은 전태일 열사가 직접 쓴 자필편지로 장식되어 있다

청계천 가볍게 거닐며 한 번쯤 가볼만한 4곳

전태일 기념관 전면은 전태일 열사가 직접 쓴 자필편지로 장식되어 있다 호호의 유쾌한 여행 (141) 청계천 주변 가볼만한 곳 걷고 싶은 길, 청계천. 2005년 청계천복원공사 이후 서울시민의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녹음이 짙어가는 5월, 종로 3가부터 동대문까지 거닐며 청계천 주변 가볼만한 곳을 살펴봤습니다. 종로 3가 삼일교에서 수표교로 향하는 길 전태일 기념관이 있습니다. 건물 전면에 전태일이 쓴 편지를 옮겨 놓았습니다.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자 근로 감독관에게 썼던 자필 편지입니다. 전태일 기념관 내부 전시관 모습 전태일은 노동 운동가입니다. 그는 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힘썼어요.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자살을 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은 1층에서 3층까지 열려 있습니다. 1층 로비, 2층 공연장, 3층 전시관으로 구성되었으며 노동허브, 서울노동권익센터 등도 이 건물에 자리했습니다. 전시관에서는 전태일 열사의 유품과 전시품 480여 점을 전시하며, 노동 문화와 관련된 기획 전시도 열립니다. 1970년 당시 노동현장을 재현한 ‘다락방 속 하루’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전태일 기념관은 그의 생애와 당시 노동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햇볕이 들지 않는 높이 1.5m의 좁은 다락방에서 허리조차 펴지 못하고 하루 12시간 이상 일 했던 당시 노동자들의 공간을 재현했습니다. 전시를 둘러보며 노동과 인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당시 ‘시다’라고 불리던 보조원들은 10대 소녀들이 대부분이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폐질환 등에 시달렸습니다. 눈부신 경제발전 뒤에는 이러한 노동 현장이 뒷받침 되었죠. 청년노동자로서 스스로 불꽃이 된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봅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그 말은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세운전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