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의 도시답게 서울엔 수많은 인재와 우국지사들의 자취가 남아있다 Ⓒ박세호

종로 거리에서 만난 역사의 주인공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박세호 흔히 경주나 강화도 같은 지역을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야말로 길거리 유적과 유물이 정말 많다. 박물관 입장은 엄두도 못내는 요즘, 걸거리에서도 역사적 장소를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종로 대로변 보기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무심코 지나쳤던 역사 인물들의 동상과 표지석들을 둘러보자.  광화문하면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상징처럼 떠오른다. '세종대왕' 동상은 용상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일부양구(해시계), 측우기, 혼천의(천체관측기) 등이 함께 진열돼 있다.세종대왕 재위 시(1418∼1450) 조선은 군사나 문화 측면에서 일본에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고, 세종 1년 해안가에 수시로 출몰하여 괴롭히던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 정벌을 이뤘다.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종대왕의 출생지 터가 있다. 3호선 경복궁역에서 바라보면 세종마을 입구 대로변에 표지석이 있다. 이 일대 경복궁 서쪽 마을을 서촌이라고 하는데 박노수 미술관, 화가 이중섭, 이상범 가옥, 윤동주 하숙집, 이상의 집, 벽수산장, 배화여고 선교사 건물, 이항복 집터, 이회영 생가, 황학정, 종로도서관 외 레스토랑, 카페 그리고 명당, 명소가 부지기수다.  세종대왕 동상 앞 양부일구(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의 조형물도 함께 볼 수 있다 Ⓒ박세호 '이순신 장군' 동상은 그 기개만큼이나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고, 앞자락 잔디밭을 널찍하게 간직한 채 광화문광장 끝까지 호쾌한 전망을 자랑한다. 이순신(1545~1598) 장군은 임진왜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왜군을 퇴치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 마지막 함대를 모아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해상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육지에서도 왜군은 참패를 안고 돌아갔다.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박세호 이순신 장군 동상 건너편이 교보문고 입구이며 만남의 광장이다. 이곳에 벤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소설가 ...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중인 전시에서는 여성 노동자들 직접 만들어낸 다양한 패턴을 나만의 패턴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엄마, 시다가 뭐예요?

청계천 수표교 앞에 있는 전태일기념관 전경 ©이영남 기념관 앞을 장식한 한글은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 내용. 미술가 임옥상님의 작품 ©이영남 청계천을 따라서 걷다 보면 수표교 앞에 한글로 전면을 장식한 독특한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전태일기념관이다. 기념관 앞을 장식한 한글은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 내용이다. 미술가 임옥상님이 작업했다. 글씨체에서 느껴지는 절실함이 가슴을 울린다.  1961년생인 필자는 70~80년대 시대를 살아왔다. 미싱, 봉제, 시다, 요꼬 이런 단어들이 무심히 들리지 않는다. 전태일 노동운동가가 가난한 집, 배우지 못한 세대이었던 것처럼 그 당시에는 모두가 비슷한 현실이었다. 당시 노동 현장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도 기억난다. 필자의 막내 이모가 일하던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직접 가 보았기 때문이다. 가난한 것은 당연하고, 부모가 봉제 공장에서 일해야 한다고 말하면 당연하고, 학교를 안 가도 당연하고,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던 시기였다. 전태일기념관에서는 부당한 것이 당연했던 시기를 말하고 있었다. 현재 전태일기념관 1층에서는 사진가 전경숙과 네 명의 여성노동자가 협업한 독특한 사진 작업이 전시 중이다. 전경숙은 ‘시정의 배움터’ 교사로 네 명의 여성노동자를 만났다. 전경숙은 네 명의 여성노동자들의 현재를 담은 사진을 광목천에 인화했고, 네 명의 노동자는 재봉틀을 이용해 자신의 사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식하였다. 홍경애 여성 노동자가 광목천에 인쇄된 사진을 장식해 콜라보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이영남 2층 울림터에서는 노동 연극 '넘어가네' 낭독극 영상을 볼 수 있다 ©이영남 2층에서는 ‘시다’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시다는 일본어 시타바리에서 유래한 말로, 꼭 필요하지만 가장 쉬운 일을 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시정의 배움터’ 문집에 실린 노동 연극 ‘넘어가네’를 낭독극 형식으로 재현한 영상도 상영 중이다. 입구에 있는 모니터에서는 청계피복노...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할 수 있기를.

봉제공장 ‘시다’의 꿈…사진, 연극, 소설로 펼치다

새 옷에 달려있는 상표엔 여러가지 정보가 적혀 있다. 사이즈, 세탁방법, 소재, 수입처, 바코드, 제조국 등. 하지만, 어느 브랜드 옷을 사든 상표에서 절대 밝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옷을 누가 만들었으며, 그 노동자는 한 달에 얼마를 받았고,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는지 소비자들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은 소위 ‘시다’라고 불리는 미싱사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의 봉제업은 1980년대 까지 승승장구 하던 사업이었다. 하지만, 근로자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임금에 시달렸다. 시간이 지나 노동법 개선과 인식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많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에서 '시다의 꿈'이라는 기획전이 3월 29일까지 열린다. 봉제업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 연극, 소설의 형태로 기록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시다의 꿈 기획전시가 3월 29일까지 열린다 ⓒ정유리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 특별전시장에서는 4명의 미싱사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천 위에 인쇄한 후, 그 위에 패턴을 삽입한 작품들이다. 사진 속의 미싱사들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고 있거나 일에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색깔의 실로 짜여진 별, 물결무늬 등이 그들의 일터를 장식하여, 미싱사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모습을 표현하는 듯 했다. 2층에서 볼 수 있는 노동야간학교 졸업연극 대본 낭독 영상 ⓒ정유리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가면, ‘시다’들이 일터에서 겪은 억울한 일화를 담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그들은 하루 14시간을 일했으며, 휴식시간마저 빵 하나 먹으면 끝날 정도로 짧았다.  노동야간학교 “시정의 배움터”에서 만든 졸업연극 대본을 읽는 영상도 볼 수 있었다.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건강이 나빠져도 보상 하나 받지 못했고, 외부적 압박으로 인해 공권력 앞에서도 사실을 폭로할 수도 없었던 현실을 비판한다. 3층 전시공간에는 소설 속 이야기들을 시각적...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의 모습

전태일기념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마주하다

청계 2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김은주 청계천을 따라 광교사거리를 지나, 청계 2가로 향하다 보면 건물의 외벽을 한글로 된 글씨가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흘려 쓴 듯한 하얀 색 글씨가 줄지어 연결되어 장식된 외벽을 가진 이곳은 '전태일기념관'이다. 외벽을 장식한 글씨들은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를 미술가 '임옥상'이 재해석해 놓은 것이다. 전태일이 직접 쓴 진정서를 모티브로 만든 외벽장식 ⓒ김은주 종로구 청계천로에 들어선 전태일기념관은 한국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전태일의 역사적 의미를 모든 사람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전태일기념관은 전시실과 함께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허브 등 노동과 관련된 시설들을 포함하여 노동복합시설로 만들어졌다. 전시뿐만 아니라 인문학 프로그램, 공연으로 다양하게 시민들과 접점을 마련하고 있다. 전태일기념관 3층 상설전시장의 모습 ⓒ김은주 평화시장에서 봉제노동자로 일했던 전태일은 1948년생이다. 그는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고 공부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1970년 분신하며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 전태일의 꿈과 사랑, 연대 정신이라는 커다란 의미를 새겼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에서 미싱의 모습 ⓒ김은주 전태일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지향하며 연대를 통해 현실적 문제를 개선하고자 했고, 말로만 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시에 의해 세워진 전태일 기념관은 가난했지만 일하면서 배움과 행복을 찾았던 소박한 꿈을 가진, 스물셋 젊은 청년 전태일의 삶이 담겨 있는 곳이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 ⓒ김은주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특별 전시장으로 사용되는 1층과 공연장으로 쓰이는 울림터가 있는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면 상설전시가 열리는 '이음터'가 나온다. 전시장에는 전태일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과...
청계천 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동대문 패션의 시작,평화시장' 기획전

국내 패션산업의 출발점, 청계천 평화시장

도심 속 쉼터인 청계천에도 가을이 깃들었다. 파란 하늘을 고스란히 담아낸 맑은 물이 있는 이맘때의 청계천은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두물다리 북단에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청계천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청계천박물관과 1960년대 청계천판잣집을 복원해 체험공간으로 꾸민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이 자리 잡고 있어 둘러볼 만하다.   1960년대 청계천판잣집을 복원한 체험공간 ⓒ박분 청계천판잣집은 1960~1970년대 옛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는 곳으로 옛 초등학교 교실과 만화가게, 구멍가게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다. 현재 청계천 박물관에서는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이라는 기획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전시 구성은 평화시장의 탄생, 의류 유통의 중심지 평화시장, 그 시절의 평화시장, 변화하는 평화시장 등 4개 부분으로 나뉜다.  전시에서는 사진과 문서, 당시 사용됐던 재봉틀 등 전시물을 통해 평화시장의 특징과 변천과정, 이후 동대문 주변에 끼친 영향 등을 조명하고 있다. 특히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을 1960~1970년대 모습으로 재현한 모습이 시선을 끈다. 전시에서는 사진과 문서, 당시 사용됐던 재봉틀 등 전시물을 통해 평화시장의 특징과 변천과정, 이후 동대문 주변에 끼친 영향 등을 조명하고 있다. 평화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남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이 청계천변 판자촌에 모여 살며 재봉틀 한두 개를 놓고 옷을 지어 팔았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평화시장이라는 이름에는 평화를 바라는 시장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청계천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박분 옷을 염색하는 1960년대 청계천 모습도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물자가 부족했던 때라 당시 미군부대에서 나온 군복을 염색하고 수선해 활용한 옷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청계천 주변에 노점이 많이 생기면서 배출된 생활하수로 오염이 되자 1958년 청계천을 복개하는 공사가 시작됐다. 판잣집들이 철거되고 복개공사를 마친 자리에 평화시장 건물이 들어섰다....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의 모습

요즘 볼만한 전시! 동대문 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 ‘동대문 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구자운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동대문 평화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려 다녀왔다. "서울에 사는 까닭을 하나만 대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오래 망설일 것 없이 평화시장에 물건 사러 다니는 재미를 들리라" (박완서 산문집 중에서) 1960~70년대 평화시장은 한마디로 ‘핫플레이스’였다. 전시실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평화시장의 탄생 및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평화시장은 1953년 ‘평화시장 상우회’ 설립을 시작으로 의류 유통의 중심지로 도약했다. 의류 제작에 필요한 모든 원자재들이 들어오고 유행을 따르는 옷들이 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옷을 만들기 위해 또는 사고팔기 위해 이곳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의 모습 ⓒ구자운 그러나 평화시장의 명성과는 달리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전시실 중앙에 재현된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숨 막힌다. 당시 의류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노동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평화시장 ⓒ구자운 전시관 한쪽에는 평화시장 속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유해한 작업환경 속에서 매일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아왔다.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전태일은 이곳에서 분신자살을 함으로써 노동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전시된 사료들을 통해 당시 평화시장의 격동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평화시장의 발자취를 생생히 담은 이번 전시를 통해 평화시장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평화시장은 의류 제조업의 상징적 장소뿐만 아니라 희생과 투쟁의 노동운동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로서 당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의류산업의 발전은 과거 많은 노동자들의 땀과 희생 그리고 투쟁이 없었다면 일궈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의류산업의 메카였던 평화시장의 ...
익명의 노동자가 노동환경개선을 위해 피땀 흘려 투쟁한 청년 전태일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노동자의 마음을 움직이다

익명의 노동자가 노동환경개선을 위해 피땀 흘려 투쟁한 청년 전태일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정기휴가, 복지보장, 형평성 있는 임금보장 등 현재에 이러한 요소들은 근로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들이 확립되고 보장된 것은 마냥 옛날 옛적의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일궈낸 결과들이다. 이러한 희생을 감수한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회가 종로에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 건물 상단에 그의 아름다운 이름 세 글자가 적혀져 있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의 위치는 종로3가역과 가깝게 위치되어 있다. 종로3가역 15번 출구에서 나와 5분정도 걸으면 ‘전태일’이라는 아름다운 세 글자가 적힌 건물과 조우할 수 있다. 건물내부로 들어가 3층으로 올라가면 마침내 ‘전태일’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는 전시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실은 크게 4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청년 전태일이 태어났을 때부터 성장을 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 있는 ‘전태일의 어린 시절’ 파트이다. 전태일의 삶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그가 살아온 행적들을 가슴깊이 느껴볼 수 있는 전시이다. 그의 다사다난 했던 어린 시절을 보며 우리들의 영웅, 청년 전태일이라는 인물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전태일의 다사다난 했던 어린시절이 일대기 구성으로 펼쳐져 있다 2부에서는 청년 전태일이 봉제노동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함과 동시에, 본인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열악한 노동환경을 인지하고 노동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의 서사를 다루고 있다. 전태일의 1인칭 시점을 통해 그 당시 그가 느꼈던 참혹한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 그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따라가 보며 그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큰 결심을 하게 된 굳건한 의지를 함께 느낄 수 있다. 3부에서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인지한 청년 전태일이 물건을 만드...
정식 개관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정식 개관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우리나라에서 ‘노동’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전태일’이다. 그는 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가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 외치면서 분신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현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9년 만에 그를 기리고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 마련됐다. 서울시가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30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을 정식 개관했다. 전태일기념관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노동복합시설로,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수표교 인근에 지상 6층 규모로 세워졌다. 1층은 전태일 열사 전시품 수장고와 로비, 2층은 노동관련 문화공연장, 3층은 상설전시와 기획전시가 진행된다. 4층은 노동허브(공유공간), 회의실, 교육장이 설치됐고 5층에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입주했으며 6층은 옥상쉼터로 이루어졌다. 현재 기념관 3층에서는 ‘전태일의 꿈, 그리고’란 주제로 전태일 열사의 유품과 당시 노동계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품 48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전태일 열사가 만들려고 했던 모범 봉제작업장을 구현한 ‘모범업체 : 태일피복’이란 기획전시도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오는 6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기념관이 내 집이다’라고 생각하고 지나갈 때든 언제든 들러 달라”고 개관 인사를 전했다. 개관식에 참여한 성승준 씨는 “전태일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남긴 유산이 참 어마어마하다. 노동자의 복지가 옛날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전태일기념관이 우리나라 노동의 과거와 현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리는 역할이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전태일 다리에 있는 전태일 동상 전태일기념관에서 도보 15분 정...
청계천 평화시장 인근에 자리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전경

골방에서 하루 15시간 일하고 일당은 커피 한 잔 값

청계천 평화시장 인근에 자리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전경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22세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의 뜻을 기리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이 4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지난 20일 시민들에게 사전 공개됐다. 기념관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던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근처에 세워졌다. 1965년 청계천 평화시장 앞 풍경(좌)과 현재 평화시장의 모습(우) 기념관은 총 6층 규모로 1~3층은 전태일 기념공간이고, 4~6층은 노동자권익지원시설로 구성됐다. 우선 기념관 건물 외관이 독특한 모습으로 시민들의 발길을 붙든다. 1969년 전태일 열사가 당시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자필 편지를 건물 외벽에 그대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로 시작되는 글은 열악한 여공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절절히 요청하는 내용이다. 전태일 기념관 3층의 전시실 모습 봉제 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 열사의 생애를 담은 전시실이 마련된 기념관 3층으로 먼저 향했다. 전시실에는 전태일 열사의 일기와 편지 등 유품을 비롯한 480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어 당시 노동현장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1960년대 평화시장 봉제작업장을 재현한 전시실의 다락방 모습 1960년대 평화시장 봉제작업장을 재현한 다락방도 있다. 시민들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시민체험장이다. 그 시절, 평화시장 일대에는 봉제업체가 밀집해 있었다. 전태일 열사를 비롯한 당시 노동자들이 일했던 작업장은 한눈에 봐도 비좁아 보였다. 낮은 조명 아래 풀풀 날리는 먼지는 차치하고 천장 높이가 1.5m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일터에서 과연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나 있었을까. 그가 근로감독관에게 쓴 편지에도 나와 있듯 이처럼 골방 같은 ...
청계천 수표교 인근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외관(정면), 전태일 열사의 자필편지가 붙어있다

‘전태일 기념관’ 시민 공개…노동운동 역사 한눈에

청계천 수표교 인근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외관(정면), 전태일 열사의 자필편지가 붙어있다 서울시가 한국 노동운동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공간과 노동자 지원시설이 집약되어 있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공간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을 3월 20일 사전 개관한다. 정식개관은 4월 예정이다. 기념관의 위치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장소인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수표교 인근이며, 지상 6층, 연면적 1,920㎡(580평) 규모다. 기념관 정면부(파사드)는 전태일 열사가 당시 근로감독관에게 쓴 열악한 여공들의 근로조건 개선 요청 자필편지를 텍스트 패널로 디자인해 부착했다. 지나는 시민 누구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내부(시민체험장) 내부는 전태일기념공간(1~3층)과 노동자권익지원시설(4~6층)로 구성된다. 우선, 전태일 열사의 유품과 당시 노동계 시대상을 엿 볼 수 있는 ‘전시실’, 60년대 평화시장의 봉제작업장을 재현한 다락방 ‘시민체험장’을 3층에 마련했다. 전시는 상설과 기획전시가 연중 운영된다. ‘전태일의 꿈, 그리고’를 주제로 한 상설전시는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와 연계해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여준다. 기획전시는 연 3~4회 노동관련 또는 시대적 이슈로 진행되며, 첫 기획전시로 ‘모범업체:태일피복’이 6월 30일까지 진행된다. ‘태일피복’은 전태일 열사의 생전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그가 꿈꿔왔던 모범적인 봉제작업장을 구현한 전시다. 전시장에는 청년 시인 8인의 시도 함께 전시돼 50여 년 전 젊은 전태일의 꿈과 오늘날 청년들의 희망을 한곳에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2층은 노동관련 문화공연이 가능한 60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3월20일~31일 ‘음악극 태일’을 시작으로 상반기에 총 7개 공연이 이어진다. 1층은 전시품 수장고와 로비다. 이후 공연프로그램은 ▲어린이극 안녕, 태일(4월13일~14일) ▲노래극 탈환의 시작 고백(4월30일~5월2일) ▲제1회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노동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