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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가 살아 숨 쉬는 서울[2]

종교와 윤리 사이에서, 유교 유교는 종교인가? 유교는 대한민국 사회에 살아 있는가? 과연 그렇다면 어디에 살아 있는가? 구한말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천주교, 기독교는 가혹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한국에서 그 유례를 찾지 못할 정도로 성장한 반면, 종교로서 유교는 인구가 20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계속 줄어 전통 종교 문화로서 입지가 사라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유교는 15개의 향교 재단과 234개의 사원, 신주 또는 위패를 모시기 위한 1,237개의 사우(寺宇)가 현존하고 있으며, 한국 종교 인구의 90% 이상이 일상생활에서 제사를 모시고 추석과 명절에 성묘를 하는 유교적 신념 체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조선 왕조의 수도이자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도 유교적 전통은 그대로 살아 있다. 공자에게 제사를 드리는 석전제(釋奠祭)가 매년 열리고, 조선 시대 궁궐부터 종묘사직에 제사를 드리는 종묘제례,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유교의 근본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고유 문자인 한글은 유교의 근본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태극기 역시 유교의 경전인 역경의 기본 사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유교 사상의 핵심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글이 배척과 천대를 받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글이라는 정식 명칭을 얻었고, 기독교 성서를 번역하면서 비로소 한민족의 문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조선시대의 ‘사농공상’, ‘적서차별’, ‘남녀차별’처럼 ‘언문’으로 천시된 한글이 오늘날에 와서 정보 혁명 시대에 새로운 문명의 힘으로 기능하듯이 유학 사상은 시대를 초월해 각 시대에 맞는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안동에서 세계 보편 가치로서의 가능성과 미래 비전의 모색 등을 주제로 세계 각국 학자들을 초청해 2010년 세계유교문화축제를 연 것은 이러한 창조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유학 사상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끔 변모하고 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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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가 살아 숨 쉬는 서울[1]

서울이 세계적인 수도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관광객 수만 782만 명, 올해는 900만 명을 예상할 정도로 세계인이 즐겨 찾는 명소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일까? 서울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신라 천년 고도의 경주는 불국사와 첨성대 그리고 석굴암으로 오늘날에 와서도 내국인이나 외국 방문객들에게 찬란한 정신문화의 발자취로서 새로운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위치한 바실리 성당은 혹독한 소련 공산주의 시절을 겪었음에도 그 어떤 유물, 유적을 보유한 관광 명소보다도 방문객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 매년 수억 명이 방문하는 로마 교황청 바티칸이나 예루살렘 성지는 세월에 얽매이지 않고 이미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종교와 관련한 정신문화는 시대와 종교를 뛰어넘어 찾아오는 이에게 감동과 새로운 영감을 안겨준다. 그렇다면 서울은? 불교 국가인 고려와 달리 유교를 국시(國是)로 내세운 조선시대의 수도 서울은 대동사회를 추구하는 유학의 이념을 그대로 보여주는,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도시다. 또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창제 원리 자체가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역경을 바탕으로 삼은 유학 사상의 결정판이다. 서울은 세계인들이 경탄하고 감동할 만한 종교적 유산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이러한 유산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로 들어오면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천주교와 기독교 등이 한데 어우러진 종교적·문화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대의 개신교 단일 교회가 탄생하는가 하면 천주교와 기독교 순교 성지 등 새로운 종교적·문화적 유적과 형태가 속속 등장한 것이다.서울의 종교적 모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민족종교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전환기에 출현한 민족종교는 동학을 비롯해 대순진리회, 증산교, 원불교 등 개벽사상을 중심으로 한국 고유의 신앙과 수행 방식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종교적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1600여 년 전에 들어온 불교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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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의 힘은 퓨전 디자인

인사동이나 삼청동 거리가 외국인들의 눈을 사로잡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외국에서 볼 수 없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는 비록 도시의 역사는 짧지만 역사적 건물이나 전통 거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특히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최근 발생한 큰 지진으로 심하게 피해를 본 역사적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편 1930년대에 지은 시내의 한 건물을 철거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수차례에 걸쳐 시의회가 열리기도 했다. 누가 봐도 피해가 적지 않아 철거가 당연해 보이는 데다, 건물을 보수하려면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수배에 이르는 금액이 드는데도 시의회는 끝까지 이 건물의 회생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들은 왜 그렇게 낡고 오래된 건물을 이처럼 보존하려고 애쓰는 것일까. 뉴질랜드는 역사가 약 15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국가이기에 역사적 건물이 다른 곳에 비해 많지 않다. 따라서 이 건물이 사라지면 이 거리의 역사가 하나 사라지는 것이고 거리의 전통과 다양성도 잃기 때문이다. 옛것이 모두 사라지고 새것만 있다면 다양성을 잃어버린 재미없는 거리가 될 뿐이고, 기능적인 편리성만 있을 뿐 그곳의 역사나 전통과 같은 가치는 모두 없어질 것이다. 멋진 한옥의 처마 곡선 아래에 직선적이고 현대적인 재료가 공존하는 삼청동의 풍경은 언뜻 부조화하고 엉뚱해 보이지만 퓨전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이 절묘하게 결합된 디자인이 오히려 새롭고 독특하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다양한 디자인의 추구와 더불어 전통과 현대, 그리고 서구 문화와 한국 문화를 절묘하게 결합한 퓨전 디자인은 확실히 이곳을 다른 곳과 구별 짓게 하는 뭔가가 있다. 차가 다니기 편하게 설계한 서구의 거리나 길과 달리, 보행자가 중심이 되는 한국의 골목은 인간적이며 정감이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이국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며, 과연 이렇듯 멋진 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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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의 한국 견학 완결판, 인사동

캘리포니아 주 남부에 오면 샌타모니카 3가의 프롬나드나 패서디나 올드 타운을 봐야 하듯이 인사동은 이미 첨단 광역망을 자랑하는 한국의 수도 서울에 무게감을 준다. 비록 LED TV와 현란한 네온사인 간판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골목일지도 모르지만 끊이지 않는 외국 관광객 인파는 인사동의 건재함과 여전한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평일 오후에도 이 골목은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지나기 힘들다. 지나는 이들은 단순한 관광객부터 역사적 고증을 노리는 전문가들의 눈빛까지 다양하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나 사료가 인사동에서 나와 언론에 공개되곤 하죠. 하지만 그러지 않고도 팔리는 경우가 수십 배는 많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풀려고 인사동을 찾는 외국인은 저 말고도 수백 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 역사학자인 다카시 히노시메(56세) 씨는 주말만 되면 아내와 인사동을 찾는다. 그는 요즘도 가끔 나온다는 독립운동가들의 사료를 이곳에서 만나길 기다린다. 그에게 인사동은 일본과 한국 간 애증의 역사를 밝히는 도서관인 셈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 <매시Mash>만 기억하는 대부분의 미국인은 일단 인천공항에 내려서면서 놀라 눈이 커지고, 종로에서 <매시>의 기억을 포기하고, 인사동에서 고개를 숙인다고 말합니다. 하회탈요? 지금까지 20여 점을 모았는데 그래도 다른 게 있을까 싶어 아침 일찍 대전에서 KTX에 올랐죠.” 대전의 한 대학 건축학과 교수인 사이힐 채프먼(55세) 씨는 하회탈과 다기를 사려고 방학을 맞아 인사동을 찾았다. 이런 호기심과 신기함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안산에서 진행하고 있는 외국인 학교 프로그램 필드 트립(견학 수업)차 인사동을 찾은 학생들을 만났다. “처음엔 선생님들이 인사동이라고 해서 인사를 잘하는 동네인 줄 알았다. 서울 같은 큰 도시에 이토록 오랜 역사의 색과 모양을 간직한 골목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온 메리 슐츠(7학년) 양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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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고궁에서 휴식 즐기는 서울 직장인이 부러워

4년 만에 거닐어보는 서울 시내는 아주 많이 변해 있었다. 그래도 오랜 친구는 변하지 않는 법. 금세 고향집 마당에 들어설 때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북촌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인사동에서 오랜 중국 생활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 것이 얼마나 새롭고 매력적인지 새삼 깨달았다.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놀란 점은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상당히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구들은 유일한 한국인인 내게 한국에 관해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내 이름은 한국어로 어떻게 써?” “한국 여자들은 정말 그렇게 다 예뻐?” “한국 노래 불러줄 수 있어?” 그 중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한국에 가면 어디를 꼭 가봐야 할까?”였다. 그럴 때마다 ‘볼거리는 중국에 많은데 한국에서 소개해줄 게 뭐가 있다고…….’라고 생각했던 터라 서울을 둘러보면서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인사동과 북촌이었다. 간단한 선물을 사고 안국역 근처에 있는 ‘운현궁’을 방문했다. 처음 가본 운현궁은 매우 정갈한 모습이었고 여기저기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운현궁은 고종과 흥선대원군이 지낸 곳이며 명성황후와 혼례를 치른 곳이기도 하다. 은은하면서 아름다운 기와지붕과 부드럽게 내려온 처마가 마음을 편안히 감싸주었다. 점심시간에는 무료로 개방해 직장인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는데, 이런 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서울의 직장인들이 부럽기 그지없었다. 운현궁을 나와 본격적으로 북촌 한옥마을로 접어들었다. 어느 스님이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북촌이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명당이라고 했다는데, 명당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살고 싶은 곳임은 분명했다. 중국에 있으면서 고대의 거리를 많이 다녀보았다. 내가 사는 충칭에도 츠치커우라는 옛 거리가 있다. 츠치커우는 별다른 개발 없이 옛 거리를 그대로 보존해놓아서 말 그대로 옛 중국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잘 알려진 상하이의 신천지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 중국이 한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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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그 과거로의 여행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서울은 옛것을 헐고 그 자리에 빌딩을 올린다거나,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몇 개 놓였는지를 선진화의 척도로 삼고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300년, 400년 전에 지은 저택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유럽의 도시를 부러워하곤 했다. 그러나 25년 만에 찾은 서울에서 내 기억 속의 그곳이 아닌 다른 도시를 만났다. 서울의 본래 모습은 언제나 한결같았는데 이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광화문을 지나 안국동, 가회동, 삼청동을 걸으며 100년, 300년, 그리고 600년 전 이 땅에서 살아간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북촌 한옥마을 골목을 걸으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서울, 곧 서울의 인간 풍경(Humanscape)을 보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의 도시들, 그리고 그간 다녀본 전 세계 여러 도시와 비교하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서울은 선조들이 역사의 유물을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쏟아부어준 도시라고 말이다. 과거 경제성장에 치우쳐서 잘 보존하고 관리하지 못했던 오래된 우리 문화의 흔적이 현재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는 노력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도시로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번 방문에선 ‘쇼핑 천국, 서울’이라는 테마로 여행을 하려고 했다. 자원 부국 카자흐스탄에는 신흥 부자가 많고, 한류 드라마 <대장금> 덕분에 최근 한식의 인기가 높다. 그래서 열심히 한식당을 찾아다니며 취재를 했다. 그러다 문득 “서울 사람들이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라고 말하던 김 로만 우헤노비치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순간 아차 싶었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보다는 카자흐스탄인들이 갖지 못한 600년 고도 서울,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룬 서울의 참 모습을 알려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마침 안국동에서 점심 약속이 있던 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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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서울, 교보문고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교보문고를 찾는 것이다. 특별히 구매할 도서가 있어서라기보다 ‘문화적 산소’를 만끽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 서울 시내로 들어오는 동안 환골탈태하는 도시의 외양에, 그리고 도심 한가운데 문화·지식의 중심에 선 교보문고와 만날 기대에 가슴이 뛴다. 또 함경북도 라진 시에 있는 종갓집이나 명천군에 위치한 외갓집을 방문하는 듯 기대에 차서 마음속으로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기도 한다. 교보문고는 과연 깔끔하면서도 으리으리한 책방이자 상당히 수준 높은 도서관 같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1981년 6월 고 신용호 회장이 ‘꿈을 키우는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세운 교보문고는 대한교육보험이 모회사이며, 한국 1위의 서점으로 한국 지식 문화를 대표해왔다. 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창립 철학을 지금까지 지켜오며, 명실상부한 한국 지식 문화의 허브가 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교보문고는 그간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도서 경영을 이끌어 시장 매출을 올리는 한편 독자적인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시대 상황에 맞게 변모해왔다. 분야별 국가고객만족도지수NCSI,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NBCI에서 1위에 오르는 등 교보문고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매장에 들어서니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 책을 탐독하는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지식의 물줄기를 파고 있었다. 그 모습은 청정한 실개천에서 청아한 워낭 소리를 듣는 것처럼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책 읽는 숨소리가 나의 심금을 사로잡는 옥음(玉音)으로 전달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발간한 몇 권의 도서 목록을 고객용 컴퓨터로 검색했다. 재고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한국 독자들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 자신이 책 속의 인물이 된 듯 이곳 독자들과 간접적인 해후를 하고 나니 가슴이 뭉클했다. 출판사, 신문사, 방송사가 많고 책을 즐기는 나라 한국. 서울은 그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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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휴식처, 리움(Leeum) 미술관

미술관은 우리에게 내면의 휴식과 신선함을 주는 공간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피하고 싶을 때, 우리는 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면서 영혼의 휴식을 얻기도 하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서 삶의 활력을 찾기도 한다. 미술관에 전시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잠자고 있던 감성이 깨어나기도 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예상치 못한 미지의 세계를 맛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리움 미술관은 그다지 한적하지 않고 조금 복잡한, 그러나 조용하면서도 편리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서울의 지하철 6호선을 타고 한강진 역에서 하차해 10여 분만 걸으면 쉽게 닿을 수 있다. 리움 미술관 입구에 서면 야외 조각 공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무엇보다도 육중한 몸체와 가는 다리의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초대형 거미 두 마리가 인상적이다. 이 초대형 거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청동 조각 작품으로 ‘엄마’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리움 미술관 건물에 들어서면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높은 천장과 유리 벽면 사이로 보이는 녹색 정원, 그리고 자연 채광이 널찍한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을 맘 편히 대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한다. 리움 미술관은 3명의 건축가가 각기 다른 형태의 특색 있는 건물로 디자인했는데, 그 각각의 개성으로 이루어진 조화가 독특함과 신선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제1미술관은 한국의 고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스위스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한국 전통 도자기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주로 국보급으로 꼽히는 도자공예품과 금속공예품 그리고 한국화 등을 상설 전시한다. 프랑스의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한 제2미술관은 국내외의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녹슨 스테인리스 스틸과 유리로 된 건물의 분위기 자체가 현대미술의 한 부분을 표현하고 있다. 대표적 한국 화가인 이상범, 변관식, 이중섭, 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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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서울의 예술현장

국가의 품격과 이미지 그리고 예술이 세계를 주도하는 21세기의 과제는 바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문화 인재를 과연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 대륙을 뒤덮고 있는 ‘한류 쓰나미’의 중심에 서 있는 한국, 그리고 문화·예술인의 해외 진출이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이때에 ‘어떻게 하면 이러한 성장세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점차 높아지는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관객들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국이 문화·예술의 주도적 국가로서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문화·예술의 발전과 더불어 국제 문화 교류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연구가 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관객과 보다 깊은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연구와 더불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 전략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한 차원 더 높은 예술 세계로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의 독특한 멋과 향이 묻어나는 문화 콘텐츠에 국제적 감각을 가미한 새로운 시도들이 문화·예술 전반에 균형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차세대 문화·예술 엘리트의 육성에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교육받고 키워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에 자리한 ‘젊은 예술인들의 산실’인 한국예술종합학교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이하 한예종)를 찾았다. 21세기를 주도할 창의적 전문 예술가를 어떻게 양성하고 있으며, 어떠한 국제화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창의적 예술가들을 키워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1990년 개교한 한예종은 아시아 예술 교육의 허브라는 비전을 가지고 문화관광부의 ‘문화 발전 10개년 계획’에 의해 설립되었다. 한예종은 해외 27개국(미국, 호주,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체코슬로바키아, 러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