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0704070014_mainimg

한인2세의 정체성 찾기

지난 겨울, 텍사스 북부 지역에 있는 한 대학에서 한인 유학생끼리 연말 파티를 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유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고 자연스레 같은 학교에 다니며 알게 된 한인2세들까지 합류하게 됐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얼큰하게 술에 취한 한인2세들이 시간이 늦어 그만 가야겠다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학 생들은 어딜 가느냐며 붙잡았고 결국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원하면 언제든지 자리를 뜰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인2세들과, 선배가 아직 안 갔는데 나이 어린 후배가 먼저 술자리를 뜨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한인 유학생간의 대립이었다. 결국 한인2세들이 먼저 일어났고 유학생들은 “역시 바나나는 안 돼” 하며 ‘한국적인’ 술판을 이어갔다. 이처럼 ‘한국적인’ 한국인과 ‘미국적인’ 한국인, 한국인의 피를 지닌 ‘한국적인 미국인’ 사이의 대립은 이제 이민사회에서 흔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갈등에서 생겨난 말이 ‘바나나’ 다. '바나나'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재외동포 후세대를 일컫는 말로 겉껍질은 노랗고 알맹이는 하얀 바나나처럼 겉은 동양인이지만 속은 백인과 같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미주 한인사회가 형성되던 초기 이민 시절 많은 한인이 자신의 자녀가 미국 사회에 융화되어 미국인처럼 자라길 기대했고 그들이 유창한 영어로 말을 하면 이민 세대 부모는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머릿속 사고를 미국인처럼 한다 해도 뼛속까지 미국인일 수는 없는 것. 시간이 흐르고 한인 사회의 몸집이 커지면서 한인2세들의 정체성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큰 문제로 부각된 이 문제는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되는 글로벌 네크워크 시대를 맞이하면서 사회문제로 고착화 했다. 좋은 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한 뒤 미국 주류사회의 일원이 된 사람에게 한민족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 있으면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추앙하다가도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당장에 ‘Yankee, go home’을 외치는 한인 이민사회의 정서 속에...
2011101001333470_mainimg

걸어서 서울 한 바퀴, 성곽 길

개방한 지 3년밖에 안 된 창의문과 숙정문 사이 길 어느 만화에서 본 것 같은 성곽 길 아래 터널은 비밀의 세상으로 이어질 것 같은 신비감이 있다. 창의문과 숙정문 사이의 길은 1968년 북한 무장공비의 통로가 된 이후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다가 개방한 지 3년밖에 안 돼서 그동안 비밀에 싸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군사 보호 지역이라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하고 안내소에 출입 신청서를 제출해야 드나들 수 있다. 관광지라기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의아해하며 계단을 힘차게 오르는데, 안내소 직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정도로 이 길에 익숙한 50대 방문객이 “초반에 너무 힘을 빼지 말라”고 조언했다. 가파른 계단을 보며 ‘저 위까지만 가면 오르막이 끝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거친 숨을 고르며 50여m마다 보초를 서는 군인을 몇 명 지나쳐도 오르막은 끝이 없다. 안내서를 보니 코스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창의문-백악마루 구간은 경사가 급한 탓에 노약자나 어린이는 다른 코스를 권한다고 쓰여 있다. 다른 방문객들의 후기로 짐작건대 일반 어른조차 오르기는커녕 내려오기도 벅찬 구간이다. 등산 애호가가 아닌 일반 관광객에게는 절대 적합한 산책길이 아닌 것. 다른 구간을 선택하기에는 이미 늦어, 평소 등산을 하지 않은 체력을 자책하면서 백악마루까지 열심히 올랐다. 드디어 백악마루 표지를 보고 안도의 숨을 쉬고는 1·21사태 소나무를 지났다. 1·21사태는 다름 아닌 북한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사건을 말한다. 1·21사태 소나무 앞에 설치된 안내판이 ‘역사’에 대한 유일한 소개이고, 나머지는 시대별 성곽 축조 기술의 차이에 대한 설명만이 전부인 것. 북촌 방문 일정 때문에 삼청공원으로 북악산 길을 빠져나왔다. 삼청공원에서 야생 멧돼지 주의 표시를 만났는데, 서울 한복판에 야생 멧돼지가 살 정도로 자연이 복원됐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서울의 성곽 투어 종로구에서 인왕산-북악산-낙산-남산으로 이어지는 18.7k...
2011092601410194_mainimg

쇼핑 관광 명소, 이태원

이태원은 인근에 미군 부대가 주둔해 일찍부터 이방인이 많이 모여들던 동네로 외국인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오늘날 많은 외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 여행 명소가 되면서 관광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용산 삼각지에서 국방부와 전쟁기념관을 지나 한남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이태원이라는 거리의 팻말이 보인다. 여기가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으레 빼놓지 않고 들르는 한국 쇼핑 관광의 명소, 이태원이다. 우리가 보통 이태원 거리라고 지칭하는 곳은 이태원1동에서부터 한남2동까지의 1.4km 구간이다. 이 구간에는 구두, 의류, 가방 등을 파는 쇼핑 상가와 숙박업소, 각종 음식점, 유흥주점, 오락 시설과 무역상, 여행사 대리점, 관광호텔, 종합병원 등의 상가 2,000여 개가 밀집해 있다. 이태원에 이러한 상권이 형성된 것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후 하나 둘씩 모여든 사람들은 이태원을 생계의 터전으로 삼았다. 처음엔 용산 군부대의 미군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던 구멍가게로 시작해 점차 양복점이나 골동품 가게로 바뀌었고, 197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에 나와 있는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어엿한 상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후 이태원은 1980년대를 전후로 한국을 대표하는 쇼핑 타운으로 급성장해, 서울에서는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외국인 가운데는 서울은 몰라도 이태원은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해밀턴 호텔을 바라보며 걷는 동안 좌우에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상점들은 대부분 의류점, 가죽 용품점, 골동품점 등이며, 뒷골목에는 유명 브랜드의 시계부터 골프채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이태원 지역 쇼핑 상가 주인들은 영어뿐만 아니라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까지 구사해 외국인에게 더욱 인기가 있다. 이태원 길 끝자락 즈음에는 존슨탕으로 유명한 바다식당이 있다. 존슨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미군 부대 주방장이 미국식 재료에 한국식 양념을 가미해 스튜를 끓였는데, 이를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존슨탕이라 불렀다. 동그란 냄비에 담겨...
2011091903462183_mainimg

건강까지 챙기는 실속 서울 여행

서울이 가까워졌다. 2010년 6월 1일 디트로이트와 인천 사이에 직항편이 생기면서 불과 12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이 가까워지면서 서울을 찾는 미시간 거주 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랜만에 서울을 찾는 사람들은 서울의 놀라운 변화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매년 방문하는 사람도 낯설 만큼 성장을 멈추지 않는 서울, 하지만 서울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미시간에 사는 한인들은 서울에 가면 하고 싶은 것이 참 많다. 미시간에는 없는 맛난 음식을 먹고 싶기도 하고, 인사동 거리를 거닐며 아기자기한 골동품도 사고 싶어 한다. 옛 애인과 데이트하던 덕수궁 돌담길도 다시 한번 걷고 싶고, 남산공원에도 한번 올라가보고 싶다. 그리고 한국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고국 방문 건강검진이나 간단한 성형수술 또는 피부 관리도 to-do 리스트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매년 한 번씩 서울을 찾지만 그동안의 겉핥기식 여행에서 탈피해 이번엔 실속 있는 여행을 했다. 볼거리, 먹을거리와 더불어 몸을 돌볼 수 있는 건강검진까지 했으니 말이다. 깨끗한 피부 만들기 체험 일주일쯤 머무르는 서울 나들이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중에는 의료 관광도 포함되어 있다. 머물고 있는 롯데시티 호텔에 마침 병원이 있어 아침 일찍 성형외과를 찾았다. 공해가 없는 미시간에서는 햇살이 매우 따가워 피부 관리에 자칫 소홀하다 보면 얼굴에 검버섯이나 잡티가 가득 생긴다. 특히 골프를 치거나 운전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의사와 상담한 후 시술 받을 자리에 마취 크림을 바르고 기다렸다. 원장과 한 번 더 상담을 한 후 시술을 받았다. 마취 크림을 발라서인지 레이저 토닝 시술을 받으면서도 큰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눈가에 있던 기미를 없애고 나니 한결 산뜻해 보인다. IPL 시술로 빠지지 않는 깊은 점도 레이저 토닝으로 말끔하게 없앨 수 있다. 얼굴에 있는 보기 싫은 트러블을 없애는 데는 약 두 번의 시술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가격대는 총 40만~50만...
2011080811291397_mainimg

사람이고 생선이고 고생을 좀 해 봐야…

외국에 살다 보면 명절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기가 일쑤고, 설사 날을 기억했다 해도 딱히 찾아갈 친척도 없으니 달리 할 일이 없다. 그래도 처음 몇 해는 아이들에게 우리 명절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슈퍼마켓에서 쌀가루와 찹쌀가루를 사다 송편을 빚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니 명절은 여느 평일과 다름없이 지나가곤 했다. 10여 년 만에 고국에서 맞는 명절. 음식 장만을 위해 노량진 수산시장을 따라갔다.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예전에 싱싱한 생선과 횟감을 사러 가끔 들르곤 했던 노량진 수산시장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규모도 매우 커졌고, 어시장 자체가 모두 실내에 위치해 있다. 시장 안에 들어서니 목포유달수산, 부안꽃게, 영광수산, 한라수산, 제주전복, 당진수산, 김천상회, 천안상회, 용문수산, 나주수산, 변산상회, 완도전복, 청해낙지 등 한반도의 내로라하는 수산 도시의 이름이 한자리에 다 모여 있다. 명절 때 빼놓을 수 없는 동태전을 부치기 위해 동태포 두 뭉치를 샀다. 지금 막 풀어놓아 파닥거리는 준치가 손님을 부르는 듯했다. ‘썩어도 준치’, ‘가을 준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말레이시아에서 수년 동안 구경 한번 해보지 못한 준치를 욕심껏 봉지에 집어넣었다. 준치구이를 해 먹으리라. 물오징어까지 몇 마리 샀다. 왜 이리 생선 욕심이 생기는지. 열대의 나라인 말레이시아에서 먹는 생선은 한국 생선과는 맛이 다르다. 하얀 생선살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덜하다. 시어머님은 생선을 잡수실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다. “여기 것들은 모두 뜨뜻한 물에서 자란 것들이라 맛이 없어. 사람이고 생선이고 찬물에도 살아보고 고생을 좀 해야 살도 단단하고 고소함도 더한 법인데….” 항상 더운 여름 날씨뿐인 말레이시아에선 바닷물이 따뜻해서 생선들이 살기가 너무 편하다는 어머니의 이론이다. 겨울의 쩡쩡한 한기를 알지 못하는 생선은 고소하고 깊은 맛이 덜하다는 어머님의 이론이 과학적으로 맞는지는 알 수 없어도 말레이시아의 조기는 한국 조기보다 맛이 없고, 말레이...
2011072910162144_mainimg

프랑스에 살면서 너무도 그리웠다…

전통 이어가는 현대판 육의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봐야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알듯, 먼 나라 프랑스에서 살면서 나는 이제 겨우 서울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된 걸까? 아니, 사람의 냄새가 그리웠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타향에서 살다 보면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항상 고향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특히 서울에 오면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게 바뀌어도 항상 그곳에 있을 것 같은 다양한 시장들, 그 속에서 사람 냄새를 맡고 싶었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을지로2가에서 종로2가에 걸쳐 있는 중부시장과 방산시장, 광장시장은 과거 조선시대 육의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시 육의전에서는 비단, 면포, 명주, 종이, 모시, 어물, 이 여섯 가지 물품만을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의 이 시장들에서는 좀 더 다양한 물건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고 할까. 대표적인 건어물 시장인 중부시장은 멸치, 다시마, 황태채, 오징어채부터 온갖 젓갈류와 마른 굴비까지 없는 게 없다. 프랑스에서는 쥐포나 오징어포 종류가 상당히 비싸다. 프랑스 사람들은 마른 오징어에서 ‘발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기 때문에 한국 유학생들은 마른 오징어를 쉽게 사오지 못한다. 하지만 뭐 어떠랴. 우리에게는 ‘발 냄새’ 나는 치즈가 그들에게는 최고의 디저트인 것처럼, 내게도 마른 오징어가 최고의 심심풀이 간식인 것을. 그런 눈치를 보지 않게 된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길이 명확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게 이름이 없는 곳도 많은데, 저마다 단골 가게를 찾아가는 모습이 참 경이롭게 여겨진다. 물건 가격이 쓰여 있지 않은 것은 일일이 물어야 하고, 그래놓고 사지 않기란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몇 번의 미안함을 거친 후에야 사람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채 반기는 한 가게에서 아내가 조갯살을 발견한다. 칼국수,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너무 조개가 그리웠다는 아내. 프랑스에는 이런 조개가 없으니 꼭 사가야 한단다. 조갯살을 사면서 프랑스에 산다고 했더니, 아주머니...
2011072511221892_mainimg

콘크리트 속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서울사람이여!

북한산에는 노적봉(716m), 영봉(604m), 비봉(560m), 문수봉(716m), 보현봉(700m) 등 이름난 봉우리만 해도 무려 40여 개에 달하지만 이번 취재에서는 비봉을 오르는 응봉 능선을 택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면서 보이는 바로 그 멋진 봉우리 가운데 하나가 비봉이기도 하고, 비봉을 오르는 여러 코스 가운데 하나인 응봉 능선은 왼쪽으로 의상 능선, 오른쪽으로 진관 능선과 같이하며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를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처럼 정작 백운대를 오른다면 백운대를 비롯한 삼각산의 자태를 감상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많은 사람이 북한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코스로 응봉 능선을 추천한다. 토요일 아침,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연신내역 주변에서는 삼삼오오 일행을 기다리는 많은 등산객으로 분주한 가운데 산을 찾는 즐거움에 들뜬 사람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세계 여러 관광지를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 《러프 가이즈(Rough Guides)》에서도 이미 주말마다 산을 찾는 서울 사람들의 열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혼자 하든, 둘이 하든, 혹은 여럿이 함께 하든지 간에 산행은 다 나름대로의 재미와 기쁨이 있다. 도심의 어느 길에서 무심코 스쳐 지나갔을지 모르는 사람도 산행에서 만나면 다 이웃이고, 서로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아낌없이 격려하며 결국 모두가 정상에 선다. 나 혼자 올라서야 하는 도심 속에서의 경쟁과 달리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가장 낮은 사람의 마음이 된다. 이번 산행을 함께 한 인터넷 산행 동호회 ‘북빨대’의 서영종(44세, 쉐난도) 씨는 반복된 일상의 고단함을 극복하기 위해 한때는 술과 담배로 위안을 받기도 했으나 어느 날 우연히 찾은 북한산 산행에서 비로소 고단한 일상의 탈출구이자 삶의 휴식처를 찾았다고 한다. ‘산이조아’라는 별명만큼이나 북한산을 좋아한다는 곽인찬(49세, 산이조아) 씨도 산에 가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2011071502303014_mainimg

서울 사는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들

뉴욕 시 중심가인 타임스 스퀘어에 가면 서울을 홍보하는 광고판을 볼 수 있다. ‘Soul of Asia’, 말 그대로라면 ‘아시아의 영혼’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외국인에게 다소 생소하고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서울’을 ‘Soul’과 비슷한 발음으로 기억하게끔 하려는 홍보 전략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수도 서울은 ‘88올림픽’이나 ‘2002 한일 월드컵’ 등 역동적인 모습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아직까지 많은 외국인에게 생소한 도시이며, 휴양지로 잘 알려진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아시아 관광지에 비하면 아직도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여행지 순위에서는 다소 밀려나 있는 듯하다. 서울은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외형뿐 아니라 도심 구석구석이 여타 외국의 관광 도시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현대적이고 깔끔한 디자인의 조형물을 비롯해 최신 스타일의 유행 패션이 거리에 넘쳐나고 한식은 물론 프랑스 요리부터 이탈리아, 일본, 중국 요리에 퓨전 요리까지 개성 있는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또 서울의 밤은 지치지 않는 열정을 뿜어내며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러한 서울의 현대적인 모습은 분명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시금 서울을 방문하게 하는 매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서울의 모습에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기도 하다. 서울이 몰라보게 발전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저 서구화의 후발 주자 가운데 주목받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도 있고, 한국전쟁 이후 하루 빨리 가난한 나라의 촌티를 벗고 세련된 모습으로 변하기를 바랐던 조급함 때문이었는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인상을 준다는 평도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Soul of Asia’는 역동적으로 달려온 지금까지와는 다른, 서울의 감추어진 매력을 찾게 한다. 서구 사람들이 갖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 특히 오랜 역사와 전통에 대한 동경은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한다. 조선 ...
2011070801182571_mainimg

빈대떡과 막걸리가 그리웠다

고국을 방문할 때면 서울의 달라진 모습에 매번 놀라곤 한다. 아침 햇살에 비친 말간 모습과 저녁이 되어 네온사인 불빛 아래에 드러나는 화려한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은 마치 카멜레온 같다. 변화무쌍한 모습 뒤로 서울 안에는 활화산 같은 젊은 패기가 넘친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에너지는 바로 ‘하면 된다’는 의지이자 우리나라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의 원동력은 먹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김치가 세계적인 요리로 인기를 끌고, 한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하면서 이제 전 세계가 한국의 먹을거리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열심히 일하려면 ‘밥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밥심이 살아 있는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최근 일본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엄마의 손맛이 살아 있는 광장시장의 녹두빈대떡 내가 서울을 방문하면서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은 광장시장의 녹두빈대떡집이다. 아주머니가 즉석에서 맷돌로 간 녹두에 돼지고기, 김치, 숙주 등을 넣어 큼지막하게 부쳐주던, 몇 년 전에 먹은 그 빈대떡 맛이 나를 한걸음에 광장시장으로 달려가게 했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종로5가에서 내리니 광장시장이라고 적힌 아치형 간판이 걸려 있어 찾기가 쉬웠다. 혼자라서 좀 서먹했지만 막상 들어선 ‘먹자골목’은 환한 불빛 아래 좋은 이들과 마주 앉아 먹을거리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시골의 잔칫집을 떠올리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순대, 김밥, 족발, 빈대떡 같은 음식을 푸짐하게 높이 쌓아놓은 가게들, 그 앞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삶을 얘기하는 손님들. 어찌 보면 비위생적이라 할 수 있는 노천 음식이지만, 이곳을 찾는 도시인들은 빈대떡을 부치는 아주머니 앞에 앉아서 고향에 대한 향수와 함께 어머니의 손맛과 사랑을 느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접시보다 큰 빈대떡과 막걸리 한잔으로 나는 서울 입성 신고식을 치렀다. 한국 음식은 맛과 질에 비교해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요...
2011070411440730_mainimg

도심 속 사찰 여행

나는 천주교 신자지만 불교 문화와 철학에도 관심이 많아 한국에 올 때마다 기회가 닿는 대로 해인사나 통도사 같은 큰 절을 찾거나 작은 산사를 찾아가 스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종교의 분파를 따지기 이전에 정적과 고요함이 감도는 곳에서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자리를 즐기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봉은사와 길상사였다.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절과 산속에 있는 산사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불교 신자인 선배 언니와 강남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를 먼저 찾았다. 봉은사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가 원성왕 10년(794년)에 창건하여 1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절대 불변의 진리를 찾아간다는 뜻을 지닌 진여문을 통과하면 사찰의 중심부에 놓인 거대한 미륵대불을 발견할 수 있다. 미륵불 앞에서 절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여신도들의 모습이 진지하고 간절해 보였다. 속리산에 있는 은진미륵과 닮은 모습이다. 깊은 산속에 와 있는 듯 조용한 봉은사 경내에는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올리는 신도들의 모습은 중생의 업보가 무엇인지를 떠오르게 했다. 봉은사에서는 일반 사람들이나 외국인을 위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언젠가 한국을 다시 방문한다면 ‘템플스테이’를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봉은사 방문을 기념해 예쁜 색깔의 염주를 선물로 받고, 발걸음을 길상사로 향했다. 《무소유》의 저자인 법정스님이 1995년에 설립한 길상사는 서울 성북동에 자리 잡고 있는 대중 사찰이다. 유신 정권 시절에 권력의 뒷거래가 이루어지던 장소로, 안방 정치의 요정(대원각)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주인이 법정스님께 기부해서 사찰로 바뀌었고, 이로써 길상사가 탄생한 것이다. 길상사는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대중 속으로 친근하게 다가서는 전교를 펼쳤다. 법정스님은 단 한 번도 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