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가 세워졌다.

진정한 봄을 기다립니다…왕십리역 ‘평화의 소녀상’

흰 LED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의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방윤희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는 앳된 얼굴의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성동구 왕십리 광장 사랑의 시계탑을 지나며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소녀의 얇은 저고리 위로 목을 살포시 감싼 망토와 털실로 짠 귀마개를 해준 모습에 온기가 전해진다. 겨우내 털 목도리가 잠시 추위를 덮어주었으리라 위안을 삼아본다. 또 한 차례의 겨울을 이겨내셨구나. 왕십리역은 ITX청춘의 정차역이자 2호선과 5호선, 경의중앙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곳이다. ⓒ방윤희 왕십리역은 ITX청춘의 정차역이자 2호선과 5호선, 경의중앙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곳이다. 다양한 집객시설 및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한 곳이다. 이 분주한 역사 5번 출입구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했다.  자석에 이끌리듯 소녀상 앞에 서니 지난해 별세하신 김복동 할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했던 인권평화 운동가이다. 모진 세월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는데, 끝내 소원을 지켜드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왕십리역 5번 출입구에서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를 만날 수 있다. ⓒ방윤희 왕십리 광장에 건립된 평화비는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해준다. 일제강점기에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소녀들. 평화의 소녀상은 피와 눈물로 쓰인 역사적 진실을 기리기 위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할 때까지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해 놓은 곳이다.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가 세워졌다. ⓒ방윤희 기자는 ‘위안부’라는 말을 쓰면서 작은따옴표를 붙였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의 사전적 의미가 ‘안식을 주고 위안을 준다’라는 뜻인데, 작은따옴표를 붙이지 않고 그냥 표기할 시 그 뜻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일본 측 입장의 표현’이...
1420차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평화로'. 목도리부터 양말까지, 시민들의 손길이 평화의 소녀상을 감싸고 있다.

2020년 첫 수요집회를 가다

2020년 새해 첫 수요집회에 다녀왔다 ⓒ김윤재 누군가에게 2020년 첫날은 1,420번째 수요일이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꼬박 28년째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각에 모이는 사람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이야기다. 경자년의 첫날, 서울 종로구 율곡로 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420회 수요집회를 찾았다. 흐린 하늘이 내내 불안했는데 결국 집에서 나설 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광화문에 도착할 때쯤 점점 눈발이 거세져 걱정했는데 다행히 현장에 도착할 쯤엔 모두 그쳤다. 20분 앞서 도착한 시위 현장은 이미 사람들도 북적였다. 입구 쪽에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과 모금 운동, 뱃지와 팔찌 등의 관련 물품 판매가 진행 중이었고, 단상 앞에선 자리 정돈이 한창이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방학을 맞은 학생과 시민들이 모이며 자리는 빠르게 찼다.  오는 1월 8일은 수요집회가 28주년을 맞는 날이다 ⓒ김윤재  12시를 조금 앞두고 주관단체인 평화나비 네트워크의 전국대표 이태희 씨가 무대에 올랐다. 시위에 앞서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의 삶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2010년 세상을 떠나신 김순악 할머니의 소개와 증언을 함께 읽고, 바로 1420차 정기 수요시위가 시작됐다. 노래 율동으로 시작한 수요시위는 평화나비 네트워크의 인사말과 주최 측인 정의기억연대의 경과보고로 이어졌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2020년 첫날부터 함께하면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우리에게 참해방, 참평화, 김복동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희망이 이뤄질 것”이라며 “가해자를 향해 함께 외치는 그 걸음에, 이곳 평화로에서 함께 손잡아주셨던 여러분들이 함께해 주신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1420차 정기 수요집회가 진행되었다 ⓒ김윤재  일본 정부와 관련 당사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경과보고는 끝이 났다. 인천 연수고 학생들을 비롯한 참가단체 소개와 기부금 전...
다양한 기록물과 증언들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전시 ‘기록, 기억’이 3월 20일까지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열린다

우리가 몰랐던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기록, 기억’

다양한 기록물과 증언들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전시 ‘기록, 기억’이 3월 20일까지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열린다 전쟁의 희생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곁에는 아직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온 여성들이 존재한다. 바로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아픈 역사의 산 증인으로 살아온 위안부 소녀들은 이제 할머니가 됐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피해자인 채로 남겨졌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들이 못다한 이야기는 또 무엇일까. 서울시와 서울대학교 정진성 연구팀이 그간 미국과 영국 등에서 찾아낸 사진, 영상 등의 기록물과 생존자들의 기억으로 전하는 피해여성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전시 ‘기록, 기억 :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이 3.1절 100주년을 맞아 지난 25일부터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열렸다. ‘기록, 기억’ 전시 장소인 ‘서울도시건축센터’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1932~1945) 사이 아시아·태평양 모든 지역에 일본군 위안소를 설치했다. 위안부로 끌려간 많은 여성들이 전쟁터에서 사망했지만, 전쟁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여성들의 이야기는 거의 반세기가 지나서야 세상에 드러났다. 하지만, 살아남은 그 누구도 공감이나 위로를 받지 못한 채 삶을 이어갔다. 서글픈 일이다. 이번 전시회는 ‘전쟁 성노예’라는 사실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역사의 흐름 속 개인의 삶을 조명했다. 어떻게 살았으며 어느 지역으로 끌려가 어떻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는지, 혹은 미처 귀환하지 못한 삶은 어떠했는지를 말이다. 28일 열린 전시 개관식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길원옥(92) 할머니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석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피해자들의 귀환 경로에 배와 기차 모양의 스티커를 붙이며 넋이라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전시에서는 각기 다른 지역의 네 가지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전시회는 피해자들이 끌려간 ▲미얀마(옛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못 다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전시가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진행 중이다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둘러본 ‘기억 기록’ 전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못 다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전시가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진행 중이다 다 듣지 못한 말들이 있었다. 기억하고 기록될 이야기임에도 우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했다. 그러한 위안부의 못 다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전시 이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모든 지역에 설치했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여성들의 이야기는 50년이 지나서야 우리에게 알려졌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전시 `기억 기록`은 3월 20일까지 계속된다 전시는 여러 나라 4개의 지역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이 2016년부터 현재까지 발굴한 사료와 사진, 영상 등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의 모습을 담은 3장의 실물사진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 것이다. 세 장의 사진은 고 박영심 씨의 당시 만삭이었던 모습과 버마 미차나에서 여러 한국인 위안부가 찍힌 모습이다. 이 사진들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중 미군이 만든 사진앨범에서 나온 것으로 1944년에 찍혔다는 것을 기록으로 알 수 있었다. 사진들은 보존상태가 좋아 선명하게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표정까지 읽을 수 있다. 사진은 너무나 가혹한 현실을 그들의 사진 속 상황과 표정으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위안부 여성들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확인하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있음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전시에선 증언과 문서, 사진과 영상으로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전시회의 개관식이 지난 28일 11시에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개최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전시장을 방문해 뜻깊은 행사에 동참했다. 전시장의 외부 벽면에는 큼직한 귀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귀환 지도를 보며 위안부 여성들이 얼마나 먼 곳까지 끌려가 고생을 했는지, 그들...
서울시민청 지하 활짝라운지에서 '아이 캔 스피크'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시민청과 함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서울시민청 지하 활짝라운지에서 '아이 캔 스피크'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지 73년이 되는 해이다. 더운 날씨에도 서울시 곳곳에서 광복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서울시청 시민청에서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처음 맞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14)’을 기념하여 영화 가 무료로 상영됐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민청 활짝라운지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폭염을 피해 시민청에 들어왔다가 우연히 영화를 보게 된 사람들도 있고, 광복절을 여느 때보다 특별하게 보내기 위해 가족나들이를 나온 시민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시원한 실내에서 커다란 스크린을 향해 자유롭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의 주인공 옥분(나문희 분)은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구청에 수많은 민원을 넣어 ‘도깨비 할매’라 불린다. 사람들을 간섭하고 나무라기도 하지만 실은 이웃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인정 많은 할매다. 그녀가 깐깐한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를 만나 겪는 좌충우돌에 어린 아이부터 시니어들까지 깔깔 웃으며 영화를 즐겼다. 극 후반에 가서야 옥분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이 세상에 드러난다. 옥분은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아픈 과거를 자신의 입으로 증명하며 미 의회 청문회장에 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영화 속 주인공의 아픔에 공감하는 시민들 영화 속에서 옥분의 삶 속 깊숙이 드리워진 상처가 드러나자 관객들은 눈물을 찍어내며 영화에 빠져들었다. 옥분이 어렵사리 청문회장에 서기로 결심하고 엄마의 무덤 앞을 찾아가 “왜 그랬어. 왜 그렇게 망신스러워했냐고. 아들 앞길 망칠까 봐?...불쌍한 내 새끼. 욕봤다. 욕 봤어. 한마디만 해 주고 가지”라며 통곡하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떨구는 관객도 보였다.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감독 데뷔를 한 이후,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변영주 감독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족들이 알까봐 겁내하고 전전긍긍하고 살다가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 유공자급 대우를 받게 되...
강원대학교에 그려져 있는 기억의 계단ⓒnews1

서울시 최초 발굴, 남태평양 트럭섬 위안부 26명 명단

강원대학교에 그려져 있는 기억의 계단 영화 의 옥분 할머니처럼 우리 주변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밝히지 못한 피해자들도 여전히 많을 겁니다. 서울시는 서울대인권센터와 함께 체계적 조사와 수집,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난 7월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 실제 촬영 영상을 발굴한 데 이어, 이번에는 남태평양 트럭섬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6명의 존재사실을 증빙하는 자료를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아무리 숨겨도 감출 수 없는 진실, 우리 모두가 똑똑히 지켜봐야 합니다. 또렷이 기억해야 합니다. 서울시는 12월 11일, 성과보고회를 통해 남태평양의 ‘트럭섬’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도 있었다는 기록물을 최초로 발굴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서울대인권센터와 함께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물 발굴·관리에 힘쓰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월에는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를 실제로 촬영한 영상을 발굴·공개한 바 있다. 시는 당시 미군이 작성한 전투일지, 조선인 위안부들이 귀환 당시 탑승했던 호위암 이키노(Escort IKINO)호의 승선명부, 귀환 당시 사진자료, 일본인과 조선인들의 귀환 소식을 다룬 뉴욕타임즈 기사(1946. 3. 2.) 등 자료를 발굴하고 비교·검토해 조선인 ‘위안부’ 26명의 존재를 밝혀냈다. 그동안 증언으로만 있었던 ‘트럭섬’의 조선인 위안부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것이다. ‘트럭섬’(Chuuk Islands)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함대의 주요기지로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기지건설 등을 위해 강제 동원됐던 곳이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귀환에 대해 다룬 뉴욕타임즈 기사 `트럭의 일본인들은 포로가 아니다(Japanese On Truk Are Not Prisoners, 1946.03.02.)` 특히, 이 과정에서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239명의 위안부 피해...
도봉구 구민회관 옆 공원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모습 ⓒ김영옥

청소년들이 직접 세운 ‘창동 평화의 소녀상’

도봉구 구민회관 옆 공원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모습 지난 8월 15일 오전 10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많은 주민이 참석한 광복 72주년 기념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창동 3사자’ 제막식이 도봉구 구민회관 옆 작은 공원에서 열렸다. 2011년 12월 14일부터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는 날,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우리나라 최초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이후 소녀상은 전국 각지에 세워져 현재 73개가 있다. 지난 8월 14일 세계위안부의 날과 15일 광복 72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10여 개의 소녀상이 추가 건립됐는데 도봉구도 그 대열에 당당히 합류하게 됐다.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도봉구 내의 노곡중학교, 정의여고, 덕성여대 학생들과 시민단체, 시민들이 모여 만든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이뤄지게 됐다. 청소년의 자발적 서명과 모금 운동으로 세운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지난해 노곡중학교 동아리 학생들은 도봉구 청소년동아리 지원프로젝트 사업 중 하나인 ‘개(open)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이 프로젝트는 청소년 스스로 하고 싶은 것,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것을 찾아 기획하고 실행해 보는 활동으로 ‘한국의 진실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도봉구 소녀상 설립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들의 서명운동은 ‘도봉구 청소년참여위원회’와 만나 연합활동을 펼쳐 더욱 구체화 되었다. 청소년들은 지역에서 열리는 모든 축제에 빠짐없이 참여해 홍보하였고,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지역 어디에서든 서명운동을 벌였다. 청소년들의 활동에 지역의 시민단체와 주민들도 힘을 보탰다.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위원들 그중 하나로 덕성여대 소녀상 서포터즈 ‘봄밤’과 함께 지난 3월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발대식을 했다. 이후 후원금 모금 활동, 물품 등을 팔아 후원금에 보태기도 했다. 5개월 동안 활동한 결과 4,691만5,580원의 후원금이 모였고, 민관...
광복, 빛나는 역사에 잊지 말아야할 우리의 기억

광복절 즈음에 ‘전쟁 속 여성의 인권’을 만나다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것과 동일한 소녀상 지난 7월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김 할머니 소원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평생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광복을 맞이한 지 72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광복절을 앞두고 둘러볼 만한 기념공연과 전시가 많이 있었지만 그 중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찾아 나선 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였다. 4만5,000개 검은 벽돌로 이루어진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외관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성미산 자락 평범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들 아픔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첫 공간이다. 10년 동안 평범한 시민들이 모은 돈으로 마련됐다. 이런 곳에 누가 찾아오기나 할까 하는 마음으로 검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의 육중한 문을 밀었다. 어두컴컴하고 좁은 실내에는 예상 외로 많은 사람이 해설용 헤드폰을 끼고 관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물관 성격상 학생이나 일본인 등 단체 관람객이 많다고 했다. 이 날도 일본인관람은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지하→2층→1층 순으로 관람하면 이야기 흐름을 따라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철문을 열자 지하 전시관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이 나왔다. 군화 소리와 함께 거친 자갈길을 걸으며 소녀들이 연행 당시를 그린 그림을 보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끌려가던 소녀들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10여 명과 단체관람 온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들 삶을 나타내는 거친 자갈길 지하 전시실에선 악몽 같은 그때의 일을 증언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통스러웠던 그들의 삶과 마주했다. 그들이 겪었던 일들은 2층을 오르는 계단 벽돌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지 못했을 거예요’ ‘원통해서 못 살겠다, 내 청춘을 돌려다오’ ‘우리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순회전 입구 ⓒ최은주

위안부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던 14세, 15세 꽃다운 나이 소녀들의 삶은 전쟁터로 끌려가면서 산산이 조각났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군인들이 그녀들에게 왔다. 하루 15명, 토요일은 정오부터 일요일은 아침부터 군인들이 왔다. 어쩌다 쉬는 시간이면 소녀들은 모여앉아 울기만 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그녀들의 삶은 무너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특별한 전시회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역사자료와 예술작품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었던 배경과 위안소 생활, 종전 후 귀환 과정 등을 보여주고 있다. 네덜란드 작가 얀 베닝이 촬영한 인도네시아 위안부 피해자 얼굴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주름진 얼굴에 강렬한 눈빛의 할머니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꾹 다문 입술과 깊게 팬 주름 속에 힘들게 살아온 세월이 느껴졌다. 네덜란드 사진작가 얀 베닝이 인도네시아 위안부 피해자들을 찍은 사진 작품이다. 위안소를 재현해 놓은 작품 어린 소녀들이 참혹한 시간을 보낸 위안소를 재현해 놓은 작품도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증언과 역사적 기록들을 바탕으로 위안소 공간을 복원하였다. 작은 침상 하나 달랑 놓인 공간 벽엔 위안부들의 명단이 일본어로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녀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취업 사기, 인신매매, 유괴 등의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됐을 것이다. 위안부를 간호부로 기록한 `조선인 유수명부` 위안부 강제동원을 보여주는 여러 기록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배치된 일본군 육군병원에서 일한 조선인 여성 명단이 기록돼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일본군이 위안부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이들을 간호부로 등록한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아 편집한 작품, 영상 앞에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할머니들은 과거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어도 정조를 잃어버렸다는 ...
`대지의 눈`에 새겨진 故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

남산에 아로새긴 ‘위안부’ 소녀의 눈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남산공원은 시민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진다. 남산을 찾는 중국 관광객도 해마다 늘어 수천 명을 훌쩍 넘는다. 최근 서울의 관광 명소, 남산공원 입구에 조금 특별한 공간이 들어섰다. 지난 8월 29일 제막식을 가진 ‘기억의 터’에 다녀왔다. 남산공원 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면 `기억의 터`가 보인다. 시민 성금으로 만든 위안부 기억의 공간 기억의 터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리고, 지난 역사를 기억하자는 뜻에서 서울시와 시민사회가 함께 만들었다. 지난 2015년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기억의 터 디딤돌 쌓기’ 국민 모금운동이 펼쳐졌다. 시민 1만 9,755명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았다. 3억 4,000여만 원의 적지 않은 성금이 주춧돌을 놓았다. 기억의 터 한쪽에는 성의를 건넨 시민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 충무로역 4번 출구로 나와 5분 남짓 걸으면 남산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기억의 터에 이른다. 맨 처음 눈길을 사로잡는 건 기억의 터 안내문. 기억의 터 지형도와 함께 조형물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에 전체 그림이 그려진다.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한 할머니들 안내문을 지나면 사람 눈 모양을 본뜬 작품 ‘대지의 눈’이 탐방객을 맞는다. ‘대지의 눈’ 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겪어온 지난 70여 년의 삶이 애절하게 담겼다. 기억의 터에 마련된 `대지의 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역사가 담겼다. "내 나이 12살, 언니와 나물을 뜯는데 차가 오더니 모자 쓴 사람들이 차를 타라고 했다. 둘이 끌어안고 버텼더니 나를 발로 차버리고 언니 머리채를 쥐고 차에 태웠다." ‘대지의 눈’에는 피해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이어진다. 일본군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국에서 여성들을 이런 식으로 잡아다 성노예로 부렸다. 12~16세 사이 어린 소녀들을 말이다. ‘대지의 눈’은 천인공노할 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