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비석이 없는 묘)

아이와 함께 광복절 의미 되새길 수 있는 곳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비석이 없는 묘) "내가 죽으면 내 유골을 하얼빈공원에 묻었다가 대한의 독립이 되거든 조국으로 나의 유골을 운구해 달라" 1909년 중국 하얼빈 기차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집행 전 남긴 유언이다. 의사가 순국(殉國)한지 어느덧 108년이나 되었건만 유언조차 온전히 받들지 못하고 가묘(假墓) 형태로 효창공원 ‘3의사묘역(三義士墓域)’에 모셔 있다니, 후손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몹시 부끄러웠다. 며칠 후면 광복절이다. 광복절을 맞아 효창공원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보통의 도심공원과는 달리 효창공원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효창공원 상징조형물, 하늘과 대지를 이어줄 듯 신비감이 느껴진다.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 1,2번 출구에서 도보 10여 분 거리, 공원입구 창열문(彰烈門)을 들어서니 우뚝 선 ‘상징조형물’이 나타난다. 하늘과 땅을 이어줄 듯 신비감이 묻어난다. 이정표의 안내를 따라 공원을 걷는다. 약 12만3,307㎡의 공원은 ‘3의사묘역’과 ‘임시정부요인묘역’ 그리고 ‘김구묘역’으로 나눌 수 있다. 원래 지금의 효창공원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의 묘가 있던 '효창원(孝昌園)'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청나라 군대가 진압 차 파병되었고, 일본도 1885년 청과 맺은 텐진조약을 빌미로 조선에 파병했다. 숲이 울창하고 인적이 드문 효창원을 일본군 주둔지로 결정하고 비밀병참기지로 삼았다. 조선왕가의 원소(園所)였던 효창원을 일본은 군대를 주둔시켜 독립군 토벌작전의 아지트로 활용했다. 1924년에는 일부를 공원화 하더니 급기야 1943년에는 문효세자의 묘까지 서삼릉(西三陵, 고양)으로 이장한다. 해방 후 일제의 모든 시설은 철거되었고 그곳에는 7인의 애국지사가 영면(永眠)하고 있다. 애국지사 7인(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이동녕, 차이석, 저성환, 김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의열사 내부 모습 공원...
효창공원 김구, 이봉창 등 독립운동가 일곱 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의열사 ⓒ김윤경

우리 가까이 있는 독립운동가…효창공원 무궁화 다섯그루

김구, 이봉창 등 독립운동가 일곱 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효창공원 의열사 지난 주말 용산구에 위치한 효창공원을 찾았다. 이곳은 과거 ‘효창원’으로, 정조 맏아들 문효세자와 그 어머니 의빈 성씨 묘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이들의 묘가 서삼릉으로 이장되면서, 효창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는 항일투쟁으로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 묘와 백범 김구, 임시정부 요인인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묘 등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김구 무궁화. 김구 선생의 상징인 안경 표식이 눈에 띈다. 공원 정문으로 들어가 삼의사 묘 앞을 지나는데 무궁화 다섯 그루가 눈에 띄었다. ‘이봉창 무궁화’, ‘안중근 무궁화’, ‘백정기 무궁화’··· 이처럼 무궁화마다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는 2015년 봄 서울시가 효창공원에 식재한 무궁화다. 단순히 이름만 붙인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의미가 있는 곳에서 가져온 무궁화다. ‘김구 무궁화’는 그가 독립운동 당시 승려 생활을 한 공주 마곡사에서, ‘안중근 무궁화’는 그가 다닌 명동대성당에서 가져왔다. ‘이봉창 무궁화’는 그의 모교 부지가 있었던 숙명여대에서, ‘윤봉길 무궁화’는 그의 예산군 생가에서 가져왔다. ‘백정기 무궁화’는 정읍시 백정기의사기념관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다. 각각 무궁화 앞 표식 또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윤봉길 무궁화’ 표식은 시계모양이다. 시계 표식은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간, 오전 11시 40분에 멈춰있다. ‘김구 무궁화’ 표식은 안경, ‘백정기 무궁화’의 표식은 중절모 모양이다. 그들을 상징하는 것을 표식으로 나타내었다. ‘이봉창 무궁화’ 표식은 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눈물을 담고 있다. 무궁화의 파릇파릇한 잎들이 7월에 곧 필 꽃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푸른 잎들도 독립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 세월을 견뎠을까. 백범김구기념관 전관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독립운동가 7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의열사’가 보인다. 용산구는 역사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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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를 아십니까?

"이봉창 의사는 침략의 상징인물인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애국지사잖아요? 여기 표지석은 너무 비좁은 곳에 작고 초라하네요, 본래 생가터는 다른 곳이라는 말도 있던데..." 이봉창 의사 생가터 표지석을 보며 지나가던 시민이 한 말이다. 지난 화요일, 효창공원에 있는 삼의사 묘역을 찾았다.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 1번 출구 뒤쪽에 있는 이봉창 의사 생가터 표지석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다. 관심을 보이는 시민에게 이봉창 의사를 기억하느냐고 묻자 선뜻 대답한 말이다. "용산구 효창동 118-1번지는 독립운동가 이봉창(1901~1932) 의사가 태어나 살던 곳이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키의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끝내고 돌아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폭탄으로 살해하려다 실패하였다. 그해 10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하였다." 표지석에 쓰여 있는 글이다.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은 따뜻한 햇살에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삼의사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삼의사의 묘가 나란히 모셔져 있는 옆에는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을 둘러보고 백범기념관 앞으로 나서자 폭탄 투척 자세로 세워져 있는 이봉창 의사의 동상이 서 있다. 의사는 1901년에 태어나 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며 일본인들에게 많은 차별과 설움을 겪었다. 1919년 철도국 임시인부로 들어가 일하다가 1924년 사직했다. 의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철공소 직공 등으로 오사카와 도쿄 등지를 전전하며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으로서의 설움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의사는 1931년 1월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을 응징하기 위해 수류탄 2개를 가지고 일본으로 떠났다. 도쿄에 도착한 그는 이듬해 초인 1932년 1월 8일, 일왕 히로히토가 대륙침략의 도구로 세운 괴뢰국가 만주국의 집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