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문학관 내부 모습

100년 문학의 거장들이 한 자리에! 한국현대문학관

누구나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말이 아닌 글로 표현할 수 밖에 없어서 혼자 끙끙거리며 써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은 일기일 수도 있고 보내지 않는 편지일 수도 있다. 때때로 시가 되기도 하고 장문의 소설이 되어 세간의 평가를 받게 되기도 한다. 온 힘을 기울여 완성된 좋은 작품은 타자와 세상을 이해하는 거울이 되어준다. 그야말로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전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문학사 100년을 수놓은 작가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 한국현대문학관을 찾았다. 서울 중구 동호로에 자리한 한국현대문학관 ⓒ강사랑 한국현대문학관은 수필가 전숙희 선생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문학관이다. 근현대 문학사를 증언하는 시인, 소설가,수필가 등 주요 문학인들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작가들의 친필 원고를 비롯하여 대표 시집, 소설집 초판본, 수필집과 번역소설 방각본, 딱지본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염상섭의 소설집 '만세전'(1924),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1941), 김동인의 소설집 '감자'(1935) 등 귀중한 소장 자료들이 눈에 띈다. 옛 책에서, 빛 바랜 원고지에서 작가들의 살아 생전 창작 열정이 피어오르는 듯 하다. 1935년 시문학사에서 발행된 김영랑의 '영랑시집' ⓒ강사랑 사진 왼쪽 '영랑시집'(1935)의 표지 제목과 그림이 인상적이다. 활자가 아니라 날렵한 붓의 터치로 쓴 글씨라고 하는데, 표지 그림 또한 전통적인 창살 무늬를 연상케한다. 영랑시집에 수록된 시는 모두 작품 제목이 없고, 목차도 없다. 단지 페이지 번호에 맞게 작품마다 번호를 붙어놓았을 뿐이다. 마침표, 쉼표 등 구두점도 전혀 없어서 마치 강물의 흐름처럼 53편의 작품이 하나의 시상으로 전개되는 느낌을 준다. 영랑의 대표 시로 꼽히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빛같이'는 이 시집의 2번째에, '모란이 피기까지는'는 45번째에 수록되어 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시인의 얼굴과 시가 새겨진 윤동주문학관 정문.

“75년 전 떠난 시인을 기리며” 윤동주문학관 방문기

1945년 2월 16일 새벽, 낯선 일본의 형무소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하던 한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불과 6개월 뒤 이루어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일제강점기에 살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던 청년, 시인 윤동주. 75번째 윤동주 시인의 기일을 앞두고,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을 찾았다.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 ⓒ김윤재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 생활을 하며 종종 인왕산에 올랐다고 한다. 그 이유로 윤동주문학관은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세워졌다. 문학관 건물은 원래 청운아파트를 위한 수도가압장으로 1974년에 지어졌다. 하지만 청운아파트가 구조상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2005년 9월 철거되면서 2008년 가압장 역시 용도 폐기되었다. 한동안 방치되던 가압장은 청운공원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면서 임시문학관을 거쳐 2012년 7월 25일 리모델링을 마치고 정식 윤동주문학관으로 개관했다.   문학관 정면엔 시인의 얼굴과 시가 새겨져 있다 ⓒ김윤재 문학관 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바로 제1전시실 시인채가 나온다. 이곳엔 윤동주 시인의 일생을 시간 순서로 배열한 9개의 전시대가 있다.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는 물론, 백석의 시집 필사본과 정지용 시 에 써 놓은 ‘생활의 협박장이다’라는 짧은 촌평, 그리고 창씨개명의 흔적이 남은 연희전문학교 학적부와 일본에서 받은 판결문 등이 전시되어 있어 인간 윤동주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반대편 벽엔 윤동주 시인이 즐겨보던 책들의 표지가 걸려 있다. 그 아래엔 소장하던 책 안쪽에 해놓았던 서명 모음이 있고, 윤동주 시인이 신문, 잡지에 실린 자신의 시를 스크랩해 놓은 기록 역시 볼 수 있다. 전시대와 벽 사이, 제1전시실 중앙엔 시인의 고향 집에서 가져온 목판 우물이 있다. 이 이 우물의 기억에서 비롯된 시라면, 시인은 이 목판 우물 속에서 어떤 사나이의 얼굴을 보았을까 궁금했다. 목판 우물을 뒤로...
전통한옥 상촌재

서촌의 오래된 골목으로 떠난 서울 동네여행

가을바람에 붉게 물든 나뭇잎이 소리 없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가을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해설사와 함께하는 서울도보관광을 다녀왔다. 이번에 다녀온 코스는 서촌한옥마을코스로 4km 3시간 코스였다. 그동안 서촌을 여러 번 갔었지만 이번 도보관광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곳이 있어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촌골목에서 만난 잘 익은 감과 밤송이가 눈길을 끈다 ⓒ문청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해 서촌의 오래된 골목골목을 한발짝 한발짝 디뎌서 '통의동 백송터–창성동 미로미로–상촌재–송석원 터–윤덕영 집터(벽수산장)–박노수 미술관–윤동주 하숙집터–수성동 계곡–이상범 가옥–노천명 집터-이상 집'을 돌아보는 코스였다. 서촌골목은 670여 채의 한옥과 재래시장, 근대문화유산과 더불어 갤러리, 카페, 공방 등이 어우러져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길을 걷다 보니 길거리가 갤러리 인 듯 보였다. 못 쓰는 미싱 위에 잘 익은 감과 밤송이를 늘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서촌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계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문청야 서촌은 지역적으로 청계천 상류라고 하여 ‘웃대’라고 불렸고, 사대문 가운데 서쪽에 치우쳐졌다 하여 서촌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현대까지 공간적 역사성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과 예술인들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치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을 열 듯, 골목 하나에 접어들면 조금 전과는 다른 또 다른 시대로 진입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흥미를 유발시켰다. 서촌의 오래된 골목을 걷는 일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쌓인 시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면서 동시에 이 땅에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동네라 하여 최근들어 ‘세종마을’이라고 부르는 창성동 동네 골목 모습 ⓒ문청야 사대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던 북촌과 달리 서촌은 조선시대 역관이나 의관...
내(불광천)를 건너 숲(비단산)으로 가면 나오는, 은평구에 지난해 6월 새로 생긴 도서관

봄날의 소확행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갈까?

내(불광천)를 건너 숲(비단산)으로 가면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은평구에는 개성 있는 도서관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좋다. 산자락에 거대한 성채마냥 자리한 전망 좋은 ‘은평구립도서관’, 딱딱한 공공기관의 느낌보단 정다운 마을에 온 기분이 드는 ‘구산동도서관마을’, 불광천을 산책하다 들르기 좋은 ‘불광천 작은도서관’, 만화를 실컷 볼 수 있는 ‘포수마을 만화도서관’ 등등.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자전거에 올라타 어느 도서관에 갈까 고민하는 잠깐의 시간이 즐겁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시민들 이름도 독특한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은 은평구에서 가장 근래(2018년 6월)에 생겨난 도서관이다. 내(불광천)를 건너서 숲(비단산)으로 가면 나타나는 절묘한 이름의 도서관이다. ‘도서관 이름이 참 시적이구나’ 싶었더니 윤동주 시인이 지은 시 ‘새로운 길'(1938)에 나오는 시구절에서 따왔단다. 도서관 2층에 있는 시문학 자료실 알고 보니 이 도서관은 윤동주(1917~1945)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의미로 설립한 도서관이란다.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평양 숭실중학교의 후신인 숭실중·고등학교가 인근에 있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대를 살다간 시인의 민족사랑 정신과 문학을 기리고 있다. 윤동주 시인은 광복을 불과 6개월 남기고 일본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순국했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였다. 시 낭송 오디오를 통해 시를 감상할 수 있는 곳 도서관 2층에 가면 시문학 자료실과 전시실이 마련돼 있을 정도로 시와 친화적인 곳이다. 윤동주 시인의 생애와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시낭송 오디오 기기를 통해 감상하는 시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도서관 내부 구조도 시처럼 자유롭고 책 읽기 편안하다. 입시공부를 위한 열람실은 따로 없는 대신 작은 공간을 활용한 좌석들이 눈길을 끈다. 눕다시피 기대어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원형의 좌석이 제일 좋았다. 도서관에서 책 읽기 가장 편안했던 좌석 더욱 좋은 점은 도서관 이름에 나오는 ‘숲’...
윤동주 시인의 언덕

가을에 찾아간 이곳에 시인의 바람이 불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7) 윤동주 문학관 나는 윤동주 문학관 앞에서 종종 이곳에는 시인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동행한 사람들이 시인의 바람은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 때 마다 제대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서 쓴 웃음을 짓거나 우물거린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시인의 바람이 자하문 고개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에 불고 있다고 말이다. 이곳에 윤동주 문학관이 세워진 것은 자하문을 품고 있는 인왕산 자락이 윤동주가 하숙을 하던 수성동 역시 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민족 시인으로 알려진 윤동주는 1917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이 증조부 때 북간도로 건너갔다가 명동촌으로 옮겨져 정착하면서 그곳이 고향이 된 것이다. 용정으로 이주해서 중학교를 다니던 그는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거쳐서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이후 일본 유학을 떠나지만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서 1945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썼던 원고들은 후배인 정병욱이 자신의 집 마루 밑에 숨겨놨다가 1948년 유고시집인 으로 나오게 된다.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은 그의 시가 주는 순백의 고결한 느낌처럼 새하얀 색으로 되어 있다. 건물은 조금 이상한데 폐쇄된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고쳐서 2012년 문을 연 것이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면 ‘애걔~’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가운데 우물 모형이 있는 곳에 서서 둘러보면 전부 다 보일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동주 문학관은 그곳이 전부가 아니다. 한줄기 빛이 스며드는 영상전시관도 있고, 자그마한 노천카페가 있는 지붕은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부터 연결된 계단을 오르면 시인의 언덕과 만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오르면 인왕산 너머로 펼쳐진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다. 인왕산과 북악산에서 불어오는 도시에 상처...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제 3 전시실

인왕산 자락, 동주의 흔적을 따라서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제3전시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윤동주의 ‘서시’. 시인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말로 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저항의 의미를 분명 내포하고 있지만, 강하지 않은 색채와 아름다운 구절로 가슴 속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시 자체의 아름다움이 오래오래 우리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윤동주문학관 전경 그의 시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하늘과 바람과 별이 함께하는 곳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윤동주 문학관.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문우 정병욱과 함께 하숙 생활을 했다. 당시 시인은 종종 인왕산에 올랐다고 한다. 그 당시 썼던 시들이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이다. 그가 시정을 다듬었던 바로 그곳에 그를 기리는 문학관이 생긴 것이다. 시인 생가에 있던 우물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서면 9개의 전시대에 시인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한 사진 자료들과 함께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된 제1전시실, 시인채를 만나게 된다.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시인 생가에 있던 우물이 있다. 이 우물 옆에 서면 동북쪽 언덕으로 윤동주가 다닌 학교와 교회 건물이 보였다고 한다. 이 우물에 대한 기억은 그의 대표작 ‘자화상’을 낳게 된다. 윗부분이 개방된 작은 야외 공간 시인채에서 다음 전시실로 문을 열고 나서면 작은 야외 공간이 나온다. 예전 물탱크로 사용되었던 윗부분을 개방하여 만든 제2전시실, 열린 우물. 시인의 생가에 있던 우물을 모티브로 만든 공간이다. 물탱크에 저장되...
시간을 되돌리는 여행지 서울 부암동

[여행스토리 호호] 부암동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시간을 되돌리는 여행지 서울 부암동 호호의 유쾌한 여행 (42) 부암동 청와대 뒤편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 골짜기에 자리한 부암동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서울의 숨은 보석과도 같은 동네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거쳐가며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이 동네는 동네가 품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그 때문에 영화,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부암동에만 서면 시간이 멈춘 것 같습니다. 윤동주가 남긴 하늘과 별, 바람, 시 ‘윤동주문학관’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윤동주문학관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문학관이 부암동에 있습니다.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암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2012년에 개관했습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지금의 서촌)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 머물면서 종종 인왕산에 올랐다는 에피소드에 착안해 서촌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청운동 인왕산 자락 아래 문학관을 짓게 되었습니다. 문학관은 종로구에서 운영합니다. 1층 전시실에서는 시인의 순결한 시심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9개의 전시대에 시인의 인생을 시간적 순서로 나열한 사진자료와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2전시실은 폐기된 물탱크 윗부분을 열어 만든 곳으로 ‘열린 우물’이라 불립니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습니다. 물탱크의 지난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둠으로써 시와 연계된 명상 공간을 겸합니다. 제3전시실은 또 다른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둔 ‘닫힌 우물’로 윤동주의 시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폐기된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전시실 1~3전시실까지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물탱크가 주는 시간의 무게와 윤동주라는 청춘이 남긴 시대와 삶의 아픔, 무게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독특한 문학관입니다. 물탱크 벽에 영상을 쏘아 감상하는 제3전시실은 공간 자체가 주는 폐쇄성, 한줄기 빛, 청춘의 나이에 으스러진 윤동주의 삶이 또 다른 여운과 감동을 남깁니다. 윤동주 시인의 ...
연세대학교 `윤동주 기념관` 앞에 자리한 윤동주 시비 ⓒ최은주

‘윤동주 기념관’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연세대학교 `윤동주 기념관` 앞에 자리한 윤동주 시비 올해는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노래했던 시인이 써내려간 시는 반세기가 흘렀어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려서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윤동주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다. 국내외 문인들의 작품을 탐독하던 그는 책을 읽다가 가슴이 답답해지면 해가 질 때까지 주변을 산책하며 시를 구상했다 한다. 우리에게 사랑받는 많은 시들이 그 시절에 지어졌다. 윤동주가 남긴 흔적들을 찾아 ‘윤동주 기념관’이 자리한 연세대학교 핀슨관을 방문했다.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윤동주 기념관’이 있는 핀슨관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지나 낮은 언덕을 오르자 돌로 지은 아담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돌벽과 그 위를 덮고 있는 담쟁이 식물들을 보니 유서 깊은 건물들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핀슨관이었다.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윤동주 기념관` 핀슨관 2층에 있는 ‘윤동주 기념관’은 규모는 작지만 연희전문학교 시절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재현해 놓은 책상과 조그만 의자가 눈길을 끈다. 도스토옙스키 책이나 ‘실낙원’, ‘성경’ 등 문학청년 윤동주 시인이 읽었던 책들도 볼 수 있다. 연희전문 시절 윤동주와 후배 정병욱 사진(좌), 재현해 놓은 윤동주 시인의 책상(우) 벽에는 한글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윤동주 시의 초고들이 전시돼 있다. 한글 사용이 금지된 시대에 우리 한글로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시인의 단단한 마음이 엿보였다. 한글로 시를 지었기에 당했던 억압은 윤동주의 학적부 이름 위에 선명하게 그어진 빨간줄로 남아 있다. 옷에 잡힌 주름도 참기 힘들어 했던, 시가 쉽게 써지는 것조차 부끄러워했던 시인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위해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져왔다. 한글로 시 짓기...
도봉역사문화길의 풍경. 김수영문학관은 물론, 연산군묘, 정의공주묘까지 둘러볼 수 있다

도봉구 명소 ‘김수영 문학관’을 가다

도봉역사문화길의 풍경. 김수영문학관은 물론, 연산군묘, 정의공주묘까지 둘러볼 수 있다 저항 시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아마도 최근 영화로 재발견된 윤동주 시인이 아닐까 싶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광복 이후에도 저항 시인이 있었다. 정치적 암흑기를 겪으며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세태에 펜으로 대항한 시인. 1960년대의 암울한 시대상에 저항하고 자유를 갈망했던, 중의적인 표현 속에 자신의 모든 감정을 실었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시인, 김수영. 김수영 시가 좋다는 칭찬을 들으면 꺼끌꺼끌한 모래처럼 거칠게 시를 한 편 새로 썼을 정도로, 시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그야말로 ‘거칠었던’ 사람이다.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쿠데타를 거치면서 그의 시는 점점 대담하게 언론의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의 시는 자아성찰적으로, 또 자아성찰을 넘어서서 사회 모두를 성찰하는 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런 그를 조금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문학관이 도봉산자락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쌍문역에서 버스로 10여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다. 명시로 일컬어지는 ‘풀’,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 등의 육필 원고를 볼 수 있고, 등단 당시의 원고와 4·19 혁명 직후부터 변하기 시작한 그의 문체를 비교할 수 있다. 그의 생애가 잘 드러난 제1전시실 제1전시실은 그의 문체에 대한 대략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그가 당시의 정치적 부조리, 4·19 이후의 사회 혼란과 5·16 쿠데타를 겪고 좌절하는 모습을 통해 ‘자유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쓴 육필연고가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다 또 그가 즐겨 썼던 시어를 이용해 간단한 시를 지어볼 수 있는 자석판과 그의 시를 낭독해 볼 수 있는 곳이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전시관 안에서는 내내 그의 대표작인 ‘풀’을 낭송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제1전시실을 뒤로하고 제2전시실로 올라오면 그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놓은 공간이 있다. 의자 네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