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근처에 있는 기억의 터

“잊지 않겠습니다” 명동에서 만난 ‘기억의 터’

명동 근처에 있는 기억의 터 ⓒ김진흥 10월 어느 날, 휴대폰에 알림이 울렸다. 서울시 유튜브에서 새로운 동영상이 게재됐다는 내용이었다. ‘기억의 터,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서울영상크리에이터의 게시물을 시청한 필자는 바로 명동 근처에 있는 ‘기억의 터’로 향했다. ☞서울영상크리에이터 영상 보기 : https://youtu.be/EvGZjAuDBXI 명동역 1번 출구 근처에 노랑나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김진흥 기억의 터는 2016년 8월 29일, 서울 중구 남산공원 옛 통감관저 터에 조성된 곳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전세계적 여성 문제로 떠올랐지만 서울 시내에 그 아픔을 기리는 공간이 없다는 지적과 반성에서 설립이 추진됐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의 성욕 해결, 성병 예방, 치안 유지, 강간 방지 등을 위해 일본군 점령지나 주둔지 등 위안소에 배치한 여성들을 말한다. 즉, 일본군이 성노예로 강제 징용한 여성들이었다. 당시 일본군의 반인륜적인 행태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들 중 하나다. 지금도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수많은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김진흥 기억의 터는 통감관저 터에 위치했다. 조선총독부의 전신인 통감관저는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통감이 한일강제병합을 체결한 장소다. 110년 전, 경술국치의 현장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당시 치욕의 역사를 지켜 본 400년 넘은 두 그루의 나무가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동참했다. 반인륜적 전쟁 범죄 피해자였지만 당당히 평화 인권 활동가로 활약한 할머니들의 메시지를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2016년 사회단체, 독립운동가 후손 등이 모여 ‘기억의 터’ 조성 국민모금을 시작했다. 시민들도 이에 함께해 19,755명이 후원했다. 대지의 눈 ⓒ김진흥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진흥 기억의 터 조성에 참여한 임옥상 화백은 기존의 억압과 폭...
남산 '기억의 터'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글과 그림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남산 ‘기억의 터’

남산 '기억의 터'로 가는 진입로 입구 ⓒ윤혜숙 4호선 명동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왼쪽에 남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있다. 오른쪽 담벼락에 노랑나비 떼에 둘러싸인 ‘기억의 터’라는 표시가 보인다. 격자무늬의 나무판 사이에 타일로 만든 작품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또박또박 눌러쓴 글이 보인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회한이 서려 있는 글 ⓒ윤혜숙 "17세의 소녀가 67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회한이 서려 있는 글을 읽으니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나라는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 끌려간 어린 소녀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비단 어린 소녀들뿐만이 아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갔던 이름 없는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만큼 힘든 세월을 버텨온 분들이 있을까? ⓒ윤혜숙 남산 ‘기억의 터’로 올라가는 길은 오르막이다. 얼마나 걸어가야 '기억의 터'가 나오려나? 그런 생각이 들 때 담벼락에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보다 더 멀지 않은 길이예요'라는 문구가 보였다. 몇 걸음을 더 걸어가니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보다 더 힘들지 않은 오르막이에요'라는 문구도 나왔다. 그렇다. 지금 필자가 힘들다면서 올라가는 이 길조차 위안부 피해자로서 만신창이가 되어 귀환한 할머니가 평생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지내 온 험난했던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지금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숫자 ⓒ윤혜숙 도로 건너편 공사장 담장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역사가 숫자로 짧게 기록되어 있다. 지금 생존해 계신 할머니는 19분이다. 지나간 역사를 증언해 주셨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한을 풀어드려야 할 텐데 일본 정부는 그들이 저지른 과거의 만행을 반성할 줄 모른다. 남산 '기억의 터'로 가는 길 바닥에 노랑나비가 이정표가 되고 있다 ⓒ윤혜숙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가니 길 바닥에 노랑나비가 이정표 역할을 해준...
서울시청 청사

[설명자료]”정의연, 서울시 보조금 일부 ‘밥·커피 값’으로 썼다”

"정의연, 서울시 보조금 일부 '밥·커피 값'으로 썼다"(2020.06.25.) ◆ 시 보조금 중 일부를 "기림비 설치사업에는 아예 쓰이지 않고, 식비와 간식비 등으로 썼다"는 기사 내용과 관련 ○ 서울시는 '기림비 설치사업'을 위해 ①기림의날 사업 공모 → ②사업자 선정(심의회 심의 등) → ③사업협약 및 사업계획서에 따라 추진함. - 협약서 상 사업범위는 ▲'위안부' 기림비 설치, ▲제막식행사 개최, ▲홍보 뿐만 아니라, ▲ 시민사회참여 역사프로그램 개발 등이 포함되었음 ○ '기림비 설치사업(8천5백만원)'은 설치비(성평등기금)로 3천5백만원, 제막식 행사 비용 등으로 5천만원(민간경상사업보조비) 집행함. ○ 이 중, 식비·다과비 등은 '기림비 설치 사업' 일환으로 추진한 시민사회참여 역사프로그램 개발의 필요경비로, 보조금사업 기준단가(식비 8,000원 / 다과비 4,000원)에 맞추어 적법하게 집행한 것임. 문의전화: 02-2133-5023 ...
서울시청 청사

[설명자료]“[사설]시민단체가 정부 돈·요직의 통로가 된 비정상사회”

“시민단체가 정부 돈·요직의 통로가 된 비정상사회”(2020.06.09.) ◆ “서울시는 남산에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를 세우며 정의연에 수천만원을 지급했는데, 비에 새겨진 명단에서 정의연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피해자들 이름이 빠져 있는 것이 최근 확인됐다.” 보도 관련 - ‘위안부’ 피해자 명단은 남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중구 회현동1가 100-266)에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2016년에 조성된 ‘기억의 터’(중구 퇴계로 26가길 6)에 새겨져 있음 - 당시, ‘기억의 터’는 민간이 주도하는 가 주축이 되어 조성하였으며, 서울시는 부지 등을 제공하였음 - 또한, 남산 ‘위안부’피해자 기림비는 2019년 샌프란시스코 교민 등의 모금으로 제작된 기림비를 기증받아, 설치한 것임 문의전화: 02-2133-5023 ...
아늑한 공간이 돋보이는 기억의 터 전경. 남산공원으로 연결되는 돌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그들을 기억하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후원금 사용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오해를 풀고 시비를 제대로 가리는 일은 간과할 수 없겠으나 결코 위안부 인권운동을 제약하려는 빌미로 악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즉시 성찰하고 흔들림 없이 위안부 인권운동에 매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퍼뜩 떠오른 곳이 있었다. 며칠 전 모처럼 중구 예장동 남산 기슭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를 다시 찾았다. 기억의 터는 일본 제국주의 강점 치하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치욕과 굴욕의 역사를 각인하자는 뜻에서 마련된 공간이다. 지난 2016년 8월 29일 각계의 뜻 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 서울시의 협조로 조성되었다. 기억의 터가 자리한 곳은 일본 통감관저가 있던 곳이고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테라우치 일 통감이 한일병탄조약을 체결한 국치의 장소이기도 하다. 명동역 부근 언덕길 '나비로’에 노란나비 모양 기억의터 안내 표식이 설치되어 있다. ©염승화 기억의 터를 가려고 지하철 명동역 1번 출구로 나왔다. 이곳에서 기억의 터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거리다. 남산 방면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에 이르자 길가 축대에 부착되어 있는 생소한 조형물들이 눈에 띄었다. 노란나비 모양을 한 기억의 터 안내 표지들이다. 길 맞은편 벽면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들이 살아온 역사보다 더 힘들지 않은 오르막’, ‘노란나비는 총 몇 마리일까요?’ 등 화살표 방향 표지에 적힌 문구들과 그림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이른바 ‘나비로’로 불리는 언덕길을 올랐다. '노란나비를 따라서 할머니들을 만나러가요' 소방재난본부 앞 거리 안내 표식©염승화 기억의 터 앞 좌우에는 마치 문지기처럼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노거수가 우뚝 서 있다. ©염승화 남산공원에 들어서면 곧바로 목적지인 기억의 터가 눈앞에 보인다. 공원 초입 좌우에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신록 울창한 이파리로 숲을 가득 이룬 채 우뚝 서 있다. 수령 400년이 훨씬 더 된 보호수들이다. ...
1.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가 세워졌다.

진정한 봄을 기다립니다…왕십리역 ‘평화의 소녀상’

흰 LED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의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방윤희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는 앳된 얼굴의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성동구 왕십리 광장 사랑의 시계탑을 지나며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소녀의 얇은 저고리 위로 목을 살포시 감싼 망토와 털실로 짠 귀마개를 해준 모습에 온기가 전해진다. 겨우내 털 목도리가 잠시 추위를 덮어주었으리라 위안을 삼아본다. 또 한 차례의 겨울을 이겨내셨구나. 왕십리역은 ITX청춘의 정차역이자 2호선과 5호선, 경의중앙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곳이다. ⓒ방윤희 왕십리역은 ITX청춘의 정차역이자 2호선과 5호선, 경의중앙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곳이다. 다양한 집객시설 및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한 곳이다. 이 분주한 역사 5번 출입구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했다.  자석에 이끌리듯 소녀상 앞에 서니 지난해 별세하신 김복동 할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했던 인권평화 운동가이다. 모진 세월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는데, 끝내 소원을 지켜드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왕십리역 5번 출입구에서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를 만날 수 있다. ⓒ방윤희 왕십리 광장에 건립된 평화비는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해준다. 일제강점기에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소녀들. 평화의 소녀상은 피와 눈물로 쓰인 역사적 진실을 기리기 위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할 때까지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해 놓은 곳이다.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가 세워졌다. ⓒ방윤희 기자는 ‘위안부’라는 말을 쓰면서 작은따옴표를 붙였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의 사전적 의미가 ‘안식을 주고 위안을 준다’라는 뜻인데, 작은따옴표를 붙이지 않고 그냥 표기할 시 그 뜻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일본 측 입장의 표현’이...
남태평양 트럭섬의 조선인 '위안부'

‘위안부’ 기록 디지털화…서울기록원 홈페이지 공개

남태평양 트럭섬의 조선인 '위안부' 서울시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 관련 기록을 디지털 기록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공개한다. 서울시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정진성 연구팀(이하 ‘서울대 연구팀’)이 2년여 간의 발굴 조사 끝에 최초로 공개한 한국인 ‘위안부’ 영상부터 남태평양 축제도(트럭섬)에도 ‘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사진, 미‧중 연합군 문서 등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디지털 기록화 됐다. 현재 서울기록원 홈페이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은 문서 104건, 사진 32건, 영상 2건이다. 시는 향후에도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이 발굴한 자료를 더 업로드할 예정이다. 시민 누구나 온라인에서 검색할 수 있고 내려받기도 가능하다. 서울시는 서울대 연구팀과 함께 2016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관계 연합군 자료를 발굴‧수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으며, 최초의 한국인 ‘위안부’ 영상 발굴, 남태평양 축제도 ‘위안부’ 피해자인 이복순 관련 기록 발굴 등 자료발굴에서 성과를 내왔다. 또한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와 같은 대중서 발간과 올해 3월에는 ‘기록 기억: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 전시회 개최해 시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넓히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일본군‘위안부’ 디지털 아카이브 이용 설명회 포스터 한편 서울시는 서울대 연구팀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디지털 아카이브 이용설명회: 일본군 위안부 기록 읽기, 기억 잇기‘(이하 ‘이용설명회’)를 10월 25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서울기록원에서 개최한다. 이용설명회는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이 서울기록원을 통해 제공하고 있는 ‘위안부’ 관계 연합군 자료의 축적 및 아카이빙 현황을 소개하고, 서울기록원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위안부’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직접 시연해 보는 자리도 마련했다. 관심 있는 시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문미란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이번 행사는 피해자 중심의 관점에서...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볼 수 있는 방문객들의 메모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만난 그날의 역사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볼 수 있는 방문객들의 메모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으로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행사와 여러 전시들이 많다. 특히 요즘 일본과의 무역분쟁으로 인해 한일 양국간의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공부하려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 중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도 있듯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위안부에 대해 공부해보는 것은 어떨까. 화살표 표지판을 따라가면 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다 위안부와 관련된 정보와 역사를 담고 있는 곳으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있다.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면 노란색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주택가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바로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화살표 표지판을 따라가면 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다. 박물관으로 가는 골목길에는 위안부와 관련된 벽화가 눈에 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를 포함해서 그림벽화, 방문객들의 편지 등이 전시돼 있다. 이 편지는 박물관 관람이 끝난 후 편지를 적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으니, 편지를 남기고 싶다면 관람 후 작성하여 나갈 때 매달아 놓으면 된다. 박물관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할머님들의 속마음이 담긴 글귀 벽화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바로 티켓을 살 수 있는 창구가 보인다. 현금, 카드는 물론 제로페이로도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다.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 65세 이상인 어르신, 장애인은 모두 1,000원이다. 관람료는 박물관 운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및 전시여성 폭력 중단을 위한 활동에 쓰인다고 한다. 티켓을 구매하면 티켓과 함께 오디오기계를 배부하는데, 이어폰도 대여가 가능하나 귀 모양에 따라 불편할 수 있으므로 개인 이어폰을 지참하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블루투스 이어폰은 해당 기계와 호환이 되지 않으므로 줄 이어폰을 가져가야한다. 티켓 뒷면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의 사...
“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라며 오랜 침묵의 벽을 깼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옛 조선신궁 자리, 남산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

“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라며 오랜 침묵의 벽을 깼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는 여전히 너무도 아픈 사실이다. 할머니의 증언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연대하며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오후 옛 조선신궁이 자리하던 남산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음악극 ‘갈 수 없는 고향’으로 문을 연 기념식은 숙연하지만 희망과 기쁨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제가 우리 나이로 92살인데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 아베한테 사죄받기 딱 좋은 나이”라고 외치며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고령이 무색하게 정정한 목소리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며 위안부 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도록 참여를 부탁했다. 이날은 특히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제작한 기림비를 서울시에 기증한 샌프란치스코 교민들이 자리를 빛냈다. 이미 2017년 샌프란치스코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운 바 있는 ‘김진덕 -정경식 재단’이 이번에도 뜻깊은 동상을 세우는 데 주축이 되었다. 재단 설립자 김한일 대표 역시 “할머니들이 바라는 두 가지 소원은 일본의 사과와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라며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서명에 참여해주기를 촉구했다. 또한 중국계 판사 출신으로 미국의 다인종 단체 연합체인 위안부정의연대 (CWJC)의 공동의장인 릴리안 싱, 줄리 탕도 참석해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학살과 만행이 있었다”며 “앞으로도 함께 손잡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마이크 혼다 전 미국 하원의원도 함께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기림비는 시민들과 더 친숙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동상...
14일 남산 조선신궁터 부근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 제막식이 열린다

남산 옛 조선신궁 터에 ‘위안부’ 기림비 세운다

14일 남산 조선신궁터 부근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 제막식이 열린다 일제 침탈의 아픔을 간직한 남산 조선신궁터 부근(남산도서관 옆, 회현동1가 100-266)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투쟁, 용기를 기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이 세워진다. 남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은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손을 맞잡은 160cm 크기의 세 명의 소녀(한국‧중국‧필리핀), 이들의 모습을 19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평화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실물 크기로 표현한 작품이다.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자,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3시 제막식을 갖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을 시민에게 첫 공개한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로 매년 8월 14일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1924~1997)가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인 1991년 8월 14일을 상징한다. 해당 기림비 동상은 지난 2017년 미국 대도시 최초로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지며 전 세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린 샌프란시스코의 교민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제작해 서울시에 기증한 것이어서 의미를 더한다.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건립에 큰 역할을 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비영리단체인 ‘김진덕‧정경식 재단’이 시에 기증을 제안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추진됐다. 이후 교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작년부터 올해 6월까지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기림비 동상 제작이 이뤄졌고, 지난 7월 부산항을 거쳐 서울로 왔다. 제작부터 선적까지 일체의 비용은 ‘김진덕‧정경식 재단’이 부담했다. 작가 역시 샌프란시스코에 설치된 기림비 동상을 만든 작가와 동일하다. 미국의 조각가 스티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