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공동위원회 당시 소련군 대표단 숙사 (주한 미합동군사업무단)

110여년 금단의 땅 ‘용산기지’는 어떻게 바뀔까?

미소 공동위원회 당시 소련군 대표단 숙사 (주한 미합동군사업무단) 110여년 이상 금단의 땅이었던 용산기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용산구에 위치한 용산 미군기지는 2017년 말 대다수 미군들이 평택시로 이전하며, 지난해부터 일부지역이 공개되었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용산문화원 홈페이지를 통해 매달 3~4회에 걸쳐 신청한 시민 중 무작위 추첨으로 70여 명을 선발해 버스투어를 진행해왔다. 앞선 4월에는 벚꽃놀이를 겸한 특별투어가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는 용산에서 마지막 불꽃놀이가 될지 모를 행사와 함께 야간개방이 진행되었고, 운 좋게 참가할 수 있었다. 121 병원 국립중앙박물관 너머로 살짝 보이는 시민의 땅, 그렇지만 갈 수 없었기에 용산기지는 언제나 궁금했었다. 설렘을 갖고 신분증을 지참한 뒤, 준비 된 버스를 타고 신용산역과 가까운 14번 게이트를 통해 들어갔다. 직접 본 곳은 생각보다 넓었다. 해설사의 상세한 설명과 사진을 보니 이해하기 더욱 쉬웠다. 버스에서 옛 육군본부 벙커가 있던 사우스 포스트 벙커와 일제강점기 초호화 건축물인 용산 총독관저가 위치했던 121병원을 보았다. 사우스 포스트 벙커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사령부 방공작전실로 사용되었으며. 6.25전쟁 직전에는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보작전실로 이용된 곳이다. 총독관저는 개인용으로 지었지만 하루에 전기료가 당시 400원으로 너무 비싸서 주로 연회장소로 이용했다. 6.25 총탄이 보이는 위수감옥(좌), 막아 놓은 시구문(우) 참가자들을 태운 버스는 일제강점기 용산 위수감옥(이태원 육군형무소)에서 정차했다. 붉은 벽돌이 특징인 이곳은 6.25 전쟁 당시 벽돌 총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다. 시체를 내가는 시구문 이야기를 하자 듣던 참가자들이 작은 소리를 질렀다. 시구문이라 해도 사형이 거의 없어 미군이 막아 놨다. 위수감옥은 일본 헌병보조원이던 강기동 선생이 의병을 탈출시키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총살형을 당한 곳이다. 한국...
용산공원 갤러리

용산에 이런 곳이? 알려지지 않은 명소 5곳

‘용산’이란 이름의 유래를 두고 백제 기루왕 21년에 한강 위로 두 마리 용이 나타났다는 설화와 용 형상의 주변 산세를 보고 이름 지었다는 두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물인 ‘용’을 품은 곳답게 용산구에서는 비범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다. *매달 구(區) 한 곳을 선정해 새로 생긴 명소와 알려지지 않은 문화 명소를 소개합니다. 114년 만에 공개된 금단의 땅 용산공원 갤러리가 개관하면서 114년간 굳게 닫혀 있던 주한 미군용산기지의 빗장이 열렸다. 용산기지는 1904년 일본이 용산 일대를 조선주차군사령부 주둔지로 사용하면서 출입을 금지했다. 광복 후에는 미군이 사용중인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용산공원에 대한 공론화 계기와 시민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자 지난 8월 미군 측에 공동 전시를 제안했다. 원만한 협의 끝에 용산공원 갤러리는 용산 캠프 킴(Camp Kim)부지 내 옛 USO(미군 위문협회) 건물에 조성되었다. 이 건물은 약 110년 전인 1908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일제강점기엔 일본군 창고 사무소로, 한국전쟁 이후부터 2018년 8월까지는 미국위문협회로 운영되었다. 이로써 근현대 역사와 함께 미군 기지 건물 중 첫 번째로 시민에게 개방한 특별한 의미까지 더해졌다. 용산공원 갤러리에는 73년간 이어진 한미 동맹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사진, 지도, 영상 등 총 60여 점이 전시되었다.용산기지 역할, 한국전쟁 후 지난 65년간 서울의 발전과 함께한 주한 미군과의 관계와 공생 과정을 담았다. 이는 용산기지 내 주한 미군의 삶과 기억을 존중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용산기지는 용산공원으로 바뀌는데, 용산공원 갤러리가 완전 반환의 첫 단추인 셈이다. 앞으로 용산공원이 탄생하기까지 남아 있는 많은 ‘단추’를 잘 끼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용산공원 갤러리○ 주소 : 용산구 한강로1가 1-1 캠프 킴 부지 내 옛 USO 건물 ○ 관람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