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0년을 맞아 기념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하얼빈 의거 110주년,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내에 전시된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 사진 ⓒ염승화 1909년 10월 26일은 독립운동가 안중근(1879.9.2.~1910.3.26.) 의사가 일본제국주의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날이다. 올해로 어느덧 110년을 맞는다. 안중근 의사는 19세기 말기에 태어나 1910년 순국할 때까지 31년 짧은 일생을 그야말로 굵직하게 살다가셨다. 비록 생은 길지 않았으나 남긴 업적은 위대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 외에도 삼흥학교, 돈의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계몽운동 추진과 인재 양성, 광산회사 삼합의 설립과 산업진흥운동 매진, 동의단지회를 위시한 항일 의병조직 결성과 독립 투쟁 등으로 대변된다. 안중군 의사 기념관 전경 ⓒ염승화 거룩한 의거 110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는 국가보훈처로부터 2019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이를 기념하며 안 의사의 숭고한 뜻을 새삼 살펴보고자 그 발자취를 쫓아보았다. 안 의사의 흔적을 가까이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곳은 남산 자락에 있다. 일제가 그곳에 세우고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려한 옛 조선신궁 터다. 그곳에는 지금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는 탄생부터 순국까지 그의 모든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다 ⓒ염승화 안중근 의사에게 서훈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염승화 기념관 앞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동상 ⓒ염승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이 땅의 독립을 위해 평생 몸과 마음을 바치다가 순국하신 안중근 의사를 기리고 올곧은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는 공간이다. 1970년에 처음 세운 옛 기념관을 거쳐 현재의 기념관은 2010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그곳에는 안중근 의사의 일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안 의사 초상화 등 관련 사진, 당시의 공판 소식이 담긴 신문 기사, 안 의사가 생전에 남긴 붓글씨,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한, 사후에 받은 건국훈장 등 관련 유물과 자료 등이 총 망라되어 있다. 유품 가운데 안 의사가 직접 쓰거나 그린 유묵들...
용산구 백범 김구 기념관

3.1절 기념해 꼭 한번 가봐야 하는 ‘기념관’ 3곳

용산구 백범 김구 기념관 호호의 유쾌한 여행 (129) 3.1운동 100주년 기념 -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서 2019년은 삼일절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3·1절은 3·1 운동을 기념하여 제정된 대한민국의 국경일입니다. 서울은 당시 항일 민족운동의 중심지였는데요. 3·1절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라 길을 나서봅니다. 자주독립을 위해 피땀 흘린 순국선열의 정신을 기리고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함께 살펴보는 코스입니다. 기념관 정문 대형 태극기 앞에 백범 선생 좌상 근대 인물 중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백범 김구. 선생의 일생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담겨있습니다. 서울 용산구에 백범 김구 기념관이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백범 김구 선생과 여러 순국선열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장소입니다. 백범 기념관 정문으로 들어서면 대형 태극기 앞에 백범 선생의 좌상이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흉상 백범 김구 기념관 전시실은 크게 2개 층으로 구성됩니다. 1층 전시실에서 김구선생의 유년 시절부터 독립운동까지 활동을 살펴봅니다. 2층 전시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 활동, 광복에서 서거까지의 주요 사건을 전시합니다. 전시실 한쪽에는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창가 너머 백범의 묘소가 보입니다. 전시를 통해 민족정신으로 세상의 빛을 비춘 백범 김구의 삶을 돌아보고, 광복 전후의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살펴봅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 남산 자락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습니다. 중앙홀에는 안중근 의사의 대형 좌상이 있고요. 동선을 따라 전시가 이어집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인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린 민족의 영웅입니다. 평화를 위해 헌신한...
안중근의사 동상을 비롯해 남산 곳곳에는 독립운동가의 동상 및 시비 등을 만날 수 있다

가슴 뭉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안중근의사 동상을 비롯해 남산 곳곳에는 근현대사의 기억을 만날 수 있다 함께 서울 착한 경제 (106) 광복절 맞이 남산 일대 역사여행 8월 15일은? 광복절! 그렇다면 8월 29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광복절이야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29일이 경술국치일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29일은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 또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는 한일병합조약을 공포한 날이다.​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나라를 되찾은 것일까, 나라를 빼앗겼던 치욕스런 과거일까? 일제의 잔혹한 만행일까? 독립을 위한 의지일까? 진정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서울 남산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았다.​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을 찾아서... 역대급 폭염이라지만, 남산의 짙은 녹음 아래로 들어서니 더위가 조금 가시는 듯하다. 서울유스호스텔로 향하는 굽은 길을 따라 오르자니, 저만치 커다란 은행나무 뒤로 강렬한 여름 햇살을 가득 품은 조형물들이 보인다.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곳, 통감관저가 있던 곳이다.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은 이곳 통감관저 2층에서 당시 통감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다. 앞서 창덕궁에서 조약안을 순종 황제에게 보이고 각 조항을 설명하고 가결하는 어전회의를 거치긴 했지만, 형식적인 회의일 뿐이었다. 조약 조인 사실은 일주일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29일 국원양여에 대한 순종의 칙유와 함께 반포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통감관저는 1890년대 후반 일본공사관 용도로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했던 왜성대라 하여 이곳에 자리 잡았다는데, 1885년 맺은 한성조약에 따라 일본공사관 부지로 내준 것이다. 일본공사관으로 쓰이던 건물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 체결로 통감부가 되었다. 일본인 통감이 외교 사무를 대행한다는 것인데, 통감부는 실제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설치한 감독 기관...
안중근 의사 대형 좌상 ⓒ김수정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이다’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 의사 대형 좌상 “나는 천국에서도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뤼순감옥을 찾아온 동생들에게 남긴 안중근 의사 유언 중 일부이다. 도마 안중근 의사(安重根 義士, 1879.09.02~1910.03.26.)는 대한제국 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제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여 조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힌 민족의 영웅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2010년 유품과 자료 전시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평화 사상을 널리 알리고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기념관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 12개 기둥 형태는 단지동맹을 결성한 12명의 독립투사를 상징한다 우윳빛 유글라스(U-glass) 12기둥 형태의 독특한 건물 외양은 안 의사와 함께 대한독립을 맹세하고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한 12인을 상징한다. 12개 기둥 중 하나는 투명 유리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안중근 의사를 상징한다. 아이들과 함께 기념관을 찾는다면 이 투명 기둥을 찾아보는 것도 뜻 깊은 관람이 될 것 같다. 기념관은 제1, 2, 3전시실, 기획 및 체험전시실, 추모실 그리고 광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1층 제1전시실부터 지상 2층까지 차례로 관람하는 것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안중근 의사 대표적 유묵(遺墨,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과 단지동맹회 동지 혈서 내용을 새긴 벽을 따라 내려가면 입구가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만날 수 있는 것은 안중근 의사 대형 좌상이다. ‘대한독립(大韓獨立)’이란 혈서 아래 홀 중앙에 자리했다. 도마 안중근 의사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입장 시 참배하는 곳으로, 거대한 안중근 의사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시대적 배경 제1전시실에는 안중근 의사 생애와 반동학군 투쟁, 빌렘 신부와 천주교 입교, 교육운동과 국채보상운동 등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떻게 의사가 ‘도마(Thoma...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은 시민이 안중근의사의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뉴시스

“초콜릿 대신 역사” 안중근 의사를 잊지 마세요!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은 시민이 안중근의사의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달콤했던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날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 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지난 1909년 10월26일 오전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일제는 안중근 의사를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하고, 3월 26일 처형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인물, 안중근 의사를 떠올릴 수 있는 시설과 공연 등을 안내합니다. ※ 파란색 글자를 클릭하시면 관련 정보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은 학생들이 외부를 둘러보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작년 8월 2일 전시실과 강당 등을 리모델링하고 재개관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2010년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는 12개의 직사각형 건물. 12란 숫자는 안중근 의사와 함께 무명지를 잘라 ‘단지동맹’한 12명을 뜻한다. 기념관은 지하 2층에서 2층까지 있는데, 지하 1층에 들어서면 안중근 의사의 대형좌상을 만날 수 있다. 제1전시실에 가면 그의 성장 배경 등을 볼 수 있고, 제2전시실에서는 본격적인 활동 모습을 볼 수 있다. 제3전시실은 2층에 위치해 있는데, 하얼빈 의거부터 시작한다. 재개관 이후 저격사건 및 법정투쟁과 여순감옥 재현 모형이 생겨 당시를 더욱 실감나게 전달한다. 법정투쟁과 옥중에서 남긴 글들도 볼 수 있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탁본으로 찍어보고 단지동맹 혈서엽서 보내기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 전시실이 있다. 마지막에 있는 추모실은 촛불 영상을 보며 조용히 묵념할 수 있도록 꾸몄다. 자세한 사항은 안중근의사기념관 홈페이지 또는 전화(02-3789-1016, 1026)로 문의하면 된다. ■ 안중근의사기념관 ○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91(남대문로5가 ...
단지동맹 12인을 기리며 12개의 박스 건물로 설계한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이 12개 건물인 이유는?

단지동맹 12인을 기리며 12개의 박스 건물로 설계한 안중근의사기념관2016년 9월 2일은 안중근의사가 탄생한 지 137주년이 되는 날이다.지난 8월 2일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전시실과 강당 등 리모델링을 끝내고 재개관했다. 소식을 듣고 남산공원을 찾았다.기념관이 있는 대지는 신사참배를 강요받던 조선신궁이 있던 터였으며 공사비의 약 5분의 1을 시민들의 성금으로 지었다.2010년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는 12개의 직사각형 건물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마치 기념 비석과 같이 낮에는 당당하게 땅을 밟은 기세로 밤에는 은은한 빛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12란 숫자는 안중근의사와 함께 무명지를 잘라 ‘단지동맹’한 12명을 뜻한다. 그들이 함께 역사 깊은 대지 위에 굳건히 서있는 형태가 결의에 차 보인다.기념관은 지하 2층에서 2층까지 있다. 지하1층에 위치한 입구에 들어서면 안중근의사의 대형 좌상이 있다. 왼편에는 설치미술가 강익중과 서경덕교수의 알록달록한 작품이 보인다. 손으로 안중근의사 말씀 80자를 한 자씩 그려 넣어 울림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안중근의사의 대형 좌상이 있는 참배홀참배홀을 지나 제1전시실에 가면 안중근의사의 성장 배경 등을 볼 수 있다. 재개관으로 훈장을 전시하는 곳이 넓어졌으며 기존 한 개만 진열되었던 훈장이 네 개로 늘어났다. 안중근의사 가족은 총 15명이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전시를 보고 일화를 읽으니 과연 안중근의사의 출생과 성장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안중근의사 사진, 부조, 전언 등이 있는 상징 공간1층으로 올라가면 제2전시실이 나온다. 안중근의사의 본격적인 활동 모습이 펼쳐진다. 안의사는 천주교에서 ‘토마스(도마)’라는 세례명을 받고 신앙생활과 전파활동을 했으며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하는 등 교육운동에 앞장섰다. 또한 국채보상운동, 의병투쟁, 동의단지회 등의 많은 활동을 펼쳤으며 1907년 국외 망명을 떠나 동의단지회를 조직하며 해외활동에 적극 동참했다.2층에 위치한 제3전시실은 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