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문학관

감탄이 절로! 시인의 언덕에서 즐기는 전통춤 이야기

푸르른 산자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알록달록 고운 한복을 입은 이들이 우아한 몸짓을 한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풍류를 즐기는 조선의 양반이 된 듯하다. 그 어떤 화려하고 넓은 공연장보다 더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윤동주문학관 시인의 언덕 야외무대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수묵채색화를 그리는 듯한 공연은 바로 2020 서울교방 동인춤전 ‘우리 전통춤 이야기’다. 2020 서울교방 동인춤전 '우리 전통춤 이야기' 공연이 10월 매주 금요일 펼쳐진다. ⓒ김수정 '서울교방'은 교방굿거리춤의 지킴이 김경란 선생과 그의 제자 70여 명의 전문 춤꾼들이 함께 모인 단체다. 교방은 고려시대 예능을 지도하던 기관이었던 교방청으로부터 유래된 명칭이지만 상고시대부터 가무악과 영통을 겸비한 풍류방이 늘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왔다. 서울교방은 교방 예맥의 보전과 유파별 전통춤을 배우면서도 새로운 레퍼토리를 창조하고 있다. 야외에서 관람하는 우리 전통춤 공연이 흥미롭다. ⓒ김수정 2020 우리 전통춤 이야기는 10월 9일 시작해 10월 30일까지 6회에 걸쳐 마련되었다. 10월 11일은 한글날 연휴와 함께 특별히 2회차에 걸쳐 무대가 펼쳐졌다. 1회차 공연은 '선무용단 꾼 ’S 4.0.'으로 꽹과리를 두드리며 장단에 맞춰 추는 진쇠춤을 시작으로 교방굿거리춤, 구음검무, 한량무, 쟁강춤, 태평무 등 한국전통예술의 화려하고 섬세한 멋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무대인 모던굿은 전통과 현재가 만난 창작 춤이었다. 앞선 모든 기교를 한자리에 풀어내듯 꽉 찬 무대로 사람들의 환호성을 끌어냈다. 우리 전통춤이 이렇게 화려했던가! 기교에 감탄이 절로 났다. ⓒ김수정 2회차 공연 주제는 '춤이상&서정 별 헤는 밤'이었다. 윤동주의 시와 함께 스토리가 있는 무대는 장소의 특색과 어우러져 몰입도를 높였다. 살풀이춤을 떠오르게 하는 서시_동주를 기억하다를 시작으로, 소년_시리도록 푸른 동주의 젊은 날, 자화상_시인의 고백, 별 헤는 밤_동주를 ...
윤동주 시인의 얼굴과 시가 새겨진 윤동주문학관 정문.

“75년 전 떠난 시인을 기리며” 윤동주문학관 방문기

1945년 2월 16일 새벽, 낯선 일본의 형무소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하던 한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불과 6개월 뒤 이루어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일제강점기에 살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던 청년, 시인 윤동주. 75번째 윤동주 시인의 기일을 앞두고,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을 찾았다.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 ⓒ김윤재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 생활을 하며 종종 인왕산에 올랐다고 한다. 그 이유로 윤동주문학관은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세워졌다. 문학관 건물은 원래 청운아파트를 위한 수도가압장으로 1974년에 지어졌다. 하지만 청운아파트가 구조상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2005년 9월 철거되면서 2008년 가압장 역시 용도 폐기되었다. 한동안 방치되던 가압장은 청운공원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면서 임시문학관을 거쳐 2012년 7월 25일 리모델링을 마치고 정식 윤동주문학관으로 개관했다.   문학관 정면엔 시인의 얼굴과 시가 새겨져 있다 ⓒ김윤재 문학관 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바로 제1전시실 시인채가 나온다. 이곳엔 윤동주 시인의 일생을 시간 순서로 배열한 9개의 전시대가 있다.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는 물론, 백석의 시집 필사본과 정지용 시 에 써 놓은 ‘생활의 협박장이다’라는 짧은 촌평, 그리고 창씨개명의 흔적이 남은 연희전문학교 학적부와 일본에서 받은 판결문 등이 전시되어 있어 인간 윤동주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반대편 벽엔 윤동주 시인이 즐겨보던 책들의 표지가 걸려 있다. 그 아래엔 소장하던 책 안쪽에 해놓았던 서명 모음이 있고, 윤동주 시인이 신문, 잡지에 실린 자신의 시를 스크랩해 놓은 기록 역시 볼 수 있다. 전시대와 벽 사이, 제1전시실 중앙엔 시인의 고향 집에서 가져온 목판 우물이 있다. 이 이 우물의 기억에서 비롯된 시라면, 시인은 이 목판 우물 속에서 어떤 사나이의 얼굴을 보았을까 궁금했다. 목판 우물을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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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배경 청계천

오르막길을 더 올라 성곽 안쪽을 지키는 창의문으로 향했다. 창의문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풍경과 산의 능선으로 펼쳐지는 성곽은 그야말로 만리장성과 같은 절경이다. 녹색 자연이 가득한 성곽 도시 서울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다. 인왕산 성곽 길을 조금 더 따라가면 왼쪽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보인다. 윤동주는 일본에 유학하면서 조선의 독립운동에 관련됐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국민적 시인이다.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다닌 그는 인왕산 기슭에 위치한 소설가 김송의 집에 하숙할 당시 이 부근을 산책하면서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곳엔 유명한 ‘서시’의 시비가 서울을 내려다보듯이 세워져 있다. 언덕을 오르는 길의 말뚝이나 손잡이에도 그의 대표작인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 등의 시가 먹으로 쓰여 있다. 그의 시를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내리며 산책하다 보니 자그마한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나오는 대부분의 시가 이곳에서 쓰였다고 하니 말 그대로 ‘시인의 언덕’이다. 자하문 길을 따라 쭉 남쪽으로 내려간다. 자하문 길에서 사직로 맞은편에 보이는 우리은행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자로 ‘효자서당’이라고 쓰여 있는 작은 한문 학원이 나온다. 이상이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지만, 이곳에 이상의 기념관을 만들 계획이라는 말이 들린다. 광화문을 지나 청계천의 시작점인 청계광장으로 향한다. 청계천 하면 떠오르는 것은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다. 박태원은 이태준의 권유로 모더니즘 작가들의 모임인 ‘구인회’에 가입했으며, 표현의 기교를 갈고닦은 예술파 작가로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대표작이다. 그러나 해방 후 그는 이태준을 따라 월북했다. <천변풍경>은 주로 서민이 살던 청계천 주변이 그 무대로, 사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