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민아파트이자 대전차방호시설이었던 이곳이 내년엔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김영옥

방치된 군사시설, ‘흉물’에서 ‘문화공간’으로

옛 시민아파트이자 대전차방호시설이었던 이곳이 내년엔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지난 12월 1일, 도봉동 대전차방호시설 3동 앞에서 서울시와 도봉구, 도봉동 대전차방호시설 관할 부대인 제60보병사단이 함께 군사시설 공동 활용에 대한 협약식을 가졌다. 이 협약식엔 류경기 서울시 행정1부시장, 이동진 도봉구청장, 백상환 제60보병사단장 등이 참석했다. 대전차방호시설을 예술창작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업무협약식이 열렸다. 도봉구 도봉동에 12년째 방치된 채 도심 속 흉물이었던 대전차방호시설(도봉구 도봉로 6-5 일대)은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탱크로 남침하던 길목을 저지하고자 만들어진, 50년 넘은 군사시설이다. 당시 총 길이 300m 콘크리트 위에 군사시설임을 숨기기 위해 시민아파트를 지어 올렸다. 1층은 유사시 군사목적으로 쓰일 벙커시설이었고, 2~4층은 초기에는 군인 주택용으로 쓰였다. 지금은 1층 터만 남아 있지만 당시엔 4층짜리 시민아파트가 길을 가로 막듯 길게 옆으로 세워졌다. 시민아파트 1층에는 탱크가 들어갈 자리가 마련됐고, 아파트 1층 벽엔 탱크의 총구를 북쪽으로 겨눌 수 있도록 뚫린 커다란 구멍들이 있어 이곳이 군사시설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북한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유사시엔 이 시설의 폭파도 염두에 뒀다고 한다. 대전차방호시설 내부에 남아 있는 계단 1970년부터 2004년까지 존재했던 도봉시민아파트는 건축 당시 육군본부 원호관리국이 군사상의 목적으로 그린벨트 지역 내의 땅을 수용해 지은 아파트였다. 1972년 서울시가 이를 인수하면서 대부분의 입주민이 일반인으로 점차 바뀌었고 점차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낙후됐다. 도봉시민아파트는 군사보호구역에 지어졌었던 터라 다른 시민아파트에 비해 철거가 늦게 이뤄졌다. 2004년 너무 낡고 오래됐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로 도봉시민아파트 2층~4층은 철거됐지만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던 1층 대전차방호시설은 군사시설이기 때문에 철거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12년간 흉물...
서울의 마지막 시민아파트 회현제2시민아파트

마지막 시민아파트, 예술공유공간으로 재탄생

서울의 마지막 시민아파트 회현제2시민아파트서울의 마지막 시민아파트인 회현제2시민아파트가 예술인을 위한 장기임대 주거 및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한다.서울시는 고지대 무허가 건물을 정리하기 위해 1969~71년에 건립한 시민아파트 32개지구 433개동 17,050호를 1997년부터 매입, 철거한 후 공원, 주민복지센터 등 주민휴식공간으로 활용하는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번 회현2시민아파트 리모델링은 시민아파트 정리사업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사례가 된다.1개동 352세대로 구성된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2004년 정밀안전진단에서 안전등급 D등급을 받아 2006년 회현제2시민아파트 정리사업을 추진하였으나, 그 동안 건물보상가 및 특별공급 분양가에 대한 의견차이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 250세대의 보상·이주를 완료하고 102세대가 남아있다.이번에 서울시는 이주를 원하지 않는 세대와의 상생(相生)·동행(同幸)을 위해 미 이주 세대와 함께하는 리모델링을 추진하기로 했다.현재까지 미 이주 아파트 입주자들은 서울시와 협의해 특별분양권과 함께 보상을 받거나, 계속 거주를 원하는 경우에는 아파트 구조안전보강과 리모델링을 시와 입주자 공동부담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생활이 어려운 무주택 세입자를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 특별공급 또는 주거이전비 중 택일토록 하고 이사비, 임대료 이자 등 주거안정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향후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2020년까지 예술인을 위한 장기임대 주거 및 창작 공유형 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남산자락에 위치해 한양도성, 정화예술대학, 안중근의사 기념관 등 다양한 역사문화공간을 아우르고 있는 회제2시민아파트의 주변여건을 활용해 예술인 교류의 장이자 남산 창작공간들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공동프로젝트를 발표할 수 있는 ‘셰어오피스’, 예술지원사업·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자료실, 가변형 작품발표공간, 상담센터, 커뮤니티 공간, 세미나실 등의 시설이 들어선다.또한 서울시는 남산회현자...
회현 시민아파트 구름다리 위에 옛날의 글씨체로 적힌 `빨래를 널지 마시오` 푯말

70년대를 풍미했던 ‘최후의 시민아파트’

회현 시민아파트 구름다리 위에 옛날의 글씨체로 적힌 `빨래를 널지 마시오` 푯말 1960년대, 무한질주했던 경제개발에 경종을 울린 사건인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33명의 주민이 사망한 이 사고는 부실시공과 업계의 관행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초대형 사고였다. 사고 이후 조사결과 건설된 447동의 시민아파트 중 약 80%에 이르는 349동이 추후 붕괴위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서민들에게 아파트를 공급하는 시민아파트 계획은 좌초된다. 이후 시범아파트단지 사업으로 이어진 현대식 아파트 사업은 지금의 서울 주거 문화를 낳게 되었다. 금화 시범아파트, 녹번 시민아파트 등 많은 시민아파트가 철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1970년 마지막으로 지어진 회현 시민아파트만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지어진 시민아파트가 마지막으로 남은 시민아파트가 됐다. 회현 시민아파트로 들어가는 길. 1970년대의 `시범` 명칭에 따라, 시범상회라 이름 붙여진 수퍼가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지어진 만큼 튼튼하고, 훨씬 더 실험적인 건설방식이 도입되었다. 회현동에서 남산도서관으로 가는 가파른 골목길에 건축된 아파트답지 않게 튼튼했다. 자연스러운 언덕을 건축양식에 활용하기도 했다. 아파트의 출입구가 1층과 6층 두 곳에 나 있는 것이다. 현재는 아파트와 주상복합, 그리고 백화점 건물 등에서 매우 흔한 구름다리 건축이 46년 전 남산에서 처음 시도된 것이었다. 구름다리가 지어진 이유가 따로 있는데, 무려 10층의 높이로 지어진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비탈진 지형을 십분 활용한 것이었다. 고급 호텔, 사무용 건물에만 설치되고 주거용 건물에서는 흔하지 않았던 데다가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10층의 아파트를 모두 계단으로 오르기는 힘들어 1층 출입구를 통해 1층과 4층 사이를, 6층 구름다리를 통해 5층과 10층 사이를 오르내릴 수 있도록 구름다리를 설치한 것인데, 이는 엘리베이터보다 더 값진 국내 건축의 최초 역사를 세우게 되었다. 6층의 출입구로 통하는 구름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