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늉

소화제를 겸한 국민 음료 ‘숭늉’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다. 건물마다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 있고, 점심시간이면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커피 한잔 마시려고 길게 줄지어 선 풍경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이제는 커피가 아예 국민 음료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우리 국민 음료는 숭늉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과 중국, 일본 중에서 유독 우리나라만 차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숭늉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차 재배 조건을 비롯해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차가 필요 없을 정도로 숭늉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식후에 커피나 차를 마시거나 디저트로 과일을 먹지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숭늉을 마셔야 식사를 끝낸 것으로 알았다. 숭늉을 마시지 않으면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속이 더부룩하게 느껴져 먹은 음식조차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 한때 한국을 벗어나 외국에 가면 김치와 고추장을 먹지 못해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우리 땅을 떠나 중국과 일본에 간 선비들이 숭늉을 마시지 못해 애먹었다는 기록이 문헌 곳곳에 남아 있다. 숙종 때 사신을 수행해 서장관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김창업이 기행문으로 《연행일기》를 남겼다. 여기에 숭늉을 마시지 못해 고생하다 숭늉 비슷한 물을 마시고는 속이 편해졌다며 기뻐하는 장면이 보인다. 식사는 쌀밥에 나물과 장 종류 몇 그릇이었지만 모두 먹을 만하고 수행원들도 배불리 먹었다. 나는 싸 온 밥이 있었으므로 뜨거운 물을 청하여 말아 먹었다. 승려가 미음 한 그릇을 가져다주었는데 그 맛이 우리 숭늉과 비슷해 마시고 나니 위가 편해지고 좋았다. 숭늉은 한국인에게 소화제나 다름없었다. 정조 때 서유문이 사은사를 수행하는 서장관으로 북경을 다녀온 후에 쓴 《무오연행록》에도 숭늉을 먹고 간신히 소화를 시켰다고 적혀 있다. 밤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호흡을 하지 못할 정도였고 또 등이 결려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지경이 됐기에 급히 주방에다 일러서 메밀로 숭늉을 끓여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