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다이얼 김남흥 대표가 제작한 수제 볼링화

38년차 수제화 장인도 ‘자영업자 생존자금’ 큰 보탬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은 수제화 거리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자그마치 38년간 구두업에 종사하며 한 우물을 판 수제화 장인이 있다. ㈜해원다이얼 김남흥 대표(66세)다. 김 대표는 군대를 제대한 후 구두업계에 뛰어들어 어느덧 38년 차의 경력에 이르고 있다. 그는 구두를 만지면서 청춘을 보냈다. 구두업으로 돈을 벌면서 결혼해서 가정도 일구고 자녀도 교육했다. 7년 전부터 성동구청 일자리지원센터,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인천 연수구 자활센터 등에서 저소득층 취약계층, 장애인들에게 자립과 창업을 위한 기술 나눔을 실천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디자인, 구두제작, 수선 등 필요한 기술 등을 가르쳐주고 있다. 서울시의 '2018 지역사회공헌 인증점포'로 선정된 해원다이얼 ©윤혜숙 최근에 서울 영등포구 소셜캠퍼스 온 서울2센터에서 김 대표가 강의를 맡아 진행해오던 ‘착한신발 구두관리원 양성교육’ 수료식이 진행되었다. ‘착한신발 구두관리원 양성교육’은 인천 연수구 소재 자활센터에서 장애인과 취약계층 근로자들의 자립과 창업을 돕기 위해 기획한 사회적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김 대표는 7년간 지역사회에 나눔을 베푼 선행을 인정받아서 서울시의 ‘2018 지역사회공헌 인증점포’로 선정되어 표창장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산업화하던 시기만 해도 산업화의 근간에 소상공인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디지털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소상공인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조업이 없고 서비스업만 있는 사회는 산업 기반이 약해서 언제든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소상공인을 육성하고 우대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 현재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누구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이다. 김 대표가 체감하는 지금의 경기는 흡사 제 2의 IMF를 맞이한 것처럼 어렵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남흥 대표 ©윤혜숙 김남흥 대표는 수제 볼링화 브랜드 ‘험비스포츠’를 제작, 판매하고 수선도 곁들여서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볼링장 같은 스포츠센터...
김지원 대표가 서울시 소규모제조업 긴급자금을 신청하는 모습

접수지원센터 도움 받아 제조업 긴급자금 신청하세요

동대문패션비즈센터 1층에 ‘도시제조업 긴급자금 접수지원센터’가 마련되었다. ⓒ김은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서울시 소규모 도시제조업체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 들렸다. 일거리가 줄어들면서 종사자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상황 속에서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보니 이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은 절실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소규모 도시제조업을 지원하기 위해 ‘소규모 도시제조업 긴급자금’ 정책을 마련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서울 소재 50인 미만 제조업체에 사업장 규모별 최대 3,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해주는 것이다. 서울시는 총 2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약 1,500개 업체에 지원할 예정이다. 긴급자금 지원 대상은 의류 및 가죽·가방·신발 제조업(벤더, 프로모션 업체 포함), 금속 가공제품 제조업, 기계 및 장비제조업, 인쇄 및 기록매체 복제업 등으로 2019년 1월 1일 이전 사업자등록 업체여야 하며 규모는 평균 매출액 120억 이하 소기업 또는 상시 근로자수 10명 미만의 소상공인이어야 한다. 접수지원센터에서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 현장에서 긴급자금 온라인 신청을 할 수 있다. ⓒ김은주 이번 서울시 소규모제조업 긴급자원은 기획과 마케팅, 교육 등의 사업추진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특히 신규 제품의 기획과 디자인, 브랜드 개발 비용 등에 사용할 수 있으며, 온라인 콘텐츠 제작과 같은 판로 확대를 위한 플랫폼 구축에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제품의 홍보나 광고비용으로도 쓸 수 있다. 단 상근직원의 인건비나 건물 임대료, 집기구입비와 같은 일반운영비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센터 직원들이 소규모 제조업체들의 긴급자금 상담과 접수를 돕고 있다. ⓒ김은주 또한 지원업체는 국세와 지방세를 완납했어야 하며 서울시 생존자금(140만원)과 중복수령은 안된다. 지원 선정일 기준, 상시 종사자는 3개월 간 고용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도 조건에 포함된다. 지원규모는 10인 미만의 사업장...
소규모제조업 긴급자금 신청 안내

‘소규모제조업 긴급자금’ 이렇게 신청하면 일사천리!

서울로7017 앞에 그려진 염천교 소개 벽화 ©김윤경 필자는 서울로7017과 가까이 살아, 염천교 수제화 거리와 '청파‧서계마을 패션봉제협회'를 종종 마주한다. 염천교는 수제화 거리로 광복 후, 미군 군화를 재탄생시켜 최대 수제화 거리로 도약한 곳이다. 청파‧서계마을은 소규모 봉제공장이 유입해 자리했다. 가까이 살고 있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서울로7017 프로젝트에 힘입어 이곳이 활기를 띄다가,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어려움을 맞고 있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 ©김윤경 서울시 소규모 도시 제조업 긴급자금 지원사업을 처음 들었을 때, 봉제패션협회와 수제화 상인들이 떠올랐다. 가끔 마주치는 수제화 상인에게 이야기를 전하자 “나도 될까?”하고 물었다. 일단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만리시장 2층에 자리한, 마을 주민들이 자주 가는 청파‧서계마을 봉제패션협회 역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면 싶었다. 주민들이 열심히 옷을 만들며 즐거워하던 과정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장인들의 손길이 더 바빠지면 좋겠다. ©김윤경 서울시는 지난 6월 5일부터 의류, 수제화 분야를 시작으로 소규모 도시제조업 긴급자금 지원사업  접수에 들어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 감소 피해를 입은 서울 소재 50인 미만 제조업체에 대해 사업체별 최대 3,000만 원의 사업비를 지급한다. 선정된 기업은 3개월 간 종사자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약 1,500개의 업체가 대상이라고 한다. 좋은 소식인 듯 싶어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아쉽게도 협회는 대상이 아니고, 1인 기업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괜히 미안해져 좀 더 잘 알아본 후,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담당자에게 몇 가지를 직접 문의한 후, 서울시 소규모 도시제조업 긴급자금 지원사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시 소규모 도시제조업 긴급자금 안내 소규모 도시제조업 긴급자금, 지원대상은? 서울시 소규모 도시제조업 긴급자금 지원대상은 서울 소재 4대 제조업체(의류, 신...
소규모제조업 긴급자금...최대 3천만원

제조업 긴급자금 5일부터 접수…신청서는 이렇게

‘서울시 소규모 도시제조업 긴급자금’ 접수가 6월 5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된다 신청 바로가기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의 삶이 힘들어졌습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지난 2월부터 종사자 수가 감소하여, 3월과 4월에는 6만 7천여명이 감소하는 등 고용 위기가 심각한 상황인데요. 6월 5일부터 ‘소규모 도시제조업 긴급자금 지원’ 접수가 시작됩니다. 3개월간 고용유지 조건으로 기획·마케팅·교육 등의 사업비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1,500개 업체가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자영업자 생존자금과 중복지원이 불가한 만큼 비교해보고 신청하세요. ★사업계획서 샘플(공개용)☞ 한글문서 다운, ☞ PDF 파일 보기 서울시 소규모 제조업 긴급 사업비 지원사업 공고문 보기 ☞ 클릭 서울시 소규모 제조업(인쇄업 분야) 긴급 사업비 지원사업 공고문 보기 ☞ 클릭 서울시 소규모 제조업(기계금속 분야) 긴급 사업비 지원사업 공고문 보기 ☞ 클릭 5일부터 ‘http://서울제조업긴급사업비.kr’에서 신청...접수 도와줄 현장지원센터 운영 6월 5일 오전 9시부터 ‘코로나19’로 위기상황에 처한 소규모 도시제조업체 긴급 자금지원 접수가 시작된다. ‘서울시 소규모 도시제조업 긴급자금’ 지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 감소 등 피해를 입은 서울 소재 50인 미만 제조업체에 대해 사업체별 최대 3,000만원의 사업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선정된 기업은 3개월 간 종사자 고용을 유지하여야 한다. 서울시는 이번 긴급자금 지원을 위해 총 20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으며, 1,500개 업체가 지원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지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타격을 입은 제조업체의 사업 유지’ 뿐만이 아니라 ‘고용위기에 처한 노동자의 고용 유지’도 지원하는 긴급 조치로, 현장의 목소리 및 전문가 간담회 등을 통해 마련된 코로나19 보릿고개 극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다. 사업계획서 샘플 이미지 ★사업계획서 ...
명장과 함께하는 성수수제화 홍보관이 들어선 성수 수제화 공동판매장(B동)거리 모습

당신을 위로하는 아날로그 감성, 성수동 수제화거리

연일 봄소식이 전해진다. 구례와 섬진강 일대에 산수유와 매화가 앞 다퉈 피고 있단다. 코로나19의 와중에도 봄꽃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변함없이 꽃을 피우고 있다. 집에만 있기 갑갑해 봄바람도 쐴 겸해서 전철에 올랐다. 내려 선 곳은 성수역이다. 구두 테마역으로 나름의 볼거리가 꽤 쏠쏠한 곳이다. 성수동은 서울 제화 산업의 80% 이상이 모여 있던 곳으로 300여 개가 넘는 수제화 업체들이 자리했던 지역이다. 그러한 명성에 걸맞게 현재 성수동에는 오랜 경력의 수제화 장인들이 모여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제화 거리가 형성돼 있다. 성수역 2층 보행자 통로 공간은 슈스팟 성수, 구두지움, 슈다츠, 구두장인공방 등  온통 수제화 관련 전시로 가득하다.  ⓒ박분 천장을 가득 메운 발 모양의 구두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수제화의 역사도 살펴볼 수 있다. ⓒ박분 성수역1, 2번 출구로 나오면 수제화 거리임을 알리듯 구두와 관련된 벽화나 조형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성수역 하부공간까지도 수제화 관련 벽화나 사진들로 꾸며졌다. 수제화 거리는 지하철 성수역에서 다음 역인 뚝섬역 일대에 이른다. 수제화거리 곳곳에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박분 성수역에서 뚝섬역을 향해 걷다보면 두 역 사이에 자리한 수제화공동판매장(B동)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땀 한땀 정성을 들여 구두 가죽을 꿰매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조형물이 보인다. 빨간 구두 조형물도 꽤 맵시 있게 다가온다.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라는 노랫말이 문득 떠오른다. ⓒ박분 봄바람이 살랑이던 이때쯤이었을까. 대학에 입학하거나 직장에 취직해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됐을 때, 양복과 함께 구두도 한 켤레 맞춰 신던 시절이 있었다. 말쑥한 투피스에 반짝반짝 빛나는 가죽구두를 신었을 때의 가슴 설렘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 시절 맞춤 구두는 청춘과 낭만의 상징이었다. 성동구가 지난 2월 개관한 ‘명장과 함께하는 성수수...
천연가죽과 찹쌀풀만을 고집하는 정영수 명장의 공방에선 인공 화학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신’유람기⑥] 대통령도 반하다! ‘수제화 대통령’ 명장 3인방

성수 수제화 전시관 ‘희망플랫폼’에 전시된 명장들이 만든 수제화들 시민기자단이 전하는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 마지막 시간, 50년 넘게 수제화를 만들어오신 세 분의 장인을 만나 보았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의 시대에,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오롯이 그 사람만을 위해 완성한 장인의 수제화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봅니다. “발이 편해야지! 신발은 무조건 편안해해.” 사람은 발이 편해야 몸이 편하다는 속담처럼 어떤 수제화를 골라야 하냐는 질문에 성수 수제화 거리에서 만난 장인들은 하나같이 발이 부드럽고 편한 신발이 잘 만든 신발이라 했다. 뭔가 특별한 비법이 숨어있을 것 같아 물었는데,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답이 돌아왔다. 역시 기본에 충실한 것이 제일 중요했다. 현재 성수 수제화 거리에는 수많은 장인들이 수제화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 중 정영수·유홍식·전태수 명장은 50년 이상 수제화 외길을 걸어온 분들이다. 구두와 함께 한 명장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 그들의 공방을 찾아갔다. 1mm의 불편도 허용하지 않는다, 정영수 명장 천연가죽과 찹쌀풀만을 고집하는 정영수 명장의 공방에선 인공 화학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첫 번째로 만난 명장은 정영수 명장이다. 그를 만나러 간 곳은 허름한 상가 건물이었다. 명장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니 화려한 작업장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뚝딱 뚝딱 망치질 소리와 층층이 쌓여있는 구두들, 석고 모양의 구두골을 설계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에서 이곳이 구두를 만드는 땀의 현장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영수 명장의 공방에선 일반 구두매장에서 나는 인공 화학품 냄새가 나지 않았다. 천연가죽과 찹쌀로 만든 풀을 쓴다는 그의 말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냄새만으로도 그 만의 차별점을 느낄 수 있었다. “제 발 사이즈가 얼마일 것 같아 보이세요?” 구두 만들기의 기본은 발을 재는 것에서 시작하니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질문했다. “235는 딱 맞고, 240은 크고... 그...
가장 좋은 신발은 발에 딱 맞는 편안한 신발이라는 전태수 명장

[‘신’유람기⑤] 명장에게 한수 배우는 수제화 만들기 체험

가장 좋은 신발은 발에 딱 맞는 편안한 신발이라는 전태수 명장 시민기자단이 전하는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 다섯 번째 시간, 수제화를 직접 만들어보고 경험해 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해 드립니다. 초보자도 재미있게 만들어볼 수 있는 공방 프로그램은 물론, 전문 기술을 배워 직업인으로 도전해 볼 수 있는 기술자 양성교육까지 성수 수제화 희망플랫폼 및 성동구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265에요.” 신발을 사러 가면 점원은 손님의 발 사이즈를 물어본다. 통상 신던 신발 치수를 대면 점원은 신을 찾아주고 손님은 그 신을 신어본다. 같은 사이즈여도 어떤 때는 약간 큰 듯도 하고, 어떤 때는 볼이 꽉 맞기도 한다. 그때쯤 드는 의문 하나, 내가 알고 있는 신발 사이즈가 정말 내 발치수일까? 수제화를 맞추지 않았다면 정확히 알지 못했을 내 발치수. 기성화에 익숙해진 내 발은 5mm의 차이쯤은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수제화를 알게 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처음엔 내 발 치수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성수동이다. 수제화 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이곳에는 수제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제화 체험공방’이 있다. 이 공방은 성수동 수제화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서울시가 위탁하고 서울수제화진흥원(STI)가 수탁하여 운영하는 곳이다. 체험 공방을 알리는 표지판. 공방은 성수 수제화 희망플랫폼 2층에 있다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4기에 걸쳐 운영된 체험 공방은 매 기마다 4회씩, 1회당 3시간의 수업 ‘성수수제화 희망플랫폼 체험공방’이 진행 중이다. 서울수제화진흥원 김희숙 마케팅실장은 “성수동이 갖고 있는 특별한 문화인 수제화의 가치도 살리고, 시민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을 위해 명장분들과 젊은 디자이너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1기는 ‘가죽 슬리퍼 만들기’, 2기는 ‘아기 신발 만들기’, 3기는 ‘가죽 ...
성수 수제화 전시관인 ‘희망플랫폼’에 전시된 대통령을 위한 수제화

[‘신’유람기④] 언제부터 성수동은 구두거리가 됐을까?

성수 수제화 전시관인 ‘희망플랫폼’에 전시된 대통령을 위한 수제화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죠! 멋지게 차려 입은 수트며 드레스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발까지 편안한 구두를 찾고 있다면 ‘성수 수제화 거리’를 방문해 보세요. 장인의 수십년 세월이 담긴 수제화에선 대량으로 만든 공장 기성품에선 느낄 수 없는 품격과 개성이 느껴집니다. 시민기자단이 전하는 6편의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 중 네번째 시간, 성수 수제화 거리가 생기게 된 배경에 대해 알아봅니다. 구두는 대표적인 개화문물이다. 1880년대 개화파 인물들과 외교관들에 의해 처음으로 조선에 소개된 구두는 1920년대 들어서 모던 걸, 모던 보이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특히 신여성에겐 패션아이템이자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구두는 멋스럽게 그 역사를 시작했다. 모던 걸, 모던 보이들에게 인기 있었던 구두는 당연히 수제화였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구두를 만들어야 했기에 당시 구두는 당연히 고가품일 수밖에 없었다. 구두에 적합한 가죽을 만들기 위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만큼 고약한 냄새를 뿜어내는 화학약품과 씨름해야 했고, 그렇게 연마된 가죽을 빛깔 좋게 다듬어야했다. 너무 뻣뻣해도, 너무 말랑거려도 안 되었다. 구두 밑창은 세상 어디를 딛어도 망가지지 않을 만큼 탄탄해야 했고, 그 밑창과 본체를 잇는 바느질은 꼼꼼해야만 비나 눈이 스며들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제화가 어느 날 대량 생산 물결을 타고 온 기성화에 밀려 잊혀지는 듯했다. 하지만 과거는 새 옷을 입고 오늘을 걸어가듯 수제화도 다시 빛을 받기 시작했다. 1930년대 구두 신은 모던 것, 모던 보이. 출처 : 잡지 ‘별건곤’ 1927년 2월호 요즘 사람들은 수제화하면 성수동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신발부터 인기 셀럽들의 신발까지 다양한 신발이 만들어지는 곳이고, 지난 시간을 멋스럽게 살린 도시재생 현장이기에 성수동은 인기가 있다. 이제는 ‘성수 수제화 거리’로 더 유명한 성수동, ...
성수 수제화거리에 가면 다양한 수제화를 만날 수 있다

[‘신’유람기②] 명장이 알려주는 좋은 수제화 고르는 법

성수 수제화 거리에 가면 다양한 수제화를 만날 수 있다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죠! 멋지게 차려 입은 수트며 드레스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발까지 편안한 구두를 찾고 있다면 ‘성수 수제화 거리’를 방문해 보세요. 장인의 수십년 세월이 담긴 수제화에선 대량으로 만든 공장 기성품에선 느낄 수 없는 품격과 개성이 느껴집니다. 시민기자단이 전하는 6편의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 중 두번째 시간, 이곳의 쇼핑 포인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잘 어울리고 편한 신발을 신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그런 신발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기성화가 대중화된 시대, 정해진 사이즈대로 생산되기에 남들과 다른 발 사이즈나 발모양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성화는 불편하다. 오른발과 왼발의 크기가 차이 나거나 발등이 두꺼운 사람, 상대적으로 발에 살이 없는 사람들은 기성화 신기가 쉽지 않다. 특히 큰 사이즈의 발이나 무지외반증, 평발 등의 이유가 있다면 더 그러하다. 아무리 새 신발일지라도 십중팔구 발뒤꿈치가 까지거나 피가 난다. 그런 이들을 위한 제품이 바로 수제화다. 수제화는 내가 신발에 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발에 신발을 맞추는 것이다. 편한 것은 기본이요, 오래 신을 수 있는 수제화. 기성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질 좋은 수제화는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그 비법을 성수 수제화거리에서 찾아보자. 뚝섬역 4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성수 수제화 전시관 ‘희망플랫폼’ 안내 조형물 성수동은 국내 수제화의 약 80%를 생산하며 다시 불고 있는 수제화의 인기를 주도하고 있다. 신발 디자인에서 제조, 판매까지 모든 것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성수 수제화 거리에는 300여개 업체가 밀집되어 있는데, A구역부터 G구역까지 나뉘어져 있는 성수 수제화 거리 탐험을 위해 우선 성수 수제화 거리 홈페이지 지도를 펼쳐보자. 성수역에서 뚝섬역까지 이어지는 성수 수제화 거리, 자세한 매장 위치는 성수 수제화 거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
성수 수제화 거리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

[‘신’유람기①] 성수동에 패션피플 모이는 까닭

성수 수제화 거리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죠! 멋지게 차려 입은 수트며 드레스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발까지 편안한 구두를 찾고 있다면 ‘성수 수제화 거리’를 방문해 보세요. 장인의 수십년 세월이 담긴 수제화에선 대량으로 만든 공장 기성품에선 느낄 수 없는 품격과 개성이 느껴집니다. 앞으로 시민기자단은 6편의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를 통해 이곳만의 매력 포인트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 이제 또각또각 ‘성수 수제화 거리’로 출발해 볼까요? 우리나라 지하철역들 중 유일하게 구두들이 전시된 곳이 있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이다. 성수역사 안에는 우리나라 수제화와 성수 수제화 거리의 역사, 수제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 수제화에 관한 다양한 전시물들이 진열돼 있다. 성수동 일대가 수제화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한 눈에 보여주는 시작이다. 천편일률적인 기성화와 달리 자신만의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수제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구두를 맞추러 이곳을 찾는다. 그런데 왜 성수동이 수제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을까? 그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찾아 성수 수제화 거리를 찾아 나섰다. 성수역에서 전시 중인 수제화들 염천교에서 명동을 거쳐 성수동에 정착한 우리나라 수제화 개화기 시절 개화경(안경), 양복, 자전거 등과 함께 서양에서 들어온 구두는 선망의 개화 문물 중 하나였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구두 열풍은 한동안 사그라드는 듯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참전국 군인들이 신었던 군화가 일반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구두는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60년대엔 서울 ‘염천교’를 중심으로 구두골목이 형성되었다. 서울역에서 중림동을 잇는 다리인 염천교는 유동인구와 물자가 많은 서울역과 남대문 근처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1970년대까지 한국 수제화 거리의 원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80년대부터 수제화는 유행의 거리 ‘명동’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예로부터 금융과 경제의 중심지였던 명동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