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가 세워졌다.

진정한 봄을 기다립니다…왕십리역 ‘평화의 소녀상’

흰 LED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의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방윤희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는 앳된 얼굴의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성동구 왕십리 광장 사랑의 시계탑을 지나며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소녀의 얇은 저고리 위로 목을 살포시 감싼 망토와 털실로 짠 귀마개를 해준 모습에 온기가 전해진다. 겨우내 털 목도리가 잠시 추위를 덮어주었으리라 위안을 삼아본다. 또 한 차례의 겨울을 이겨내셨구나. 왕십리역은 ITX청춘의 정차역이자 2호선과 5호선, 경의중앙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곳이다. ⓒ방윤희 왕십리역은 ITX청춘의 정차역이자 2호선과 5호선, 경의중앙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곳이다. 다양한 집객시설 및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한 곳이다. 이 분주한 역사 5번 출입구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했다.  자석에 이끌리듯 소녀상 앞에 서니 지난해 별세하신 김복동 할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이자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했던 인권평화 운동가이다. 모진 세월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는데, 끝내 소원을 지켜드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왕십리역 5번 출입구에서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를 만날 수 있다. ⓒ방윤희 왕십리 광장에 건립된 평화비는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해준다. 일제강점기에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소녀들. 평화의 소녀상은 피와 눈물로 쓰인 역사적 진실을 기리기 위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할 때까지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해 놓은 곳이다. 흰 장미가 드넓게 핀 왕십리 광장에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가 세워졌다. ⓒ방윤희 기자는 ‘위안부’라는 말을 쓰면서 작은따옴표를 붙였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의 사전적 의미가 ‘안식을 주고 위안을 준다’라는 뜻인데, 작은따옴표를 붙이지 않고 그냥 표기할 시 그 뜻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일본 측 입장의 표현’이...
1420차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평화로'. 목도리부터 양말까지, 시민들의 손길이 평화의 소녀상을 감싸고 있다.

2020년 첫 수요집회를 가다

2020년 새해 첫 수요집회에 다녀왔다 ⓒ김윤재 누군가에게 2020년 첫날은 1,420번째 수요일이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꼬박 28년째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각에 모이는 사람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이야기다. 경자년의 첫날, 서울 종로구 율곡로 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420회 수요집회를 찾았다. 흐린 하늘이 내내 불안했는데 결국 집에서 나설 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광화문에 도착할 때쯤 점점 눈발이 거세져 걱정했는데 다행히 현장에 도착할 쯤엔 모두 그쳤다. 20분 앞서 도착한 시위 현장은 이미 사람들도 북적였다. 입구 쪽에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과 모금 운동, 뱃지와 팔찌 등의 관련 물품 판매가 진행 중이었고, 단상 앞에선 자리 정돈이 한창이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방학을 맞은 학생과 시민들이 모이며 자리는 빠르게 찼다.  오는 1월 8일은 수요집회가 28주년을 맞는 날이다 ⓒ김윤재  12시를 조금 앞두고 주관단체인 평화나비 네트워크의 전국대표 이태희 씨가 무대에 올랐다. 시위에 앞서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의 삶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2010년 세상을 떠나신 김순악 할머니의 소개와 증언을 함께 읽고, 바로 1420차 정기 수요시위가 시작됐다. 노래 율동으로 시작한 수요시위는 평화나비 네트워크의 인사말과 주최 측인 정의기억연대의 경과보고로 이어졌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2020년 첫날부터 함께하면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우리에게 참해방, 참평화, 김복동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희망이 이뤄질 것”이라며 “가해자를 향해 함께 외치는 그 걸음에, 이곳 평화로에서 함께 손잡아주셨던 여러분들이 함께해 주신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1420차 정기 수요집회가 진행되었다 ⓒ김윤재  일본 정부와 관련 당사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경과보고는 끝이 났다. 인천 연수고 학생들을 비롯한 참가단체 소개와 기부금 전...
명동역 1번 출구에서 볼 수 있는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사라집니다”

불편해도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광장과 공원, 학교와 버스, 지하철역 등 곳곳에서 마주하는 아픈 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녀상도 그 중 하나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독일, 캐나다와 중국에까지 자리하며 뼈아픈 역사를 응시하라고 한다. 서울 한성대입구역에 세워진 한중 소녀상. 단발의 한국인 소녀와 머리를 땋은 중국 소녀상을 한중 합작으로 만들었다 ⓒ박은영 2011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진 소녀상이 지난 8월, 일본 공공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시와 중단 그리고 다시 전시가 이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가만히 지켜보며 무엇보다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소녀상의 전시가 갖는 의미는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소녀상은 조금씩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박은영 세월이 흘러 소녀는 할머니가 됐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은 모습 그대로다. 현실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녀상의 모습은 그런 세상을 향해 조금씩 다른 형상으로 존재한다. 의자에 앉은 모습부터 곧게 서거나 살짝 들린 발, 소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은 새의 형상, 머리를 길게 땋은 소녀상이 우리 소녀상 옆에 앉아 있는 모습까지... 그러나 다양한 형상과 달리 세상을 향한 소녀의 눈빛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흰저고리와 검은치마를 입은 소녀상 ⓒ박은영 서울시는 그 소녀상을 또 다른 방법으로 제작해 세상에 알리고 있다. 바로 포스터다. 지난 12월 11일, 지하철 4호선 명동역과 충무로역 일대에 등장한 소녀상 포스터는 렌즈에 의해 영상이 서로 다르게 굴절되는 '렌티큘라 방식'을 사용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띄는데, 방향을 달리해 바라볼 때마다 소녀상이 흐릿해지고,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빈 의자와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사라집니다’라는 문구만 남는다. 따스한 모자와 목도리를 두른 소녀상 ⓒ박은영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소녀상 포스터는 2016년 8월, 서울시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 ...
도봉구 구민회관 옆 공원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모습 ⓒ김영옥

청소년들이 직접 세운 ‘창동 평화의 소녀상’

도봉구 구민회관 옆 공원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모습 지난 8월 15일 오전 10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많은 주민이 참석한 광복 72주년 기념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창동 3사자’ 제막식이 도봉구 구민회관 옆 작은 공원에서 열렸다. 2011년 12월 14일부터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는 날,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우리나라 최초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이후 소녀상은 전국 각지에 세워져 현재 73개가 있다. 지난 8월 14일 세계위안부의 날과 15일 광복 72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10여 개의 소녀상이 추가 건립됐는데 도봉구도 그 대열에 당당히 합류하게 됐다.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도봉구 내의 노곡중학교, 정의여고, 덕성여대 학생들과 시민단체, 시민들이 모여 만든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이뤄지게 됐다. 청소년의 자발적 서명과 모금 운동으로 세운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지난해 노곡중학교 동아리 학생들은 도봉구 청소년동아리 지원프로젝트 사업 중 하나인 ‘개(open)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이 프로젝트는 청소년 스스로 하고 싶은 것,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것을 찾아 기획하고 실행해 보는 활동으로 ‘한국의 진실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도봉구 소녀상 설립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들의 서명운동은 ‘도봉구 청소년참여위원회’와 만나 연합활동을 펼쳐 더욱 구체화 되었다. 청소년들은 지역에서 열리는 모든 축제에 빠짐없이 참여해 홍보하였고,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지역 어디에서든 서명운동을 벌였다. 청소년들의 활동에 지역의 시민단체와 주민들도 힘을 보탰다.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위원들 그중 하나로 덕성여대 소녀상 서포터즈 ‘봄밤’과 함께 지난 3월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발대식을 했다. 이후 후원금 모금 활동, 물품 등을 팔아 후원금에 보태기도 했다. 5개월 동안 활동한 결과 4,691만5,580원의 후원금이 모였고, 민관...
광복, 빛나는 역사에 잊지 말아야할 우리의 기억

광복절 즈음에 ‘전쟁 속 여성의 인권’을 만나다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것과 동일한 소녀상 지난 7월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김 할머니 소원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평생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광복을 맞이한 지 72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광복절을 앞두고 둘러볼 만한 기념공연과 전시가 많이 있었지만 그 중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찾아 나선 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였다. 4만5,000개 검은 벽돌로 이루어진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외관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성미산 자락 평범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들 아픔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첫 공간이다. 10년 동안 평범한 시민들이 모은 돈으로 마련됐다. 이런 곳에 누가 찾아오기나 할까 하는 마음으로 검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의 육중한 문을 밀었다. 어두컴컴하고 좁은 실내에는 예상 외로 많은 사람이 해설용 헤드폰을 끼고 관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물관 성격상 학생이나 일본인 등 단체 관람객이 많다고 했다. 이 날도 일본인관람은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지하→2층→1층 순으로 관람하면 이야기 흐름을 따라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철문을 열자 지하 전시관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이 나왔다. 군화 소리와 함께 거친 자갈길을 걸으며 소녀들이 연행 당시를 그린 그림을 보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끌려가던 소녀들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10여 명과 단체관람 온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들 삶을 나타내는 거친 자갈길 지하 전시실에선 악몽 같은 그때의 일을 증언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통스러웠던 그들의 삶과 마주했다. 그들이 겪었던 일들은 2층을 오르는 계단 벽돌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지 못했을 거예요’ ‘원통해서 못 살겠다, 내 청춘을 돌려다오’ ‘우리 ...
‘세계 위안부의 날’인 14일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소녀상’이 설치된 151번을 탑승했다

박원순 시장 “서울시,위안부역사 알리기 계속할것”

‘세계 위안부의 날’인 14일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소녀상’이 설치된 151번을 탑승했다 "소녀상이 곧 만들어질 것 까지 서울에 11개가 있는데, 보려면 현장을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버스에 설치돼 있는 것은 승객들이 오가며 소녀상을 보고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된 많은 분들을 기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계 위안부의 날'인 14일 오전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된 151번 버스에 탑승해 이와 같이 말했다. 서울시는 강북구 우이동에서 동작구 흑석동을 오가는 151번 버스 5대에 지난 13일 소녀상을 설치했다. 이달 8월14일(세계 위안부의 날)부터 오는 9월30일까지 운행할 예정이다. 옛 일본대사관 인근인 안국동 구간을 지날 때는 안내방송과 위안부 소재 영화 '귀향'의 음악(OST)이 나온다. 버스에 설치된 소녀상은 앞서 2011년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부부 작가 김운성·김서경씨의 작품이다. 기존 평화 소녀상과 크기와 모양이 같지만 승객 안전을 고려해 합성수지 소재로 제작했다. 151번 운영 버스회사인 동아운수가 설치를 제안하고 비용을 전액 지원했다. 박원순 시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거 한·일 위안부 합의가 적어도 우리 국민의 정서상 수용되고 납득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와 서로 이견은 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또 오는 10월 한국, 중국등 8개국 시민단체가 신청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결정을 앞두고 있는 것과 관련, "2차 세계대전이 오래 전에 끝났지만 아직도 과거 참혹한 역사에 대해서 충분히 기록이 발굴되거나 보존되거나 기록되지 않은 측면이 많다"며 "중앙정부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할 일이지만 중앙정부가 과거에 이런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시가 예산을 투입하거나 그런 민간의 노력, 학계의 노력에 대해서 지원해왔고 앞으로도 지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서...
해 나이 92세, 이름은 김복동. 피해자입니다.

[영상]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인터뷰

올해 나이 92세, 이름은 김복동. 피해자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서 ‘처녀 강제모집’이라. “각 군·면마다 몇십명씩 모집해라. 만약에 일본을 거역하는 날이면 조선에서 살지 못한다. 전 재산 몰수하고 다른 나라로 추방시킨다!” 내 나이가 만으로는 14살이고 우리 나이로는 15살이었습니다.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겠지요. “공장에 가는데 죽기야 하겠나” 하고서 간 곳이 공장이 아니고 일본군을 상대하는 공장. 근근이 목숨만 살아서 집에 오니까 나이 22살. 8년이라는 세월을 암흑 속에서 근근이 목숨만 살아 돌아온 우리들. 일본이 그렇게 나쁜 짓을 해놓고서 “우리가 한 짓이 아니다”, “돈벌이로 갔다”, “민간인이 한 짓이다”. 아직까지도 일본이 한 번도 사죄한 적이 없어... 역사를 생각해서 국민들이 한 푼 한 푼 모아서 소녀상을 설립했고 앞으로 후손들이 자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비극이 있었구나”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해놓은 것을 자기네들이 치우라고 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시대인 줄 아는 모양이지요? “우리들이 한 짓이니까...” “모든 것을 할머니들이 용서해 주십시오” 이러한 사죄와 법적 배상. 일본 정부가 사죄할 때까지... 우리 국민 여러분께서 같이 협조해서 하루라도 빨리 우리들이 죽기 전에 사죄받도록 해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
기존에 공개됐던 일본군 위안부 사진과 이번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인물들의 얼굴과 옷차림이 동일했다. ⓒ서울시 서울대인권센터

[The아이엠피터] 멈췄던 위안부기록 발굴, 마침내 서울시가 찾아내다!

서울시 정책 알기 쉽게 풀어드려요 (5)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알릴 수 있는 영상이 73년 만에 최초로 발굴됐습니다. 지난 7월 5일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는 미국 국립문서관리청에 있던 한국인 위안부 영상을 찾아내 공개했습니다. 한국인 위안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은 당시 미·중연합군으로 활동했던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배속 사진병이 1944년 9월 8일 직후 촬영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해왔습니다.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서울대 정진성 교수 연구팀)는 2년여 간의 끈질긴 발굴 조사 끝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자료를 찾아내, 73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세계 최초로 공개된 위안부 영상 기존에 공개됐던 일본군 위안부 사진과 이번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인물들의 얼굴과 옷차림이 동일했다. 그동안 한국인 위안부 관련 증언과 문서, 사진 등이 공개된 적은 있었지만, 실제 촬영된 영상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입니다. 영상에는 민가 건물과 중국군,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1944년 9월 7일 미·중연합군은 일본군이 점령했던 송산을 점령합니다. 이때 일본군 위안부로 있던 24명 중 10명이 생존해, 미·중연합군의 포로로 잡혔습니다. 영상은 미·중연합군 점령 다음 날인 9월 8일 촬영된 것입니다. 영상 속 여성과 대화하는 군인은 미·중연합군 산하 제8군사령부 참모장교 신카이 대위(중국군 장교)로 추정됩니다. 나머지 여성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상 속 여성이 한국군 위안부라고 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2000년 고(故) 박영심 할머니가 자신이라고 밝혔던 사진과 영상 속 인물들의 얼굴과 옷차림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송산에서 쿤밍 포로수용소로 이동해 작성된 포로 심문 보고서를 보면, 포로 명단 가운데 고(故) 박영심 할머니의 이름도 명확히 표기돼 있었습니다. 위안부 관련 문서가 대부분 일본 정부, 군의 공문서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
광화문 소녀상 ⓒ미스핏츠

“소녀상에서 기억의 터까지” 서울의 아픔을 따라

서울은 깊고도 복잡한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높은 유리건물들이 즐비한 화려하고 발전된 도시 같아 보여도 바로 옆 골목길로 들어서면 수십 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옛부터 서울의 중심지였던 중구 일대는 수많은 문화와 역사가 혼재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렇게 오랜 중구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깊고 선명한 흉터를 남긴 시절이 바로 일제 강점기입니다. 광화문 ‘평화의 소녀상’부터 남산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까지 우리의, 서울의 아픈 역사를 따라 여행을 떠나보았습니다. 광화문 소녀상 소녀는 혼자가 아니다 여행의 시작은 광화문 소녀상이다. 광화문의 오른편에는 일본 대사관이 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평화의 소녀상이 앉아있다. 울지도, 화내지도 않는 차분한 시선이 주위를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녀상을 찾아왔다. 학생들 몇 명이 소녀상 앞에 꽃을 두고 가기도 했다. 소녀상의 뒷편에는 서명용지와 모금함이 놓여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인사동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노란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모인 대학생들이 지내는 텐트라고 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보내는 따뜻한 손길에 꽃샘추위도 한 풀 꺾이는 듯하다. 민간문화재 유출의 항구, 인사동 한국의 전통문화를 느껴보고 싶은 외국 관광객이라면 꼭 들르는 곳이 바로 인사동이다. 이 날도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인사동을 채우고 있었다. 오래된 화방들과 찻집들, 골목에 숨은 골동품들은 인사동을 찾은 사람들에게 한국적인 멋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은은히 들리는 퉁소와 북 소리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평화로운 인사동,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민간유물이 일본으로 유출되던 아픈 역사의 장소이다. 이런 평화로운 인사동 또한 아픈 역사를 피해갈 순 없었다. 조선 시대부터 인사동은 그림을 관리하던 관청인 도화원이 설치되어 문화상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조선을 점령한 일본인들은 인사동의 미술상, 서점 등에서 한...
평화의 소녀상 발밑에 시민들이 갖다 놓은 꽃다발과 선물들 ⓒ방윤희

평화의 소녀상, 봄을 기다리다

우수(雨水)가 지나고 봄의 문턱에 서 있는 요즘,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은 봄맞이를 하고 있을까? 3·1절을 앞두고 ‘소녀상’을 보고자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주한일본대사관 앞으로 봄마중을 다녀왔다.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의미하는 상징물로, 정식 명칭은 ‘평화의 소녀상’이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만난 ‘소녀상’은 일본대사관을 지긋이 응시한 채 앉아있다.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짧은 단발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앳된 소녀! 슬픈 눈으로 쓸쓸히 앉아 있는 소녀 모습의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군에 끌려갔던 14~16세 때를 재현한 것이다. 무릎담요로 온 몸을 꽁꽁 덮고 있는 걸로 봐선 아직 겨울이 가지 않은 모습이다. ‘소녀상’ 발밑으로 여러 다발의 꽃이 놓여있다. 그 중 연탄이 눈에 띄었는데, 혹여 추위에 떨고 있을 ‘소녀상’을 걱정하는 마음이 모인 것이다. 추위도 추위겠지만 ‘소녀상’은 추위보다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녀상’ 옆자리에 빈 의자를 놓아둔 이유도 이곳에 앉아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공감해 보자는 취지라고 한다. 평화의 소녀상 발밑에 시민들이 갖다 놓은 꽃다발과 선물들 꽃다발과 나란히 ‘진실을 위해 여기 선 여성’으로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김학순, 김순덕, 강덕경, 배춘희, 백넙데기, 문필기, 김상희” 이 이름들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이다. 평화비에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쓴 평화비 문구와 함께, ‘1992년부터 이 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의 천 번째를 맞이하여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운다’라 적혀 있다. 평화의 소녀상 옆의 평화비 내용 평화비 옆으로 바람을 막을 정도의 흰 비닐을 두룬 천막이 자리했다. 추운 날씨에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소녀상을 지키려 농성중인 대학생들이다. 이 날은 대학생공동행동 소녀상 철거 반대 농성 418일차를 맞은 날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