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한 작품들

글보다 인생이 먼저 보인다…어르신들의 ‘시화전’ 감동

지난 9월에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이 ‘2020 서울 문해교육 시화전’을 개최했다. ‘온라인 시화전’이다. 그때 출품한 작품 중 서울특별시장상 3편,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장상 14편, 전국 시화전 입상작 18편 등 수상작 총 35편이 있다. 모두 문해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작품이다. 필자는 시화전의 작품을 보면서 배움에 목말라하셨던 어릴 적 할머니가 떠올랐다. 2020 서울 문해교육 시화전 포스터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필자의 할머니는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지 못하셨다.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집안에 유일한 남자였던 막내동생만 초등학교에 보내서 글자를 깨우치게 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원거리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실 때면 차례대로 한글을 깨친 손주들의 손을 잡고 다니셨다. 그러면서 철부지였던 우리에게 늘 배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할머니는 자신을 보라면서 우리가 공부를 게을리하기라도 하면 엄하게 꾸지람을 하셨다. 그러다 노인대학에서 한글을 가르쳐준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시곤 “내가 이 나이에 한글을 배워서 뭐하랴?”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동네 친한 할머니와 같이 노인대학에 등록하셨다. 그때부터 하교한 뒤 할머니가 공책에 한 글자씩 따라 쓰면서 한글을 익히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문득 어린 시절 연필을 손에 쥐고 꾹꾹 눌러서 글자를 쓰면서 소리 내 발음하셨던 할머니가 그립다. 2020 서울시 문해교육 시화전 온라인 작품집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서 서울시와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은 문해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수상작으로 시화전을 열고 있다. 농삿일에 바쁜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를 배워서 쓰지 못하는 점을 불쌍히 여긴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 처음엔 한글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불렀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아마도 세종대왕이 시화전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작품을 구경한다면 정말 기뻐할 것 같다. '서울 문해교육 시화전' 작품은 카카오 갤러리(다음 갤러리)를 통해서 공개했다. ‘다음 모바일 ...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28

574돌 ‘한글날’ 온라인 전시로 즐겨요!

조선 초기 시절, 백성들은 글을 몰라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억울한 일을 글로 쓰지 못해서 알릴 수 없었고, 편지를 받아도 읽을 수 없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이런 사정을 알고 쉽게 쓰고 읽을 수 있는 '훈민정음'을 1443년에 만들었다. 서울시는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하여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28'를 서울도서관 외벽에 전시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일 직접 보고 해설한 바 있는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이 구성하고 박용훈, 양효정, 강수현 한글 디자이너들이 작업한 인포그래픽이 돋보이는 전시다. 하지만 요즘 같이 바깥 출입이 힘든 시기에는 아무리 좋은 전시라 해도 현장 방문이 꺼려지기 일쑤다. 서울시 공식 블로그(http://blog.seoul.go.kr/222107234210)를 통해서도 관련 전시 소식을 살펴볼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28' 중 1장 훈민정음 해례본의 계승 역사 ⓒ서울시 전시는 총 28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해례본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1~28장까지 훈민정음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다. 가령 20장에서는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해례본이 나오기까지의 긴 세월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21장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오고나서 세종대왕이 제일 먼저 한 일 등을 소개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28' 중 19장,  훈민정 보급을 위한 7대 정책 ⓒ서울특별시 공식블로그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은 사대부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그러던 중 1449년 훈민정음을 사용한 최초의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 훈민정음으로 '정승 하연'을 비난하는 글을 벽보에 쓴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을 사용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서 노력했던 결실이었다. 사건의 자세한 경위는 26장에 전시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훈민정음은 '예의'와 '해례'로 나뉜다. 예의는 '세종실록'과 '월인석보'에 실려 있지만 해례본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
서울도서관에서 보는 훈민정음해례본 이야기.

1년에 한 번뿐! 한글주간 전시·강좌 추천

올해 10월 9일은 574돌 한글날이다. 10월 5일부터 11일까지는 ‘2020 한글주간’으로 코로나19로 인해 큰 행사는 못하더라도, 알차게 볼 만한 곳들을 정리해봤다. 서울도서관 앞,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서울도서관 외벽에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가 전시 중이다. ©김윤경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오고 나서 세종대왕이 가장 먼저 한일은 무엇일까? 훈민정음 해례본도 쪽수가 있을까? 서울도서관 외벽을 자세히 보면, 창문 하나하나에 붙여진 한글 관련 내용들이 더욱 호기심을 끈다. 더욱이 일반적인 한글보다 기존에 미처 알지 못했던 훈민정음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있다. 서울시가 올해 한글날을 맞이해 9월 28일부터 10월18일까지 진행하는 한글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전시다. 지나치지 말고 자세히 읽어보면 매우 흥미롭다. ©김윤경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최초로 직접 보고 해설했던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이 구성했으며, 이무성 화백의 그림과 박용훈, 양효정, 강수현 한글 디자이너들의 멋진 입체 정보 그림(인포그래픽)도 함께 즐길 수 있어 흥미롭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온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공문서를 보낸 일이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반포 한 달 뒤쯤, 직접 훈민정음으로 공문서를 발행해 의금부와 승정원에 보냈다. 왕이 공문을 훈민정음으로 작성하는 건 훈민정음 반포에 버금갈 만큼 파격적이고 한글에 대한 의지가 담긴 일이었다. 또한, 당시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쪽수도 있는데 지금과 같지는 않으나 양 쪽 가운데에 ‘장차’라고 불리는 숫자가 표기되었으며, 이름은 장 또는 엽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간행 후, 최초로 국민이 훈민정음을 사용한 사건 또한 그 의미가 특별하다. 해례본 간행 후 3년 뒤 어느 정승을 비난하는 글이 벽에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사건이다. 그 벽보는 훈민정음으로 사람들이 생각을 적어 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훈민정음이 국가시험 과목으...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중 –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이 되었나요?

10월에 꼭 봐야 할 전시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중 –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이 되었나요? 서울시는 올해 한글날을 맞이해 한글의 창제원리와 사용법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를 9월 28일부터 10월 18일까지 서울도서관 외벽에 전시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는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최초로 직접 보고 해설한 바 있는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이 구성한 것으로, 이무성 화백의 그림과 박용훈, 양효정, 강수현 한글 디자이너들의 멋진 입체정보그림(인포그래픽)을 함께 볼 수 있어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와 한글의 역사를 흥미롭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중 –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오고 나서 세종대왕이 제일 먼저 할 일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왜 창제했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자세히 풀어쓴 책으로 하나의 문자가 어떤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고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 또, 발음은 어떻게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해례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데 이어 1997년 유네스코 세례기록유산으로 지정돼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와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게 됐다. 박진영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산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를 전시하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시민과의 소통의 관점에서 한글의 가치와 그 의미를 잘 되새길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문의 : 시민소통담당관 02-2133-6440 ▶ ‘내 손안에 서울’ 앱으로 받아보기 ▶ '코로나19 서울생활정보' 한눈에 보기 ▶ 내게 맞는 '코로나19 경제지원정책' 찾아보기 ...
2014년 10월 문화시설로 개방된 ‘윤극영 가옥’ (강북구 소재)

세종대왕기념관, 명동예술극장 등 ‘10월 미래유산’ 선정

2014년 10월 문화시설로 개방된 ‘윤극영 가옥’ (강북구 소재) 문화예술의 중심지 ‘명동예술극장’,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세종대왕기념관’, 동요작가 윤극영의 숨결이 살아 있는 ‘윤극영 가옥’…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10월의 역사가 담긴 ‘서울 미래유산’이라는 점이다. 서울시는 매달, 해당 월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 미래유산을 ‘이달의 미래유산’으로 선정하고 있다. 이번 10월의 미래유산에는 1936년 10월 7일 개관한 ‘명동예술극장’, 1973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개관한 ‘세종대왕기념관’, 2014년 10월 27일 문화시설로 시민에게 개방된 ‘윤극영가옥’이 선정되었다. ①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은 1936년 10월에 ‘명치좌’(明治座, 메이지좌)라는 이름으로 개관하여 주로 일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사용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국제 극장, 국립극장 등 다양한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우리나라 근현대 문화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해 온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최초 개관한 ‘명동예술극장’은 당시 1,100여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영화관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공연장으로 사용되어 가수 현인이 ‘신라의 달밤’을 처음 부르기도 하였고, 2009년에 리모델링 후 연극 전문 공연장으로 재개관하는 등 문화예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1936년 10월 개관한 ‘명동예술극장’ (중구 소재) ② 세종대왕기념관 세종대왕의 업적을 추모하고 한글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설립된 ‘세종대왕기념관’은 1973년 10월에 개관하였다. 건축가 송민구가 한국 고전 건축의 모습이 잘 표출되도록 설계하였으며, 세종대왕과 관련한 다수의 국보와 유형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세종대왕기념관’에서는 세종대왕의 어진을 비롯하여 집현전 학사도, 훈민정음 반포도 등 세종대왕의 일대기와 관련하여 전시되어 있...
2020년 말에 완공 예정인 세종대로 사람숲길을 알리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모바일 게임하고 선물 받자! 세종대로 사람숲길 이벤트

세종대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시는 보행친화도시로 바꾸기 위해 세종대로를 사람숲길로 개편하고 있다. 세종대로는 광화문부터 시작해 광화문역, 청계광장, 서울시청, 덕수궁, 숭례문, 서울역까지  이어지는 도로로, 정부와 서울시 관공서, 문화시설 등이 늘어서 있다. 한 마디로 서울의 중심지를 가로지르는 핵심 도로인 셈이다. 의미가 큰 도로이지만 그동안은 사람 중심의 길이라고 말하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서울시는 ‘세종대로 사람숲길’ 사업을 통해 기존 자동차 중심의 세종대로를 사람 중심으로 바꿀 계획이다. 이번 사업에서는 12~9차선 도로를 9~7차로로 줄이고, 보행 공간을 확대한다. 보행 공간에는 단순히 인도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걷는 시민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싱그러움을 느끼게 해줄 가로수도 심을 예정이다. 자전거도로도 신설되어 녹색교통 공간으로 확 바뀐다. 광화문 광장에 갈 때마다 차가 너무 많아 번잡하고 황량한 도시 같다고 느꼈는데, 좀 더 거닐고 싶고, 즐기고 싶은 거리로 바뀔 예정이다. 세종대로 사람숲길 조감도 ⓒ서울시 세종대로는 청계천, 덕수궁 돌담길, 서울로7017 등 서울에서 대표적인 걷기 좋은 공간들과 연결돼 있다. 보행공간이 확대되면 서울의 새로운 걷기 명소가 될 전망이다.  또 광화문, 덕수궁, 숭례문 등 서울의 대표적 역사공간과 맞닿아 있는 만큼, 역사와 조경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새로운 관광 자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세종대로 사람숲길’은 올해 연말이면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동차 대신 사람이 북적이는 세종대로가 벌써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세종대로 사람숲길 모바일 게임 이벤트 ⓒ서울시 새로운 세종대로가 공개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서울시에서는 '세종대로 사람숲길'을 알리고 시민들의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재밌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모바일게임 바로가기 새롭게 만들어질 ‘세종대로 사람숲길’을 미리 걸어볼 수 있는 게임으로, 9월 22일부터 10월 15일까지...
역사와 전통의 도시답게 서울엔 수많은 인재와 우국지사들의 자취가 남아있다 Ⓒ박세호

종로 거리에서 만난 역사의 주인공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박세호 흔히 경주나 강화도 같은 지역을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야말로 길거리 유적과 유물이 정말 많다. 박물관 입장은 엄두도 못내는 요즘, 걸거리에서도 역사적 장소를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종로 대로변 보기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무심코 지나쳤던 역사 인물들의 동상과 표지석들을 둘러보자.  광화문하면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상징처럼 떠오른다. '세종대왕' 동상은 용상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일부양구(해시계), 측우기, 혼천의(천체관측기) 등이 함께 진열돼 있다.세종대왕 재위 시(1418∼1450) 조선은 군사나 문화 측면에서 일본에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고, 세종 1년 해안가에 수시로 출몰하여 괴롭히던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 정벌을 이뤘다.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종대왕의 출생지 터가 있다. 3호선 경복궁역에서 바라보면 세종마을 입구 대로변에 표지석이 있다. 이 일대 경복궁 서쪽 마을을 서촌이라고 하는데 박노수 미술관, 화가 이중섭, 이상범 가옥, 윤동주 하숙집, 이상의 집, 벽수산장, 배화여고 선교사 건물, 이항복 집터, 이회영 생가, 황학정, 종로도서관 외 레스토랑, 카페 그리고 명당, 명소가 부지기수다.  세종대왕 동상 앞 양부일구(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의 조형물도 함께 볼 수 있다 Ⓒ박세호 '이순신 장군' 동상은 그 기개만큼이나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고, 앞자락 잔디밭을 널찍하게 간직한 채 광화문광장 끝까지 호쾌한 전망을 자랑한다. 이순신(1545~1598) 장군은 임진왜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왜군을 퇴치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 마지막 함대를 모아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해상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육지에서도 왜군은 참패를 안고 돌아갔다.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박세호 이순신 장군 동상 건너편이 교보문고 입구이며 만남의 광장이다. 이곳에 벤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소설가 ...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스승의 날이 5월15일인 이유? (feat. 세종대왕)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광주민주화운동 등등 기억해야 할 날이 많다. 그 중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본래 스승의 날은 5월 26일이었다가 5월 15일로 바뀌었다. 이날은 세종대왕 탄신일이기도 하다. 스승의 날이 세종대왕의 탄신을 기려 정해진 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과연 세종대왕과 스승의 날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세종대왕을 알아야 한다. 세종대왕은 재임기간 중 과학과 음악, 인쇄술, 천문을 발전시켰고 4군6진을 개척, 국방도 튼튼하게 해 외세가 넘보지 못하게 했다. 뿐만아니라 궁궐 내 집현전을 설치해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이들로 하여금 제도개선, 역사기록업무를 맡겼다. 세종은 모든 일의 중심에 백성을 두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펴나갔고, 황희 정승처럼 청렴한 재상을 관리로 앉혀 깨끗한 정치를 한 인물이다.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의 위엄 ⓒ조시승 세종의 가장 훌륭한 업적은 ‘훈민정음’ 창제다. 왜 많은 업적 중에서 한글창제가 가장 손에 꼽는 업적이 된 걸까? 독일 언어철학자 훔볼트는 “언어는 민족정신을 의미하며 역사를 반영하고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말해 각국의 모국어는 특정한 민족정신과 역사를 발산한다는 의미다. 이렇듯 언어와 민족정신에 중요한 지주역할을 하는 ‘훈민정음’ 창제한 것이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일제가 한국어를 교육과정에서 빼버려 우리말을 말살하려 한 것도 조선의 역사와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였다. 경복궁역 통의동 세종대왕 탄신지에 세워져 있는세종마을 입간판 ⓒ조시승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한자를 사용했다. 양반들은 공부를 해 한자를 읽을 수 있었지만 일반백성들은 생업에 바빠 공부를 못했고 어려운 한자를 읽을 수 없었다. 세종은 백성들이 글과 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1446년 집현전 학사들과...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과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570돌 한글날 맞아 서울시-한글단체 세종문화 선언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이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시와 한글단체가 7일 오전 서울시청 8층 간담회장에서 협약식을 가졌다. ‘한글단체-서울특별시’ 협약식은 훈민정음 반포 570주년을 맞아 한글 선양에 적극 협력하기로 약속하는 자리로, 한글단체를 대표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한글문화연대, 한글학회 등 9개 단체 대표가 참석했다. 이날 열린 협약식을 통해 서울시와 한글문화단체는 소통과 융합을 중시한 세종시대의 시대정신을 계승해 서울의 문화발전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펼칠 것을 선언했다. 서울시 세종 문화 선언 전문 사람은 누구나 문화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문화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나, 기본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발전합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기 이전 우리 사회는 한자를 기반으로 일부 계층만이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저장하고,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비로소 모든 백성들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부계층의 문화가 아닌 보편적 문화의 발전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세종시대가 갖는 문화적 의미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러한 한글은 오늘날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와 만나면서 입력방식의 효율성과 체계성, 과학성과 경제성 등에서 가장 효율적인 문자체계로 떠오르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한글이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문화자산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글뿐만 아니라 세종시대는 경제·사회·문화·과학·예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발전을 이룬 시대입니다. 세종시대는 토론을 중시한 소통혁명의 시대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모든 분야에서 막힘없는 소통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필수요소일 것입니다. 세종시대는 조건 없는 인재등용과 9,000여회에 이르는 토론과 경연을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지식경영의 시대였습니다. 우리사회가 보다 발전하기...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KBS 대하드라마 `장영실`ⓒ뉴시스

`장영실`의 성공과 몰락이 던지는 의미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KBS 대하드라마 `장영실`세종대왕이 그려진 만 원짜리 지폐의 뒷면에는 그려진 혼천의(천문관측기)와 천문도(별자리 그림)를 만든 주인공 ‘장영실’. 요즘 그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 15세기 조선 천재과학자 장영실은 유교를 근간으로 한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노비로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궁에 들어가 조선의 과학기술을 세계 최고로 만든 과학자이다. 그의 숨은 이야기를 좀 더 알아보자. 일만원권 지폐 앞면엔 세종대왕이 뒷면엔 장영실이 만든 혼천의가 그려져 있다노예로 태어나다그의 본관은 충남 아산현이다. 관노이기 때문에 출생기록이 정확하게 남아있지 않으나 139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15년(1433)에 장영실의 출생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의 소주·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관의 기생이었다.”라고만 되어 있다.반면 ‘아산 장씨 족보’에는 장영실이 고려 때 송나라에서 망명한 이후 줄곧 한반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귀화인의 후손으로 장영실의 집안은 양반 가문임을 밝히고 있다. 아버지는 고려 말 정3품 전서(典書)로 서운관(천문현상,운명학,풍수지리 담당관청) 판서를 지낸 장성휘(蔣成暉)로 되어 있다.또 ‘아산 장씨 종친회’에 따르면, 3세손인 장공수와 장숭이 당시 무기 제조 기관이었던 군기시 책임자를 지내고, 5세손 장득분이 기상관청인 서운관의 책임자를 지내는 등 대대로 고려의 과학 기술 분야 고위직 책임자였다니 조상으로부터 과학적 재능이 이어져 내려온 것 같다. 아버지 5형제 모두 과거에 급제해 장관급 자리까지 올랐으나, 조선 개국을 반대하다가 이방원 등 개국파의 철퇴를 맞아 급격히 몰락했고, 이때 장영실의 어머니가 관노(관청의 기생)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장영실은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노예로 태어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도서관 앞에 위치한 장영실 동상노예 신분으로 궁에 들어가다장영실이 10세가 되자 어머니와 헤어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