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섬이 묻어버린 어느 남자 이야기

모래섬이 묻어버린 어느 남자 이야기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2) 해안과 가까운 한 모래섬에서 평소와 다른 이상한 광경이 목격됐다. 근처를 지나던 선장이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건, 독수리 때문이었다.“큰 독수리가 거기에 앉아 있어가지고, 그걸 뜯어먹고 있는 거예요.”처음엔 독수리의 먹잇감이 동물의 사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사람의 시신이었다. 모래에 파묻혀 발목만 나와 있는 상태로 백골이 드러날 정도로 부패해 있었고, 밀랍처럼 지방으로 변하는 시랍화 현상이 진행돼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곳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인도 모래섬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한겨울에 발견된 시신은 아래 속옷만 입은 채였다. 인근 해안가 마을은 곧 소문으로 술렁였다.“누군가 인위적으로 파묻은 그런 느낌 있잖아요.”“일이 잘 안 풀려서 거기 가서 자살한 것 같아요.”“술 마시고 배타고 나갔다가 사고로 죽은 거라고도 하던데...”부검 결과, 두개골 쪽의 타살혐의점은 없었고 나머지는 시랍화 현상으로 사인을 가릴 수 없었다. 지문을 확인할 수 없어 신원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치아 감식을 통해 대략 50세 가량의 남성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었다. 대체 남자는 누구이고, 왜 무인도모래섬에서 속옷만 입은 채 시신으로 발견된 것일까. 그런데 근처 김양식장에서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이걸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 동네에서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져서 안보여요. 한두 달 된 것 같아요.”모래섬에서 시신이 발견되기 한 달 반 전에 마을에서 사라졌다는 사람... 그는 김양식장이 몰려있는 마을에 머물며 일을 해왔다는 50대 초반의 김씨였다. 그가 머물던 방에는 사용하던 집기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심지어 지갑과 휴대전화도 그대로였다.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확인해보니 인상착의가 발견된 시신의 키와 머리모양이 비슷했다. 그렇다면 모래섬의 시신이 사라진 김씨가 아닐까? 이상한 건, 김씨와 함께 김양식장 작업을 할 때 타고 다니는 모터 달린 배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료는 김씨...
그림자ⓒ뉴시스

“내가 모르는 자식이 있다고요?”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1) 당신의 도플갱어가 있다면?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자식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일까?A씨는 유학생 시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몇 년 뒤 귀국해 혼인신고와 아이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구청에 갔다가 날벼락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출생신고를 하면서 자녀 한명 중 첫째라고 썼죠. 그랬더니 담당직원이 제 이름으로 아이가 한명 더 있다고 하는 거예요.”A씨의 가족관계기록에 아들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낳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입양하지도 않은 생면부지의 아이가 호적상 자식으로 올라와 있는 게 알려지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시댁은 물론이고 남편까지도 A씨를 의심했다고 한다.“시댁에선 제가 숨겨놓은 자식이 있으면서 속이고 결혼했다는 거죠. 오해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제가 당신의 아들 신세 망쳐놓았다고... 결국 이것 때문에 이혼까지 했는데 사기결혼으로 소송까지 당했어요.”대체 A씨도 모르는 자식은 누굴까? 그 아이가 출생신고 된 그 시기에 A씨는 분명 한국에 없었다. 또 다른 A가 그녀 행세를 하면서 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A씨는 짚이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10여 년 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온갖 문제를 일으켜온 C라는 여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에서 연락이 오는 바람에 자신의 명의를 도용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때 C씨를 직접 만나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그때 C씨는 길에서 우연히 주민등록증을 주웠고, 그걸로 통장개설과 휴대전화가입을 했노라며 용서를 빌었다.C씨가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호소했고 나이도 어려 안쓰럽기도 해서 빠른 시일 내에 서류정리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용서해줬는데, 돌연 자취를 감춘 뒤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A씨 행세를 하며 심지어 아이까지 가족으로 등록을 해놓은 것이다. C씨가 A의 신분을 도용해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구청에 출생신고를 할 때까지 관계자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지만 알고 있으면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었...
손ⓒ뉴시스

친권의 늪에 갇힌 아이의 SOS 신호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0)“아이가 소리 내 울지도 못했어요.”한 아동센터에서 촬영한 비디오 영상 속 사내아이는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며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섯 살 아이는 그림도 곧잘 그리고 칭찬을 해주거나 애정표현을 해주면 눈을 빛내며 배시시 잘 웃어주기도 했다. 아이는 누나와 함께 아동센터에 두 달을 다녔다. 원래는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방과 후 돌봄 교실이지만 복지사가 놀이터에서 허름한 차림의 남매를 발견한 뒤 아동센터에 데려와 식사와 학습, 놀이를 할 수 있게 배려했다. 부모는 형편이 넉넉했는데도 남매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내아이를 씻겨주던 복지사는 아이의 몸이 멍투성이인 것을 발견하고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남매와 대화를 나눈 내용을 일지에 남겼다.‘배가 고팠지만 새엄마가 자고 있어서 말을 걸면 혼나기 때문에 말도 못하고 20분 넘는 거리를 혼자서 걸어왔다고 한다’‘아침에 소변 실수를 했는데 새엄마가 옷을 갖다 버리라고 화를 내서 너무 무섭고 슬펐다고 한다.’‘아빠가 가족 외에는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한다며 집안 이야기를 밖에서 하지 말거나 거짓말로 둘러대라고 시켰다고 한다.’복지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학대의심 신고를 했고, 새엄마와 친부의 학대 및 방임 사실을 확인했다. 기관에서는 남매를 부모로부터 분리해 시설로 보내기로 결정했지만, 입소가 취소됐다. 시설에 빈자리가 없어서 대기를 하던 중, 친부가 아이들이 눈에 밟혀 도저히 보낼 수 없다면서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며 남매가 잘 지내나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아이들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더니 문자메시지로 더 이상 센터에 보내지 않겠다는 짧은 답변만 돌아왔어요. 불안해서 아이들 상태를 직접 확인하려고 했는데 당신네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면서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맡아서 키우라고까지 말하더라고요. 저희 입장에선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서 아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입장...
하늘ⓒ뉴시스

내가 믿는 것은 ‘사실’인가?

방송작가 최경의 (39)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지독한 편견과 오류는 그렇게 강화된다. 나에 대해, 타인에 대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각종 이슈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갖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편이 갈라지고, 오해가 쌓이고 불신이 커지고 극단적인 대결로까지 번지곤 한다. 어떤 일이든 ‘사실’ 확인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그 ‘사실’이 내가 알고 있는 것, 믿고 싶은 것과 상충되기 시작하면, 사실조차 허위이거나 음모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신념이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러고 보면 참 나약한 존재다. O씨의 집에는 거실과 방마다 물을 채운 페트병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무언가 감지를 할 때마다 동영상으로 물병을 촬영하곤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윗집의 소음 때문에 거의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쿵쾅거리는 소리로 괴롭히더니 이제는 낮게 지속되는 기계음과 진동을 유발해 자신의 가족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진동을 잡아내기 위해 고심 끝에 물병을 천장에 매달아놓고 수시로 동영상으로 증거를 잡아내려 하고 있었다. 이 진동 때문에 열 달 사이 체중이 6Kg이나 줄었고, 잠을 제대로 못자니 입맛도 잃었다는 O씨, 그럴수록 몸의 모든 센서가 진동감지로만 향하고 있었다. 제작진 앞에서 지금도 진동이 온몸에 전해져온다며 씽크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O씨, 하지만 정작 제작진에게는 아무런 소음이나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윗집이 유발한다는 진동과 기계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제 생각엔 치과기공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윗집 남자가 치과에 근무하거든요. 친척 중에 치과의사가 있어서 물어봤더니, 치과기공하면 진동이 엄청나서 밑에 집에 살면 엄청나게 힘들 거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걸 당하고 있는 거예요.” 제작진이 진동을 유발한다는 윗집을 찾아가 확인을 해봤더니 실제로 윗집 남자가 치과에 근무하고 있었다....
손

할머니 ‘기역(ㄱ)자’ 등이 곧게 펴진 사연

방송작가 최경의 (37) 종로 ‘기역(ㄱ)자’ 할머니의 소망 몇 년째 종로 거리를 떠도는 한 사람을 둘러싸고 소문이 무성했다. 작년 초의 일이다. 대번에 눈에 띄는 모습 때문에 종로 일대의 상인들 중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몇 년 전부터 매일 봐요. 몸이 옆으로 구부러져서 걸어 다니는 거 보면 안쓰러워요.” “완전 기역자라니까 기역자. 작년보다 더 옆으로 기울어진 것 같아, 날도 추운데 저러고 놔두면 죽을 것 같아요.” “이름 물어봐도 안 가르쳐 주고, 병원 가보자 그래도 화만 내고, 누가 좀 도와줬음 좋겠어요.” 매일 종로 거리에 나타난다는 ‘기역자 할머니’는 상반신이 왼쪽으로 심하게 굽어 기역자 모습으로 하루 종일 걸어 다닌다고 했다. 얼마간 기다려보니, 상인들이 가리키는 곳에서 실제로 ‘기역자 할머니’가 보였다. 고개까지 왼쪽으로 심하게 꺾여 있어서 앞이 제대로 보이는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도와주고 싶어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돌아온 건 거친 욕설뿐이었다. 심지어 허리띠까지 휘두르면서 제작진은 물론이고 선의로 사람들을 쫓아냈다. 그리고는 노점상에서 튀김 몇 개를 사고는 멀찌감치 떨어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먹기 시작했다. 타인이 접근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심한 기역자 할머니지만, 튀김을 판 노점상의 이야기는 좀 달랐다. “단골이에요. 온지 몇 년 됐지. 근데 꼭 저렇게 다른데 가서 먹어요. 장사 방해될까봐 그러는 것 같아. 돈도 안 받겠다 해도 꼭 줘요. 남 신세지는 걸 싫어하더라고요.” 대체 기역자 할머니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어떤 이는 자식들이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은 할머니를 갖다 버린 거라고도 했고, 또 어떤 이는 할머니가 집도 재산도 많은 알부자인데다가 몸도 실제로 멀쩡한데 일부러 사람들 동정심을 사 돈을 얻기 위해 그렇게 다니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모두 소문일 뿐, 할머니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제작진이 며칠 동안 관찰해본 결과, 기역자 할머니는 낮에는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밤이 ...
석양ⓒ시민작가 강명훈

위기의 가족, 침묵하거나 폭발하거나

방송작가 최경의 (36) ‘무언가족’, 그 어려운 해법 찾기 2 ‘쾅쾅쾅!’ 오늘도 김씨는 잠긴 방문을 두들기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너 누구 서로 죽는 꼴 보려고 그래? 빨리 문 열어. 문 열고 나와 보라고!” 잠긴 문 너머에선 아들이 날 선 목소리로 대꾸를 한다. “문 열고 저만 나오면 뭐해요. 아빠하고 나하고 뭔 할 얘기가 있냐고요. 아빠가 나랑 싸웠어요? 아빠가 자초한 거예요. 이게 다!” “너 때문에 엄마하고 싸웠지. 내가 누구 때문에 싸우겠니? 이 집안에 분란을 일으킬 사람이 너 밖에 더 있어? 그러니까 문부터 열고 얘기하자니까!... 야!!” 제작진에게 한숨을 몰아쉬며 연락을 해온 이는 아버지 김씨였다. 1년 전쯤 아들과 아내가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더니, 도무지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씨가 일을 하러 나간 뒤에야 방문을 연다는 모자. 문제는 방안에 있는 아내의 상태라고 했다. “쟤 엄마가 장애가 있어서 손발을 못 써요. 휠체어 타고 누가 옮겨주고 해야만 씻고 나가고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20년을 살았어요. 내가 혼자 벌어 살다보니 갈수록 생활이 쪼들리고 혼자 버는 거로는 당해내질 못하니까 싸우게 되더라고요. 근데 아들놈이 스무 살이 넘었어요. 그러면 자기 앞길 알아서 챙기고, 집에 보탬이 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러는 것도 아니고, 저 놈 때문에 집사람이랑 한 번 크게 싸웠는데 그 뒤부터 둘이 나를 완전히 무슨 벌레 취급을 한다니까요. 지금 저 방안이요. 아주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이 됐다고요.” 20년 전, 장애를 가진 아내와 결혼해 낳은 아들이 스무 살이 넘었지만 앞가림을 못하고 있고, 그게 늘 싸움의 원인이었다. 결국 모자가 방문을 걸어 잠그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방안에 1년 가까이 치우지 않고 쌓아둔 쓰레기가 가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방문 가까이만 가도 악취가 진동했다. “어휴, 가관이에요. 방안에 쓰레기가 산봉우리보다 더 올라 갔어요. 집에 와도 낙이 없는 거야. 자식이든 마누라든...
노을ⓒ김용대(2014빛공해사진UCC공모전수상작)

대화 끊긴 ‘무언가족’, 벼랑 끝에서 말문을 열다

방송작가 최경의 (35) ‘무언가족’, 그 어려운 해법 찾기 1 어느 날, 꽤 오래 호흡을 맞춰왔던 PD가 기획안 하나를 내밀었다. 제목은 . 대화가 끊긴 가족들을 밀착해 그 원인과 해법을 모색해보는 다큐멘터리 2부작에 관한 것이었다. 기획안에 적힌 구체적인 제작 내용은 다분히 극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아 실현 불가능해 보였지만 제목의 상징성 때문에 뭔가 핵가족시대, 공동체 해체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처한 문제를 함께 공감하며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는 시작됐고 구체적인 사례가족의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하면서 전문가의 조언과 분석, 해결방법을 찾아나갔다. 물론 초기 기획안에 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스토리가 구성됐지만, 제목 하나는 제대로 살아남아 첫 방송이 나간 후 뜨거운 반응이 이어져 이후 2편, 3편까지 제작됐다. 여러 사례 가족들을 취재하면서 내가 끊임없이 생각한 것은 대한민국의 가족들 상당수가 ‘20세기에 태어나 19세기 방식으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버지, 남편이 그러했다. 아내 A씨는 최근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아내의 일상은 무척 고달팠다. 깔끔한 성격 탓에 집안은 먼지하나 없이 깔끔하고, 늘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마치 집안에서 일을 해야만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것처럼. 반면 남편 B씨는 집안에서 항상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빈둥거렸다. 남편이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몇 년 전부터 일을 거의 하지 않아 수입이 변변치 않고, 집안의 생계는 모두 아내의 몫이 됐지만, 경제권을 쥐고 있는 남편은 늘 당당하고 아내를 무시해왔고 했다. “지문이 없어요. 하도 일을 많이 해서 손가락이 다 갈라지고 닳았어요.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뭔가 자꾸 일을 만들어서 해야 해요. 안 그러면 사는 보람을 못 느껴요. 남편이 나를 너무 무시하고 그러는 게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거죠. 자기가 그걸 다듬어주고, 애들한테. 그렇게 인도를 해 줘야 되는데 그걸 ...
아기ⓒ뉴시스

‘부모 되기’ 참 어려운 세상

방송작가 최경의 (34)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반대가 아무리 심해도 자식이 원하는 것을 끝내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 부모가 반대하는 진로, 부모가 반대하는 수많은 선택들에서 자식들은 처음엔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지만 끝끝내 승리하고 만다. 물론 결과는 부모가 염려했던 대로 나쁠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식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식의 몫이다.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을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일들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몇 년 전, 집안에서 대화가 전혀 없는 가족들에 대한 방송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제보를 해온 이는 어머니였다. 스물여섯 살 아들이 군대를 다녀온 뒤부터 방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였다. 대체 이유가 뭔지 대화를 해보려고 해도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부모와 얼굴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억지로 문을 따고 들어가면 화를 내고 폭력적으로 변해 건드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건, 때가 되면 방문 앞에 밥상을 차려 갖다 주는 것이란다. 배가 고프면 그제야 문을 살짝 열고 밥을 가져다 먹는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 안방을 차지하고 문을 잠가버린 아들, 용변도 안방에 딸린 화장실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문밖으로 나올 일이 없단다. 부모는 방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자식 때문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살고 있다며 한숨을 지었다. “처음엔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애를 밖으로 끌어내 보려고 했지만, 안되더라고요. 내 자식이지만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뭔 짓을 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착하고 부모 말 잘 듣던 애가 왜 갑자기 저러는 건지. 취직시험에 몇 번 떨어지더니 상심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저런 애가 아니에요.” 그런데 이런 ‘은둔형 외톨이’ 자식과 제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며 연락을 해온 부모들이 의외로 많...
세월호ⓒnews1

슈퍼맨이라 불린 잠수사의 마지막 이야기

방송작가 최경의 (33) 그에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울먹이며 한 말 때문이었다. 그는 민간 잠수사였다. “눈에 안 보이는데, 보여요. 우리는 수중에서 더듬더듬 해서 머리에서 그려진단 말입니다. 한구 한구 모시고 나올 때 그 모습을 눈이 아니라 온 몸으로 모든 걸 다 느껴요. 솔직히 두렵고 도망가고 싶었던 건 사실이에요.” 그는 침몰한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에 잠겨 있는 실종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두 달 가까이 진도 앞바다에서 살았던 민간 잠수사 김관홍씨였다. 고액의 수입이 보장된 산업잠수사로 잘 나가던 그가 본업을 미뤄둔 채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참여하게 된 것은 큰 딸아이가 한 말 때문이었다. “아빠가 가서 저 사람들 다 구해줘. 아빠는 할 수 있잖아” 잠수사인 아빠는 세 아이들에겐 슈퍼맨이었다. 바다에서 실종된 이들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아빠밖에 없다고 아이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결심이 서자 그는 지체 없이 팽목항으로 갔다. 2016년 4월 23일이었다. 잠수사 500여명이 투입됐다는 정부 발표와는 달리, 실종자 수색작업에 밤낮없이 매달린 이들은 민간잠수사 20여명이었다. 그들의 실종자 수색작업은 곧 시신 인양작업이었고, 애타게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을 잘 알기에 잠수규정도 어긴 채 바다 속으로 계속 뛰어들었다. “최고 많이 들어갔던게 4번으로 기억나는데, 하루 평균 3번은 들어갔죠. 오로지 물속에 있는 실종자들 위주로 생각했으니까요. 정작 우리 몸 추스를 생각은 못했어요. 가족들이랑 똑같은 마음이었으니까요.” 20여명의 민간잠수사들이 찾아낸 실종자는 300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잠수사들 대부분이 몸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김관홍씨 역시 감압챔버에서 의식을 잃는 등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그 후로 잠수를 할 수 없게 됐을 때에도 그는 바지선으로 돌아가 수색작업을 도왔다. 그러던 7월 10일. 태풍으로 잠시 철수했다 바지선으로 돌아온 민간잠수사들에게 기막힌 소...
구두ⓒ시민작가 문청야

당산역 구둣방에 살던 천사, 하늘로 떠나고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32)지하철 당산역 일대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상가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돼 있는 당산역 근처 거리엔 1평 남짓한 작은 구둣방이 하나 있었다. 늘 그곳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없었던 그 구둣방의 철문이 굳게 닫힌 채 주인이 나타나지 않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중순. 구둣방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메모가 붙기 시작했다. 모두 구둣방 주인에게 쓰는 편지들이었다.‘성실함이 무엇인지 알려주신 아저씨 잊지 않을게요.’ ‘친구! 당신의 삶에 대한 의지는 우리들의 본보기였소.’ ‘아저씨 행복하세요. 감사했습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시던 아저씨. 늦은 시간에 겨우 찾으러 온 제게 보여줬던 그 미소를 잊을 수 없습니다.’ ‘항상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정말 감동스러웠습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구둣방 주인은 58세 강상호씨. 지난 30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휴일에도 쉬는 법 없이 항상 구둣방 문을 열었던 그는 자정 넘어 퇴근하던 길에 과속으로 달려오던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오토바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졌고, 강씨도 그 자리에서 숨졌다.그의 부고가 알려지자, 구둣방을 드나들었던 이와 이웃들과 친구들이 추모의 글들을 붙여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구둣방 천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왜 많은 이들이 그토록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것일까?사실 강상호씨는 뇌성마비로 인해 한쪽 팔, 다리가 불편한 1급 지체장애인이었다. 장애 때문에 말하는 것도 어눌했지만 그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늘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화를 내는 법 없이 늘 환한 미소로 답했다는 강씨. 추운 겨울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도 비좁은 구둣방에 앉아 열심히 구두를 닦고 고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강씨의 구둣방에서 구두를 고친 적 있었다는 한 30대 직장인은 이렇게 말했다.“직장생활에 회의감도 생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