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과 함께하는 성수수제화 홍보관이 들어선 성수 수제화 공동판매장(B동)거리 모습

당신을 위로하는 아날로그 감성, 성수동 수제화거리

연일 봄소식이 전해진다. 구례와 섬진강 일대에 산수유와 매화가 앞 다퉈 피고 있단다. 코로나19의 와중에도 봄꽃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변함없이 꽃을 피우고 있다. 집에만 있기 갑갑해 봄바람도 쐴 겸해서 전철에 올랐다. 내려 선 곳은 성수역이다. 구두 테마역으로 나름의 볼거리가 꽤 쏠쏠한 곳이다. 성수동은 서울 제화 산업의 80% 이상이 모여 있던 곳으로 300여 개가 넘는 수제화 업체들이 자리했던 지역이다. 그러한 명성에 걸맞게 현재 성수동에는 오랜 경력의 수제화 장인들이 모여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제화 거리가 형성돼 있다. 성수역 2층 보행자 통로 공간은 슈스팟 성수, 구두지움, 슈다츠, 구두장인공방 등  온통 수제화 관련 전시로 가득하다.  ⓒ박분 천장을 가득 메운 발 모양의 구두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수제화의 역사도 살펴볼 수 있다. ⓒ박분 성수역1, 2번 출구로 나오면 수제화 거리임을 알리듯 구두와 관련된 벽화나 조형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성수역 하부공간까지도 수제화 관련 벽화나 사진들로 꾸며졌다. 수제화 거리는 지하철 성수역에서 다음 역인 뚝섬역 일대에 이른다. 수제화거리 곳곳에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박분 성수역에서 뚝섬역을 향해 걷다보면 두 역 사이에 자리한 수제화공동판매장(B동)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땀 한땀 정성을 들여 구두 가죽을 꿰매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조형물이 보인다. 빨간 구두 조형물도 꽤 맵시 있게 다가온다.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라는 노랫말이 문득 떠오른다. ⓒ박분 봄바람이 살랑이던 이때쯤이었을까. 대학에 입학하거나 직장에 취직해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됐을 때, 양복과 함께 구두도 한 켤레 맞춰 신던 시절이 있었다. 말쑥한 투피스에 반짝반짝 빛나는 가죽구두를 신었을 때의 가슴 설렘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 시절 맞춤 구두는 청춘과 낭만의 상징이었다. 성동구가 지난 2월 개관한 ‘명장과 함께하는 성수수...
서울숲이 자리한 곳이 예전에 뚝섬경마장이었던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군마상

고즈넉한 겨울 숲의 선물, 서울숲 산책코스

연일 포근한 겨울 날씨가 이어져 가족과 함께 서울숲을 찾았다. 서울숲은 분당선 서울숲역 3, 4번 출구를 나오면 진입로와 연결된다. 서울숲은 뚝섬으로 잘 알려진 성동구 성수동에 자리했다. 산이 아닌 한강과 중랑천 사이, 서울의 물길에 조성된 자연숲이다. 방대한 규모의 서울숲은 문화예술공원, 체험학습원, 생태숲, 습지생태원으로 크게 나뉜다.     겨울 숲의 정취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서울숲 ⓒ박분 서울숲에 들어서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맨몸을 드러낸 나무들이다. 초록의 싱그러움을 잠시 감춘 겨울 숲은 나름의 정취가 있다.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에선 생명력이 넘쳐난다. 무채색의 겨울 숲이 만들어 내는 색다른 광경이다. 고스란히 드러난 암갈색의 나무들은 제각각의 개성이 돋보인다. 뒷짐 진 채로 가만히 서 있는 듯 보여도 지금쯤 땅속 나무의 뿌리는 양분을 모아 가지 끝에 실어 나르느라 안간힘을 쓸 때이다. 숲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문자센터 옆으로 군마상이 보인다. 말과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질주하는 모습을 표현한 군마상은 예전에 이곳이 뚝섬경마장이었던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2005년, 서울숲이 조성되기까지 예부터 이곳은 임금의 매 사냥터에서 골프장으로, 경마장, 체육공원 등 다양한 시설로 활용되면서 변천을 거듭해 왔다.     다양한 조각 작품으로 볼거리가 있는 서울숲 ⓒ박분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드넓게 펼쳐진 조각 공원과도 마주한다. 아직 추운 계절인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지만 다양한 조각 작품이 있어 숲은 그리 적적하지만은 않다.  아이들과 함께 조각 정원 작품을 감상하는 가족 ⓒ박분 드문드문 아이들과 함께 조각 정원의 작품을 감상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보인다. ‘바람 속 산책’, 약속의 손 등 조각 정원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둘러보노라면 마음이 한결 풍성해진다.   곧게 뻗은 은행나무가 빽빽이 늘어서 고즈넉한 겨울 숲의 매력을 뽐낸다 ⓒ박분 서울숲에는 늘씬한 은...
서울시청사

[설명자료]성수동 리모델링 ‘붉은벽돌 마을’ 임대료 두 배 올랐다

◆ “‘붉은벽돌 마을’로 조성하는 도시재생 사업에 따라 리모델링을 마친 상점의 임대료가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붉은벽돌 사업에는 약 4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는 보도 관련 - 성수동 일대는 1970~80년대 경공업 시대의 붉은 벽돌 공장·창고와 1990년대 소규모 붉은 벽돌 주택이 밀집한 지역으로, 최근 개발 사업으로 소멸되어 가는 붉은벽돌 건축물을 도시재생 측면에서 건축·주거문화로 보전·활용하고자 ‘18년부터 명소화 사업을 추진 중임 - 동 사업은 건물소유주의 신청에 따라 신축 또는 리모델링 시 건축비 일부를 지원(동별 1천만원~2천만원)하는 사업으로, 리모델링 등을 통해 임대료 상승요인은 일부 있을 수 있으나 지원건수(리모델링 2개동, 신축 2개동)가 적어 그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확인됨 ※ 리모델링 지원 건축물 2동 중 1동은 공실을 리모델링하여 기존 대비 임대료 증가가 없으며, 1동은 기존 대비 약20~25% 증가 - 또한, 기사에 언급된 4억원은 올해 편성된 예산이며, '19.5월말까지 현재 실제 투입된 금액은 4천만원(신축 1건)임 ※ '18년 집행액 : 4천만원 ◆ “시 재정으로 리모델링을 마친 상점에 대한 별다른 임대료 제한이 없다” 는 보도 관련 - ‘성수동 건축자산 보전을 통한 명소화 사업’은 전체 공사범위 중 일부(외벽, 옥상, 조경 등 외부시설)만 지원하는 사업으로 건물 전체상가 임대료를 제한하기에는 사실상 어려움이 있음 - 다만, 성수동 ‘붉은벽돌 마을’ 지역은「뚝섬 주변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용적률을 완화 받고자 하는 경우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임대료 안정 이행협약’을 의무 적용할 수 있어, 성수동 일대 명소화 사업과 연계하여 과도한 임대료 상승 방지를 위해 적극 노력할 계획임 문의전화: 02-2133-7174 ...
사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한 성수하수 파빌리온

날이 좋아 걸어본 성수동, 분위기 너무 매력적!

독특한 그라피티, 분위기 좋은 커피숍 호호의 유쾌한 여행 (156) 한국의 브루클린, 성수동 아무 생각 없이 작은 골목을 기웃거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몰래 그려둔 그라피티를 발견하고, 반짝이는 향으로 가득한 커피를 마시고, 정성껏 골라주는 책을 읽고 싶어집니다. 여기에 개성만점 전시까지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성수동 산책을 하며 발견한 복합 문화 공간 두 곳을 여러분과 함께 떠나고 싶어요. 바로 성수연방과 에스팩토리입니다. 폐공장을 개조해 만든 가게들이 생기면서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자리 잡은 성수동 성수동은 비어있는 폐공장을 개조해 만든 가게들이 생기면서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곳입니다. 성수동 카페 골목의 시초라고 불리는 대림창고가 이곳에 있고, 자그마치 카페도 이곳입니다. 블루보틀 한국 1호점도 이곳 성수동에 자리했습니다. 창고를 개조해 만든 덕에 층고가 넓어 시원시원하고, 외벽은 예전 모습을 그대로 살려 빈티지한 매력을 뿜어냅니다. 커피 한 잔만 하고 떠나기에 아쉬운 이곳에 성수연방과 에스팩토리는 사람들의 문화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줍니다. 유독 이곳에 예술성 강한 행사나 전시가 많은 까닭이기도 합니다. 사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한 성수하수 파빌리온 성수연방은 성수동의 1970년대 화학공장을 리모델링해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뉴욕에 위치한 첼시 마켓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졌는데요. 성수연방을 지은 건축가들은 2019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제공하는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습니다. 가운데가 뚫려있는 ㄷ자 건물은 이리저리 오가며 골목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아이템으로 가득한 숍과 독특한 기념품, 건강한 먹거리를 구매할 수 있는 식료품 가게까지 들어서 있어 구경하는 즐거움으로 가득합니다. 1층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성수하수 파빌리온입니다. 초록빛과 파란 구슬이 천장에서부터 흩날리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연인과, 친구와 함께 사진 찍기에 여...
천연가죽과 찹쌀풀만을 고집하는 정영수 명장의 공방에선 인공 화학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신’유람기⑥] 대통령도 반하다! ‘수제화 대통령’ 명장 3인방

성수 수제화 전시관 ‘희망플랫폼’에 전시된 명장들이 만든 수제화들 시민기자단이 전하는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 마지막 시간, 50년 넘게 수제화를 만들어오신 세 분의 장인을 만나 보았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의 시대에,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오롯이 그 사람만을 위해 완성한 장인의 수제화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봅니다. “발이 편해야지! 신발은 무조건 편안해해.” 사람은 발이 편해야 몸이 편하다는 속담처럼 어떤 수제화를 골라야 하냐는 질문에 성수 수제화 거리에서 만난 장인들은 하나같이 발이 부드럽고 편한 신발이 잘 만든 신발이라 했다. 뭔가 특별한 비법이 숨어있을 것 같아 물었는데,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답이 돌아왔다. 역시 기본에 충실한 것이 제일 중요했다. 현재 성수 수제화 거리에는 수많은 장인들이 수제화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 중 정영수·유홍식·전태수 명장은 50년 이상 수제화 외길을 걸어온 분들이다. 구두와 함께 한 명장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 그들의 공방을 찾아갔다. 1mm의 불편도 허용하지 않는다, 정영수 명장 천연가죽과 찹쌀풀만을 고집하는 정영수 명장의 공방에선 인공 화학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첫 번째로 만난 명장은 정영수 명장이다. 그를 만나러 간 곳은 허름한 상가 건물이었다. 명장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니 화려한 작업장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뚝딱 뚝딱 망치질 소리와 층층이 쌓여있는 구두들, 석고 모양의 구두골을 설계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에서 이곳이 구두를 만드는 땀의 현장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영수 명장의 공방에선 일반 구두매장에서 나는 인공 화학품 냄새가 나지 않았다. 천연가죽과 찹쌀로 만든 풀을 쓴다는 그의 말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냄새만으로도 그 만의 차별점을 느낄 수 있었다. “제 발 사이즈가 얼마일 것 같아 보이세요?” 구두 만들기의 기본은 발을 재는 것에서 시작하니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질문했다. “235는 딱 맞고, 240은 크고... 그...
가장 좋은 신발은 발에 딱 맞는 편안한 신발이라는 전태수 명장

[‘신’유람기⑤] 명장에게 한수 배우는 수제화 만들기 체험

가장 좋은 신발은 발에 딱 맞는 편안한 신발이라는 전태수 명장 시민기자단이 전하는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 다섯 번째 시간, 수제화를 직접 만들어보고 경험해 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해 드립니다. 초보자도 재미있게 만들어볼 수 있는 공방 프로그램은 물론, 전문 기술을 배워 직업인으로 도전해 볼 수 있는 기술자 양성교육까지 성수 수제화 희망플랫폼 및 성동구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265에요.” 신발을 사러 가면 점원은 손님의 발 사이즈를 물어본다. 통상 신던 신발 치수를 대면 점원은 신을 찾아주고 손님은 그 신을 신어본다. 같은 사이즈여도 어떤 때는 약간 큰 듯도 하고, 어떤 때는 볼이 꽉 맞기도 한다. 그때쯤 드는 의문 하나, 내가 알고 있는 신발 사이즈가 정말 내 발치수일까? 수제화를 맞추지 않았다면 정확히 알지 못했을 내 발치수. 기성화에 익숙해진 내 발은 5mm의 차이쯤은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수제화를 알게 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처음엔 내 발 치수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성수동이다. 수제화 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이곳에는 수제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제화 체험공방’이 있다. 이 공방은 성수동 수제화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서울시가 위탁하고 서울수제화진흥원(STI)가 수탁하여 운영하는 곳이다. 체험 공방을 알리는 표지판. 공방은 성수 수제화 희망플랫폼 2층에 있다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4기에 걸쳐 운영된 체험 공방은 매 기마다 4회씩, 1회당 3시간의 수업 ‘성수수제화 희망플랫폼 체험공방’이 진행 중이다. 서울수제화진흥원 김희숙 마케팅실장은 “성수동이 갖고 있는 특별한 문화인 수제화의 가치도 살리고, 시민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을 위해 명장분들과 젊은 디자이너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1기는 ‘가죽 슬리퍼 만들기’, 2기는 ‘아기 신발 만들기’, 3기는 ‘가죽 ...
성수 수제화 전시관인 ‘희망플랫폼’에 전시된 대통령을 위한 수제화

[‘신’유람기④] 언제부터 성수동은 구두거리가 됐을까?

성수 수제화 전시관인 ‘희망플랫폼’에 전시된 대통령을 위한 수제화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죠! 멋지게 차려 입은 수트며 드레스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발까지 편안한 구두를 찾고 있다면 ‘성수 수제화 거리’를 방문해 보세요. 장인의 수십년 세월이 담긴 수제화에선 대량으로 만든 공장 기성품에선 느낄 수 없는 품격과 개성이 느껴집니다. 시민기자단이 전하는 6편의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 중 네번째 시간, 성수 수제화 거리가 생기게 된 배경에 대해 알아봅니다. 구두는 대표적인 개화문물이다. 1880년대 개화파 인물들과 외교관들에 의해 처음으로 조선에 소개된 구두는 1920년대 들어서 모던 걸, 모던 보이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특히 신여성에겐 패션아이템이자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구두는 멋스럽게 그 역사를 시작했다. 모던 걸, 모던 보이들에게 인기 있었던 구두는 당연히 수제화였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구두를 만들어야 했기에 당시 구두는 당연히 고가품일 수밖에 없었다. 구두에 적합한 가죽을 만들기 위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만큼 고약한 냄새를 뿜어내는 화학약품과 씨름해야 했고, 그렇게 연마된 가죽을 빛깔 좋게 다듬어야했다. 너무 뻣뻣해도, 너무 말랑거려도 안 되었다. 구두 밑창은 세상 어디를 딛어도 망가지지 않을 만큼 탄탄해야 했고, 그 밑창과 본체를 잇는 바느질은 꼼꼼해야만 비나 눈이 스며들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제화가 어느 날 대량 생산 물결을 타고 온 기성화에 밀려 잊혀지는 듯했다. 하지만 과거는 새 옷을 입고 오늘을 걸어가듯 수제화도 다시 빛을 받기 시작했다. 1930년대 구두 신은 모던 것, 모던 보이. 출처 : 잡지 ‘별건곤’ 1927년 2월호 요즘 사람들은 수제화하면 성수동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신발부터 인기 셀럽들의 신발까지 다양한 신발이 만들어지는 곳이고, 지난 시간을 멋스럽게 살린 도시재생 현장이기에 성수동은 인기가 있다. 이제는 ‘성수 수제화 거리’로 더 유명한 성수동, ...
50여 년 간 정미소와 창고였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성수동의 카페 `대림창고`

[‘신’유람기③] 여기가 한국의 브루클린 ‘성수 핫플레이스’

50여 년 간 정미소와 창고였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성수동의 카페 `대림창고`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죠! 멋지게 차려 입은 수트며 드레스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발까지 편안한 구두를 찾고 있다면 ‘성수 수제화 거리’를 방문해 보세요. 장인의 수십년 세월이 담긴 수제화에선 대량으로 만든 공장 기성품에선 느낄 수 없는 품격과 개성이 느껴집니다. 시민기자단이 전하는 6편의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 중 세번째 시간, 수제화 매장 외에도 볼거리 많은 성수동 핫플레이스를소개해드립니다. 낡고 오래된 듯 보이는 벽돌건물은 창고나 작은 공장부지 같았다. 그래서 처음엔 눈여겨보지 않았다. 카페인지 말해주기 전까지는 몰랐을 그곳에 들어서기 전, 잠시 멈칫거린 것도 그 때문이다. 문을 여니 감각적인 세상이 펼쳐졌다. 채광이 비치는 높은 천장에 탁 트인 공간은 시원스러웠고, 거친 느낌의 벽과 대비되는 액자는 세련된 조화를 이뤘다. 군데군데 들어찬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마저 근사해 보인 이곳은, 50여 년간 정미소와 창고로 쓰였던 성수동 카페 ‘대림창고’다. 채광이 비치는 높은 천장에 탁 트인 내부 공간이 돋보이는 카페 `대림창고` 내부 성수동은 거의 그랬다. ‘기타누락자 지은탁’에게 소환된 ‘도깨비’가 기대어 책을 읽은 담벼락의 장소이기도 했고, 국민 예능 ‘무한도전’을 촬영한 이색적인 분위기를 지닌 카페의 동네이기도 했다. 다양한 문화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성수동 거리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한도전` 촬영지로 유명해진 성수동 카페 `어반소스` 수제화 부자재를 구경하는 재미 ‘연무장길' 성수동의 원조는 두 말 할 것 없다. ‘수제화’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으로 제작한 고급진 구두, 그 명품의 생산지이다. 성수역 4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연무장길’만 걸어도 그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성수사거리를 지나 뚝섬역까지 가로지르는 긴 연무장길엔 수제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존재한다. 가죽 원...
성수 수제화거리에 가면 다양한 수제화를 만날 수 있다

[‘신’유람기②] 명장이 알려주는 좋은 수제화 고르는 법

성수 수제화 거리에 가면 다양한 수제화를 만날 수 있다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죠! 멋지게 차려 입은 수트며 드레스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발까지 편안한 구두를 찾고 있다면 ‘성수 수제화 거리’를 방문해 보세요. 장인의 수십년 세월이 담긴 수제화에선 대량으로 만든 공장 기성품에선 느낄 수 없는 품격과 개성이 느껴집니다. 시민기자단이 전하는 6편의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 중 두번째 시간, 이곳의 쇼핑 포인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잘 어울리고 편한 신발을 신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그런 신발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기성화가 대중화된 시대, 정해진 사이즈대로 생산되기에 남들과 다른 발 사이즈나 발모양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성화는 불편하다. 오른발과 왼발의 크기가 차이 나거나 발등이 두꺼운 사람, 상대적으로 발에 살이 없는 사람들은 기성화 신기가 쉽지 않다. 특히 큰 사이즈의 발이나 무지외반증, 평발 등의 이유가 있다면 더 그러하다. 아무리 새 신발일지라도 십중팔구 발뒤꿈치가 까지거나 피가 난다. 그런 이들을 위한 제품이 바로 수제화다. 수제화는 내가 신발에 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발에 신발을 맞추는 것이다. 편한 것은 기본이요, 오래 신을 수 있는 수제화. 기성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질 좋은 수제화는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그 비법을 성수 수제화거리에서 찾아보자. 뚝섬역 4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성수 수제화 전시관 ‘희망플랫폼’ 안내 조형물 성수동은 국내 수제화의 약 80%를 생산하며 다시 불고 있는 수제화의 인기를 주도하고 있다. 신발 디자인에서 제조, 판매까지 모든 것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성수 수제화 거리에는 300여개 업체가 밀집되어 있는데, A구역부터 G구역까지 나뉘어져 있는 성수 수제화 거리 탐험을 위해 우선 성수 수제화 거리 홈페이지 지도를 펼쳐보자. 성수역에서 뚝섬역까지 이어지는 성수 수제화 거리, 자세한 매장 위치는 성수 수제화 거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
성수 수제화 거리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

[‘신’유람기①] 성수동에 패션피플 모이는 까닭

성수 수제화 거리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죠! 멋지게 차려 입은 수트며 드레스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발까지 편안한 구두를 찾고 있다면 ‘성수 수제화 거리’를 방문해 보세요. 장인의 수십년 세월이 담긴 수제화에선 대량으로 만든 공장 기성품에선 느낄 수 없는 품격과 개성이 느껴집니다. 앞으로 시민기자단은 6편의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를 통해 이곳만의 매력 포인트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 이제 또각또각 ‘성수 수제화 거리’로 출발해 볼까요? 우리나라 지하철역들 중 유일하게 구두들이 전시된 곳이 있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이다. 성수역사 안에는 우리나라 수제화와 성수 수제화 거리의 역사, 수제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 수제화에 관한 다양한 전시물들이 진열돼 있다. 성수동 일대가 수제화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한 눈에 보여주는 시작이다. 천편일률적인 기성화와 달리 자신만의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수제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구두를 맞추러 이곳을 찾는다. 그런데 왜 성수동이 수제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을까? 그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찾아 성수 수제화 거리를 찾아 나섰다. 성수역에서 전시 중인 수제화들 염천교에서 명동을 거쳐 성수동에 정착한 우리나라 수제화 개화기 시절 개화경(안경), 양복, 자전거 등과 함께 서양에서 들어온 구두는 선망의 개화 문물 중 하나였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구두 열풍은 한동안 사그라드는 듯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참전국 군인들이 신었던 군화가 일반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구두는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60년대엔 서울 ‘염천교’를 중심으로 구두골목이 형성되었다. 서울역에서 중림동을 잇는 다리인 염천교는 유동인구와 물자가 많은 서울역과 남대문 근처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1970년대까지 한국 수제화 거리의 원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80년대부터 수제화는 유행의 거리 ‘명동’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예로부터 금융과 경제의 중심지였던 명동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