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당 건물의 현판은 1606년(선조 39년)

성균관과 반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성균관과 반촌 전시실 입구 ⓒ정인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그 마을 주변인 '반촌'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성균관과 반촌'을 지난 11월 8일부터 2020년 3월 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 '반(泮)'이란 글자는 나라의 학교라는 뜻으로, '반궁(泮宮)'은 성균관의 별칭이다. 조선시대의 국립대학인 성균관과 '반촌' 원조 대학가의 18세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로, 그 지역 속에서 성균관 유생과 반인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이야기다. 성균관과 반촌은 현재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다. 태학계첩(1747년 작,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4호) 성균관 조감도​ ⓒ정인선 태학계첩은 성균관 대사성 이정보가 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9명의 참여 유생들과 만든 계첩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계첩 가운데 성균관 유생들의 계첩으로서는 유일한 유물로서 성균관의 건물 구조와 배치 내역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고 조선시대 계첩 제작의 다양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그림 주변에 좀에 의한 훼손이 있으나 장황(粧潢) 형태와 화면 등은 제작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 후기 성균관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오랜 된 그림 '반궁도', '대학성전', '태학계첩', 윤기의 '무명자집', '대사례도' 등 성균관 명륜당의 모습을 전시실에서 생생히 재현했다. 또한 반인의 삶을 담은 영상도 전시된다. 1606년 제작된 명륜당 건물의 현판 (선조 39년) ⓒ정인선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이었던 동시에 유교문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는 성균관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했다. 성균관 유생들의 강학 공간의 중심은 명륜당이며, 역대 왕들은 글과 글씨를 성균관에 내리고 명륜당의 현판에 남김으로써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현재 명륜당에는 40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를 전시실에 그대로 재현했다. 그 중 중앙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현판은 정조가 내린 '어제 태학은...
팔일무의 문무는 왼손에 약(籥)을 들고, 오른손에 적(翟)을 들고 춘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문화유산 ‘성균관 석전대제’

팔일무의 문무는 왼손에 약(籥)을 들고, 오른손에 적(翟)을 들고 춘다 3월 11일 오전 10시, 평소에는 고요하던 명륜동 성균관이 들썩였다. 긴 수염에 의관을 정제한 유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단아한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행사를 위해 분주했다. 고구려와 고려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태학과 국자감의 후신으로, 조선 건국 후 태조 7년(1398)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 성균관에서 공자 탄생 2570년 ‘석전대제’가 봉행되었다. 3월 11일 성균관 석전대전이 봉행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충과 효를 되새기던 석전대제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이어져왔다. ‘석전’은 매년 봄과 가을에 성균관과 전국 234개 향교에서 지내는 유교 고유의 종교의식으로 유교의 성인과 현인들을 추모하고 그 덕을 기리며 가르침을 되새기는 행사다. 예로부터 국가가 주관하던 이 의식을 통해 우리 조상들은 충과 효를 되새겼다. 현재 성균관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 제자들과 설총과 최치원, 이황과 이이를 포함한 우리나라 유학자 18위 등 39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석전은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도 훼손되지 않고 오늘에 이어진 우리의 전통문화다. 공자의 나라이자 유학의 본산인 중국에서조차 문화혁명 등을 겪으며 원형을 잃어버려 우리나라 석전대제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졌다. 참석자들이 의식에 따라 절을 올리고 있다. 장엄한 의식 속에 음악과 춤이 함께하는 석전대제는 1986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다섯 명의 헌관을 포함한 27명의 집사와 문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악사 41명, 팔일무를 추는 64명 등 모두 137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 석전대제는 경건한 의식에 음악과 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에도 남아 있지 않은 옛 악기 등을 사용하는 문묘제례악과 팔일무, 제관들의 의상과 장중한 의식 절차의 가치 등을 인정받아 1986년에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왕이 수행하던 성균관 ...
혜화문 안쪽으로 위치한 성곽마을, 혜화·명륜동을 찾았다. ⓒ박혜민

전통 학교촌, 혜화·명륜동을 가다

혜화문 안쪽으로 위치한 성곽마을, 혜화·명륜동을 찾았다. 서울 한양도성의 동쪽 흥인지문과 북쪽 숙정문 사이에는 작은 문이 하나 있다. 바로 혜화문이다. 이 문 안쪽으로 역사도심의 동북부에 위치하는 성곽마을, 혜화·명륜동을 찾았다. 혜화·명륜동은 백악산 응봉 자락과 낙산 자락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마을이다. 1401년에 태조가 창건한 흥덕사가 있었다고 하여 그 주변을 흥덕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조선시대 문인들이 그 절경을 시로 지어 읊었다는 한양의 명소 열 곳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혜화문에서 내려다본 혜화·명륜동, 가까이에 보이는 기와지붕부터 멀리 고층 아파트까지 그 모습이 다양하다. 예부터 이곳에는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일을 돕던 사람들이 모여 살며 반촌(泮村)을 이루었다. 성종 때 성균관 입구의 민가를 철거하고 성균관을 감싸고 흐르는 반수(泮水)의 서쪽을 경계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 시기부터 반촌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짐작된다. 성균관은 국가 교육기관이자 공자를 모시는 신성한 곳이었으므로, 조선시대 순라군이나 의금부의 관리들조차도 감히 반촌에 들어가지 못하였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성균관은 명륜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명칭이 바뀌다가 지금의 성균관대학교로 확장되었고, 사적 제143호(1964년)로 지정되었다. 성균관대학교 입구 오른편에 성균관의 정문인 삼문(三門)이 보인다. 성균관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제사공간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쳤던 교육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성전을 앞에 두고 명륜당을 뒤에 두는 대표적인 전묘후학의 모습이다. 대성전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성현들에게 음식을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제사 의식인 석전대제를 행한다. 올 3월 1일에도 공자탄신 2568년을 맞아 춘기 석전대제를 올렸다. 국가적 행사로 치러지는 석전대제는 엄숙한 제례 절차와 함께 기악, 성악, 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의 하나이다. 발상지인 중국에도 그 원형이...
명륜당 앞뜰,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게 하는 은행나무 ⓒ김종성

가을 끝자락, 문묘 노거수 품에 안기다

명륜당 앞뜰,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게 하는 은행나무 가을이 깊게 익어가는 11월 이맘때쯤,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도시에서 가을의 색과 분위기를 충만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안에 있는 ‘문묘’다. 문묘(文廟)는 유교를 집대성한 공자(孔子)와 여러 성현들의 위패(位牌,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패로 죽은 사람의 혼을 대신한다)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조선초기인 태조 1398년(태조 7)에 완성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1년(선조 34)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육시설인 ‘명륜당’과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대성전’ 등으로 이뤄져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선 수령 100년 이상의 크고 오래된 노거수(老巨樹) 나무들을 만날 수 있어 왠지 가을이 오면 더욱 그리워진다. 성균관 문묘엔 은행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측백나무, 단풍나무 등이 살고 있다. 모두 수백 살 먹은 고목(古木)이고, 크고 우람한 거목(巨木)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늙고 굽은 데다 외과수술까지 받아서 그런지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 할머니를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부분 나무는 산이나 숲속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문묘의 나무는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독거나무다. 노거수 나무를 우러러 보고 있던 기자에게 지나가던 관리인이 문묘에 사는 노거수 나무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균관 문묘의 수문장,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문묘에 들어서면 나오는 ‘명륜당’은 성균관 유생들의 공부방이었다. 명륜당 앞뜰에는 장대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살고 있다. 무성한 가지와 잎으로 눈부신 노란 그늘을 드리워 누구나 탄성을 터트리게 만든다. 문묘와 역사를 함께 한 수문장 나무로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거대한 은행나무가 이곳을 지키는 데는 은행나무와 공자와의 깊은 인연 때문이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비롯해, 예로부터 공자를 모시는 문묘에는 은행나무를 널리 심었다. 성균관대학의 상징 ...
`종로의 이야기꾼, 전기수`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장희 작가의 의 스케치

오늘은 우리가 ‘종로 이야기꾼’입니다

지난 20일 종로구 혜화동 주민센터 2층 혜화홀에서는 ‘종로의 길’을 다양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종로의 이야기꾼, 전기수’ 강좌가 열렸다. 교육자 신분이 아닌 종로 문화를 배운다는 생각을 하고 참석하니 마음이 더 즐거웠다. 강연자는 이장희 일러스트 작가였다. 이날 이장희 작가가 교육장에 준비해 온 일러스트 소재는 종로의 대표적인 명소들이었다. 직접 스케치한 그림을 슬라이드로 일일이 보여주며 강의를 진행해 이해가 한결 쉬웠다. `종로의 이야기꾼, 전기수`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장희 작가의 근정전 스케치(☞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수강자들에게도 미리 준비한 스케치북, 연필, 지우개를 나눠주고 그림을 따라 그리게 했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돼지도 그려보고, 멋진 컵도 추가해보라고 가르친다. 기자도 하란대로 따라했지만, 생각 같지가 않다. 이렇게 약 90분 정도의 이론·실기 강의를 마치고 가본 곳은 바로 종로의 명소, ‘성균관’이다. 성균관(成均館)은 고려말과 조선시대의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국자감(國子監)에서, 성균감(成均監) 그리고 지금의 성균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지금도 성균관 안에는 공자와 중국 및 우리나라 역대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인 ‘대성전’과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서재’가 관광객들을 맞는다. 역대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 대성전 성균관에서 스케치 실습을 하기위해서는 해당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했다. 이장희 작가는 현장 투어 설명도 관광 해설사 못지않게 풀어주어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가 오늘 전해준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한양도성에 중심지 종로에서 활동하던 ‘전기수’라는 직업이다. ‘전기수’는 조선시대 후기 종로의 번화가(종로~동대문)를 정기적으로 옮겨 다니며, 거리를 오가는 서민들에게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며 돈을 벌었던 전문적인 이야기꾼을 말한다. 요즘 말로 예능에 밝고, 서민에게는 친숙한 입담꾼이라 볼 수 있다.   성균관에서 수강생들이 이장희 작가의 현장 설명을 ...
늦가을 노란빛을 뽐내는 은행나무

두 바퀴로 떠나는 서울여행 (23) 성균관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는 이유

도심 속에서 늦가을의 경치와 만추의 정취를 간직한 곳 가운데 하나가 대학 캠퍼스가 아닐까 싶다. 그 가운데 고목 은행나무들의 웅장한 자태와 생동하는 생명의 빛깔인 노란색으로 찬란한, 감탄을 부르는 풍경을 품은 곳이 성균관대학교다. 인위적으로 가지치기를 하며 관리한 거리의 은행나무 가로수와 달리 노랑 잎이 매달린 가지를 치렁치렁 마음껏 펼치며 수백 년을 살아오고 있는 노거수(老巨樹) 은행나무 네 그루가 바로 그 주인공. 11월의 이즈음 그냥 노란색도 아닌 진노랑 잎으로 온통 수놓은 은행나무들을 보면 천연 비타민C 같아 그 앞에 서기만 해도 절로 기운을 얻게 된다. 늦가을 노란빛을 뽐내는 은행나무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대학교 입구로 들어서서 문묘, 명륜당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걷다보면 큰 한옥 건물들이 나타난다. 공자의 신주를 모시는 문묘(文廟)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 건국 초기에 창건된 문묘는 정전인 대성전,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 등으로 이루어진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선조 말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열린 대문너머로 추색이 완연해 아늑한 기분이 드는 명륜당 뜰로 들어서면 탁 트인 마당과 함께 우람한 고목나무들이 인자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반겨준다. 은행나무 외에도 아름드리 회화나무, 느티나무, 말채나무, 팥배나무 등이 마당의 가장자리를 두르듯이 서있다. 그 가운데 군계일학처럼 단연 돋보이는 노거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제 59호)로 역사성과 문화적 상징성이 높아 곧 서울시 문화재로도 등재될 예정이다. 1519년(중종 14) 당시 조선의 국립대학이자 인재양성의 요람이었던 성균관의 우두머리였던 대사성 윤탁이 심었다는 500살 넘은 은행나무는 높이 21m, 둘레 7m인 크기만큼이나 잎도 무성해서 놀랍기만 하다. 나무가 아니라 거대한 숲 같다. 가을 햇살이 비치니 황금빛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빛나는 이 은행나무는 늙어갈수록 더 멋있다. 늙음은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이 은행나무들이 사는 유서 깊은 명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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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도 가보지 못한 `서울`이 있다?

평소 구경할 수 없었던 영국대사관저, 대한성공회 등 관람 가능 서울에 살아도 한번 가볼 수 없었던 곳. 서울에 위치했지만 일반 시민이 접근할 수 없었던 비밀의 공간이 특별히 문을 연다. 10월 4일(목)~6(토), 13(토)까지 딱 4일뿐이다. 이름하여 'Open House Seoul'로 사전 신청을 통하여 누구나 무료로 들어갈 수 있고,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다양한 문화체험도 경험할 수 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시설은 150여 개소로 서울시장 공관, 영국대사관저, 오만대사관,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성균관, 페럼타워, 이화여고 등 서울에 소재한 다양한 전통과 현대의 건축·문화시설들이 참여하여 서울만의 별난 체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먼저 행사 첫째 날인 4일(목)에는 1890년에 지어진 영국대사관저와 2012년에 신축한 오만대사관을 들어가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중구 정동에 위치한 "영국대사관저"는 19세기말 서양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130여년의 역사를 지닌 건축물로 이번 개방을 통하여 2012년 런던올림픽의 나라 영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인접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한국전통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조화시킨 성당으로 지하성당에는 대한성공회 3대 교구장 조마가(Mark N. Trollope) 주교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가수도회가 함께 위치하고 있으며 1978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2012년에 5월에 새로 오픈한 "오만대사관"은 통유리창과 아라비아풍의 정원으로 구성된 아랍 건축미가 돋보이는 독톡한 외교공관으로 시민들에게 이색적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주목할 또 하나의 행사는 10월 6일(토) 진행되는 "시장공관 여는 날"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혜화동 공관을 소개하고 본인의 애장품을 소개할 예정이며, 서울시내 유일한 한옥청사인 "혜화동 주민차지센터" 등 인근의 문화시설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역사와 문화 현장 둘러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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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제사 의식 이렇게 치러진다

지난 9월 28일은 공부자(孔夫子:공자) 탄강 2562돌이었다. 이날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대성전에서는 '공부자 탄강 2562돌 추기 석전대제'를 봉행했다. 중국에서는 유교부흥의 바람이 불어 논어에 관한 여러 종류의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고 중국 정부가 나서서 공부자 탄강일을 기념 하고 성대한 의례를 거행하고 있다. 중국의 심장부인 천안문 광장 옆에 5천년 중국문화의 상징으로 거대한 공부자 상이 세워졌다. 중국에서 유교의 현 지위를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 김준영 성균관대 총장이 추기 석전대제의 초헌관(初獻官) 역할을 수행했다. 초헌관은 종묘제례 등에서 세 차례 헌작을 하는 '삼헌(三獻)' 중 첫 번째로 신위에 술잔을 올리는 것으로서 헌관 중 으뜸이다. 유교국가이던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임금이 초헌관 역할을 수행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인 석전대제는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는 뜻이며, 해마다 두 차례씩 문묘에서 공자를 비롯한 선성선현을 추모하며 제사를 지내는 전통 국가의식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성균관대 무용과 학생들은 팔일무 중 문무(文舞)를 화려 하게 선보였다. 의식은 초헌관이 신위전에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 초헌관이 신위전에 첫 술잔을 올리고 대축이 축문을 읽는 초헌례, 아헌관이 신위전에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 종헌관이 신위전에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로 이어졌으며, 음복례와 현관 이하 참가자 전원이 4배를 드리는 철변두, 축문을 묻고 폐백을 불사르는 망요례 순으로 봉행됐다. 석전봉행 예식 후 오늘의 제가상 시상식이 있었으며 창강장학금수여식도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일반인들도 분향하는 순서로 대성전 앞 향소에서 분향하고 예를 올릴 수 있었다. 이로서 예식은 마쳤는데 국내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견학 온 유치원생들이 처음 접하는 의식임에도 경건히 참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화창한 가을 날씨에 치러진 이 행사는 자세한 해설과 함께 진행이 되어 일반인들도 쉽게 그 뜻을 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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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과 성균관스캔들

2010년 말 방영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덕분에 ‘성균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진짜 성균관’보다 드라마 촬영지였던 영암향교, 전주향교 등이 더 유명세를 탔다. 성균관이 오늘날의 국립대학 쯤 된다면 향교는 지방공립학교라고 한다. 영암향교나 전주향교는 전라도에 위치해있다. 서울 사람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실제 성균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성균관은 당연히 조선의 수도 ‘한양’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성균관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너무 익숙한 이름이지만 과연 서울에 살면서 성균관에, 명륜당에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는가? 대략 성균관을 계승한 성균관대학교 근처에 있겠지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성균관대학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오면 성균관이 나온다. 주소는 종로구 명륜동 3가 53번지. 명륜동은 성균관의 ‘명륜당’에서 따온 것이란다. 이곳은 서울 문묘 일원이라고도 불린다. 문묘란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는 뜻. 우리나라 유학자들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다. 전국 230여 개의 향교를 대표해서 매년 봄과 가을에 공자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곳은 1964년, 사적 제 143호로 지정되었다. 그렇다면 이 서울 문묘와 문묘 일원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이곳은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형식을 따랐다. 문묘를 앞쪽에 위치하고, 배움의 터전은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전각 ‘대성전’이 성균관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해 준다. 그 뒤로 성균관 유생들이 거주하던 기숙시설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또한 ‘명륜당’, ‘비천당’이라 불리는 과거 시험장이 있다. 이 과거 시험장 앞에 서면, 임금 앞에서 과거 시험을 치르던 선비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이곳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서울 문묘 은행나무’이다. 천연기념물 59호이기도 한 이 은행나무는 벌써 나이가 500년이 넘었으며 문묘 일원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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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이 합쳐서 1200살입니다

 도시계획 이전에는 종종 길옆이나 먼 곳을 쳐다보면 수백년 묵은 고목을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시대의 변천으로 주위에서 고목을 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서울문화재 중에는 천연기념물이나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적어도 수령이 500년 이상인 고목(古木)이 아직도 여럿 있다. 관심있는 시민들은 근처를 지날 때 한번쯤 살펴보시면 우리도 저 나무와 같이 오래 살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불가능한 바람이겠지만 말이다. ▶광진구 화양동 느티나무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호수령: 약 700년소재지: 서울 광진구 화양동 110-34찾아가는 길: 지하철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4번 출구 화양동주민센터 앞 어린이대공원역에서 나와 바로 주위의 행인이나 상가에서 화양동주민센터 가는 길을 물으면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4번 출구에서 가르쳐주는 길로 약 15분만 걸으면 화양동주민센터에 도달한다. 그 바로 앞 나즈막한 동산에 면적도 넓지 않은 장소에 정말 장대한 주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느티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큰 나무에는 여러 군데 손상된 부분을 시멘트로 보수했지만 그 외에는 그리 큰 흠집도 없이 수십미터 높이의 나무가 아주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물론 관리도 잘 하고 있지만 700여 년이란 긴 세월에 비해 너무 깨끗이 늙어감이 보기 좋았다. 이른 오전인데도 나무그늘이 좋아 동네 주민이나 지나던 행인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담소하며 쉬는 모습이 부러웠으나 주위에 집들이 너무 많이 들어서 있어 주변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은 안타깝다. 기록에 의하면 이 나무는 높이가 28m. 가슴높이의 둘레가 7.5m인 나무다. 나무 옆에는 조선시대에 만든 화양정(華陽亭)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그 아래는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었다.세종대왕은 자주 정자에 나와 주위에 풍경을 감상하고 뛰노는 말들을 살펴보곤 했다고 전한다. 고종 19년(1882년) 임오군란 때 장호원에 피신 갔다가 돌아온 명성황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