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근대식 건물인 덕수궁 석조전

늦가을 나들이로 딱! 산책하기 더없이 좋은 ‘덕수궁’

고종이 기거하던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던 광명문 ⓒ박분 서울의 5대 궁궐 중 하나인 덕수궁은 동서양의 건축이 한 데 어우러져 있어 전통과 근대를 같이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때문에 언제 방문해도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지만 단풍 곱게 물든 가을의 덕수궁을 놓칠 수 없어 발걸음을 옮겼다.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을 지나 광명문 앞에 다다르니 순간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덕수궁 초입에 자리한 광명문은 고종이 기거하던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덕수궁이 훼손되면서 광명문은 덕수궁의 서남쪽으로 옮겨졌고, 지난해 비로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됐다.  80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광명문 앞에서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덕수궁관리소가 공동 주최하는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기억된 미래’전이 진행 중이다. 고종황제 서거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근대의 태동을 알렸던 대한제국 시기 미래 도시를 향한 꿈을 건축가들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전시이다. 광명문 중앙 출입구에 설치된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 새로운 문이 계속 열리고, 끊임없이 화면이 변화하는 '밝은 빛들의 문' 작품은 ‘기억된 미래’ 전시작품 중 하나다. 중화전 앞마당에 설치된 작품 '대한연향' ⓒ박분 중화문 너머 중화전 앞마당도 설치작품으로 환하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바람에 흔들거리는 전시물의 이름은 ‘대한연향’이다. 1902년 중화전 앞마당에서 열렸던 대한제국 마지막 전통연회의 기억을 담아 연회에 사용되었던 가리개인 만인산, 천인산을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한다. 반사필름들이 서로 부딪치며 오색으로 반짝이는 황홀한 풍경에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궁궐에서 열리기 때문인지 어렵게 느껴지던 현대미술에 대한 접근이 즐겁기만 하다. 전시작품은 석조전과 함녕전에도 설치돼 있다.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기억된 미래’전은 내년 4월 5일까지 계속되며 오후 1시 30분과 2시 30분, 두 차례 광명문 앞에서 전시해설이 진행된다.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으로 드나드는 정문인 중화문 ⓒ박분 중화...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에서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하는 건축물

덕수궁 석조전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14) 석조전 덕수궁 대한문으로 들어가서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쪽으로 가면 돌담길이라는 이름의 카페 겸 선물 가게가 있다. 연못과 접해있기 때문에 고즈넉한 덕수궁 안에서도 더 없이 조용한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연못 구경을 하고 함녕전을 끼고 돌아가면 많은 사람들이 정관장과 헷갈려하는 그 유명한 정관헌이 있다. 그곳을 지나면 정원처럼 꾸며진 곳이 나오는데 꽃과 나무를 구경하다보면 회백색의 기둥과 난간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나무와 기와, 벽돌로 만든 전통 건축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이 건물은 1910년 완공된 석조전이다. 이곳이 대한민국의 덕수궁이라는 사실을 머리에서 지워버린다면 한 가지 생각 밖에는 안 떠오를 것이다. ‘그리스나 로마 신전이네.’ 석회암으로 만든 굵은 원형 기둥이 줄지어 서 있고, 삼각형의 박공과 난간의 형태는 영락없이 TV에서 봤던 그리스 신전과 판박이다. 그래서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전의 석상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석조전 1층 중앙홀 ‘안은 유럽의 궁궐이군.’ 한옥들로 가득한 덕수궁 안에 겉은 그리스 신전이고 내부는 유럽의 궁궐처럼 꾸며진 석조전이 만들어진 이유는 다소 서글프다. 1897년 2월, 고종은 약 1년간 머물렀던 러시아 공사관을 나와서 경운궁으로 향한다. 청일전쟁 이후 기세가 등등했던 일본은 러시아라는 강적에게 밀려 숨을 죽인 상태였다. 고종은 그 틈을 타서 대대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데 연호를 따서 광무개혁이라고 부른다. 석조전의 건축은 개혁 정책 중 하나였다. 조선을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서구인들에게 서구 건축물을 보여줌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영국인 고문 하딩의 건의로 1900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석조전의 내부는 19세기 유럽의 궁궐이나 귀족의 저택처럼 꾸며졌다. 1층과 2층으로 나눠진 석조전 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진 2층 침실

덕수궁 석조전으로 ‘대한제국’ 역사여행 떠나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진 2층 침실 덕수궁 하면 돌담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덕수궁 돌담을 끼고 구불구불 걷는 정취가 좋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길이다. ‘정동길’이라는 명칭 대신 ‘덕수궁 돌담길’로 불리는 이유도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무척 아름답기 때문이다. 돌담이 아름다운 덕수궁은, 고종황제의 명으로 세워진 대한제국의 정궁이다. 아관파천 후 러시아 공사관을 나와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덕수궁으로 환궁한다. 고종은 덕수궁을 황궁으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다.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에 가면 대한제국 당시 세워진 근대식 건물 석조전을 만날 수 있다. 1900년에 짓기 시작해서 1910년에 완공 됐다. 석조전은 ‘돌로 지은 집’이라는 뜻이다. 조선의 전통 건축이 나무로 집을 짓는데 비해, 근대화의 상징으로 지은 이 집은 돌을 사용해 지어졌다. 조선을 자주적인 근대국가로 만들겠다는 고종황제의 의지를 반영했는데 안타깝게도 고종황제는 석조전에서 대한제국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고종황제의 빼앗긴 대한제국의 꿈을 우리는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이름이 바뀐 석조전에서 엿볼 수 있다. 1층 중앙홀 대한제국역사관을 관람하려면 덕수궁 누리집을 통해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지정된 시간에 1층에서 모여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오는 동선을 따라 관람하게 돼있다. 석조전 중앙홀에서 촬영한 영친왕가 기념사진 1층은 중앙홀이나 접견실 등 공적인 공간, 2층은 황제와 황후의 거실이나 침실 등 사적인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전통적인 궁궐의 경우 침전과 편전을 분리해두는 것에 비해 석조전은 두 곳을 한 곳에 두는 서양식을 따랐다. 중앙홀의 대리석 탁자를 비롯해 1911년 당시 가구 41점이 남아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중앙홀의 대리석탁자다. 이 탁자는 1911년 영친왕이 당시 국내외 유력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했던 그 탁자다. 현재 대한제국역사관에는 대리석 탁자를 포함하여 그 당시 가구 41점이 남아있다. 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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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천원으로 즐기는 호젓한 덕수궁 여행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석조전 앞에 펼쳐진 잔디정원요즘 천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최근 천원이 아주 값지게 느껴진 적이 있어 소개한다. 얼마 전, 한낮의 뙤약볕에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때 야간관람까지 가능한 도심 속 시원한 그늘을 찾아 나섰다. 바로 5대 궁궐 중 하나인 덕수궁이다. 덕수궁 입장료 천원으로 아름다운 덕수궁의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원 없이 담을 수 있었다. 도심 속 뜨거운 태양을 피해 덕수궁을 찾았다.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석조전 앞에는 넓은 잔디가 깔려 있고 시원한 분수가 힘차게 솟아오른다. 분수 앞 등나무 그늘은 여름철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관람료 천원으로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여유로운 쉼터를 만날 수 있는 건 행복이다중화전 주변으로도 나무 그늘이 많아 도심을 지나다가 잠깐씩 쉬다 가도 좋겠다. 조금 더 있으면 이 주변으로 잘 익은 살구가 바닥에 나뒹군다. 방화수를 담은 그릇 ‘드므’의 시선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이번에는 색다른 시선으로 궁궐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먼저 ‘드므’의 시선으로 현대의 빌딩을 바라보았다. 드므는 궁궐 정전과 같이 중요한 건물 네 모서리에 방화수를 담아 놓는 그릇을 말한다. 목조건축은 불에 약하기 때문에 화마를 막기 위해 상징적으로 만든 것인데 화마는 너무 험상궂게 생겨서 불내러 왔다가 드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간다고 한다. 아름다운 추녀마루와 궁궐의 그늘이 어우려져 한폭의 그림이 되었다궁궐에 비친 다른 궁궐의 그림자를 담았는데 어처구니(잡상)까지 섬세하게 보인다. 우리 선조들은 궁궐, 문루 등을 지을 때 액운을 떨치려고 지붕 추녀마루에 장식 기와인 어처구니를 올렸다고 한다. 고종의 처소였던 석조전의 이국적인 느낌을 담아보았다.서양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석조전의 계단에서 사진을 담아보자. 계단을 더 많이 보이게 담으면 외국의 유명한 도서관이나 박물관 앞에서 찍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 신전이 연상될 정도로 유럽풍이 물씬 느껴지는 석조전은 영국 건축가가 설계한 고종의 처소였...
인생샷 건져올 수 있는 곳

[카드뉴스] 덕수궁 사진은 이렇게!!

덕수궁 주변 #인생샷 건져올 수 있는 곳 #1 덕수궁 돌담길에서 #워킹샷 남기기 사랑하는 사람과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헤어진다고? 노노~ 손 꼭 잡고 돌담길을 따라 걷는 자연스러운 워킹샷 한 방 남겨보자 ♥ #얼굴은작게 #다리길어보이게 #밑에서찍어줘 위치:서울 중구 정동 일대 #2 정동 전망대에서 #사계절_고궁_풍경 담아보기 서소문청사 13층으로 올라가면 펼쳐지는 고궁과 서울 전망을 보고 있자면 너도 모르게 찰칵찰칵 사진을 찍고 있을걸?! #사진잘나왔다 #풍경샷이라그런가 위치: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동 13층 운영:평일 9~21시, 주말·공휴일 9~18시(단, 전망대 내부카페는 18시까지만 운영) #3 석조전에서 고풍스러운 #르네상스_컨셉샷 찍어보기 석조전 겉모습만 감상했었다면? 석조전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는 사실! 르네상스풍 내부에서 고풍스러운 컨셉샷도 남겨보자! #창밖내다보고있을게 #자연스럽게! #내부관람은예약필수(덕수궁홈페이지) 위치: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4 서울에 이런 곳이? #정동공원_구 러시아공사관과 푸른 공원의 모습을 배경으로 #일탈샷 한 번 남겨보자! 위치:서울 중구 정동길 21-18 정동공원 ...
인터뷰어

[서울사람] “55년 전 그 자리에서 인생을 회고하며”

“55년 전에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니던 학교가 여기 근처에 있었어요. 그때 서울시 미술대회가 열렸는데, 형님하고 같이 여기 왔던 기억이 나네요. 회사를 37년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이제 여기 앉아 있어요. 55년 전 그때 바로 이 의자에 앉아서 석조전을 그렸었는데, 제가 잘 못 그려가지고 형님이 저를 도와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주 오랜만에 왔어요.” “그때 행복한 기억이 많으셨겠네요?”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는데, 저 초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신 거예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아직 충격에 휩쓸려 있던 때에 여기서 형님하고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어머님도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당시 연금이나 그런 게 없었고, 4학년 2학기 때쯤 아버지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 땅이 조금 있어서 낙향을 했죠. 2남2녀 중에 막내인 저하고 어머니만 같이 살았고, 형제들은 외삼촌하고 살게 됐어요. 제 가족이 해체가 된 거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55년 간 제가 살아왔던 날들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자리에서 집사람을 기다리면서 계속 회상하고 있었어요. 55년이란 시간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 다양했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죠. 공부밖엔 길이 없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좋은 회사에 취직했어요. 임원까지 했고, 회사에서 박사 유학 가라고 절 영국으로 보내주기도 했고요. 어찌 보면 세상 모르고 열심히만 살았죠.” “회사생활 하시면서 고비는 없으셨어요?” “경쟁적인 곳이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고 전 회사에서 좋은 대우를 받은 편이었어요. 해외에 법인장으로 8년 나가있었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근무하다가 나이가 들어 작년에 그만두었죠.” “은퇴하시고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은퇴한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데, 편한 이야기들을 못하고 회사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래요. 회사만을 위해, 회사만을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후유증이 남은 것 같아요....
미디어파사드

황홀한 밤 산책, 덕수궁 석조전에 놀러가자

매월 마지막 주 문화의 날에는 덕수궁 미디어파사드를 찾아가보자“신기해~저기 춤추는 사람은 진짜 사람이지?”문화가 있는 매주 마지막 수요일에 또 한 가지 즐거운 행사가 추가되었다. 덕수궁 석조전에서는 이번 5월부터 10월까지 매주 마지막 화요일부터 목요일에  ‘미디어파사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게다가 매주 마지막 수요일은 입장료도 무료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근래 많이 알려진 ‘미디어파사드’는 건물 외벽을 대형스크린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영상예술을 의미한다. 덕수궁 석조전 미디어파사드 안내 배너문화의 날을 하루 앞둔 5월 24일 화요일 저녁, ‘미디어파사드’가 열리는 덕수궁으로 향했다. “잠시 후 ‘미디어파사드’가 시작됩니다. 궁내에 계신 분들은 석조전 앞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모여든 시민들로 석조전 앞에 마련된 좌석은 금방 찼다.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그 곳이 오늘은 스크린이 되었다. 궁궐이나 일반건물에서 하는 몇 번의 ‘미디어파사드’를 본 적이 있지만 다른 양식의 건물인 석조전에서의 모습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석조전이 지닌 장점을 이용, 창문과 기둥 등의 외형을 충분히 살렸다. 앞의 분수에 비친 모습도 마치 거울에 반사되는 것 같이 아름다움이 2배로 강조된다. 미디어파사드가 시작되기 직전, 석조전의 모습시민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상이 시작되자 조용해졌다. ‘석조전, 낭만을 상상하다’를 주제로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흔적’은 돌이 부서지는 장면과 함께 새싹이 싹트고 열매가 맺히고 떨어진다. 2장 ‘기억’은 천둥번개, 눈과 낙엽 등이 석조전의 계절을 나타낸다. 3장 ‘낭만’은 석조전에서 옛 추억을 신문지 등으로 표현, 낭만을 추억한다. 마지막 4장 '꿈'은 색색의 꽃잎들이 날아들며 석조전의 꿈을 '그린다.  다양한 계절과 배경을 표현하는 미디어파사드석조전은 꽃이 흩어지는 들판이 되었다가 극장도 되고, 다방도...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의 1층 중앙홀

화려한 궁궐 뒤에 숨겨진 황제의 눈물

지난해 10월 13일, '대한제국역사관'이 탄생했다.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회복한다는 취지로 2009년에 석조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14년에 완성된 것이다. 개관일을 10월 13일로 정한 것은 고종(광무황제)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로 즉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조선시대의 수도였던 한양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의 5개의 궁궐이 있었다. 임금님과 신하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궁궐은 역사적인 순간을 간직한 곳이다.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불리게 된 궁궐도 선조와 광해군의 역사부터 조선시대 말, 어지러웠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아픔을 함께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궁궐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졌지만, 덕수궁 안의 석조전은 서양식 건축물이다. 석조전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온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준공된 건물이다. 대한제국 최대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철골 콘크리트 건물로, 당시 영국인들에 의해 설계, 시공이 되어서 건축의 모습이 영국의 분위기가 풍긴다.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의 1층 중앙홀 원래 석조전은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의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서 주로 생활했고, 석조전은 공식 행사에만 사용하였으며 게다가 순헌황귀비는 준공 이듬해 1911년에 홍거하여 정작 석조전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 이후 영친왕이 국내 귀국할 때 임시 거초로 사용되다가 1933년 일제의 의해 덕수궁 '중앙공원화 정책'에 따라 '덕수궁미술관'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그 후, 1938년 '이왕가미술관', 1946년 미소공공위원회회의장, 1955년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행사 후 만찬을 베풀었던 1층 대식당 이번에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석조전은 크게 지층과 지상1,2층으로 구분되어있다. 접견실, 귀빈실, 대식당으로 이뤄진 1층은 공적인 업무를 보던 공간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