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 종로구립미술관

[여행스토리 호호] 화가 문인들이 사랑한 동네 하루 여행 코스

서촌은 조선시대부터 화가, 문인들이 사랑한 동네입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산 그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인왕산이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과 화가, 문인들이 어울려 그들만의 소통을 즐겼던 분위기는 여러 흔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주요 여정은 박노수미술관에서 시작해 수성동 계곡과 이상의 집까지 이어집니다. 호호의 유쾌한 여행 (45)서촌 박노수 종로구립미술관, 수성동계곡, 이상의 집 박노수 종로구립미술관 서촌에 살았던 화가의 흔적 이곳은 서촌에 살았던 동양화가 남정 박노수를 기념하는 미술관이다. 남정 박노수 화백은 청전 이상범 화백의 문하생으로 초기에는 산수화를 그리다가 후기로 갈수록 인물화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60년대 후반부터는 산수화에 집중했는데 밝은 색채감, 비움으로 의미를 더하는 공간감, 산수화에서 드물게 색채를 화려하게 써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산수화가 고즈넉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그는 서촌에 위치하고 있는 한옥과 중국 서양식 기법이 혼재한 가옥에서 40여간 거주해왔습니다. 복고적이면서도 단아한 건물은 일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입니다. 크지 않아도 다양한 수종을 갖춘 정원과도 매우 잘 어우러집니다. 그의 타계 후 소장품 1000여점을 종로구에서 기증 받아 종로구청에서 직접 가옥을 관리하며 미술관으로 변신시켰습니다. 고풍스러운 집 분위기와 정원은 화가가 직접 사용해오던 모습을 가급적 그대로 보존하면서 미술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2층 규모의 내부에 8개 전시실을 뒀습니다. 각 방과 복도 등이 모두 전시공간입니다. 무엇보다도 욕실도 전시실로 바꾼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변기와 욕조 옆에 작품 도록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다른 주제로 매번 기획전이나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정원을 한 바퀴 돌며 조각 작품도 감상하고 옆 언덕 위 전망대로 올라가 주변 일대를 내려다 볼 수도 있습니다. 정원은 넓지는 않지만 단아합니다. 미술관 부근에 까페나 공방...
`시의 뿌리를 찾는 문학기행`에 참여 중인 시민들

눈부신 봄날, 서울 속 문학여행 떠나볼까?

`시의 뿌리를 찾는 문학기행`에 참여 중인 시민들 시인의 삶과 발자취가 담긴 장소를 직접 좇으며, 작품이 전하는 감동을 찬찬히 음미해 볼 수 있는 이색 문학여행을 소개한다. 서울시민과 문인들이 함께하는 ‘시(詩)의 뿌리를 찾는 문학기행’이 오는 4월 13일부터 7월 6일까지 8회에 걸쳐 진행된다. 서울시와 인연이 되었던 시인들이 살았던 고택과 문학비, 묘소 등을 탐방하면서 문학작품의 의미를 확인하고 서울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서울시민과 문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1만원이다. 신청방법은 원하는 탐방주제를 선택해 (사)국제펜클럽한국본부 사무처 전화(02-782-1337~8, 김경식 시인) 또는 이메일(admin@penkorea.or.kr)로 연락하면 된다. 참가자는 각 탐방주제마다 선착순 마감하며, 집결 장소에서 버스로 이동해 버스 또는 도보로 탐방하게 된다. ■ 시의 뿌리를 찾는 문학기행 안내 회차 일시 주 제 탐방 장소 비고 1회 4.13(목) 10:00 ~ 16:00 성북동과 인연이 되었던 시인의 궤적 찾는 탐방 한용운(성북동 심우장), 조지훈(집터), 방우산장(조지훈 조형물), 김광섭(집터), 길상사(백석 시인), 성북동 비둘기공원, 수연산방, 최순우(옛집) 회당 40명 2회 4.27(목) 10:00 ~ 16:00 정지용 녹번리 초가터와 천상병 문학공원 정지용(은평구 초가터), 이동주(은평구 고택), 셋이서 문학관(은평구), 진관사(은평구), 천상병 문학공원(상계동), 천상병 문학의 숲 3회 5.11(목) 10:00 ~ 16:00 서울 북촌 시인의 흔적과 4.19묘지 시비 탐방 한용운(선학원), 맹사성(집터), 심훈(정독도서관, 경기고보터), 만해당, 박인환(고택), 김지하(싸롱마고), 방정환(집터), 4.19 묘지(시비 탐방), 문익환(집터) 4회 5.25(목) 10:00 ~ 16:00 ...
우당기념관

독립운동가의 자취 찾아 ‘서촌’ 한바퀴!

우당기념관 ‘서촌(西村)’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뜻한다. 관광 명소로 유명세를 탄 ‘북촌(北村)’과 달리 서촌 골목은 길을 잃기 일쑤다. 그래도 으리으리한 한옥이 모여 있는 북촌보다 낯이 익은 곳은 서촌 골목이다. 사대부들이 거주했던 북촌이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사회 담론(談論)을 주도했다면, 역관이나 의관 등 중인들이 모여 살았던 서촌은 3·1운동의 민족대표, 대한민국임시정부요인, 국내 문화운동 지도자 등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들의 은밀한 거점 마을이었다. 이것이 북촌과 비교되는 서촌만의 특별함이다. 광복의 달 8월, 기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빛나는 자취를 찾아 ‘서촌으로의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효자동에서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직진하면 오른편에 서울농·맹학교가 있다. 거기서 10시 방향 태극기가 펄럭이는 건물이 ‘우당기념관’이다. 서촌으로의 여행은 우당기념관에서 시작된다. 우당 이회영(李會榮, 1867~1932)은 1907년 비밀결사 신민회에 참여했고 헤이그 특사 파견 주도, 신흥무관학교 설립기여, 1932년 관동군 사령관 처단을 계획하다 붙잡혀 고문으로 여순감옥에서 순국했다. 1990년 동승동에서 개관했다가, 2001년 6월 현 위치로 신축하여 이전했다. 전시관은 6개의 코너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회영의 흉상과 낙관, 신흥무관학교 교가, 친필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카페로 변한 독립운동가 박동완 집터 우당기념관에서 필운대로를 따라 통인시장 방향으로 내려오면 자하문로9길을 만난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박동완이 3·1운동 당시 살았던 곳이 36번지이다. 박동완(朴東完, 1885~1941)은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여 2년간 옥고를 치른다. 출옥 후에는 기독신보 주필, 신간회 간사, 하와이로 건너 간 뒤에는 국내 민족운동 후원활동을 했다. 그가 살던 집터는 젊은...
겸재정선미술관의 전경

조선 풍경을 처음으로 그린 화가는?

겸재 정선은 산수화를 즐겨 그렸던 화가 중에서도, 처음으로 조선의 풍경을 즐겨 그렸던 화가였다. 다른 화가들이 중국 지역의 명승지나 중국 설화로 전해지는 장소를 상상해서 그린 데 반해, 겸재 정선은 조선, 특히 그 중에서도 금강산과 한양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을 주로 진경산수화를 통해 담아냈다. 그리고 조선의 풍경을 그려낸 산수화는 여러 화원들의 인기를 끌어, 조선 미술이 중국의 ‘상상도’를 벗어난 진짜 그림을 드디어 마주할 수 있게 했다. 그러고 보니 봄철의 꽃이 신록이 되어 초여름을 맞이하려는 문턱에 와 있다. 멋진 풍경을 찾아 서울을 벗어나는 것도 좋지만, 겸재 정선이 조선 안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듯이 서울 안에도 가득한 봄철의 신록을 마음껏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겸재 정선이 서울 종로구의 옥인동 자락에서만 무려 1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려냈으니 말이다. 지금은 강서구, 양천구로 나눠진 양천현의 관아지인 가양동부터, 서울 종로구의 서촌과 부암동까지, 그의 삶이 담겨있는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양천현감 정선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겸재정선미술관의 전경 양천현의 관아지인 가양동에는 겸재정선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다. 관아의 터가 있었던 관아지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양천향교역에서 내려 10여분을 걸어가니 겸재정선미술관이 보였다. 들어가자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설명을 해 주신다. 그가 많은 명작을 남긴 곳은 양천현 관아지에서 가까운 뒷산인 궁산이었는데, 그 중에 양천현의 팔경을 정리한 양천팔경첩을 지은 물론, 시인인 이병연과 이 시절부터 교류하기 시작해 평생친구가 되었고, 첫 결과물인 경교명습첩이 이곳에서 나올 정도로 정선의 화풍에 큰 영향을 주었던 곳이 이 곳이었다고 한다. 겸재정선미술관의 겸재정선실. 겸재정선의 그림을 먼저 찬찬히 훑고 가기에 좋다. 직접 그가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는 2층의 겸재정선실에는 그가 그렸던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1층의 양천관아실에서는 그가 여러 해 동안 국가의...
보안여관

[서울사랑] 통의동 ‘보안여관’ 이야기

사람을 만날 때 흉금을 터놓고 정담을 나누기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나로선 남녀 불문하고 여관으로 확신한다. 그래서 난 가끔 여관으로 간다. 그 여관들 가운데서도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에 있는 통의동의 '보안여관(保安旅館)'이 가장 탁월하다. 그러나 초면에 서로가 만나기 전 약속 장소를 정할 때까지는 꼭 아래와 같은 대화가 오간다. 어느 날, 이름만 알고 얼굴은 모르는 고교 영어 교사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40대 후반의 여자인 정 선생님과 먼저 전화로 간단히 인사한 다음 내가 물었다. "그럼 내일 저녁 7시에 어디서 볼까요?""장소를 추천하시면 제가 찾아갈게요.""그럼 제가 자주 애용하는 곳인데, 경복궁 영추문 바로 건너편에 있는 보안여관에서 만나지요.""예? 여…관…요?""예, 아주 운치 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여관인데, 이름처럼 보안도 확실해 제가 자주 애용하거든요.""어쨌든 처음 만나는데… 어떻게 여관에서… 참 엉뚱하시네요.""거기가 여관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통 여관 같지 않고 아주 특별해요.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게 방과 복도 벽마다 독특한 예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쉬면서 고상하고 우아하게 감상도 하고요. 청담동이나 인사동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젊은 예술가들의 아주 실험적이고 독특한 예술 세계지요. 그리고 더욱 좋은 건 서로 얘기하며 놀다가 배가 출출해 마당으로 나오면 막걸리에서 와인까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장터도 있고요. 그런 여관 봤어요?" "아뇨. 그래도 여관은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다음 날 저녁 정 선생님은 예상대로 나타났다. 의심스러웠는지먼저 여관을 한 바퀴 둘러본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처음에는 여관이라는 말에 황당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다가도 막상 와서 보고 듣고 느끼면 180도 달라진다. 하긴 나도 인사동 골목만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서촌의 이 여관을 '발견'하고부터는 아예 단골이 되어버렸다. 하얀 아크릴 간판에진한 푸른 글씨인 통의동 2-1번지 '보안...
한옥ⓒ투수

북촌과 서촌서 한옥 짓기 쉬워져요~

서울시는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 밀집지역인 종로구 북촌과 경복궁 서측지역 일대(약 150만㎡)를 21일 '한옥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합니다. '특별건축구역'이란 도시경관의 창출, 건설기술 수준향상 및 건축 관련 제도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건축법 또는 관계 법령의 일부 규정을 적용하지 않거나, 완화 또는 통합 적용할 수 있도록 특별히 지정하는 구역을 말합니다. 서울 시내에서 '한옥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지난 2012년 은평 한옥마을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특별견축구역 위치도 : 경복궁 서측(한옥비육 31.2%) 및 북촌(한옥비율 46.2%) 구체적으로 이번 '한옥 특별건축구역' 지정으로 완화되는 내용은 ▲대지의 조경기준(건축법 제42조) ▲대지안의 공지(건축법 제58조) ▲일조권(건축법 제61조) ▲건폐율(건축법 제55조)로, 기존 건축법을 따랐을 때 한옥에 불리하게 적용됐던 부분들입니다. 예컨대, 전통한옥은 마당을 중심으로 저층으로 구성되는 특성을 고려해 건폐율은 기존 50%~60%에서 70%로 완화됩니다(한옥건축물만 적용). 건축선 및 인접대지경계선으로부터 이격거리는 현행규정상 1m로 되어있지만 한옥은 외벽이 아닌 처마 끝선 기준이어서 처마길이 및 마당면적이 축소되는 등 왜곡된 형태의 한옥이 양산됐던 점을 고려해 외벽선 기준으로 개선했습니다. 현행규정 ▶ 특례적용 ■ 특별건축구역 지정 전·후 비교 구분 지정 전 지정 후 대지의 조경 관목 등 한옥에 적용이 불합리한 조경기준 한옥과 어울리는 재료로 자유롭게 조경설계 가능 대지안의 공지 처마 끝선 기준 1m 이격 외벽선 기준 1m 이격 일조권 정북방향 1.5m 이격 정북방향 0.5m 이격 건폐율 당해 용도지역․지구 건폐율 당해 용도지역․지구의 건폐율 + 10%p(단, 제3종 일반주거지역 70%) 시는 이렇게 되면 일반건물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한옥에 적용하기에 불합리했던 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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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서쪽은 `서촌`이 아니다?

지난 11월 2일(토)에 서울시 온라인 시민스토리텔링단은 경복궁 서쪽 마을을 다녀왔다. 이번 답사는 한양대학교 전우용 교수의 설명과 함께 창의궁 터, 통의동 백송, 이상의 집터, 벽수산장,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수성동 계곡으로 이어졌다. '북촌'에 이어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는 경복궁 서쪽 마을, 그 숨은 뒷이야기를 정리해봤다. 서촌 마을의 진짜 이름은 '상촌(웃대)' 사람들이 북촌과 대비해 서촌이라 부르는 것일뿐, 이 동네 진짜 이름은 '상촌(上村)'이고 순우리말로 하면 '웃대'다. 이는 옥인동 근처에 흐르는 옥계천의 상류라는 뜻이다. 원래 '서촌'이라하면 조선시대 서소문에서 서대문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여기에 동촌, 남촌, 북촌, 중촌을 합쳐 5촌이라 하며, 동촌은 낙산 밑 혜화동, 연건동 지역이고, 남촌은 남산 근방을 말한다. 북촌은 백악산 밑을 일컫고, 중촌은 청계천, 종로, 을지로 지역을 말한다. 상촌을 지키는 통의동 백송 상촌에서 눈에 띄는 나무는 백송이다. 원래 중국에 자생하는 백송은 서울에 통의동, 계동 헌법재판소 앞, 조계사 세 곳에 있다. 이중 통의동 백송이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 그러나 통의동 백송은 1990년, 7월 폭풍으로 쓰러져 지금은 밑동만 남았다. 또한 이곳은 창의궁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창의궁은 영조가 왕이 되기 전인 연잉군 시절에 살던 집이다. 지금 경복궁역 3번 출구 근처에 있는 창의궁터는 잘못된 것으로 원래는 월성위궁 터이다. 월성위궁은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가 김한신과 혼인하여 그를 월성위로 봉하고 지어준 집이다. 시인이 이상이 걷던 길 창의궁 터를 뒤로하고 천재 시인 이상이 걷던 길을 걸었다. 통인동 154번지가 바로 이상의 집터이다. 이상이 3살 때부터 24살까지 살던 백부의 집터 중 일부분으로 현재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복원을 위해 수리 중이다. 윤덕영의 '아방궁'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발걸음을 옥인동으로 돌려 '벽수산장(옥인동 43번지 일대)'으로 향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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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가을 여행

예년과 달리 길었던 여름이 지나가니, 야외에서 활동하기 좋은 가을은 어쩐지 짧게 느껴진다. 가로수에서 잔잔히 내린 은행잎으로 길은 노랗게 변하고 산새는 붉게 변했다. 손에 쥔 책을 한 장씩 읽어 내려가다 보면 가을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드는 것만 같다. 떠나가는 가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남겨진 문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단법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와 함께 <서울 시(詩)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시인 김경식 선생님의 해설과 함께 시작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북촌. 이곳은 오래된 한옥이 아름답게 보존된 곳으로 국내뿐 아니라 국외 관광객들까지 즐겨 찾는 곳이지만, 일본 강점기라는 민족의 아픈 역사와 함께한 작가들의 흔적도 간직돈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의 전통 불교를 수호하고 사찰정책에 저항했던 선학원. 백담사에서 수행하던 민족시인 한용운 선생님은 당시 경성에 오면 이곳에서 숙식하며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고민을 하셨다고 한다. 북촌의 계동 43번지 만해당과 함께 한용운 선생님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어 찾은 만해당은 1918년 9월에 창간된 잡지 <유심>이 발행된 곳으로 최린이 한용운 시인을 찾아 불교계를 3.1운동에 참여하게 만든 곳이다. 현재 만해당의 간판은 걸려있지만, 우리 역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안타깝게도 개인이 운영하는 한옥 홈스테이 장소로 남았다. 외세가 밀려오던 구한말, 국내의 선각자들은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뜻을 품고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구국 정신으로 세워진 중앙고등학교는 북촌 계동 골목길 끝에 자리 잡고 있다. 3.1운동의 발상지인 중앙고등학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저항시인 이상화와 은유법이 탁월한 <국화 옆에서>의 서정주 시인을 배출한 근대문학의 중요한 장소이다. 지금도 고등학교로 남아 있어 주말에만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서울 북촌의 서쪽 입구에 있는 정독도서관은 현재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경기고등학교의 터로 1976년 강남 개발 정책에 따라 이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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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이 담긴 문화재, 시민의 미술관 되다

"외로이 홀로 가는 길, 남이 도와줄 수도 없고, 누구와 더불어 갈 수도 없는, 어렵고 힘든 길..." 이렇게 화가의 길을 고예독왕(孤詣獨往, 홀로 가는 예술의 길은 험하고 고독하다)이라고 강조한 예술가. 도제식 교육이 일반적이던 당시, 정규 대학(서울대학교 회화과)에서 교육을 받은 광복 후 1세대 작가. 남정 박노수(1927.2.17~2013.2.25) 화백이다. 박 화백은 전통적인 주제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해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실현한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예술혼이 지금도 숨 쉬고 있는 자택 '박노수 가옥'이 지난 11일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지역 구립 미술관으로서는 최초다. 시민들에게 개방된 미술관에선 박 화백의 손길이 남아있는 가옥 내부와 정원, 그가 작업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미술관은 정확히 최근 복원된 수성동 계곡과 통인시장 사이에 위치한다. 시청 옆 한국프레스센터(시청역 4번출구) 앞이나 경복궁역(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9번을 탑승하면 바로 미술관에 도착한다. 거장을 위한 주거공간에서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역할이 바뀐 가옥은 무려 75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말기 관료이자 친일파인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1937년경에 지어졌고, 설계는 간송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박길룡이 맡았다. 당시 한옥건축 기술에 중국인 기술자들이 참여하였고 프랑스풍을 취했다. 전통을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신식문물을 흡수한 당시 지식인들의 시대의식을 엿볼 수 있다. 해방 후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다가 1973년 박 화백이 소유하여 2011년까지 약 40여 동안 이 가옥에서 거주하였다. 이 가옥은 긴 역사, 독특한 건축양식과 보존 상태가 좋다는 점 등이 인정되어 1991년 서울시 문화재자료 1호로 지정되었다. 미술관은 한마디로 살아있는 한국역사였다. 2층(지하까지 포함하면 정확히 3층) 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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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비밀정원`엔 누가 살까?

서울 종로구 옥인동길을 따라 15분가량 걷다 보면 도심 속 보물 같은 계곡, 수성동 계곡을 만날 수 있다.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 바로 아래를 흐르는 계곡으로 겸재 정선의 <수성동> 회화에도 등장한다. 실제 겸재 그림과 비교해보면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계곡을 빙 둘러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옥인 1길로 들어서면 이곳 동네 주민들이 '비밀의 정원'이라고 부르는 집이 나온다. 바로 9월 11일에 개관한 박노수 미술관이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의 전통 방식을 취하면서도 간결한 색감과 대담한 터치 등 독자적인 화풍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사회 환원에 뜻을 가지고 종로구와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설립을 위한 기증협약을 맺었다. 2013년 2월 박노수 화백은 타계하였으며, 2013년 9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2층 건물의 붉은 벽돌과 마당에 있는 수석은 잔잔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실제 박노수 화백이 살았던 집으로 안방, 서재 등 화백님의 손길이 남아있는 장소는 <달과 소년>展 이 전시 중이다. 실제 거주하던 집을 전시관으로 꾸며 신발을 벗고 들어가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고아한 품격과 파격적 구도와 색감으로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표현했던 박노수 선생님의 대표작품을 3개의 전시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첫 번째 전시실에는 총 7점의 대표작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가 거실과 안방으로 썼던 공간으로 마루, 장판지로 마감되어 개인의 주거공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투명한 쪽빛과 과감한 구도는 시원함을 전해주고, 홀로 달을 등지고 서 있는 소년의 뒷모습은 외로움을 말해주는 듯하다. 두 번째 전시실에는 70~80년대 초 산수화를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화면을 주제에 8할 이상 할애하던 이전의 산수화 기법과 달리 박노수 선생님만의 독특한 산수화의 시작을 보여준다. 이 전시실은 작가가 화실 겸 서재로 쓰던 곳으로 마루와 베란다, 벽난로가 이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세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