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외국의 어느 거리 같은 서촌 풍경

봄날을 기다리며, 서촌 골목 산책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무겁다. 강의도 모두 취소되고, 모임도 사라졌다.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예약해 두었던 것도 취소했다. 그저 숨죽이며 집에만 있다가 참다못해 지난 주말 오전에 마스크를 쓰고 서촌 한 바퀴를 산책했다. 날씨가 따뜻해서 설렁설렁 가볍게 걷기에 참 좋았다. 봄날의 기운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밖에 나오길 정말 잘했어!'라고 혼잣말로 몇 번이나 읊조렸다. 서촌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왔다. 눈앞에 한복대여점이 하나 보였다. 길거리의 마네킹이 입고 있는 한복이 참 곱다. 한복 저고리 옷고름을 포인트로 전경에 두고 서촌 마을을 아웃포커싱으로 담았다. 한복의 고운 자태가 눈부셨다. 한복의 고운 자태를 보니 곧 봄이 오는 듯하다 ⓒ문청야 골목길로 접어드니 한옥이 보인다. 이곳의 한옥은 북촌보다 서민적인 분위기다. 봄날의 햇살은 한옥의 담장에 부딪힌 뒤 땅바닥에 드러눕는다. 그림자가 생기고 담장 아래 멍멍이는 생기를 찾은 듯 꼬리를 흔든다. 코로나19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한가로운 풍경들은 정겹기만 하다.  이곳 서촌의 시간은 다른 곳보다 더 느리게 가는 듯 느껴진다. 지붕 기와 너머로 인왕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인왕산 풍경 때문인지 자꾸 길을 멈춰서서 산을 바라보게 된다. 예전부터 서촌에는 문인 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서촌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인왕산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인 듯하다. 서촌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문청야 서촌은 시선을 끄는 개성 있는 인테리어를 한 가게들이 많아서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문청야 마을 전체가 미술관처럼 느껴지는 서촌 풍경 ⓒ문청야 서촌에서는 특별히 목적지를 정해놓고 걷지 않아도 재미있다. 개성 있는 인테리어를 한 가게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따라가다 보면 서촌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장소에 닿게 된다. 서촌에서는 간판조차 위트 있다. ‘Bar 비’라는 간판 아래에는 ‘비가 오면...’이라고 쓰여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곳의 바를 찾아...
이상의 집에 전시된 이상의 초상화

서촌 ‘이상의 집’에서 문학 그 이상을 만나다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이상의 집 ⓒ김은주 경복궁 서쪽 마을인 서촌을 걷다 보면 골목길 감성에 젖게 된다. 북촌 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서촌은 좁고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곳이다. 편안하게 다가오는 낡은 한옥들, 작고 좁은 카페, 감각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파는 소품 가게, 오래된 전통시장까지 마천루 가득한 도심 속 일상생활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상의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 판매한다 ⓒ김은주 서촌엔 '오감도'의 작가 이상의 집이 있다. 이상은 국어 시험문제에도 자주 출제될 정도로,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작가다.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를 읽고 이상을 좋아하게 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누구도 쓰지 않았던 스타일의 문체와 독특한 소재의 스토리는 매력적이었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시, 소설, 수필 등 여러 문학 장르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이상은 일제 식민지시대 대표작가로 짧은 생을 살다 요절했다.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시 '오감도'는 난해시로 여겨지며 독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결국 연재를 계속할 수 없었던 오감도의 첫 구절이 생각난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이상의 집의 아카이브 모습 ⓒ김은주 서촌을 수없이 많이 와봤는데 이상의 집을 지나쳐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상의 집을 찾다가 못 찾았던 경험도 있다. 그만큼 다른 곳과는 달리 간판도 작고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어 지나치기 쉬웠던 것이다. 연대기별로 확인해볼 수 있도록 제작된 아카이브 ⓒ김은주 이상의 집 앞에 있는 안내문에는 이상의 집이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이상(본명 : 김해경)이 세 살부터 20여 년 간 머물렀던 집터의 일부라고 밝히고 있다. 이상은 세 살 때부터 이곳 통인동의 큰 아버지 김연필의 집에서 성장하게 된다. 20년 간 살았던 통인동 집은 300평이 넘는 넓은 집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 집은 여러 필지로 나뉘어져 팔리게 되었고, 철거될 위기에 놓였던 이곳...
‘홍건익 가옥’, 궁의 서쪽 사는 사람 이야기

‘궁의 서쪽’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세월을 담고 있는 동네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여기 한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시하는 곳이 있다. 경복궁 서쪽 지방의 옛 이야기를 전하는 ‘궁의 서쪽’ 특별전이다. 어느 늦은 오후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 '홍건익 가옥'을 찾았다.  홍건익 가옥으로 향하는 길,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를 지나게 된다 ⓒ박은영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골목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상가들 사이로 보이는 아담한 한옥을 마주할 수 있다. 홍건익 가옥으로 향하는 길에는 곱창, 삼겹살, 횟집, 등 서촌의 맛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인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도 지나게 된다. 이곳은 사직터널이 생기기 전 금천교 시장으로 시작해 5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곳이라고 한다.  1934년 건립, 근대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홍건익 가옥 입구 ⓒ박은영    종로구 필운동에 자리하는 홍건익 가옥은 1934년 건립돼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됐으며 서울에서 유일하게 원형 석조우물과 일각문이 잘 보존된 근대한옥이다. 2017년 서울시 역사가옥으로 지정, 시민들에게 개방하며 지역의 가치를 알리는 전시 등을 운영하고 있다.   홍건익 가옥에서 '궁의 서쪽'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박은영    활짝 열린 한옥의 대문은 사람들에게 들어와 잠시 쉬어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문지방을 넘어 홍건익 가옥으로 들어서니 불을 밝힌 한옥이 두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단아함과 더불어 한층 더 푸근하게 느껴졌다. ‘궁의 서쪽’ 전시는 경복궁 서측의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며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시한다. 경복궁 서측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공간과 일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거다. 전시가 진행 중인 사랑채 내부에는 벽에 걸린 크고 작은 사진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궁의 서쪽' 전시는 '서촌'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박은영   전시회를 준비한 것은 지난 8월부터다. 생활, 문화, 예술, 교육, 사회 등 ...
한옥 사이로 좁은 서촌 골목길, 서울시는 왜 추천하는 걸까

걷고 싶은 동네, 서촌에서 숨은 명소 찾기

서울시 종로구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 이렇게 말하면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촌’이라고 하면 얘기가 다르다. 서촌은 옛부터 '북촌'이라 부르던 이름과 달리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불리는 별칭이다. 서촌이라고 불린 것도 오래 되지 않았다. 본래 장의동, 장동으로 불렸던 서촌은 창덕궁 남쪽의 교동이나 북촌과 함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들 중 하나다. 서촌은 길 따라 걷기 좋은 동네다. 다른 번화가들처럼 길이 반듯하고 직선으로 되어 있지 않고 미로 같은 꼬불꼬불 옛길이 많다. 하지만 서촌의 명소가 곳곳에 숨어 있고 역사적인 명소들도 군데군데 찾을 수 있다. 서촌은 걸어서 알 수 있는 곳과 숨은 매력들이 다양하다. 무엇이 있을까. 서촌 골목길 ⓒ김진흥 역사적인 인물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촌 현재 서촌은 골목 사이로 카페와 갤러리들이 많다. 예술적인 풍취를 느낄 수 있어서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데 이곳은 예부터 예술과 관련된 것으로 유명하다. 서촌은 조선시대 역관,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근대에 들어서 화가 이상범과 이중섭, 시인 윤동주, 이상 등 예술가들이 서촌에 거주했다. 그래서 이들과 관련된 것들을 서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서촌 안쪽에 있는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과 매우 밀접하다.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이 이곳 자연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 그림으로 남긴 곳이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수성동’ 그림이 그것이다. 겸재 정선이 찬사를 보냈던 수성동 계곡 ⓒ김진흥 하지만 이곳은 약 40년 전까지만 해도 자연이 아닌 아파트로 얼룩졌다. 1971년 계곡 좌우로 옥인시범아파트 9개 동이 들어서면서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잃었다. 그러나 2012년, 서울시가 수성동계곡 복원사업을 통해 아파트를 철거하고 이곳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수성동계곡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아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문학가 이상의 집 ⓒ김진흥 서촌에...
서촌마을

시간의 흔적을 따라 걷다…서촌 문화예술여행

북촌만큼 익숙하지 않은 서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집을 알아보던 때였다.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 어릴 적 마당 넓은 한옥집이 그리웠던 그 때 촌스럽지 않으면서 옛스러움을 간직한 한옥을 볼 수 있던 곳이 서촌이었다. 어플에서만 집을 알아보다 정작 처음 발걸음을 했던 건 공연을 보러 갔을 때였다. 서촌 골목길 ⓒ최창임 지도를 보며 가면 어지간한 길은 다 찾을 수 있는데 서촌에서 처음 미아가 된 기분을 느꼈다. 경사도가 있으면서 여기저기 골목길로 이어졌고 골목과 골목 사이의 길이 넓어 동서남북조차 찾아지지 않아 식은땀을 흘린 적이 있던 곳이 바로 서촌이다. 다시 찾은 서촌은 역시 길을 찾아다니기 쉽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길 찾아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서울촌놈이 된다.   서촌은 근현대사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최창임 북촌이 한옥집이 많다면 서촌은 근현대사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해방이 되고 민족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경제발전을 하려고 무던히 애쓰던 그 때의 모습이다. 우리가 말하는 서촌은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를 말하기도 하지만 청계천을 기준으로 하면 웃대 또는 상대라고 표현한다. 서촌에는 누가 살았을까?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촌과 서촌을 비교할 때 일반적으로 북촌은 양반이 서촌은 서민들이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조선 초기 서촌은 왕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사극에 단골로 나오는 태종 이방원이 결혼 후 살림을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이도(李祹)가 태어났던 곳이었다. 그 후 역관이나 의사와 같은 중인들이 모여 살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들어와 거주를 해 지금까지 그들이 살았던 적산가옥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문직에 종사하고 양반보다는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이들이 살던 서촌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사회를 대표하는 문인과 예술가들이 거주하며 오랜 시간을 품고 작품을 쓰고 그리던 문화예술 공간이었다. 그들이 살고 문화예술을 가꾸던 서촌에서 떠나는 문화예술여행은 대략 3시간 정도 문화해설을 들으며 예술가들의 ...
전통한옥 상촌재

서촌의 오래된 골목으로 떠난 서울 동네여행

가을바람에 붉게 물든 나뭇잎이 소리 없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가을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해설사와 함께하는 서울도보관광을 다녀왔다. 이번에 다녀온 코스는 서촌한옥마을코스로 4km 3시간 코스였다. 그동안 서촌을 여러 번 갔었지만 이번 도보관광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곳이 있어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촌골목에서 만난 잘 익은 감과 밤송이가 눈길을 끈다 ⓒ문청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해 서촌의 오래된 골목골목을 한발짝 한발짝 디뎌서 '통의동 백송터–창성동 미로미로–상촌재–송석원 터–윤덕영 집터(벽수산장)–박노수 미술관–윤동주 하숙집터–수성동 계곡–이상범 가옥–노천명 집터-이상 집'을 돌아보는 코스였다. 서촌골목은 670여 채의 한옥과 재래시장, 근대문화유산과 더불어 갤러리, 카페, 공방 등이 어우러져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길을 걷다 보니 길거리가 갤러리 인 듯 보였다. 못 쓰는 미싱 위에 잘 익은 감과 밤송이를 늘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서촌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계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문청야 서촌은 지역적으로 청계천 상류라고 하여 ‘웃대’라고 불렸고, 사대문 가운데 서쪽에 치우쳐졌다 하여 서촌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현대까지 공간적 역사성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과 예술인들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치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을 열 듯, 골목 하나에 접어들면 조금 전과는 다른 또 다른 시대로 진입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흥미를 유발시켰다. 서촌의 오래된 골목을 걷는 일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쌓인 시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면서 동시에 이 땅에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동네라 하여 최근들어 ‘세종마을’이라고 부르는 창성동 동네 골목 모습 ⓒ문청야 사대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던 북촌과 달리 서촌은 조선시대 역관이나 의관...
예술이 흐르는 경복궁 옆 미술 기행

골목 곳곳 예술이 흐르는 ‘경복궁 옆 미술 기행’

예술이 흐르는 경복궁 옆 미술 기행 서촌과 북촌 골목 곳곳에 숨은 작지만 개성 있는 갤러리들을 따라 예술 투어를 떠나보자. 북촌과 서촌 미술 기행(☞ 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경복궁을 중심으로 양쪽에 펼쳐진 고즈넉한 정취의 서촌과 북촌에는 골목골목 멋스러운 예술이 흐른다. 이 지역 일대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의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으며, 곳곳에 다양한 전통 예술 공방과 체험관, 박물관등이 자리해 있다. 서촌과 북촌의 갤러리들은 대형 미술관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고 대부분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따라서 특별히 날을 잡아 방문하지 않아도 언제든 가볍게 둘러볼 수 있다. 관람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구매할 수도 있고, 구매 의사가 없더라도 전시 기간 내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호기심에 갤러리 앞을 서성이다가도 낯선 분위기에 발길을 돌리거나, 관람 가능한 갤러리인 줄 모른 채 무심코 지나쳐버리곤 한다. 이처럼 갤러리 방문이 익숙하지 않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갤러리 학고재의 전시 매니저(큐레이터) 박미란 씨는 이렇게 전한다. “대부분의 전시가 무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꼭 미술 관람을 목적으로 이 지역에 들른 것이 아니더라도 나들이 나온 김에 편하게 갤러리에 방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카페형 갤러리에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 서촌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갤러리 카페’에서는 일반 카페와 같이 음료와 담소를 즐기면서 천천히 전시된 작품을 둘러볼 수 있다. 북촌 일대의 전통 예술 전시관과 공방은 현대적 갤러리와 어우러져 한옥거리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한국적인 재료와 방식을 이용한 공예품, 그림 등 전통 예술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며 직접 배워볼 수도 있는 공간들이다. 대부분 일반 갤러리와 마찬가지로 운영 시간 내에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고, 사전 예약을 통해 체험과 수강이 가능하다 개성 가득한 예...
1920년대 서촌 일대 전경, 사진 왼편 산 능선에 있던 윤덕영의 별장 ‘벽수산장’

‘한양의 아방궁’이라 불리던 초호화 주택은 어디에?

1920년대 서촌 일대 전경, 사진 왼편 산 능선에 있던 윤덕영의 별장 ‘벽수산장’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54) 벽수산장 경복궁 서쪽에 있는 서촌은 80년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골목길과 조선시대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던 수성동 계곡으로 유명하다. 특히 정조 때 시인으로 유명한 천수경의 거처인 송석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양반이 아닌 평민인 그는 같은 처지의 동료 문인들과 함께 시회를 열어서 유명세를 떨쳤다. 추사 김정희가 송석원이 있던 바위에 송석원이라는 글씨를 새기기도 했다. 이렇듯 서촌은 조선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사적 흔적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져서 거의 흔적도 없는 기억도 남아있다. 필운대로 7길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다보면 이상한 돌기둥과 만나게 된다. 길옆의 다세대 주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돌기둥 두 개가 마치 수문장처럼 서 있는 중이다. 오른쪽은 낮고, 왼쪽은 높은 편이다. 왼쪽 돌기둥 안쪽에는 아치형 출입문의 흔적이 있는 벽돌 담장이 건물들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것이 한 때 서촌 일대는 물론 경성 시내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던 벽수산장의 흔적들이다. 벽수산장의 흔적들 사라진 벽수산장의 주인은 윤덕영이다. 그는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부인 순정효왕후의 큰 아버지이지만 이완용 뺨치는 친일파였다. 일본으로부터 경술국치의 공로를 인정받아 자작의 작위와 함께 막대한 은사금을 받았다. 윤덕영은 나라를 팔아서 받은 돈으로 서촌 일대의 땅을 사들이고 커다란 저택을 짓는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부자들은 서양식 주택을 지어서 부를 과시하곤 했는데 윤덕영이 선두주자였던 셈이다. 무려 10여년에 걸쳐서 지은 서양식 주택을 본 백성들은 아방궁이나 뾰족집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질을 했다. 윤덕영은 서양식 주택 뿐만 아니라 한옥과 호수, 정원까지 조성해서 부를 과시했다. 주택이 워낙 크고 독특해서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 서울을 찍은 사진이나 영화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다. 광복 후에는 병원과 유엔군...
철제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헌회관이 나온다

매주 금요일이면 문이 열린다 ‘제헌회관’

철제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헌회관이 나온다 경복궁 서촌을 지나가다 보면 검은 철제문을 하나 만날 수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기와집이 있다. 굳게 닫혀 있던 이 집의 철제문은 매주 금요일마다 열린다. 이 집은 ‘제헌회관’이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제헌동지회’라고 쓰인 한옥 대문을 만난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치하로부터 벗어나 해방을 맞이했건만 그 기쁨은 잠시였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치렀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참여한 최초의 민주적 선거였다. 여기서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1950년까지 2년 간 대한민국을 운영하기 위한 헌법을 비롯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마당에서 바라본 제헌회관 전시실 입구 제헌회관은 제헌국회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두 개의 방을 네 부분으로 나눠서 전시실로 구성했다. 왼쪽부터 벽면을 따라가면 제헌국회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제헌국회 소개와 5.10 총선거’, ‘제헌국회 개원식’, ‘제헌국회 입법활동’, ‘제헌국회의원 유품’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가는 중앙의 뒷면에 제헌헌법 전문이 있다.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는 문장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제헌국회 주요일지가 연도별로 잘 정리돼 있다 먼저 제헌국회 주요일지가 연도별로 간략히 제시되어 있다.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의원 선거부터 1950년 6월 2일 제헌국회 폐회식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다. 1948년 7월 17일이 대한민국 헌법을 공표한 날이다. 국가에서 7월 17일을 ‘제헌절’로 기념하고 있다. 제헌회관 직원은 제헌국회 주요일지만 보면 전시실을 다 둘러본 것과 같다고 했다. 5.10 총선거에서 투표하는 청년 5.10 총선거에서 투표하는 한복 차림을 한 청년의 얼굴 표정이 진지하다. 주권을 행사하면서 비로소 독립된 국...
박노수 미술관은 박노수 화백이 기거했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다

누구의 집이길래? 미술관이 된 예술가의 집 2곳

박노수 미술관은 박노수 화백이 기거했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다 분주하고 바쁜 일상 가운데 쉼표를 찍고 싶은 순간이 있다. 넘쳐나는 정보와 SNS의 울림 속에서 잠시나마 고요히 있고 싶을 때 떠오르는 곳이 있다. 화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특별한 공간인 ‘박노수 미술관’과 ‘고희동 가옥’이 그곳이다. 그림뿐만 아니라 화가가 살았던 그 곳이 주는 정취는 남다르다. 특별한 공간 속 더 특별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서촌과 북촌에 나란히 있는 박노수 미술관과 고희동 가옥을 함께 거닐다 보면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지역을 마음껏 걸으며 여유 있게 산책할 수 있어 좋다. 박노수 미술관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다 한국화 1세대 화백의 집 ‘박노수 미술관’ 되다 남정 박노수 화백의 집을 찾기 위해서는 경복궁역에서 내려 통인시장을 찾아 가다보면 마주할 수 있다. 마을버스 9번을 타면 바로 박노수 미술관 앞에서 내릴 수 있다.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호인 박노수 가옥은 1930년대 건축된 문화주택이다. 특히 서양의 입식생활과 전통적인 온돌을 함께 사용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집은 박노수 화백이 40년 동안 살면서 그가 가꾼 정원과 함께 그의 작품세계까지 녹아져 흐르는 듯하다. 1층 벽돌구조, 2층 목구조가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현관 옆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과 대청, 입식부엌을 갖춘 집이다. 2층의 박노수 화백의 작업실은 원래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2011년 종로구에서 인수해 현재는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화 1세대 화가로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박노수 화백은 2011년 그의 작품 500여 점과 수백 점의 고가구와 고미술을 종로구에 기증했다. 그렇게 비밀의 정원이라 불리던 아름다운 집이 미술관으로 재탄생되었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화 1세대로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었다. 박노수 미술관에서는 정기적으로 전시작품을 교체하는데 그때마다 다양하고 독특한 그의 화풍에 놀라게 된다. 미술관은 그림을 감상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