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 “한 색소폰 연주자의 회고”

[서울사람] “한 색소폰 연주자의 회고”

“제가 만18세 때 색소폰 연주자로 처음 무대에 올랐어요. ‘낭랑쇼’라고, 그 후로 뭐 ‘하춘화쇼’, ‘이미자쇼’ 이런 지방 순회를 많이 했죠. 그 당시엔 색소폰 연주자가 귀할 때였거든요. 그 이후로 그렇게 연주를 한 사십여 년 했어요.” “그러다 이렇게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한지는 이제 한 9년 됐어요. 바에서 손님 기분 맞추려고 못 먹는 술을 억지로 먹었더니 심근경색이 왔거든요. 한 3,000만 원짜리 집 얻어 살고 있었는데, 다 팔아서 2,000만 원 수술비 대고, 600만 원짜리 악기도 팔고. 갑자기 심장병만 안 걸렸어도 한 70살까지는 일할 수 있었는데…” “가장 후회되는 일은 뭔가요?” “내가 다른 거 후회하는 건 없는데, 우리 딸래미를 입양 보낸 게 제일 후회되지.” “왜 보내게 되셨어요?” “그게… 애기 엄마가 스물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 때 나는 서른 살이었고, 밴드에서 색소폰을 연주했거든요. 애기 엄마 죽고 한 일 년을 혼자 아이를 키웠는데, 내가 카바레에서 음악하고 지방을 돌아다니고 그러니, 이거 내가 혼자 도저히 키울 수 없겠다 싶어 보냈죠.” “그 후로 연락을 한 적이 있나요?” “이십여 년 전에 우리 이모를 통해 연락이 닿아서 한번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애가 고등학생 때였죠. 그런데 뭐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두 살 때니까 기억이나 나겠어요. 서먹서먹하지. 잘 지내냐, 건강하냐,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더라고요. 헤어질 때는 연락처도 안 물어봤어요.” “왜요?” “내가 물어볼 위치가 안 돼가지고. 수급자 생활을 하다보니까 자신도 없더라고요. 아버지로서 내가 도움이 좀 될 수 있다면 몰라도. 하다못해 내가 비행기 삯이라도 내줄 수 있는 능력이 되면 모르겠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이제 소식도 들을 수 없어요. 미국 시카고에서 미니슈퍼를 하나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애가 살아있다면 지금은 서른여섯쯤 되었을 거예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
[서울사람] “1년 반 만에 싸웠던 친구에게 연락했어요”

[서울사람] “1년 반 만에 싸웠던 친구에게 연락했어요”

“(오른쪽) 작년에 제일 친했던 친구와 싸웠어요. 매일같이 만나던 친구였는데 서로 바빠지다 보니 약속을 잡아도 깨지는 경우가 허다해졌거든요. 하루는 제가 화가 나서 ‘야 이제 쉽게 약속 잡지 말자’라고 했는데 그 친구도 기분이 상했는지 정말 한 번도 연락을 안 하는 거예요. 마치 실연당한 것처럼 맨날 울고 10년 된 번호까지 바꿨어요. 저도 오기가 생겨서 ‘네가 뭐라고’라는 생각으로 연락하지 않았죠. 서운함도 컸어요. 저는 1년 반이 지날 동안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친구가 생각이 났거든요. 결국 저번 주에 제가 못 참고 전화를 했어요.” “전화해서 뭐라고 하셨나요?” “그냥 ‘안녕’ 이런 말이 나오지 않고 ‘너 미워. 나 평생 너 미워하면서 살 거야’ 하는 말이 먼저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너도 나 미워하면서 살아. 재밌게 잘 지내고’라고 하더라고요. 화가 너무 나서 ‘그래서 잘 지내니?’ 하고 물으니까 ‘아니, 난 그럭저럭... 넌 잘 지내는 것 같더라’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친구도 무척 힘들었는데 제가 괜찮아 보여서 더 화가 났나 봐요. 그래서 ‘그럼 너 왜 연락 안 했어?’ 하고 물으니 울더라고요… 그렇게 말 한마디에 1년 넘게 좋지 않았던 관계가 다시 풀렸어요. 지나고나니 참 웃겨요. 가족 같이 친한 친구였는데 고작 그런 이유로 싸웠다는 사실이요. 이렇게 쉽게 풀릴 수 있었다는 것도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서울사람] “언니의 진지한 고민”

[서울사람] “언니의 진지한 고민”

“(왼쪽)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진 촬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 라이벌이 있었는데, 걔도 마침 비슷한 시기에 사진 촬영을 시작하더라고요. 걔는 SNS에 누가 봐도 예쁘고, 멋있는 것만 찍어서 올리는데 저는 사진을 찍을 때 풀, 쓰레기, 구정물에서 피어나온 새싹... 이런 것들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제 눈에 보이는 건 그런 거 밖에 없었어요. 처음에는 ‘나는 왜 이런 것들만 보일까’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보니 깨닫게 되더라고요. 제 눈에 주로 보이는 것들, 그리고 제가 촬영하는 것들이 제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요. 동시에 나 같은 시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 사람들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 도움을 주는 사진교육가가 되고 싶었어요. 사진학과에 들어가서 졸업하고, 교직이수를 해서 꿈에 그리던 미디어고등학교 교사로 가게 됐죠. 어렵게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제가 구현하고 싶은 교육관과는 거리가 멀더라고요. 아이들을 웨딩 촬영 기사나, 베이비 촬영 기사로 양성하는 학교였어요. 결국 그만두고 나왔죠. 제 꿈을 위해 최근에 직접 사진관을 차려서 수강생들을 교육하고 있어요.” “교사를 그만두고 나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이었나요?”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안정감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거기에 제가 안주하려고 하는 모습을 발견했어요. 꿈꾸고 있는 이상적인 내가 있는데, 현실의 저는 여기에 머무르려고 하니까. 그게 너무 싫었어요.” “(왼쪽) 그렇게 해서 제가 결국 예술교육을 하겠다는 제 꿈을 위해서, 교사를 그만두게 됐어요.”  “서로 알고 나서 언니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시나 봐요?”  (오른쪽) 네. 아까도 막 남자 얘기만 했거든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
[서울사람]  “우리 마누라하고 어떻게 만났냐고?”

[서울사람] “우리 마누라하고 어떻게 만났냐고?”

“78년도 그때 나는 연기 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어. 그걸로 용돈을 벌어 썼는데 그때 만나던 여친이 나랑 연애만 하고 시집은 안 온대. 아니 왜 안 오냐 그랬더니 가난해서 싫대. 나중에 알고 봤더니 큰 극장의 사장 딸이더라고. 집에 돈이 많은 거야.” “그때는 쇼 같은 거 한 번 하면 돈을 가마니에 담았거든. 그래서 나랑 결혼 안한다는 거지. 그러던 중에 중매가 들어왔어. 그때 당시 연극한다고 하면 돈을 못 버니까 그냥 바로 딱지맞는 시대였거든? 나도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중매 가서 ‘저 연극합니다’ 하고 그냥 돌아왔지.” “근데 다음날 중매해준 사람이 ‘너 그런 여자 요즘 세상에 있는 줄 아냐’면서 나한테 뭐라 그러는 거야. 그 여자가 중매 끝나고 돌아와서는 ‘사람이 돈이라는 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데, 돈이 뭐 중요해요. 성실한 게 중요하지’ 그랬다는 거야. 그 말 듣고는 그때 퇴계로5가에 ‘썬 다방’이라고 있었는데 거기로 그 여자보고 나오라 그랬어. 얘기를 해보니 정말 자기는 그렇게 생각한대. 그러고 선 본지 한 달 만에 결혼했어. 우리 꽃님이랑.” “지금이야 너무 예쁜데, 사실 그때는 꽃님이가 막 예쁜 줄 몰랐어. 근데 그냥 그 다방에 앉아서 얘길 듣는데 ‘이 여자는 내 마누라다’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서울사람] “기다리는 것만큼 단순한 게 어디 있어?”

[서울사람] “기다리는 것만큼 단순한 게 어디 있어?”

“서울에서 사회운동하면서 정말 너무 바쁘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지쳐서 느린 사회를 체험한다고, 안식년을 맞아 인도에 갔어요. 마치 한국의 70년대 같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며 그곳에 갔죠.” “가보니까 한 두 시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닌 거예요. 한 번은 은행에 가서 4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새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욱해서 지금 바로 일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은행원이 ‘Wait, wait, just wait. It’s simple!’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경험을 인도의 친구 가족한테 말하니까 그 사람들 또 하는 말이 ‘오늘 못 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못 하면 모레 하면 되고, 금년에 못 하면 내년에 하면 되고, 이 생에 못 하면 다음 생에 하면 되고’ 라는 하는 거예요.” “그 점이 참 인상 깊었어요. 우리는 보통 ‘해야 돼. 해야 돼’ 하지만, 그 사람들은 ‘지금 안 해도 돼. 조금 늦어도 괜찮아’하는 말로 마음을 보듬어 주고 있었죠. 조금 지나고 보니 잘 알겠더라고요. ‘기다리는 것만큼 단순한 게 어디 있어? 이 세상에 어려운 게 얼마나 많은데…’ 하고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서울사람] “55년 전 그 자리에서 인생을 회고하며”

[서울사람] “55년 전 그 자리에서 인생을 회고하며”

“55년 전에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니던 학교가 여기 근처에 있었어요. 그때 서울시 미술대회가 열렸는데, 형님하고 같이 여기 왔던 기억이 나네요. 회사를 37년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이제 여기 앉아 있어요. 55년 전 그때 바로 이 의자에 앉아서 석조전을 그렸었는데, 제가 잘 못 그려가지고 형님이 저를 도와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주 오랜만에 왔어요.” “그때 행복한 기억이 많으셨겠네요?”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는데, 저 초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신 거예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아직 충격에 휩쓸려 있던 때에 여기서 형님하고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어머님도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당시 연금이나 그런 게 없었고, 4학년 2학기 때쯤 아버지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 땅이 조금 있어서 낙향을 했죠. 2남2녀 중에 막내인 저하고 어머니만 같이 살았고, 형제들은 외삼촌하고 살게 됐어요. 제 가족이 해체가 된 거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55년 간 제가 살아왔던 날들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자리에서 집사람을 기다리면서 계속 회상하고 있었어요. 55년이란 시간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 다양했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죠. 공부밖엔 길이 없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좋은 회사에 취직했어요. 임원까지 했고, 회사에서 박사 유학 가라고 절 영국으로 보내주기도 했고요. 어찌 보면 세상 모르고 열심히만 살았죠.” “회사생활 하시면서 고비는 없으셨어요?” “경쟁적인 곳이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고 전 회사에서 좋은 대우를 받은 편이었어요. 해외에 법인장으로 8년 나가있었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근무하다가 나이가 들어 작년에 그만두었죠.” “은퇴하시고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은퇴한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데, 편한 이야기들을 못하고 회사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래요. 회사만을 위해, 회사만을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후유증이 남은 것 같아요....
[서울사람] “한국에 ‘아무것도 몰라서’ 왔어요”

[서울사람] “한국에 ‘아무것도 몰라서’ 왔어요”

“(오른쪽) 학교를 마치고 대화하다가 더 바빠지기 전에 여행을 가보자는 말이 나왔어요. 둘 다 유럽을 떠나본 적이 없어서 아시아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아시아를 간다고 하면 다들 중국이나 일본을 갈 거라고 생각하잖아요.하지만 저희는 한국에 오기로 결정했어요.”“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왼쪽) 사실 같이 여행가기로 한 것도 처음이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더라고요. ‘한국 어때?’ ‘우리 한국 가자!’라면서요. 저희는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아무것도 모르니까 왔다구요?”“(오른쪽) 네, 뭔가 좀 다른 걸 원했거든요.”“(왼쪽) 정말 신기했던 점이 새벽에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독일 하노버에서는 새벽에도 지하철이 다니거든요. 그래서 어제 새벽 4시까지 놀다가 홍대에서 숙소가 있는 종로까지 7km를 걸어왔어요.”"그 새벽에 7km나 걸었다고요?““(오른쪽) 별로 어렵지 않던데요. 뭐... 같이 있던 한국인들은 택시 타고 가라며저희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저희는 그냥 ‘걸을 수 있잖아!’ 하면서 걷기 시작했죠.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지도 보면서 큰 길을 따라 걸으니 되던 걸요.”“한 시간만 더 있었으면 새벽 5시쯤부터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던 거 아세요?”“(왼쪽) 저희는 몰랐죠! 사실 버스가 지나가는 걸 보고는 혼란스럽긴 했어요.”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서울사람] “행복은 꽃과 같은 것”

[서울사람] “행복은 꽃과 같은 것”

“1년 전부터 매주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에 대해 묻고 있어요. 그 중에 ‘행복은 꽃’이라는 대답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꽃이 살아 있다가 시드는 것처럼, 행복도 그 순간에는 즐겁다가 나중에 감정이 사그라들잖아요.” “하지만 동시에 꽃을 말려 두고두고 볼 수 있는 것처럼 행복도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거라고 했어요. 지금까지 사람들을 만나 질문을 던졌지만 아직 저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어요. 그저 매주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웃는 시간들이 행복해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 “저는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모든 순간에 제가 참여하죠. 저는 그 활동에서 행복을 찾고 있어요. 예전 같았으면 집에서 컴퓨터나 하고 있었을 텐데… 밖으로 나와서 직접 경험한 순간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록으로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게, 저라는 사람이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서울사람] “알고 보면 다 같은 사람이야”

[서울사람] “알고 보면 다 같은 사람이야”

“내가 젊었을 때 소위 말하는 깡패들을 많이 만났어. 가끔 고스톱이나 포커를 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알고 보니 깡패인 경우가 많았지.” “그런 사람들을 나쁘게만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다 같은 사람이야. 오히려 고아거나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마음에 상처를 갖고 살아왔기 때문에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많지. 몸에 무기를 지니고 다니거나 문신을 한 깡패들 있지? 그 사람들은 특히 더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야. 자신이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위화감을 주려는 거지.” “내가 혜화동에서 오토바이 상회를 운영했었는데 한 번은 사고난 오토바이를 수습해서 보관하고 있었어. 그런데 깡패들이 막 우르르 찾아 온 거야. 그 오토바이 내놓으라고. 그런데 주인은 병원에 있었거든. 못 준다니까 웃통을 벗으면서 문신을 막 보여주면서 위협하는 거야. 내가 그걸 안 겪어봤으면 모르겠는데 난 알잖아. 그래서 ‘야 이 놈아. 나한테 겁주려고 그러냐? 너 마음 약한 놈인 거 다 알아. 2000년도에 70년대 먹히던 수법을 쓰냐’ 하면서 경찰에 전화를 걸었지. ‘경찰서죠? 강력반이죠? 빨리 오세요.’ 하니까 도망가 버리더라고. 전화도 끊기 전에 말야. 그런 애들이라니까? 참 귀엽지.”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서울사람] “우린 그게 싸운 거야”

[서울사람] “우린 그게 싸운 거야”

“무릎이 다 닳아서 이젠 일을 못해요. 애들 어렸을 때부터 25년 동안 식당을 했죠. 남편은 건축 일을 했는데, 누가 어렵다고 그러면, 매번 월급타서 다 주고오곤 했어요.” “그러면 남편분에게 뭐라고 하셨어요?” “욕했지. 욕을 내가 얼마나 잘 하재. 욕하면서 구박하면, 남편은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듣기만 해요. 내가 화가 풀리면 그제야 이야기를 해요. 내가 우리도 이렇게 어려운데 왜 그랬냐 물으면 ‘사정을 들어보니 우리도 어렵지만 그 사람은 더 어렵더라, 그래서 줬다’ 그래요. 이야기 듣고 나면 나도 ‘그럴 수가 있겠구나’ 싶어” “그래도 치고 받고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어느 날은 우리 옆집에서 막 소리 지르고 싸우니까, 우리 애들이 신기해서 구경을 가는 거예요. 큰애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래요. ‘엄마, 저 집은 맨날 싸우는데 우리 집은 언제 싸워요?’ 그래서 내가 ‘엄마아빠 맨날 싸우잖아. 엄마가 아빠 구박하잖아.’ 그러니까 애가 ‘그건 싸운 게 아닌 거잖아요.’ 하더라구요. 제가 그랬죠. ‘우린 그게 싸운 거야.’”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