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거리를 비춰주는 안심구역 로고젝터

혼자 걷는 밤길 무섭다면? 안심 귀가앱 ‘안심이’

완연한 봄을 맞은 요즘, 3월보다 부쩍 해가 길어졌다. 하지만 해가 금방 져버리는 겨울이 오면, 실기 과제를 끝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향하는 혼자 걷는 길이 무서울 때가 많다. 물론 서울은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서는 밤길이 안전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늦은 밤 여자 혼자 걷다 보면 타인에 대한 의심과 함께 괜스레 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늦은 밤, 혼자 걸을 때면 무서울 때가 많다 ©이세빈 필자는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 워낙에 요즘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부모님께서도 웬만해서는 밤길을 혼자 다니지 말라 말씀하시곤 하신다. 그래도 요즘은 한결 가볍고 편안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다. 밤길을 밝혀주는 안심구역 로고젝터(Logo-jector)도 있고, 무엇보다도 바로 든든한 시민 호신앱 '안심이' 덕분이다. 서울시민 안전앱 '안심이' 시민 호신앱 '안심이'는 귀갓길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긴급상황에서의 SOS 신고가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시 전역에 설치되어 있는 3만 9천여 대의 CCTV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의 연동을 통해 모니터링도 가능하다. 기존에는 특정 행정구 내에서만 사용 가능했지만, 현재는 서울 내 25개 전 자치구 지역으로 확대되어 서울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 꼭 거주지가 아니더라도 서울 어디에서든지 귀갓길을 모니터링 받을 수 있다. 위급상황일 때, 경찰이 즉각 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안심이' 귀가모니터링 서비스를 위해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한 모습 '안심이' 앱은 사용법도 굉장히 간편하다. 휴대폰 번호 인증이나 SNS 계정(카카오)으로 회원가입이 가능하다. 필자는 평소에도 SNS 계정과 연동해서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편이라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사용하고 있다. 첫 화면에 뜨는 ‘긴급신고’ 버튼을 한 번만 눌러도 신고가 전달되고, 또 위험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에 휴대폰을 흔들어서 신고할 수 있도록 설정할 수 있다. 민감도는 휴대폰 흔들기...
서울시민의 문화앱 ‘서울시민카드’

문화, 할인 혜택엔 필수! 서울시민카드 앱

영화나 공연을 예매하다 보면 간혹 왜 내가 가입한 통신사나 카드사만 할인 혜택이 없을까 아쉬울 때가 있다. 꼭 할인이 아니더라도 특정 시설 이용 등 제공되는 멤버십 혜택이 마음에 들어 가입할까 고민했던 서비스도 있다. 여기 통신사나 카드사 회원이 아니어도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문화 혜택이 있다. 서울시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마련한 모바일 앱 '서울시민카드'다. 공공시설 이용부터 제휴 혜택까지 제공하는 서울시민카드 서울시민카드는 서울시에서 2017년 12월 출시한 서비스로, 통합 모바일 카드를 통해 서울도서관과 시립미술관을 비롯한 서울시의 각종 공공시설 이용은 물론, 관련 정보와 CGV를 비롯한 민간업체 할인 쿠폰까지 제공한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서울시’나 ‘서울시민카드’를 검색해 서울시민카드 앱을 다운받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본인 인증을 거쳐 회원 가입을 하면 통합 모바일 카드가 발급된다. '서울시민카드'를 검색해 다운받으면 바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통합 모바일 카드 '통합'이라는 말 그대로 모바일 카드를 이용하면 회원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여러 시설의 이용이 가능하다. 현재 서울시민카드에서 확인 가능한 시립/구립 이용시설만 700여곳에 이른다. 앱 상단 ‘공공시설’이나 하단 ‘시설정보’를 누르면 서울시 공공시설을 지도나 항목/지역별로 볼 수 있다. 이용하고자 하는 시설에 들어가 ‘통합 시설카드 추가’를 누르면 간단한 안내  확인 및 약관 동의를 거쳐 시설카드가 발급된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도서관의 경우 회원증 없이 모바일 카드만으로도 대출이 가능하다. 도서관 외에도 서울시립, 구립 체육시설과 예술/문화회관, 청소년수련관 등의 공공시설에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도서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시설이 홈페이지 회원가입 및 회원증을 발급받은 상태여야 시설카드 추가가 가능하다. 현재 마포구와 광진구 도서관은 간편가입 서비스를 제공해 방문 없이 통합 회원증을 발급받을 수 있으며...
디지털 민주시민 모니터링단 홈페이지 로고 및 설명

디지털 성범죄 예방, 우리가 앞장선다

  디지털 민주시민 모니터링단 로고와 설명ⓒ신연희 2019년 12월, 서울시 디지털 성범죄 종합지원정책 ‘온 서울 세이프(On Seoul Safe)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온 서울 세이프 프로젝트는 사이버상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에게 온/오프라인 종합지원해주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온 서울 세이프에서 운영·지원하는 '디지털 민주시민 모니터링단'은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고 국민들이 안전한 인터넷 환경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만들어졌다. 서울 시민을 중심으로 선발된 모니터링단인원은 약 1000명으로, 2019년 10월 21일~12월 8일 기간동안 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하였다.   온 서울 세이프 프로젝트 출범식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의 모습ⓒ신연희 포즈를 취하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혜윤 홍보대사ⓒ신연희 모니터링단 활동을 위한 사전교육은 2019년 10월 27일에 진행되었으며, 출범식및 토론회는 온 서울 세이프 프로젝트와 함께 2019년 12월 2일 진행되었다. 출범식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뿐만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토론회도 열렸다. 법률,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방과 피해자 지원 제도에 관해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모니터링단의 활동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모니터링 참여 시민들은 구글 및 포털(네이버, 다음 등)/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등)/커뮤니티 사이트(디시인사이드, 인벤, 루리웹, 클리앙등)으로 나누어서 모니터링을 실시하였다. 민주시민 모니터링단 활동보고서 제출내역ⓒ신연희 모니터링단은 모니터링 대상 채널 설정->키워드 검색->범죄 유형 분류->수집 대상 분류->검색 결과 기록->신고 순서로 활동보고서를 작성하고, 모니터링을 평가한다. 결과화면을 사진파일 등으로 제출하게 된다. 모니터링단 활동가이드에 포함된 하나의 키워드로 검색해 보니, 연관 검색어, 연계된 사이트 등과 연결되어 방대한 범죄 자료가 나왔다. 제출한 보고서 예시ⓒ신연희 보고...
새로운 광화문 광장조성 토론회 안내문

새로운 광화문광장, 어떻게 조성하면 좋을까?

광화문 광장을 새롭게 조성하기 위한 시민대토론회가 지난 12월 15일(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관계자와 시민토론단 300명이 참석했다. 시민토론단은 서울시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로 25개 자치구별 12명씩을 성별, 연령별로 균형있게 선정, 구성됐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토론회 안내문 ⓒ서울시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국가경쟁력이 세계 13위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걸맞게 정부는 혁신적 포용국가로 나가기 위해 국정방향을 ‘삶의 질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삶의 질 향상에는 도시환경 개선을 간과할 수 없다. 보다 쾌적하고 풍요로운 공간 조성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욕망이다. 지금의 광화문 일대는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오간다. 광화문광장은 양쪽 도로를 사이에 두고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과연 ‘광장’으로서의 멋을 느낄 수 있을까? 외국의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광장,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광장, 독일 뮌스터광장 등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도시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변해왔으며, 변하고 있다. 도시공간의 변화가 인간의 삶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를 시도할 만한 기대이익이 있을 것이다.   2009년 조성된 광화문광장의 문제점 ⓒ서울시   시민토론단의 질의에 대해 답하는 강진동 서울시 교통운영과장,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정책위원장, 임창수 서울시 광화문사업반장(왼쪽부터 앉은 순) ⓒ이재찬 광화문 앞 남북방향 세종대로는 조선시대 여러 관청이 양편으로 자리하고 있는 정치·행정의 중심이었으며, 국가 주요행사가 이루어지던 국가의 상징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하에 경복궁 내 수많은 전각이 훼손되고 광화문이 철거되는 등 많은 공간이 왜곡되고 손실됐다. 2009년 광화문광장을 조성했지만 당시 사직-율곡로 교통 문제로 과거 훼손된 월대와 해태상 등을 온전히 복원하지 못했고, 지금의 광장이 조성되면서 ‘거대한 중앙분리대’, ‘역사성 미흡’, ‘보행단절’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임시개관 팜플렛을 들고 찍은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시민의 보석 같은 추억을 담은 곳 ‘서울생활사박물관’

임시 개관한 서울생활사박물관 ⓒ성세정 과거 서울의 모습은 어떠했고, 서울시민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시와 시민들의 옛 모습이 궁금하다면 서울생활사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서울생활사박물관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서울시민의 생활사를 알려주는 곳이다. 지난 10년 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기존의 법원 및 검찰청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문화 시설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태릉입구역 4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교통여건도 좋다. 올해 7월 26일 임시 개관했으며 9월 22일까지 임시 개관 기간을 연장한다. 총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 내부에는 상시 전시실, 어린이 체험실, 법정 체험실, 구치감 전시실 등의 시설이 구성되어 있다. 일제 해방 이후 서울시민들의 생활사를 결혼, 출산, 교육, 주택, 생업 등을 주제로 한 인터뷰와 관련 유물로 전시를 구성했다. '시민 한 분 한 분의 보석 같은 일상이 반짝이는 곳'이라는 수식어구에 알맞게 과거 서울시민들의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들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건물 입구에 자리한 뮤지엄 숍(Museum Shop)에서 판매되는 추억의 물품들이 오가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울생활사박물관 1층 '서울풍경' 전시실 입구 ⓒ성세정 ​1층 전시실 주제는 '서울 풍경'. 해방과 전쟁을 겪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서울을 보여주는 곳으로 시대별 사진, 영상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서울이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인구 증가와 더불어 신식 건물들이 건설되어 강남이 대규모로 개발됐다. 계속되는 산업·토지개발로 인해 부자와 증산층이 늘어났고 이들은 강남의 신개발지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아파트와 한옥이 공존하는 사진, 영화 에 나온 택시를 연상케 하는 택시, 당시 최신 통신 수단이었던 '삐삐' 등 옛 서울을 떠올릴 수 있는 것들로 가득차 있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
인터뷰어

[서울사람]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는 것”

“저는 원래 교육을 했어요. 초등학생, 중학생을 대상으로 레고 같은 걸 활용해서 공학을 가르쳤어요. 과학상자 같은 거죠. 한번은 제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오늘은 수업 못 하겠다’라고 한 적이 있거든요. 저는 애들이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어요. 수업이 취소되면 놀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학생들이 ‘난 수업 기다렸는데 왜 안 왔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 제가 애들한테 단순한 선생님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가르쳤던 아이들과는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요. 술자리를 갖기도 하고요. 저는 단순한 선생님보다는 인생의 멘토처럼 남고 싶거든요.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다 잘 됐어요. 자기 꿈을 찾고 잘 나아가고 있죠. 그런데 딱 한 아이는 가정 문제도 있고, 게임에 빠져버리는 등의 문제가 있던 아이였어요.”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잡아주지 못했죠. 아직도 자기 길을 전혀 못 찾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학생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요. 어떻게든 좋은 길로 인도해주고 싶었는데… 언젠가는 절 찾아와 주길 바래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인터뷰어

[서울사람] “한 색소폰 연주자의 회고”

“제가 만18세 때 색소폰 연주자로 처음 무대에 올랐어요. ‘낭랑쇼’라고, 그 후로 뭐 ‘하춘화쇼’, ‘이미자쇼’ 이런 지방 순회를 많이 했죠. 그 당시엔 색소폰 연주자가 귀할 때였거든요. 그 이후로 그렇게 연주를 한 사십여 년 했어요.” “그러다 이렇게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한지는 이제 한 9년 됐어요. 바에서 손님 기분 맞추려고 못 먹는 술을 억지로 먹었더니 심근경색이 왔거든요. 한 3,000만 원짜리 집 얻어 살고 있었는데, 다 팔아서 2,000만 원 수술비 대고, 600만 원짜리 악기도 팔고. 갑자기 심장병만 안 걸렸어도 한 70살까지는 일할 수 있었는데…” “가장 후회되는 일은 뭔가요?” “내가 다른 거 후회하는 건 없는데, 우리 딸래미를 입양 보낸 게 제일 후회되지.” “왜 보내게 되셨어요?” “그게… 애기 엄마가 스물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 때 나는 서른 살이었고, 밴드에서 색소폰을 연주했거든요. 애기 엄마 죽고 한 일 년을 혼자 아이를 키웠는데, 내가 카바레에서 음악하고 지방을 돌아다니고 그러니, 이거 내가 혼자 도저히 키울 수 없겠다 싶어 보냈죠.” “그 후로 연락을 한 적이 있나요?” “이십여 년 전에 우리 이모를 통해 연락이 닿아서 한번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애가 고등학생 때였죠. 그런데 뭐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두 살 때니까 기억이나 나겠어요. 서먹서먹하지. 잘 지내냐, 건강하냐,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더라고요. 헤어질 때는 연락처도 안 물어봤어요.” “왜요?” “내가 물어볼 위치가 안 돼가지고. 수급자 생활을 하다보니까 자신도 없더라고요. 아버지로서 내가 도움이 좀 될 수 있다면 몰라도. 하다못해 내가 비행기 삯이라도 내줄 수 있는 능력이 되면 모르겠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이제 소식도 들을 수 없어요. 미국 시카고에서 미니슈퍼를 하나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애가 살아있다면 지금은 서른여섯쯤 되었을 거예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
인터뷰어

[서울사람] “1년 반 만에 싸웠던 친구에게 연락했어요”

“(오른쪽) 작년에 제일 친했던 친구와 싸웠어요. 매일같이 만나던 친구였는데 서로 바빠지다 보니 약속을 잡아도 깨지는 경우가 허다해졌거든요. 하루는 제가 화가 나서 ‘야 이제 쉽게 약속 잡지 말자’라고 했는데 그 친구도 기분이 상했는지 정말 한 번도 연락을 안 하는 거예요. 마치 실연당한 것처럼 맨날 울고 10년 된 번호까지 바꿨어요. 저도 오기가 생겨서 ‘네가 뭐라고’라는 생각으로 연락하지 않았죠. 서운함도 컸어요. 저는 1년 반이 지날 동안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친구가 생각이 났거든요. 결국 저번 주에 제가 못 참고 전화를 했어요.” “전화해서 뭐라고 하셨나요?” “그냥 ‘안녕’ 이런 말이 나오지 않고 ‘너 미워. 나 평생 너 미워하면서 살 거야’ 하는 말이 먼저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너도 나 미워하면서 살아. 재밌게 잘 지내고’라고 하더라고요. 화가 너무 나서 ‘그래서 잘 지내니?’ 하고 물으니까 ‘아니, 난 그럭저럭... 넌 잘 지내는 것 같더라’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친구도 무척 힘들었는데 제가 괜찮아 보여서 더 화가 났나 봐요. 그래서 ‘그럼 너 왜 연락 안 했어?’ 하고 물으니 울더라고요… 그렇게 말 한마디에 1년 넘게 좋지 않았던 관계가 다시 풀렸어요. 지나고나니 참 웃겨요. 가족 같이 친한 친구였는데 고작 그런 이유로 싸웠다는 사실이요. 이렇게 쉽게 풀릴 수 있었다는 것도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인터뷰어

[서울사람] “언니의 진지한 고민”

“(왼쪽)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진 촬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 라이벌이 있었는데, 걔도 마침 비슷한 시기에 사진 촬영을 시작하더라고요. 걔는 SNS에 누가 봐도 예쁘고, 멋있는 것만 찍어서 올리는데 저는 사진을 찍을 때 풀, 쓰레기, 구정물에서 피어나온 새싹... 이런 것들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제 눈에 보이는 건 그런 거 밖에 없었어요. 처음에는 ‘나는 왜 이런 것들만 보일까’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보니 깨닫게 되더라고요. 제 눈에 주로 보이는 것들, 그리고 제가 촬영하는 것들이 제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요. 동시에 나 같은 시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 사람들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 도움을 주는 사진교육가가 되고 싶었어요. 사진학과에 들어가서 졸업하고, 교직이수를 해서 꿈에 그리던 미디어고등학교 교사로 가게 됐죠. 어렵게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제가 구현하고 싶은 교육관과는 거리가 멀더라고요. 아이들을 웨딩 촬영 기사나, 베이비 촬영 기사로 양성하는 학교였어요. 결국 그만두고 나왔죠. 제 꿈을 위해 최근에 직접 사진관을 차려서 수강생들을 교육하고 있어요.” “교사를 그만두고 나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이었나요?”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안정감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거기에 제가 안주하려고 하는 모습을 발견했어요. 꿈꾸고 있는 이상적인 내가 있는데, 현실의 저는 여기에 머무르려고 하니까. 그게 너무 싫었어요.” “(왼쪽) 그렇게 해서 제가 결국 예술교육을 하겠다는 제 꿈을 위해서, 교사를 그만두게 됐어요.”  “서로 알고 나서 언니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시나 봐요?”  (오른쪽) 네. 아까도 막 남자 얘기만 했거든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
인터뷰어

[서울사람] “우리 마누라하고 어떻게 만났냐고?”

“78년도 그때 나는 연기 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어. 그걸로 용돈을 벌어 썼는데 그때 만나던 여친이 나랑 연애만 하고 시집은 안 온대. 아니 왜 안 오냐 그랬더니 가난해서 싫대. 나중에 알고 봤더니 큰 극장의 사장 딸이더라고. 집에 돈이 많은 거야.” “그때는 쇼 같은 거 한 번 하면 돈을 가마니에 담았거든. 그래서 나랑 결혼 안한다는 거지. 그러던 중에 중매가 들어왔어. 그때 당시 연극한다고 하면 돈을 못 버니까 그냥 바로 딱지맞는 시대였거든? 나도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중매 가서 ‘저 연극합니다’ 하고 그냥 돌아왔지.” “근데 다음날 중매해준 사람이 ‘너 그런 여자 요즘 세상에 있는 줄 아냐’면서 나한테 뭐라 그러는 거야. 그 여자가 중매 끝나고 돌아와서는 ‘사람이 돈이라는 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데, 돈이 뭐 중요해요. 성실한 게 중요하지’ 그랬다는 거야. 그 말 듣고는 그때 퇴계로5가에 ‘썬 다방’이라고 있었는데 거기로 그 여자보고 나오라 그랬어. 얘기를 해보니 정말 자기는 그렇게 생각한대. 그러고 선 본지 한 달 만에 결혼했어. 우리 꽃님이랑.” “지금이야 너무 예쁜데, 사실 그때는 꽃님이가 막 예쁜 줄 몰랐어. 근데 그냥 그 다방에 앉아서 얘길 듣는데 ‘이 여자는 내 마누라다’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