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물원 코뿔소

“점박이물범아 안녕!” 마스크 쓰고 ‘서울대공원’ 나들이

서울대공원 입구 ⓒ김창일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과 식물원은? 1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09년 11월 창경궁에 설치됐다. 궁궐에 어떻게 동∙식물원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배경은 이렇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잃게 됐다. 일제는 우리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창경궁의 문정전 등을 헐어 동∙식물원을 만들고 벚나무를 심어 창경원이라고 했다. 해방 이후에도 창경궁의 동∙식물원은 그대로 존재했다. 1960년대 말부터 동∙식물원 이전 목소리가 나왔고, 이는 1984년 현재 서울대공원이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서울대공원은 세계 각국의 동물들이 숨쉬는 서울동물원, 놀이공원인 서울랜드, 테마가든, 캠핑장, 기린나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구성된 종합 테마파크다. QR코드로 구입가능한 모바일티켓 안내 ⓒ김창일 대공원 입구에는 스카이리프트 패키지 모바일티켓 구매안내가 있다. 리프트, 코끼리열차, 동물원입장권을 패키지로 구입할 수 있는데, 6월 30일까지 할인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QR코드를 통해 모바일티켓 구매사이트로 이동한 후, 모바일 티켓 구매 후 문자수신을 하게 된다. URL을 통해 접속해 바코드 티켓 확인한 뒤 스카이리프트 본관매표소 앞에서 교환하면 된다. 장미원 축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됐다. ⓒ김창일 매년 봄 진행하던 서울대공원 장미원축제는 올해 5월23일부터 6월7일까지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취소됐다. 6월 5일까지 테마가든 재조성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쉽지만 2021년 장미원축제에는 마스크 없이 편안히 즐기길 기대해 본다. 손소독제와 열감지가 설치된 동물원 입구 ⓒ김창일 서울대공원에서 제로페이를 이용하면 동물원과 테마가든(어린이동물원 및 장미원) 입장료를 올해 12월 31일까지 30% 할인한다. 단, 기존 입장료 감면대상 및 다자녀가정 지원카드 소지자, 30명 이상 단체, 온라인 예매및 패키지 상품 이용자는 이중감면을 받을 수 없다. 서울대공원 내 속눈썹 미인 기린 ⓒ김창일 동물원에서는 각...
초안산 캠핑장에 있는 캐빈 하우스

숲 속 통나무집에서 힐링! ‘초안산 캠핑장’ 재개장

'수도권 지역 대상, 강화된 방역조치 시행'에 따라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다시 휴장합니다. 코로나19로 굳게 닫혔던 '초안산 캠핑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도심 속 힐링 공간인 가족 캠핑장이다. 162만㎡의 울창한 숲과 도심 자연 속에 조성되었다.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33종 1만 7,973주의 나무와 37종 4만 6,418본의 초화류가 식재되어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초안산 캠핑장 입구 ⓒ이봉덕 초안산 캠핑장은 총 4개의 색다른 캠핑 존으로 구분되어 있다. 영.유아 가족들을 위한 '캐빈 캠핑 빌리지', 숲 속 낭만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힐링 캠핑 빌리지', 경사 지형을 이용한 '테라스 캠핑 빌리지', 너른 초지와 실개천이 있는 '파크 캠핑 빌리지' 등으로 구성되었다. 캠핑 존 옆에는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트리 하우스', '야외 스파', 잔디 광장, 어린이 놀이터, 매점 등의 부대 시설을 갖추었다. 초안산 캠핑장 안내도 ⓒ이봉덕 캠핑장은 지하철 1호선 녹천역 옆에 위치하고 있어 자가용 없이도 간단한 캠핑 장비를 들고 방문할 수 있다. 초안산 캠핑장은 캐빈 캠핑 빌리지(3면) 테라스 캠핑 빌리지(6면), 파크 캠핑 빌리지(26면), 힐링 캠핑 빌리지(16면) 등 4개 공간에 캠핑 존 54면과 주차장 78면을 갖추고 있다. 트리 하우스, 잔디 광장, 야외 스파, 어린이 놀이터, 매점 등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초안산 캠핑장 잔디 광장 ⓒ이봉덕 캠핑장 입구에 들어서니 푸른 잔디 광장이 넓게 펼쳐진다. 초지 옆엔 맑은 실개천이 졸졸 흐르고 있다. 초안산 자락 캠핑장 주변에는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각양각색 나무와 화초가 자라고 있어 맑은 공기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통나무 집 '캐빈 캠핑 빌리지' ⓒ이봉덕 캐빈 캠핑 빌리지는 영.유아를 둔 가족들을 위한 공간으로 통나무 집 바로 옆에 주차할 수 있다. 실내에는 2층 침대와 냉난방 시스템을 갖추었다. 텐트를...
2019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야외 방탈출 게임

‘서초 야외 방탈출게임’…게임도 하고 역사도 공부하고

2019년은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해 한인애국단이 되어 보는 서울 야외 방탈출게임 '서리 pulay 독립의 시간'에 참가해 보았다. 윤봉길 의사와 한인애국단을 주제로 한 스토리로 구성된 게임이다. 게임을 위해서는 추리닝(추리+ing) 앱을 설치 후 '서리 pulay 독립의 시간'을 선택하고 진행하면 된다. 이 게임은 오는 12월 15일까지 할 수 있다.  에피소드 1은 강남역 9번 출구 서초관광정보센터에서, 에피소드 2는 예술의 전당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 3은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야외 방탈출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에피소드 1을 체험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강남역 9번 출구 지하, 만남의 광장으로 향했다.강남역 9번출구 앞 표지판 ©서우리이 게임을 만든 개발업체에서는 스토리를 만든 배경에 대해 '왜 갑자기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는 시계를 바꾸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윤봉길 의사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그것을 토대로 문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게임 방법은 추리닝 앱을 따라서 문제를 하나씩 풀면 된다. 야외 방탈출게임이기 때문에 시원한 가을 공기를 맞으면서 서초구 강남역 주변 곳곳을 둘러 보았다.강남역 9번출구 앞 스케치북 ©서우리강남역 9번 출구 앞 문화공간인 스케치북 NO. 9 일대를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문제를 풀었다. 단순한 게임이 아닌, 야외 곳곳을 돌아다니며 앱 속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뇌를 풀가동한다. 스릴감 넘치게, 추리닝 앱을 통해 보여지는 나침판을 활용한다. 나침판을 따라 비밀스러운 곳에 도착한 곳에서 한인애국단만 볼 수 있는 비밀쪽지를 2초 정도 보여준다. 야외 방탈출 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박진감 넘치는 순간이었다.강남역 9번 출구 앞 스케치북에 붙어 있는 메시지 ©서우리일제강점기 1930년대 일제의 탄압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독립을 위해, 문제를 푼다. 이 과정은 마치 한인애국단으로 활동하는 느낌을 받는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추리와 상상력을 동원해 한인애국단의 마음으로 독립...
청권사 에 있는, 효령대군 사당

세종의 형, 효령대군 아시나요? 방배동 청권사 이야기

청권사 ©서우리 지하철 2호선 방배역 4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으면 청권사에 도착한다. 청권사는 조선 태종대왕의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묘소와 사당이 있다. 역사적 의미가 깊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2호로 지정되었다. 효령대군의 업적을 돌아보고, 가을 정취를 느끼기 위해 청권사에 방문했다. 효령대군의 신주를 모신 사당 ⓒ서우리 청권사는 효령대군과 배위이신 예성부부인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청권은 '신중청 폐중권'의 준말이다. 공자가 논어에 고대 중국 주나라 때 태왕이 큰 아들 태백에게 양위하려는 뜻을 알고 동생인 두 형제가 형만이란 곳으로 가서 머리를 깎고 은거하며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후일에 칭송한 말이다. 효령대군도 아우인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성덕이 있음을 알고 학문과 재덕을 숨기면서 왕위를 겸손하게 양보한 미덕을 우중의 행적에 비유하여 후일 영조대왕이 사당의 이름을 '청권사'라고 지은 연유가 되었다. 1736년(영조12) 왕명으로 경기감영에서 지어 이듬해인 영조 13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사당이 준공되었고, 1789년(정조13)에 사당의 현판을 내려 주신 사액 사당이다. 아쉽게도 사당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 왕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 신도비가 있다 ⓒ서우리 청권사, 효령대군 묘소 맞은편 방배동 모습 ©서우리 길게 놓아진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효령대군 묘소가 있다. 효령대군 묘소를 등지고 바라보면, 방배동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구름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의 모습과 탁 트인 방배동 전망은 말로 형용할 수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청권사, 효령대군 묘소 ©서우리 효령대군의 휘(諱)는 보(補),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이며 1412년(태종 12)에 효령대군으로 봉해졌다. 효령대군은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하였며,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었다. 특히 불교에 관심이 많아 1464년(세조 10) 옛 흥복사 터에 원각사를 짓...
지그재그로 조성된 배봉산 둘레길의 나무데크

오감만족! ‘지그재그’ 배봉산 둘레길 따라 걸어요

지그재그로 조성된 배봉산 둘레길의 나무데크 서울 동대문구에는 110m 가량의 완만한 산이 있다. 바로 배봉산이다. 근처에는 경동시장과 청과물시장, 약력시장 등 서울에서 전통시장이 가장 많이 존재한다. 주민들의 산책로와 휴식공간으로 인기가 많은 배봉산은 1992년 공원으로 지정된 후 2013년 둘레길 조성을 시작했다. 5단계로 나눠 연차별로 추진한 둘레길은 총 4.5㎞ 코스다. 휠체어, 유모차도 이용할 수 있도록 무장애숲길로 조성돼 5년만인 지난 2018년 완공됐다. 배봉산 둘레길의 가장 큰 매력은 가파르지 않은 높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는 둘레길 나들이는 그래서 더 신난다. 여러 지역에 있는 배봉산 진입로 중 배봉초등학교와 우성아파트 옆 둘레길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둘레길 안내 표지판이 없어 아쉬웠지만, 동네 뒷산을 오르듯 가볍게 오르기 시작하니 바로 나무데크 길이 등장했다.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 역시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입구를 지나 나무데크길을 걷다 만나는 쉼터 배봉산 둘레길에는 나무데크 길과 더불어 친환경 매트가 깔려있어 발이 무척 편안한 느낌이었다. 데크 길을 따라 걸으니 전망대 해맞이 광장으로 오르는 계단 길이 나타났고, 조금 더 걸으니 중간중간 눈에 띄는 하늘색의 운동기구들과 배드민턴장을 볼 수 있었다. 둘레길 곳곳에 조성된 운동기구와 배드민턴장 2015년까지 군부대가 있었던 배봉산 정상에는 공원 조성 과정 중 삼국시대의 관방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후 서울특별시 기념 유물로 지정됐다고 하니 배봉산이 더 특별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나무 오르기, 통나무 건너기 등 아이들을 위한 유아숲 체험장 둘레길 주위를 살피며 걷다보니 색다른 장소들도 눈에 띄었다. 금붕어가 사는 작은 연못이 아기자기하게 자리했고,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유아숲 체험장도 마련돼 있었다. 나무 오르기, 통나무 건너기, 모래 놀이터, 전망 누리 등 하늘을 보고 자연 속에서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놓았다. ...
향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중앙 정원

‘시민문화유산 1호’ 최순우 옛집을 찾아서

향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중앙 정원 서울 성북구 성북동 골목 안에 한옥 한 채가 자리잡고 있다. 다세대주택에 둘러싸인 한옥은 목가적인 풍치를 자아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화재를 사랑하고 알리는 데 앞장섰던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최순우 선생은 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빼어난 눈썰미로 우리 문화유산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데 평생을 바쳤고,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면서 박물관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최순우옛집 안내자료(좌), 최순우 선생이 사용했던 물건들(우) ‘최순우 옛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열려 있지만, 이 집은 한때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2000년대 초, 성북동 일대에 다세대주택 건립 바람이 불면서 개발을 피해가기 어려웠던 것. 이러한 소식을 들은 자연, 문화유산 보존단체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10억 원을 모금해 이 집을 매입했다. 최순우 옛집은 이렇게 ‘시민문화유산 1호’로 다시 태어났다. 창문을 통해 펼쳐지는 뒷마당 풍경은 한폭의 그림 같다 입구에 들어서면 향나무와 소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100년이 훌쩍 넘은 나무라고 하니 이 집의 역사를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옆으로는 네모난 형태의 우물과 돌로 만든 작은 절구가 놓여 있다. 집필 공간으로 이용된 사랑방 바깥채는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순우 선생의 저서가 전시되어 있어 누구나 들어가서 읽을 수 있다. 이미 읽었던 책이지만 저자의 공간에서 읽어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새롭게 느껴진다. 최순우 선생이 직접 쓴 현판 부엌으로 쓰던 공간에는 안경, 라디오, 사진기, 육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다. 사랑방 입구에는 최순우 선생이 직접 쓴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현판이 걸려 있다.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중’이라는 뜻으로 평소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던 그의 지론이 담긴 듯하다...
칠궁 안 아름다운 정원 모습, 영조는 자주 냉천정을 찾아 시를 짓기도 했다

50년 만에 완전 개방된 ‘칠궁’에 가보니…

칠궁 안 아름다운 정원 모습, 영조는 자주 냉천정을 찾아 시를 짓기도 했다 “여봐라, 짐의 어머니 산소는 어디 있느냐?” “파주 광탄 영장리에 있습니다.” “어찌하여 내 어머니 산소를 묘(墓)라고 부르느냐, 원(園)으로 하라.” “전하, 아니 되옵니다. ‘무수리’는 하찮은 청소부인지라...” 조선왕조에서 무수리(궁중에서 청소나 세숫물 드리는 일을 맡아보던 여자 종)의 자식이 왕이 된 것은 영조가 처음이다. 효심이 남달랐던 영조는 1724년 왕위에 오른 다음, 마음 놓고 어머니라고 불러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다음 해 궁월 가까운 곳에 사당을 짓고 ‘육상묘(毓祥墓)’라 칭했다. 애끓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그리던 영조는 52년의 재위기간 동안 200여 차례나 육상묘(훗날 ‘육상궁’으로 승격시킴)를 찾았다고 한다. 제사를 준비하는 칠궁 안의 재실 모습 ‘칠궁(七宮)’은 근래에 와서 붙여진 명칭으로 조선시대에 왕을 낳은 일곱 후궁들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실 사당이다. 원래는 영조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1725년에 지은 사당 육상궁(毓祥宮)이 있었으나 고종과 순종 때 도성 안에 있던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연호궁(延祐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의 신주를 옮기게 되었고, 1929년 덕안궁(德安宮)이 옮겨와서 일곱 분의 신주를 모시게 되어 지금의 칠궁이 되었다. 신주는 모두 일곱이지만 사당 건물은 다섯이다. 육상궁과 연호궁, 선희궁과 경우궁에 각각 두 분의 신주를 모셨기 때문이다. 칠궁 관람을 예약하면 전문해설사와 함께 칠궁을 꼼꼼히 둘러볼 수 있다. 지난 6월 1일부터 문화재청이 사전예약제로 ‘칠궁’을 개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탐방에 참여해 보았다. 칠궁 투어는 하루 다섯 차례, 매회 60명씩의 그룹 투어가 진행 중이다. 관람 예약시간이 가까워오자 청와대 옆 무궁화동산에는 하나둘 예약자들이 모여들었다. 신분을 확인받고 출입표찰을 목에 걸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50년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