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경

‘감옥에서 밤을 노래하다’ 서대문형무소 야간역사체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경 완연한 가을이다. 지난 10월 6일 저녁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아주 특별한 가을날의 노래가 전해졌다. “감옥에서 밤을 노래하다”라는 야간 체험 프로그램이다. 이번 프로그램에선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근대감옥 서대문형무소를 배경으로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의 공연과 ‘창작집단 탈무드’가 함께 하는 참여형 연극으로 2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다. 박경목 관장의 해설 모습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이 직접 사회를 보며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의 첫 무대의 노래인 ‘조선의 마음’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홀로 메마른 들판 위에 기댈 곳 하나 없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조선의 마음’ 노래는 일제에게 억압을 받으며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 민중의 마음을 담은 노래로, 실제 일제강점기 때는 금지곡으로 지정이 될 만큼 우리 민족에게는 의미 있는 노래이다. 다음 곡으로는 영화 에 나오는 OST 주제곡이며 가수 이효리가 재능 기부를 한 ‘나를 잊지 말아요’를 열창하였다. 영화 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에 관한 내용이다. 꽃 다운 나이에 일제 총, 칼 앞에 강제로 이름 모를 전장으로 끌려가 상상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당한 우리 민족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위안부의 실상이 알려진 것은 1990년 초반이었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 중 현재 생존해 계시는 피해 할머님들은 이제 불과 27명 정도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나라와 국민이 힘을 더하고, 노력해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분들이 소외되고,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생각해 봐야겠다. 약 30분간 의미 있는 노래 공연이 진행되었고, 다음으로 서대문형무소 투어와 함께 연극체험이 시작되었다. 모든 참가자가 달빛이 짙은 밤 하늘 아래 보안과청사 앞에 모였다. 학예연구사님의 보안과청사에 대...
제99주년 삼일절 행사가 열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그날의 함성이 느껴지는 듯했어”

제99주년 삼일절 행사가 열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99주년 삼일절 기념식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렸다. 삼일절 기념식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독립운동가의 혼이 담긴 역사적 공간이어서일까. 이번 행사가 더욱 뜻깊게 느껴졌다. 삼일절을 맞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문 일대에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체험을 할 수 있는 부스가 설치됐다. 태극기 만세 가방 만들기, 삼일절 손수건 만듣기 등이 진행됐는데 기자가 유심히 보았던 건 안중근 의사 옥중 유묵 쓰기였다. 안 의사가 독립운동 시절 옥중에서 글을 썼던 상황을 체험하는 것으로 당시 안 의사의 상황을 느껴보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안중근의사 옥중 유묵쓰기 체험 부스 또 매헌 윤봉길 의사 체험관에서는 독립운동 등불을 만들어 체험해볼 수 있었다. 이밖에 만세운동 행진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열린 삼일절 경축식은 의미있는 행사였다. 그곳이 애국 열사들의 혼이 깃든 생생한 현장이라는 점도 그렇고, 현장체험이 많아 참여자들이 삼일절의 의미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독립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시민들 2019년은 삼일운동 100주년이면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건국 100주년 당시 임시정부 상황을 기념한다고 하니 내년 기념식도 기대가 된다. 문의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02-360-8590 ...
그 날의 함성, 잊지 않겠습니다! 삼일절 꼭 가야 하는 서울 바로 그곳

[카드뉴스] 삼일절 꼭 가야하는 서울 그곳

#1 그 날의 함성, 잊지 않겠습니다! 삼일절 꼭 가야 하는 서울 바로 그곳 #2 1919년 3월 1일 저항의 중심지였던 서울 곳곳을 돌아볼까요? 1.탑골공원 2.승동교회 3.천도교 중앙대교당 4.봉황각 5.서대문형무소 역사관 #3 3.1운동의 발상지, 탑골공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공원으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팔각정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4 학생 독립운동의 거점, 승동교회 3.1운동의 주축이 됐던 학생들이 인사동 승동교회에 모여 거사를 준비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5 민족운동의 산실, 천도교중앙대교당 교인들이 대교당 건축비로 모금한 성금의 일부가 3.1운동 자금으로 쓰였던 격동의 역사를 간직한 곳 #6 수많은 독립투사를 양성한, 봉황각 천도교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손병희 선생이 설립한 교육시설로 민족대표 33인 중 다수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7 애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독립운동가들이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고통받았던 감옥으로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여옥사도 이곳에 있다. #8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이번 삼일절,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여 뜻깊은 시간 보내는 건 어떨까요?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보여주었던 서울의 그날을 기억해주세요 ...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한국전쟁 당시 전쟁터에서 국군과 북한군으로 만난 형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조시승

나라를 사랑한다면 ‘이곳’만큼은…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한국전쟁 당시 전쟁터에서 국군과 북한군으로 만난 형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과 국토방위를 위해 전투에 참여하여 산화한 전몰장병을 추모하고 명복을 기원하는 달이다. 동시에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하고, 온 국민이 나라와 애국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이어진다. 6월,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며 애국지사들의 희생을 기릴 수 있는 곳, 4군데를 추천한다. 전쟁기념관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은 옛 육군본부가 있던 곳에 건립했다. 한국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통해 호국정신을 배양하고, 선열들의 호국 위훈을 추모할 목적으로 다양한 자료수집과 보존전시를 하고 있다. 기념관은 지하 2층에서 지상 4층 규모에 9,000여 점의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은 옥내전시와 옥외전시로 구분되어 있다. 전쟁기념관의 평화의 시계탑. 두 소녀를 통해 통일열망과 평화기원을 상징화했다. 한 소녀가 안고 있는 시계는 6.25전쟁과 함께 멈춰버린 시간을, 또 한 소녀가 안고 있는 시계는 현재의 시간을 나타낸다.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6·25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전사한 국군 장병과 UN군 전사자를 기리는 명비(名碑)가 눈에 띈다. 전시실은 총 9개로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Ⅰ·Ⅱ·Ⅲ,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등이 있다. 비행기와 대포 등을 전시하는 대형·방산장비실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 박물관은 많은 관람객이 찾는 공간이다. 호국추모실은 국가를 지킨 선열들을 추모하는 전당으로 호국 인물들의 흉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영상과 모형, 디오라마, 3D 등으로 표현해 입체감 있게 전시하고 있다. 어린이박물관은 2014년, 어린이들에게 전쟁 역사를 통해 자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개관했다. 놀이와 체험으로 전쟁 역사를 배우고, 무기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을지문덕의 활약상 등 다양한 역사이야기를 애니메이션과 그림책으로 친근감 있게 볼 수 있다. ...
호국보훈의달 특집

[카드뉴스] 6월에 가볼 만한 장소

한 뼘 문화유산 -호국보훈의달 특집- #1 나만(?) 몰랐던 우리동네 문화유산 이야기 5탄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을 돌아볼까요? #2 잊어서는 안될 역사, 서대문형무소 1908년 경성감옥으로 시작, 1987년까지 구치소로 사용된 서대문형무소. 많은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으로 현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일반에 개방되어 있다. #3 이곳의 옥사와 격벽장은 간수가 부채꼴 구조의 꼭지점에서 쉽게 수용자들을 감시할 수 있게 설계된 판옵티콘(panopticon) 구조. 일제의 철저한 감시체제를 알 수 있다. #4 백범의 마지막 숨결, 경교장(사적 제465호) 백범 김구 선생의 마지막 집무실이자 그가 안두희에게 암살된 장소. 김구 선생 서거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다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 2013년 복원되어 일반에 개방되었다. #5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인 곽낙원 여사는 고령의 몸으로 임정살림을 책임졌다. 여사의 생일에 생일상을 차리려 하자 그 돈으로 권총을 사서 내놓았다는 일화가 있다. #6 전쟁의 교훈을 되새길 용산 전쟁기념관 옛 용산 육군본부 자리에 위치한 기념관. 역사상 수많은 전쟁에서 국가를 지킨 선열들에 대한 자료는 물론, 한국전쟁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7 전쟁기념관 야외에 있는 형제의 상. 6.25 때 국군장교와 북한군 병사로 만난 형제의 실화를 소재로 한 조형물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고. #8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들의 고귀한 헌신 위에 이룩된 대한민국 호국선열들의 공헌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동네 한 뼘 문화유산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coming soon ...
행촌성곽마을의 현재 모습. 과거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아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였다. ⓒ최용수

우리가 몰랐던 행촌성곽마을 이야기

행촌성곽마을의 현재 모습. 과거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아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였다. 광화문에서 경교장~서울교육청을 지나 10여분 올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교남동, 행촌성곽마을’이라는 안내간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행촌권 성곽마을의 시작점인 ‘월암근린공원’ 입구이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성곽마을을 7개 권역으로 나누어 역사, 도시형태 및 생활문화자료조사, 주민인터뷰 등을 실시하여 최근 『성곽마을 생활문화기록집』을 발간하였다. 그중 ‘행촌성곽마을’은 한양도성 서쪽 인왕산 성곽아래 자리한 행촌동과 교남동 일대를 말한다. 이곳은 조선 후기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성곽 바깥마을로,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이자 한국 커피 문화의 발상지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였으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투사들의 옥바라지 마을이었다. 행촌권 성곽마을을 안내하는 입간판과 성곽이 보이는 교남동 월암근린공원 입구 1884년 고종황제는 부국강병의 일환으로 일종의 관영회사인 ‘잠상공사(蠶桑公司)’를 설립한다. 잠상공사는 중국 상해로부터 뽕나무 100만 그루를 수입하여 서울·인천·부평에 심었고, 급기야 경희궁 후원에도 수천 그루의 뽕나무를 심었다. 경희궁과 인접한 행촌권 성곽마을 일대에도 자연스럽게 수많은 뽕나무가 재배되었고, 이에 근대 서울 실크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행촌동에선 만난 주민 장충래(76세) 어르신은 “60여년 넘게 행촌동에서 살고 있는데 어릴 때는 동네 곳곳에 대추나무, 유자나무 등이 많았고 특히 뽕나무는 앞마당, 뒤뜰 할 것 없이 없는 집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동네에서 더 이상 뽕나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토질과 기후조건이 좋아 지금은 다른 종의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근린공원 개화기에 접어들자 조선에도 커피가 전래되었다. 조선에서 최초로 커피향을 맡은 사람은 고종이다. 초대 러시아 공사였던 웨베르가 그에게 커피를 선보인 것이다....
삼일절 타종행사ⓒ뉴시스

3·1절 역사의 함성, 잊지 말아요

삼일절 타종행사 목숨 받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 날의 함성을 떠올려 봅니다. 땅을 울리고 하늘을 울렸던 간절한 외침을 되새겨 봅니다. 제98주년 3·1절을 맞아 그 날의 뜨거운 함성을 직접 체험하며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3월 1일,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삼일절 기념 행사와 함께해 보세요~ ※ 파란색 글자를 클릭하시면 관련 정보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보신각 ‘3·1절 기념 타종’ 행사 3월 1일 정오, 보신각에서는 제98주년 3.1절을 기념하는 타종행사를 개최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양준욱 서울시의회 의장, 김영종 종로구청장을 비롯하여 독립유공자 후손, 3·1운동 정신 계승활동 인물 등으로 구성된 12명의 타종인사들이 4명씩 3개조로 나누어 각각 11번씩 모두 33번의 종을 친다. 특히 올해 타종인사로 선정된 9명은 독립유공자의 후손과 3·1운동계승 및 유관순열사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활동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분야별로 선정했다. 타종식 개최 전에는 종로구립합창단의 합창공연 및 그날의 의미를 기리는 3·1만세의 날 태극기 물결행진이 남인사마당에서 보신각까지 재현된다. 태극기 물결 행진은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3·1만세 운동 당시의 의상을 입은 청소년 자원봉사자 5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남인사마당에서 출발해 종로2가, YMCA 앞을 지나 보신각까지 약 0.6km를 20분 동안 행진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선 3월 1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가 열린다. 특히 삼일운동의 감동을 그대로 느껴보는 ‘3·1독립만세운동 재현 퍼포먼스’는 이날의 하이라이트로,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열린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방문하는 관람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역사관 내 특설 무대에서 연극배우들이 일제에 대한 저항과 독립의 염원을 담은 퍼포먼스를 펼치고, 33명으로 구성된 서대문역사어린이합...
지난 1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 ⓒ뉴시스

유관순 열사의 체포부터 장례까지…

지난 1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 유관순 열사의 묘가 이태원 공동묘지에 있었다는 기사(☞그냥 지나쳤다면, 이번 삼일절에는 꼭!)를 읽고, 찾아가 보았다. 1920년 10월 14일 이화학당의 교장과 학생들이 장례를 치러줬으며, 이후 일제가 이태원 공동묘지를 군용기지로 개발하면서,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되는 과정에 실전(失傳) 되었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도 이곳에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들른 부동산에서 만난 팔십대 중반 어르신이 공동묘지 쪽에 산다며 길을 알려주었다. ‘유관순’이라는 이름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그녀가 묻혔던 곳의 위치나 수감 당시의 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기자는 유관순 열사의 묘를 찾은 이 기회에 그녀가 체포당하고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용산구에 있는 유관순길 97년 전 4월1일(음력 3월 1일)에 충청남도 천안에 위치한 병천 시장에서 수천 명이 참여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이날 유관순의 부모를 포함한 19명이 시위 현장에서 순국하였으며, 30여 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유관순은 주도자로 체포되어 공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같은 해 5월 9일, 유관순은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언도받아 중형을 받은 사람들과 경성복심법원으로 넘겨져 6월 30일 심법원에서 다시 3년형을 언도받았다. 함께 재판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일제의 재판권을 인정하지 않은 유관순은 상고하지 않았다. 그 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은 이신애, 어윤희, 박인덕 등과 함께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를 기해 3·1 운동 1주년 기념식을 갖고,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3,000여 명의 수감자들이 크게 호응하여 만세 소리가 밖으로까지 퍼져나갔고, 만세를 외치는 함성에 형무소 주위로 인파가 몰려들어 전차 통행이 마비되고, 경찰 기마대가 출동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유관순은 물론, 많은 애국지사가 심한 고문을 당하...
옥바라지 골목 풍경

몇 달 뒤면 사라질 ‘옥바라지 골목’

함께 서울 착한 경제 (40) 재개발, 재건축? 도시재생?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인기만큼이나, 옛 골목에 대한 향수도 깊어진 듯 하다. 지지고 볶으며 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그 시절 그 골목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낡고 비좁은 골목들이 눈길을 끈다. 이렇듯 오래된 골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서울에는 여전히 사라져 가는 골목이 더 많다. 그중 한 곳, 이제 몇 달 뒤면 재개발로 사라지게 될 골목을 찾아가 보았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애환이 서린 골목,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옛 서대문 형무소 앞 옥바라지 여관 골목이다. 옥바라지 골목 풍경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골목, ‘옥바라지 골목’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일대는 굴곡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조선 시대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장소인 영은문과 모화관이 있던 자리이자, 1897년 독립문이 세워진 곳이다. 사대외교의 상징이라 하여 철거된 영은문 자리엔 독립문이 세워졌으며, 모화관은 독립관으로 개축해 독립협회 회관으로 사용했던 것. 하지만 1979년 고가도로 건설로 북서쪽으로 70여 미터 떨어진 현재의 자리인 독립공원 안으로 옮겨오게 되었으며, 남겨져 있던 영은문 기둥 초석도 함께 옮겨왔다. 사라진 독립관도 복원했다. 독립공원은 서울구치소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다. 1908년 통감부(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하고 설치한 감독기관)가 경성감옥을 설치한 이후, 서대문감옥으로,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일제 강점기 때 애국지사들이 옥고를 치른 악명 높았던 곳이다. 해방 후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명칭이 바뀌며 격동의 현대사 속에 많은 시국사범이 수감되어 고초를 겪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곳이기도 하다. 1987년 서울 도심의 팽창에 따라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였으며, 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이유로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부분 건물은 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