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이 내려온 석촌동 고분군 풍경

실내외 넘나들며 즐길 수 있는 11월 서울여행 코스

늦가을이 내려온 석촌동 고분군 풍경 호호의 유쾌한 여행 (116) 석촌동 오늘은 늦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석촌동으로 떠나봤습니다. 요즘 가장 핫한 동네인 송리단길을 비롯해 석촌동 고분군, 삼전도비와 함께 롯데월드몰에 위치한 아쿠아리움과 서울 3080과 함께 하면 근사한 데이트 코스가 완성됩니다.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석촌동 제3호분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 초기에 만들어진 돌무지무덤입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느닷없이 나타난 무덤 군이 무척 이색적인데요. 석촌(石村)이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석촌동 고분군은 관광지라기보다는 동네분들을 위해 만든 공원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강아지 산책시키고, 조깅하고, 이웃들끼리 만나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기에 적격인 곳입니다. 그런 까닭에 큰 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고즈넉함과 친근함이 살아 있습니다. 누군가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 가고 싶은 곳입니다. 석촌동 고분군의 돌무지무덤은 그 형태가 독특한 것이 특징입니다. 바깥에서 보면 고구려의 계단식 돌무지무덤처럼 보이지만, 2호와 4호 돌무지무덤은 내부를 흙으로 채워 백제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3호분의 경우, 4~5세기의 백제 왕릉으로 보이며 학계에서는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점도 신기합니다. 백제시대의 무덤이 현재까지도 현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놀라울 뿐이었는데요. 삶과 죽음의 경계, 현재와 역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독특한 카페와 숍들로 걷는 즐거움이 있는 송리단길 석촌동 고분군에서 나오자마자 송리단길과 바로 연결됩니다. 송리단길은 경리단길, 망리단길에 이어 새롭게 뜨고 있는 장소입니다. 송리단길은 백제고분로 45길 주변 일대를 이르는 말로, 석촌 호수 인근에 모여 있습니다. 간판도 없는 카페를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발리, 멕시코, 대만, 뉴질랜드에 온 듯한 이국의 맛집들도 가득해 찾아보는 즐거움이 쏠쏠합니다. 치욕의 병자호란을 ...
석촌호수 주변에 자리한 `삼전도비`ⓒ방윤희

영화 ‘남한산성’ 속 생생한 역사현장을 만나다

석촌호수 주변에 자리한 `삼전도비` 영화 속 여운을 담은 채, 삼전도비가 위치한 송파구 잠실로를 찾았다. 잠실광역환승센터 2번 출구에서 20m를 앞에 두고 삼전도비를 만날 수 있었다. 도시의 대로변과 석촌호수를 옆에 두고 있는 삼전도비와의 첫 만남은, 영화만큼이나 생생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난 후,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가 결국 1637년 청나라의 군대가 머무는 한강의 삼전도 나루터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병자호란 때 승리한 청나라 태종의 요구로 1639년(인조17) 12월에 세운 비석이 ‘삼전도비’이다. 정식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지만 1963년 문화재 지정 당시 지명을 따서 삼전도비(三田渡碑)라고 지었다. 한강의 물길이 닿는 나루터였던 삼전도는 1950년대까지 나룻배가 다녔으나 1970년대 이후 한강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비석의 원래 자리는 현재의 석촌호수 서호 내부에 위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석촌동 아름어린이공원 내에 세워졌다가 2010년 원 위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세워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현재의 자리인 이곳 석촌호수 주변에 옮겨졌다. 대리석 계통의 돌로 만들어진 삼전도비의 앞면. 왼쪽은 몽골글자, 오른쪽은 만주어가 새겨져 있다. 비각이 둘린 삼전도비 앞에 이르자 높이 395㎝, 너비 140㎝로 이수(용 모양을 새긴 머릿돌)와 귀부(거북이 모양을 조각한 받침)를 갖춘 커다란 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귀부 위에 비문을 새긴 몸돌을 세우고 위에는 이수를 장식했다. 비문은 청나라에 항복하게 된 경위와 청 태종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 때문에 당대의 문장가들이 비문 짓기를 꺼렸으나 부재학 이경석(李景奭)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알고 비문을 지었고, 글씨는 도총관 오준(吳竣)이 썼다. 비문 앞면 왼쪽에는 몽골글자가, 오른쪽에는 만주글자가, 뒷면은 한자가 각각 새겨져 있어 17세기 세 나라의 언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비문의 굴욕적인 내용 때문에 1895년(고종32) 고종은...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가 담겨있는 삼전도비

부끄럽지만 잊지말아야할 역사, 삼전도비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가 담겨있는 삼전도비 두 바퀴로 떠나는 서울 여행 (30) 병자호란의 아픔이 담긴 '삼전도비' 한강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잠실대교 밑 잠실 나들목으로 들어서면 석촌호수가 나온다. 한강변에서 가까운 석촌호수는 옛날엔 한강의 물길이 닿는 나루터였다. 큰 놀이공원, 호텔, 쇼핑몰이 들어서 있는 석촌호수변에 우리역사의 아픔과 치욕이 담긴 특별한 비석이 있는데 바로 '삼전도비(三田渡碑)'다. 가끔 들어보았지만 실물을 본 건 처음이었다. 삼전도는 1950년대까지 한강에서 나룻배가 다녔으나 1970년대 이후 한강 개발로 사라졌다. 삼전도(三田渡)의 '도'는 섬이 아닌 강나루를 의미한다. 조선 시대 서울 한강에는 5개의 나루가 있었는데, 삼전도는 그 중 하나다. 378년 전인 1637년, 조선의 왕 인조 임금 '이종'은 바로 이곳에서 청태종 '홍타이지' 앞으로 끌려나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찧었다. 백성에겐 국난이요, 왕조에겐 굴욕이었다. 흔히 조선시대의 2대 국치(나라의 치욕)하면 바로 병자국치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경술국치이다. 병자국치는 1636년 병자년에 발발한 청나라의 침략으로 발발한 병자호란을 말한다. 당시 임금이었던 인조(1623~1649)는 남한산성에서 45일을 버티다 결국 항복하고 나와 한겨울 혹한 속을 걸어 삼전도로 향했다. 뒷면에 공식명칭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한자어와 비문이 써있다 높은 단상에 앉아있는 청태종 앞에 끌려 나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 무릎을 꿇고 양손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3번 조아리는 동작을 3회 되풀이하는)'라는 예를 올렸다. '삼배구고두례'는 여진족의 풍습인데 한 번씩 절을 할 때마다 땅에 이마를 3번씩 박는다고 한다. 실록엔 차마 기록하지 않았으나, 야사에 의하면 이때 인조의 이마에 유혈이 낭자했다고 하니 이만저만한 치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날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병자년에 일어난 국치라 하여 병자국치라고 한다. 전쟁의 여파로 인조의 두 아들인 소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