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 상 너머 깨끗하게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붙어있다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리네” 고맙고 아픈 태극기史

이순신장군 상 너머 깨끗하게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붙어있다 “삼각산 마루에 새벽빗 비쵤제 / 네 보앗냐 보아, 그리던 태극기를 / 네가 보앗나냐, 죽온 줄 알앗던 우리 태극기를 / 오늘 다시 보았네 /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니네 / 이천만 동포야 만세를 불러라, 다시 산 태극기를 위해 / 만세만세 다시 산 대한국(大韓國)……” 1919년 11월 27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태극기’라는 제하의 시 앞부분이다. 2009년 5월, 해체 복원공사를 시작한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벽에서 보퉁이 하나가 발견되었다. 물건을 싼 보자기는 귀퉁이가 불에 타고 얼룩져 낡았지만 분명히 태극기였다. 그 안에는 1919년 6월에서 12월 사이에 발행된 신문기사와 여러 건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3·1만세운동 이후를 전하는 ‘조선독립신문’과 ‘자유신종보’,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과 신채호가 발행한 ‘신대한’ 등 무척이나 귀하고 드문 자료였다.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들을 꾸짖는 경고문도 있었다. 태극기에 싸여 발견된 경고문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를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누가 왜 법당의 벽을 파고 숨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낡고 때 묻고 찢긴 태극기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일장기 위에 청색을 덧칠해 태극 문양을 만든 태극기라는 점이었다. 만든 이의 의분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태극기였다. 그 후 십 년 동안의 연구 결과 밝혀진 것은 이 보퉁이를 벽에 감춰 보관한 이가 백초월 스님으로 보인다는 사실뿐이다. 20대에 이미 큰스님 반열에 올랐던 스님은 독립운동을 지원하느라 20년 동안 숱한 체포와 구금을 당하고 고문을 받아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또 다시 독립운동 자금 건으로 수감되었던 청주교도소에서 1944년 순국한 스님의 시신은 현재 자취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에 전시중인 ‘진관사 태극기’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 이 진관사 태극기를 들고 입장했다. 그날 광...
1만 5,179개의 꽃이 장식된 서울광장

서울광장을 수놓은 1만 5,179개의 별

1만 5,179개의 꽃이 장식된 서울광장 서울광장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없었다. 3·1절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3월 2일부터 8일까지 서울광장은 독립광장으로 선포됐고, 서울광장에서는 ‘꽃을 기다립니다’ 추모전시가 열렸다. 1만 5,179개의 꽃이 겨울밤을 수놓으니 광장 전체가 향기로 가득했다.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독립을 향한 울음이고 슬픈 노래며 광복된 조국을 간절히 보고 싶은 꽃이었다. 이 전시는 대지의 별로 이 땅에 돋아난 1만 5,179명의 독립유공자를 역사의 은하수로 표현한 것이다. 불빛의 색은 태극기의 색 비율과 일치시켜 흰색, 파랑, 빨강으로 하였고, 등불을 세우고 있는 기둥은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서해성 총감독이 독립광장 선포의 경과를 해설하고 있다 서울시 3·1운동 100주년기념 310 시민위원들은 3월 5일 밤 서울광장 야간전시를 관람하였다. 스카이뷰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고, 기자 자신도 독립유공자의 자녀이기에 참여했다. 야간 서울도서관 옥상에서 보는 서울광장의 야경은 거대한 둥근 은빛 은하수 물결이었다. 시간마다 바뀌는 색의 향연, 조국 산야에서 북만주 광야에서 외쳤던 독립 함성이 시공을 초월하여 들리는 듯했다. 야간투어를 하는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시민위원들 하나하나의 기둥은 지하로 선을 연결하여 불이 들어오도록 했다. 마치 은하수가 광장을 수놓은 듯했다. 밤이면 태극기의 색인 파랑, 빨강, 흰색이 조화를 이루었고, 기둥은 저마다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출생연도, 사망연도가 기록된 함축된 인명부였다. 안타까운 점은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무명의 독립운동자들이 많았다는 것. 독립운동으로 3백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고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정상활동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얼마 동안 기억하고 있을까? 광장 한가운데 설치된 이름 없는 군락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은하수 별빛으로 변한 서울광장 독립광장으로 선포된 이곳은 고종황제가 즉위식을 한 환구단과 가깝고 마지막 황궁인 덕수궁과 도보로 연...
독립선언서 배부터인 ‘수운회관’ 앞에 설치된 시민마루의 모습. 나비모양의 명부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 몫이다

삼일대로에 나타난 검은 돌들의 정체는?

독립선언서 배부터인 ‘수운회관’ 앞에 설치된 시민마루의 모습. 나비모양의 명부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 몫이다지난 3월 1일, 100년 3·1운동의 함성을 되새겨보는 만세운동과 퍼포먼스가 전국적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같은 날, 일상 속에서도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역사적 명소가 탄생했다. 독립운동 테마역 안국역과 탑골공원 사이를 연결하는 삼일대로 주요 거점 5곳에 ‘100년 시민마루’가 오픈된 것이다.‘100년 시민마루’는 시민들의 기부 등 참여와 정성으로 조성된 돌 구조물로 누구나 쉽게 찾아와 쉴 수 있는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더 감동스러운 것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교포, 중국 위안부 피해자 등 해외에서도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서울시 310시민위원회) 단장, 우당 이회영·이은숙 부부의 후손인 이종찬(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위원장 등 기부에 참여한 국내외 인사 3,140명과 70여개 단체의 이름이 검은 벽돌에 아로 새겨졌다.‘100년 시민마루’의 특이한 점은 이름 대신 나비 모양의 문양으로 조각된 명부였다. 사유를 알아보니 이름을 알리기 부담스러운 235명의 사정을 배려해 그렇게 조각했다고 한다. 3·1운동 100년 시민마루 개막식에 참석한 시민들(좌), 시민마루 조성을 주최한 사단법인 사람숲의 양길승 이사장(우)‘100년 시민마루’는 약 650m 구간에 걸쳐 삼일대로 핵심거점 다섯 곳에 위치해있다. ▲독립선언문이 보관, 배포되었던 수운회관 앞, ▲3·1운동 전후 다양한 민족운동 집회 장소였던 천도교 중앙대교당, ▲민족계몽운동의 산실 서북학회 터, ▲고종이 출생하여 왕위에 오른 12세까지 성장한 잠저인 운현궁 앞, ▲그리고 학생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던 탑골공원이다.3월 1일 오후 4시 개막식이 진행된 후 곧바로 ‘100년 시민마루 투어’가 이어졌다. 서해성 3·1절100주년기념사업 총감독의 안내로 행사 참가자 모두 3·1운동 거점들을 돌아보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
3·1만세운동 당시 숭실중학교 교정에 게양됐던 태극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3·1운동 기념 전시

3·1만세운동 당시 숭실중학교 교정에 게양됐던 태극기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독립선언문의 낭독과 3·1만세시위는 전국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촉발시켰다. 3·1운동 후 4월 상하이에서는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최하고 상하이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올해는 다양한 기념사업이 열리고 있는데, 서울시 시민청에서 전시하고 있는 와 을 소개할까 한다.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3/31) 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1888년부터 1945년까지 200여명의 캐나다인이 선교사, 학자, 의사, 기자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프랭크 스코필드, 로버트 그리어슨, 아치발드 바커, 스탠리 마틴, 프레드릭 맥켄지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도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공훈을 받았다.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는 다섯 명의 캐나다인을 통해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고 있다. 로버트 그리어슨은 캐나다 의료선교사로 1898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함경북도 성진에 정착했다. 3·1운동 시 일제에 의해 탄압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부상자를 일일이 치료했다. 맥켄지가 촬영한 의병사진, 사진9_드라마에서도 이를 재연했었다. 프레드릭 맥켄지는 종군기자로 1904년~1905년, 1906년~1907년 두 차례 우리나라를 찾았다. 1907년 고종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일어난 의병을 취재하는 중, 일제의 학살과 방화를 목격한다. 양평에서는 의병을 직접 만나 의병의 사진을 기록으로 남긴다. ‘The Tragedy of Korea(1908), Korea’s Fight for Freedom(1920)’을 발간해 우...
지난 3월 1일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념행사가 있었다.

8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덕수궁 광명문’

지난 3월 1일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념행사가 있었다. 1919년 1월 21일 건강에 별 문제가 없었던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뇌일혈로 알려졌지만 순식간에 ‘독살설’이 매서운 꽃샘바람처럼 온 나라에 퍼졌다. 비록 일제에 의해 황실이 아니라 왕가로 격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하늘같은 존재인 황제가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은 압제에 숨죽이고 있던 백성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3월 1일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불길처럼 일었고, 승하 후 40여 일 만에 황제의 운구 행렬은 함녕전으로부터 광명문을 통해 남양주 홍릉으로 향했다. 제100주년을 맞은 3.1절 오후 덕수궁에서는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념행사가 열렸다. 황제의 마지막 순간을 간직한 광명문은 고종 황제의 침전인 함녕전 정문으로, 고종이 승하한 후 1938년 강제 이건되었다가 80년 만에 원래의 자리를 찾게 되었다. 광명문 복원과 관련된 자료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민들 이전영 문화재청 복원정비과장의 경과보고로 시작된 기념식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일제가 우리의 민족정기를 말살하려 훼손 변형한 광명문이 제자리를 찾는 오늘은 뜻깊은 날”이라며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곳이자 자주주권을 지키려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던 고종황제의 이상이 서려 있는 이곳”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일제가 개칭해 쓴 ‘덕수궁’이 아니라 원래 이름인 ‘경운궁’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기념사를 열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경운궁 현판. 경운궁 즉조당에 걸려 있던 덕수궁의 옛 이름 현판으로 고종의 어필이다. 1593년 선조가 임시 거처로 삼았던 이 궁을 ‘경운궁’이라고 명명한 것은 광해군이었다.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의 의지를 다지며 근대화를 위한 열의를 다졌다. 대한제국 황제로서 황룡포를 입은 고종 어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러나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후 순종이 창덕궁으로...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의 하나로 서울광장에서 `100년 대합창` 행사가 열렸다.

서울광장의 100년 대합창, ‘독립광장’을 만들다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의 하나로 서울광장에서 '100년 대합창' 행사가 열렸다. “3·1운동은 합창입니다. 서울광장은 그 날 만세소리가 가장 높게 멀리 울려 퍼진 광장입니다. 3·1운동을 노래합니다.” 지난 1일 ‘서울광장’에서는 ‘100년 대합창’으로 독립운동의 노래가 울려 퍼졌고, 마침내 ‘독립광장’이 선언되었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100년 만세행진’과 ‘100년 대합창’ 그리고 ‘대형 줄다리기’ 행사를 펼쳤다. 우당, 백범 등 독립유공자 후손 50여 명, 이화여고·중앙고 등 3·1운동 참여 학교 학생들, 시민위원 310 및 육사군악대가 참여하였다.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며 진행된 ‘100년 만세행진’은 오후 1시 30분에 대한문을 출발하여 세종대로~광화문사거리를 돌아 서울광장으로 입성하는 코스였다. 행진은 100년 전 그날의 기억을 새롭게 해주었다. '100년 대합창'에는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시민학생 3100명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올해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백미는 ‘100년 대합창’이었다. 100년 전 오늘, 만세운동이 시작된 시간인 오후 2시 30분에 맞추어 대합창이 시작되었다. 기자도 이날 시민위원 310의 자격으로 대합창에서 노래를 불렀다. ‘100년 대합창’은 특별히 3·1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담기에 중심을 두었다. ‘3·1운동 100주년’을 상징하는 ‘시민위원 3,100명’과 국립합창단원들로 합창단을 구성했고, 주 무대에는 독립유공자 후손, 이화여고 학생, 각계를 대표하는 남녀노소 시민들로 조화를 이루었다. 이 날, 서울광장에 함께한 시민들, 연주자들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래했다. 삼일절 노래를 시작으로 문을 연 이 날의 합창은 독립군가, 압록강행진곡, 광야에서, Heal the World, 젊은 그대, 아리랑과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버전 애국가 등 한 시간 동안 총 11곡이 서울광장에 울려 퍼졌다. 삼일절 서울광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못 다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전시가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진행 중이다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둘러본 ‘기억 기록’ 전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못 다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전시가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진행 중이다 다 듣지 못한 말들이 있었다. 기억하고 기록될 이야기임에도 우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했다. 그러한 위안부의 못 다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전시 이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모든 지역에 설치했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여성들의 이야기는 50년이 지나서야 우리에게 알려졌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전시 `기억 기록`은 3월 20일까지 계속된다 전시는 여러 나라 4개의 지역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이 2016년부터 현재까지 발굴한 사료와 사진, 영상 등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의 모습을 담은 3장의 실물사진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 것이다. 세 장의 사진은 고 박영심 씨의 당시 만삭이었던 모습과 버마 미차나에서 여러 한국인 위안부가 찍힌 모습이다. 이 사진들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중 미군이 만든 사진앨범에서 나온 것으로 1944년에 찍혔다는 것을 기록으로 알 수 있었다. 사진들은 보존상태가 좋아 선명하게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표정까지 읽을 수 있다. 사진은 너무나 가혹한 현실을 그들의 사진 속 상황과 표정으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위안부 여성들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확인하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있음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전시에선 증언과 문서, 사진과 영상으로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전시회의 개관식이 지난 28일 11시에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개최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전시장을 방문해 뜻깊은 행사에 동참했다. 전시장의 외부 벽면에는 큼직한 귀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귀환 지도를 보며 위안부 여성들이 얼마나 먼 곳까지 끌려가 고생을 했는지, 그들...
서울시 인스타그램(@seoul_official)에서 삼일절 100주년 기념 손글씨릴레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함께 해요! #손글씨독립선언서 릴레이 캠페인

서울시 인스타그램(@seoul_official)에서 삼일절 100주년 기념 손글씨릴레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의 의미를 보다 많은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SNS 상에서 독립선언서 손글씨 쓰기 릴레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는 캘리그래피 작품처럼 정성스럽게 쓴 예쁜 사진과 영상 등 현재 3,500여개의 많은 참여가 이어지는 중이다. 서울시는 100년 전 2‧8독립선언이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처럼, 삼일절까지 진행되는 릴레이 문구로 2.8독립선언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SNS 해외 이용자들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영어, 일본어로 된 문구를 함께 게재했다. 서울시 ‘100주년 삼일절 캠페인’에 참여하려면 독립선언서 첫문장 손글씨를 사진 혹은 영상으로 찍고, #100년전그날처럼 #손글씨독립선언서 두 개 해시태그를 달고 업로드, 다음 릴레이 주자들을 태그하면 된다. 지목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간절히 독립을 염원했던 100년 전 선조들처럼, 손글씨로 '독립선언서 첫문장'을 적으며 삼일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어떨까. ■ 서울시 SNS 공식채널○트위터 : twitter.com/seoulmania ○페이스북 : facebook.com/seoul.kr ○인스타그램 : instagram.com/seoul_official ○블로그 : blog.seoul.go.kr ○유튜브 : youtube.com/user/seoullive ○카카오스토리 : story.kakao.com/ch/seoul ■ 2‧8 독립선언서 첫문장○ 한국어: 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이천만 조선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선언한다. ○ 일어: 朝鮮青年独立団はわが二千万の民族を代表し、正義と自由の勝利を得た世界万国の前に我が独立を期成せんことを宣言する。-1919.2.8 ○ 영어: The Korean Young Peo...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 서해성

역사상 가장 특별한 삼일절을 위한 축제가 열린다!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 서해성 역사상 가장 특별한 삼일절을 위한 축제, 서해성 총감독.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의 수장인 그에게 젊음과 활력으로 가득 채워질 3·1운동 100주년의 이모저모를 들어보았다. 서해성 총감독은 코앞으로 다가온 3·1운동 100주년 기념 사업과 행사를 위한 마라톤 회의를 비롯해 현장 곳곳을 지휘하느라 인터뷰 스케줄을 잡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막상 대면한 그의 얼굴엔 마치 소풍날을 받아놓은 어린아이 같은 즐거움이 엿보였다. “하루하루가 의미 있지만, 어쩌면 이날만을 위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9년 3월 1일은 단순히 100년 전 그날을 기억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까요. 지금의 우리에게 대한민국을 선물해 준 100년 전 수많은 영웅을 기억하며 진짜 제대로 된 즐거움을 만끽할 3·1운동 100주년 축제 한판을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우리에게 ‘100년’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시간 단위가 아니라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이자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100년을 다시 살게 하는 마중물이 되어줄 것입니다.” 인문학자이자 작가, 교수, 사회활동가, 문화 기획자인 서해성 총감독과 서울시와의 인연은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서울시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면서 해당 사업의 큰 그림을 그리고 지휘하는 총감독을 그에게 제안했고, 이를 3년째 역임하며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것이다. “3·1운동이 ‘혁명’인 것은 소수의 지도자가 아닌 시민 개개인의 움직임이 모여 이뤄낸 큰 물결임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독립운동이 유명한 몇몇 영웅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오인했다면 3·1운동 100주년이라는 현시점에서 다시 한 번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독립운동이 1919년 3월 1일 단 하루에 일어난 일이 아닌 것처럼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된 이유와 배경, 과정, 권력의 이동 경로와 참여한 사람들에 대해 ...
혜화동 로터리 버스정류장에 ‘여운형 활동터’라는 이름이 병기되었다.

버스 타고 떠나는 ‘서울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혜화동 로터리 버스정류장에 ‘여운형 활동터’라는 이름이 병기되었다. 1923년 1월 22일 새벽, 일본 군경 천여 명이 지붕 위의 한 남자를 향해 총격을 퍼부었다. 남자는 세 시간 동안 총탄 세례를 피하며 총격전을 벌이다가 최후의 한 발로 자결했다. 그의 시신에서는 11발의 총상이 발견되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 날의 주인공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으로 잘 알려진 김상옥 의사였다. 종로구 효제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생의 마지막을 맞은 곳도 이곳이었다. 그의 장렬한 순국을 기리며 ‘효제동 버스정류장’에 ‘김상옥 의거터’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서 있는 김상옥 의사 동상 2월 22일부터 서울 시내 마을버스 정류장 두 곳을 포함한 14곳의 버스정류장 이름에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서울역사박물관’ 역에는 ‘김구 집무실(경교장)’ 표기가 더해지고, 인사동 입구는 ‘인사동 들머리, 3.1운동 선언 터’가 되었다. 반가운 소식에 길을 나서 몇 군데 정류장을 찾아보았다. 21일, 버스정류장에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이름을 병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독립운동가 김상옥의 활동터임을 기려 효제동 버스정류장에 ‘김상옥 의거터’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대학로로 이어지는 ‘효제초교, 연동교회’ 버스정류장에는 ‘김마리아 활동터’가 병기되었다. 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한 김마리아는 요즘 말로 걸크러시 그대로였다. 일본 유학 시절 2.8독립선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그는 2.8독립선언서를 숨긴 기모노를 입고 들어와 부산과 대구, 광주, 서울을 돌며 3·1운동을 사전 준비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겪은 고문으로 한쪽 가슴을 절개해 평생 좌우 높이가 다른 저고리를 입고 살았으나 “조선의 독립과 결혼했다”던 그의 양심은 계속되던 신사참배 요구에도 흔들림 없이 반듯하고 정의로웠다. ‘효제초교, 연동교회’ 버스정류장에는 ‘김마리아 활동터’를 병기하며 김마리아에 대한 소개도 함께 안내하고 있다.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