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는 호젓한 인왕산숲길

진경산수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인왕산숲길’

사회적 거리 두기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새로운 일상’이 주는 피로감이 쌓이는 요즘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레 운동 부족과 무기력증에 빠지기 쉽다. 이때 가까운 청정지역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걷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봄이 무르익은 주말 오후, 종로구 인왕산숲길을 찾았다. 수성동계곡 입구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명산 인왕산 전경 ©염승화 인왕산숲길은 이름 그대로 서울의 명산인 인왕산 숲속에 나 있는 한적한 오솔길을 말한다. 예로부터 산세가 깊어 호랑이가 살았다는 바로 그곳이다. 전체 길이는 약 2.5km로 종로구 사직로(사직동) 숲길 입구와 창의문로(청운동) 쪽 숲길 입구 사이이다. 우리 시조 단군왕검을 모신 단군성전 ©염승화  들머리는 인왕산숲길 길목인 사직공원으로 삼았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5~6분 거리에 있다. 이곳에서는 조선시대 토지신과 곡물신을 모신 사직단과 유서 깊은 장소 두 곳을 더 둘러볼 수 있다.  사직단 경내를 휘적휘적 살펴본 뒤 공원 돌담을 따라나섰다. 비탈길을 오르면 오른쪽에 단군왕검을 모신 단군성전이 나오고, 뒤이어 황학정이 보인다. 성전에 모셔져 있는 단군상 앞에서는 잠시 두 손을 모으고 코로나19가 하루빨리 물러나기를 기원했다. 황학정은 원래 경희궁 안 활터에 있던 정자(射亭)이다. 1898년 고종황제가 조성했으나 1922년 일제가 경희궁을 허물 때 현 자리로 옮겨졌다. 지금도 활을 쏘고 심신을 단련하는 국궁장의 커다란 과녁에 눈길이 꽂혔다. 동시에 활시위를 힘껏 당기는 국궁인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인왕산로로 곧바로 이어지는 황학정 뒤편 출구로 나왔다. 똑바로 길을 따라 가니 우측 연변에는 큼지막하게 ‘인왕산숲길’이라고 새겨져 있는 커다란 표지석이 놓여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숲길에 들어선다. 표지석에는 간단한 코스 소개와 이곳에 전해지는 역사와 위인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택견, 인왕산을 사랑한 예술인 등이 숲속 이야기들이다. 구한말 택견꾼들이 무예를 갈고 닦았던 택견수련터 ...
도심외부순환 녹색순환버스

녹색순환버스 타고 역사탐방 “어디까지 가봤니?”

서울 도심 주요지점을 연결하는 녹색순환버스 내부 ⓒ최창임 골라 타는 즐거움이 있다는 건 무료한 일상에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준다. 매번 같은 노선을 달리는 하루하루, 특별함이라곤 찾고 싶어도 찾기 힘든 일상이 오늘이고 내일이 아닐까?  그러던 차에 녹색순환버스 운행 소식은 새로움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했다. 서울 도심 주요지점을 연결하는 이 버스는 4개 노선으로 1월 29일 10시 첫 운행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파격적인 것은 요금이 어마어마하게 저렴하다. 마을버스 요금도 교통카드 이용 시 900원인데 녹색순환버스는 600원에 명동, 서울역, 인사동, N타워, 경복궁 등 서울 도심 주요지점과 관광명소를 다닐 수 있는 한양도성 녹색교통지역을 달린다. 또 대중교통 환승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4개 노선으로 운행되는 녹색순환버스는 환승 시 추가 요금부담 없이 4회까지 무료 환승이 가능하다. 물론 일반 대중교통으로도 환승이 가능하고 녹색순환버스를 이용함으로써 친환경·사람·대중교통 중심의 교통패러다임 확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    녹색순환버스는 4개 노선을 운행한다 ⓒ최창임 녹색순환버스 운행 4개 노선은 01번(도심외부순환) : 서울역~서대문역~독립문~사직단~경복궁~창덕궁~동대문~을지로 02번(남산순환) : 남사타워~예장자락~충무로역~동대입구역~남산타워 03번(도심내부순환) : 시청~경복궁~인사동~종로2가~명동~시청 04번(남산연계) : 남산타워~시청~종로2가~동대문~DDP~동대입구역~남산타워 으로 01번(도심외부순환)의 경우 배차시간은 25분 간격으로 01A와 01B로 나뉜다. 서울역을 기점으로 서대문방향으로 순환하는 01A와 을지로 방향으로 순환하는 01B를 구분해서 승차하면 된다. 4개 노선 중 01번(도심외부순환) 버스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도심외부순화버스의 장점은 쇼핑과 관광을 즐길 수 있어 서울을 탐방하고 싶은 관광객들에게 한번쯤 권하고 싶은 노선이다. 일반적으로 서울의 쇼핑은 동대문, 남대문, 을지로 그리...
사직단 모습

많이 들어본 종묘사직, 종묘는 아는데 사직은 모른다?

사직단 모습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13) 사직단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듣는 대사 TOP 3는 아마 ‘통촉하여주시옵소서’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고 ‘종묘사직을 보존하소서’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목숨을 걸고 종묘나 사직을 보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지금은 그저 역사적인 유적지로 남아있다. 마지막 대사에 등장하는 종묘는 탑골공원 옆에 있어서 정말 많이 가봤다. 점심 먹고 가봤고, 저녁 먹기 전에 가봤고, 평일에 가봤고, 주말에 가봤고, 명절에도 가봤다. 하지만 사직단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종묘는 뭔가 행사도 많이 열리고 언급이 많이 되면서 실체가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반면, 사직단은 대사를 통해서 들은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르게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직(社稷)은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을 뜻한다. 황제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이기 때문에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지만 제후국은 땅과 곡식의 신에게만 제사를 지낼 수 있다. 그래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을 만든 것이다. 어쨌든 사직단은 조선시대 내내 선왕들의 위패를 모시는 종묘와 더불어 왕실을 상징하는 곳이었고, 종종 국가의 운명을 드러내는 장소로 언급되었다. 사극에서 신하들이 목청 높여 종묘와 사직을 보존하라는 외치는 것은 곧 국가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사직단 대문 사직동 주민 센터와 접해있는 사직단에 도착하면 붉은색으로 칠해진 사직단 대문과 만나게 된다. 보물 제177호인 이곳은 원래 더 앞에 있었지만 도로 확장 공사 때문에 현재의 위치로 밀려났다. 안으로 들어가면 홍살문으로 둘러싸인 담장이 보인다. 동서남북으로 나있는 문은 각각 동신문과 서신문, 남신문과 북신문으로 불린다. 북신문이 가장 큰데 이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안에 들어가면 역시 야트막한 담장과 홍살문들이 보이고 그 안...
개천절, 사직단-단군성전 역사나들이 코스

개천절, 사직단-단군성전 역사나들이 코스

사신과 직신, 두 신을 제사지내는 단을 만들어 모시는 사직단 모습 하늘이 더욱 푸른 10월이 성큼 다가왔다. 이맘때 개천절이 되면 떠오르는 장소, 바로 사직공원이 아닐까?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사직공원은 꽤 넓다. 사직단과 단군성전, 황학정이 모두 자리한 이곳은 원래 사직단(社稷壇)이라 불렸다. 조선시대에 사직단은 임금과 왕족, 관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역(聖域)이었다. 그러나 1922년 일제가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해 개방하면서 성역은 사라졌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신성한 곳에 신사(神社)를 지었으니 일제에 의한 수난의 역사는 사직단 또한 피해갈 수 없었다. 해방 이후 신사는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지금의 단군성전이 세워졌다. 북신문에서 바라본 사직단의 모습 사직단은 담장이 바깥과 내부 등 이중으로 둘러 있고 동서남북으로 문을 낸 홍살문이 있다. 조선시대 역사드라마를 보면 신하들이 “전하 종묘사직을 굽어 살피소서” 하며 왕에게 충언을 올리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때 사직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을 가리킨다. 토지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단은 동쪽에, 곡식신에게 제사 지내는 직단은 서쪽에 배치했다. 두 신에게 제사 지내는 단을 만들어 모신 곳이 사직단(社稷壇)이다. 땅과 곡식은 조상을 모시는 것만큼 중요했기에 사직단은 성역과 다름없었다. 사직단은 사적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셔두고 봉향하는 단군성전 사직단에서 단군성전은 바로 이어진다. 단군성전(壇君聖殿)은 단군 영정과 위패를 모셔두고 봉향하는 곳이다. 단군성전에서 매년 개천절에 기념행사가 열린다. 개천절은 우리나라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 경축일이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10월을 상(上)달이라 칭하고 수확한 햇곡식으로 제상을 차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천 행사를 치렀다. 인왕산 자락의 황학정 전경 단군성전에서 인왕산길을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황학정에 다다른다. 고종황제가 만든 활터인 황학정은 구한말인 1899년 활쏘기 전통...
서울에 첫 눈 오던 날 마주한 서울 미래유산 `배화여고 캠벨기념관` ⓒ변경희

민주주의 새 성지 ‘광화문’을 걷다

서울에 첫 눈 오던 날 마주한 서울 미래유산 `배화여고 캠벨기념관` 서울에 새하얀 첫눈이 내리던 날, 서울시 미래유산 역사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았습니다. 전문 해설사와 함께 서울 미래유산을 중심으로 서울의 숨은 보물들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을 출발해 세종로공원 - 세종대왕 동상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고종황제 칭경비 - 광화문지하보도 - 이순신장군 동상 - 종교교회 - 사직단 - 배화여고 캠벨기념관(배화여대) – 필운대까지 둘러보는 탐방 코스를 ‘청년 소셜미디어PD’가 함께 동행해 보았습니다. 서울 미래유산 그 두 번째 편은 민주주의 새 성지, 세종대로 일대 이야기입니다. 서울미래유산(2) -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 편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광화문광장은 그야말로 서울 미래유산의 산실이다. 광장마당의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 그 지하의 광화문 지하보도, 광장 바로 옆의 세종문화회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까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토요일의 광화문 광장은 몇 주 전부터 시민들의 정규 촛불집회로 인산인해이다. 아침 시간대에는 한가로울 줄 알았던 것은 오산이었다. 이미 많은 시민들과 도로 양옆에 늘어선 언론사 차량으로 붐볐다. 다행히 ‘빨간 손수건’ 덕분에 붐비는 무리 가운데 서울 미래유산 역사탐방 그룹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서울 미래유산 역사탐방에 참여하면 나눠주는 손수건. 덕분에 무리를 놓치지 않고 잘 찾을 수 있었다 이 날의 탐방은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광화문은 현재에도 다양한 정부기관이 많은 곳이지만, 전문 해설사가 펼친 지도를 들여다보니, 과거 조선에는 더욱 그랬다. 광화문 광장이 예전에는 ‘총독부 광장’, ‘미군정청 광장’ 등으로 불렸을 만큼 광화문 광장의 역사는 깊다. 2002한일월드컵 때 실질적으로 ‘시민의 광장’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이후, 지금은 촛불을 들고 시민의 목소리를 내는 광장으...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

‘뚜껑 없는 박물관’ 서울의 역사도보여행

우리에게 3월은 봄의 시작이자 삼일절이라는 역사적인 날이 있는 달이다. 야외활동을 시작하기 좋은 이 봄에, 역사도보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멀리 떠날 필요도 없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광화문에서 서대문형무소까지 이어지는 길로 역사도보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과 사직단 일명 광화문-서대문형무소 코스로 불릴 수 있는 이 도보여행의 시작점은 경복궁의 남문이자 정문인 광화문에서 시작된다. 경복궁이 조선의 법궁이었던만큼 광화문은 다른 궐문보다 훨씬 더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궁궐은 '궁'과 '궐'이 합쳐진 말인데 '궐'은 높은 석대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을 말한다. 지금은 경복궁 돌담과 떨어져 있는 동십자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일반적인 궁궐의 의미에 빗대어 보자면 광화문은 조선시대 궁궐 정문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 일제의 마수는 광화문에도 미치게 된다. 일제는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광화문을 헐어 동쪽으로 옮겨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는 한용운 선생이 '돌집'이라고 불렀던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다. 해방 이후 광화문은 여러 차례 중수를 하게 됐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광화문은 2010년 8월에 완공한 것이다.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광화문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수문장 교대식 때문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큰 깃발과 화려한 복식을 한 수문장들의 박력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큰 관광 상품이 되었다. 경복궁 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 서촌에는 사직단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도보로 10분 정도 이동을 하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에게 제례를 올리기 위해 마련된 장소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종묘, 서쪽으로는 사직단이 자리 잡은 것이다. 토지와 곡신의 신에게 제사를 올린다는 뜻의 `사직단` 제례 종묘사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직단은 종묘에 버금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직단도 일제시대에 큰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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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이란 이름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서울에는 조선시대 매년 큰 제사를 지냈던 제단으로 사직단, 환구단, 선잠단, 선농단, 장충단 등 다섯 곳이 있다. 이곳은 농사에 필요한 비와 풍작을 빌고 잠업에 도움을 바라며 나라를 위해 희생된 영령을 위해 제사 지내던 곳으로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사직단은 태조가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함께 세운 것으로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으며,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 제사는 1년에 네 차례 대사와 중사로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그믐에 지냈으며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풍년을 비는 기곡제 등도 이곳에서 지냈다. 현재 사직공원이 위치한 곳이 사직단의 옛 자리로 일본강점기에 공원으로 격이 낮춰졌다. 농경문화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은 삼국시대에 시작되어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다가 조선시대에 시행과 철폐를 거듭하다가 세조 이후 중단되었다. 그 후 아관파천에서 환궁한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시 환구단을 설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환구단이 헐리고 그 자리에 총독부의 철도호텔이 들어섰었다. 현재 중구 소공동에 있는 조선호텔이 그 자리다. 지금의 환구단은 1899년에 만들어진 팔각의 3층 건물로 내부는 통층이고 각 면에는 3개씩의 창을 내었으며 천장에는 용을 새겨 넣은 황궁우와 그 앞에 제천의식 때 사용하는 악기를 본 뜬 돌로 만든 북과 석조 정문만 남아있다. 1967년 7월 15일, 사적 157호로 지정되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구 성북동 방향으로 약 800m가면 5백여 평 대지에 북쪽 방향에 선잠단이라는 돌비석이 서있는 약 5~6여 평의 제단이 있다. 이 단은 1471년 성종 왕이 처음 쌓은 것으로 앞쪽 끝에 뽕나무를 심어 궁중의 잠실(蠶室)에...